LOGIN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기설윤이 다시 밖으로 실려 나왔다.바닥에 엎드려 있던 부모님이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그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저앉았다.기설윤은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화장과 옷차림까지 내가 살아생전 즐기던 모습 그대로였다.배연우는 눈시울을 붉히며 다가갔고, 감격스러운 듯 그 얼굴을 어루만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서화야…""폐하."기설윤이 힘겹게 고개를 들며 입을 열자, 배연우가 그녀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쉿.”그는 조용히 하라는 듯 나지막이 소리를 냈고, 눈에는 광기 어린 집착이 일렁이고 있었다."닥치거라. 서화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말을 마친 그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당장 벙어리로 만드는 약을 가져오게 하여 기설윤의 입에 들이부었다.결국 기설윤은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채 황당한 황후 책봉식을 마쳤다.배연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빼앗았고, 그녀를 철저히 나의 대용품으로 만들었다.기설윤이 나와 닮지 않은 표정을 지을 때마다, 배연우는 화를 내며 온갖 수단으로 그녀를 잔혹하게 고문했다.며칠이 지나자 기설윤은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급기야 궁녀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비녀로 자신의 얼굴을 처참하게 그어버렸다.배연우가 달려왔을 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는 분노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궁인 몇 명을 베어 죽였다.그의 분노를 지켜보던 기설윤은 바닥에 엎드린 채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마치 아무 소용도 없는 배연우의 분노를 비웃는 듯했다.약 때문에 목소리를 잃은 그녀는 마지막 발악을 하듯 거친 목소리를 내뱉었다.“폐하께서 저를 죽인다 해도… 기서화 그 천한 년은 돌아오지 않습니다.”“폐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그년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기설윤은 일그러진 얼굴로 배연우를 노려보았다."그년은 아이 하나만 제대로 키워냈어도 공략에 성공해서 죽지 않았을 겁니다.”“허나 꿈에도 몰랐겠지요. 자기 자식 다섯 명 중 단 한 명도 살아
그날 밤이 지나고 배연우는 정말로 황후를 책봉하라는 교지를 내렸다.황후 책봉식이 열리는 날,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궁에 들어오셨고, 어머니는 면사로 얼굴 한쪽을 가리고 있었다.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던 날 밤, 아버지는 배연우의 명으로 곤장 오십 대를 맞았다.아버지는 무술을 익혀 몸은 건장했지만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곤장 오십 대를 맞고 목숨은 건졌지만, 그 탓에 한쪽 다리가 완전히 부러져 결국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다.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형벌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뺨을 맞았다.곱게 가꾸어 온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고, 더는 남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없게 되었다.그뿐만 아니라, 배연우는 그들을 거지 신세로 강등시켜 장군부에서 쫓아냈다.부모님의 비참한 모습을 본 기설윤의 눈에는 슬픔은커녕 혐오스러운 기색만 가득했다."궁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저는 이제 곧 황후가 될 몸입니다. 그런 몰골로 궁에 들어와 남들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제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숨김없이 드러낸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설윤아, 너는 우리 딸이지 않느냐. 이런 경사스러운 날에 부모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인데, 설마 우리가 오는 게 싫은 것이냐?”진심 어린 어머니의 말에도 기설윤은 감동하기는커녕 오히려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설윤아, 이게 무슨 태도냐? 예전에 서화가 황후로 책봉되던 날에도 그 아이는 나와 네 어머니에게 깍듯이 예를 갖추었거늘. 우리가 평소에 너를 그리 아꼈는데,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아버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기설윤은 귀찮다는 듯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그만하십시오. 이렇게 경사스러운 날에 기서화의 이름을 꺼내서 제 기분을 망치고 싶으십니까?”“정 오고 싶으시면 오십시오.”"다만 책봉식이 열리는 대전에는 두 분의 자리가 없으니, 지금 신분에 걸맞게 멀리서 구경만 하다 얼른 돌아가십시오. 괜히 궁에 남아 망신 당하지 마시고요."
배연우가 아무 말 없이 문 앞에 서 있었다.그의 몸에는 눈이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고, 어둠 속에 가려져 그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기설윤은 화들짝 놀라더니, 순식간에 다시 연약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폐하, 드디어 저를 보러 오셨군요."그녀는 일부러 기운이 없는 척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제가 무능하여 폐하께 건강한 큰아들을 무사히 낳아드리지 못했습니다."배연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가가 그녀를 부축했고, 기쁨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큰아들을 낳지 못하면 공략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죽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기설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한참 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조심스레 말했다."안내자가 저를 가엽게 여겨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황후로 책봉해 주신다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합니다."배연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기설윤은 다시 한발 물러서는 척하며 오히려 원하는 바를 얻으려 했다."폐하,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서화와 다툴 생각도 없으니, 폐하께서는 저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설령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죽게 되더라도, 저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그래, 알겠다."배연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설윤의 눈동자 깊은 곳에 환희가 스쳤다.그녀가 감사를 표하려던 찰나, 목에 갑작스러운 통증이 느껴졌다.배연우는 그녀의 목을 세게 움켜쥐었고,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그럼 그냥 죽거라."기설윤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부림치며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폐하, 왜 이러십니까? 저는 설윤입니다.”하지만 그녀가 한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배연우의 눈은 점점 더 붉게 충혈되었다.기설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숨이 막히기 직전이 되어서야 배연우는 마치 더러운 것을 내던지듯 그녀를 힘껏 바닥에 내팽개쳤다.기설윤이 계속 기침을 내뱉는 동안, 배연우는 몸을 숙여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잡아 들어 올렸고, 그의 두 눈은
배연우는 기설윤의 비명 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다.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차갑게 식어가는 내 몸을 품에 안았고, 마침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한때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던 황제가 사람들 앞에서 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서화야, 나를 떠나지 말거라. 내가 잘못했다. 제발 부탁이니 나를 두고 가지 말거라…”그는 목이 쉬도록 슬프게 울부짖었고,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의 흥건한 피와 뒤섞였다.한참을 울던 그가 바닥에 떨어진 피 묻은 단검을 보더니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이 단검은 어디서 난 것이냐?! 누가 서화를 죽게 만든 것이냐!”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아버지가 전각 안에서 나와 무릎을 꿇었다.“폐하, 소인은 그저 불효한 딸에게 머리카락을 잘라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게 하려 했을 뿐인데, 갑자기 단검을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습니다!”배연우가 섬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얼굴에 서린 살기가 짙어지면서 표정마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네 이놈!”그는 아버지를 발로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서화는 짐의 황후다! 네가 감히 누구의 허락을 받고 서화와 연을 끊겠다는 것이냐! 네가 말로 자극했으니 서화가 죽을 생각까지 한 것이 분명하다! 네놈은 죽어 마땅하다!”말을 마친 배연우가 손을 휘둘렀다.“여봐라! 이 죽일 놈을 끌어내 곤장 쉰 대를 치거라!”“폐하! 살려주십시오!”아버지가 발버둥 치며 끌려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기설윤이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전각 안에서 서둘러 나왔다.“폐하,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비록 장군이시지만 연세가 많으셔서 곤장 쉰 대를 맞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배연우는 기설윤의 애원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악독한 여인이 황후에게 무례한 말을 했으니, 함께 끌고 가 뺨을 때려라!”시위들이 어머니까지 끌고 나가자 전각 밖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
배연우가 전각 밖으로 나왔을 때 본 광경은, 내가 단검으로 목을 찌르는 모습이었다.“서화야!!!!”가슴이 찢어질 듯이 울부짖는 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졌다.나는 피 웅덩이 속에 쓰러진 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눈을 떴다. 경악에 휩싸인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다가, 마침내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이연주 님의 생명 징후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산 절차를 시작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안내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의 영혼은 육체를 빠져나와 허공으로 떠올랐다.어머니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그녀의 겉옷은 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는 굳은 몸으로 눈동자만 굴려 나를 바라보았고, 부릅뜬 두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옆에 있던 아버지 역시 경악한 채 입을 다물지 못했다.배연우는 내 상처를 움켜쥐고 미친 듯이 소리쳤다.“태의는 어디 있느냐! 어서 황후의 지혈을 도와라!”힘을 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세게 눌러도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내 상처를 막을 수 없었다.태의가 허둥지둥 달려와 가장 좋은 지혈약을 상처 부위에 다급하게 뿌려댔다.하지만 미동조차 없는 내 가슴팍을 본 그는 떨리는 손으로 내 코앞에 손을 가져다 대며 숨결을 확인하고는, 다시 맥을 짚어보았다.그러다 결국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엎드렸다.“폐하! 황후 마마께서 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닥치거라!”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연우는 화를 내며 발로 태의를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황후가 죽었다니! 한 번만 더 헛소리를 지껄이면 네 구족을 멸하여 황후와 함께 묻어 버릴 것이다!”감긴 내 눈을 보며 배연우는 밀려오는 공포를 억누르려 애썼다.“서화야, 눈 좀 떠보거라. 짐이 왔다. 눈을 떠서 짐을 좀 보란 말이다…”그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어머니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내게 달려왔다. 내 목에 난 흉측한 상처를 본 어머니는 충격과 고통이 뒤섞인 표정으로 손을 뻗어 내 숨결을 확인했다
“기서화!!!”배연우의 외침이 귓가에 갑자기 울려 퍼졌다.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았으나, 예상했던 끔찍한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서화야!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거라!”앞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나는 앞을 가로막은 기설윤과 세게 부딪혔다.그 바람에 기설윤은 충격에 못 이겨 바닥으로 나뒹굴었다.“귀비 마마께서 피를 흘리십니다!”시녀가 놀란 표정으로 기설윤의 하반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를 가리켰다.배연우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나를 거칠게 밀치고 달려가 기설윤을 품에 안았다. “태의를 부르거라!”나는 바닥에 넘어지면서 아랫배가 날카로운 탁자 모서리에 부딪혔다.이미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던 상처에서 다시 한번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전각 안으로 옮겨지는 와중에도 기설윤은 배연우의 손을 놓지 않으며 애원했다.“폐하, 이건 다 제가 조심하지 못한 탓입니다. 서화를 탓하지 마십시오.”나의 통증이 사라지기도 전에, 배연우는 손을 들어 내 뺨을 세게 때렸다.그 힘이 어찌나 강한지 귀에서 이명이 들릴 정도였다.그는 핏발 선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기서화! 짐이 한 말을 단 한 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구나!”“설윤이가 어렵게 아이를 가졌고 너를 해칠 생각도 없었는데, 너는 왜 기어코 설윤이를 해치려 드는 것이냐? 죽고 싶으면 짐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가서 죽거라! 남에게 피해 주지 말고!”분노에 찬 배연우의 모습을 보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언니가 직접 제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저를 해칠 생각이 없었다고요? 제 아이 다섯 명 전부 다 언니의 손에 참혹하게 죽었습니다. 5년 동안 다섯 명이나요!”“설사 뱃속의 아이가 잘못된다 해도 그건 언니가 자초한 일입니다!”“닥치거라!”배연우는 몹시 화가 난 듯 핏대를 세우며 매섭게 소리쳤다.“이 지경이 됐는데도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다니. 짐이 사람을 잘못 봤구나, 예전에는 네가 온화하고 현숙한 줄 알았거늘!”“아무도 없느냐! 황후를 끌어내 궁의 법도에 따라 매 스무 대를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