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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Author: 무안안
유치원에서 심태하는 착했고 말도 잘 들었으며 점심을 먹은 후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은 자지 않으려고 훌쩍거렸고 어떤 애들은 분유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세 명의 선생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심태하는 선생님이 방심한 틈을 타서 가방을 메고 조용히 교실을 나섰다.

오후의 햇살이 듬성듬성한 구름에 가려져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드리워 더욱 조용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심태하는 혼자 학교를 걷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교실에서 멀리 떨어진 모두에게 잊힌 것만 같은 구석을 찾았다. 그곳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갈라진 바닥 사이로 들꽃이 고개를 내밀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그가 왜 왔는지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심태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어깨에 메고 있던 약간 무거워 보이는 책가방을 내려놓았다. 그 안에는 장난감이 든 게 아니라 가볍지만 강력한 공능을 가진 휴대용 컴퓨터가 들어 있었다.

그의 동작은 전쟁터를 오랫동안 겪은 병사처럼 신속하고 숙력되었다. 손가락으로 전원 버튼을 살며시 누르니 화면이 밝아지면 어두운 구석에서 청자색 빛이 유난히 빛났다.

심태하의 눈빛은 순식간에 날카로워졌는데 마치 전 세계의 소란은 이미 차단되고 그와 눈앞에는 코드 세계만 남은 것 같았다.

키보드는 그의 손끝에서 점프하며 매번 두드릴 때마다 가벼운 ‘다다다’ 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고 이 조용한 공간에서 더욱 잘 들렸다. 이 소리는 마치 전쟁터에서 울리는 북소리처럼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화면에는 줄줄이 코드가 물 흐르듯 나타났다가 곧 새로운 지시에 덮어졌다. 이것은 그의 지혜와 노력의 결과로서 소리 없이 수많은 미지의 기적을 쌓고 있었다.

심태하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펴기도 하며 자신의 세계에 완전히 빠졌다. 가끔 미풍이 불어와 주변의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는데 마치 그의 이 특별한 ‘일’을 응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시간은 마치 의미를 잃은 것 같았는데 그저 화면에 있는 커서만 계속 반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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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유진은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눈빛이 그녀를 감쌌고 낮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말해 봐.” 심미연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과 마주친 순간, 마음 한켠에서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올랐다. 마치 오래도록 감춰온 비밀이 이제야 드러날 것만 같은 예감처럼. “왜 그래, 미연아?” 박유진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다. 그녀의 불안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아주 섬세하게 묻는 말이었다. 심미연은 입을 열 듯 말 듯 망설였다. 떨리는 입술이 달싹이기만 할 뿐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고 있는 건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강지한의 딸, 강상미. 들어본 적 있지?” 박유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 아이가 왜?” 툭 튀어나온 말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미연이랑 강지한의 딸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를 말하는 걸까.’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다짐하듯 눈을 감았다가 뜨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예전에 내가 잃어버린 내 딸... 그 애는 세상을 떠난 게 아니었어.” 그 말 한마디를 꺼내기 위해 그녀는 거의 모든 용기를 다 쏟아부었다. “정말이야?” 박유진의 목소리는 놀라움에 젖어 있었다. 그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너 분명히 말했잖아. 아이 숨 안 쉬고 있었다고. 직접 확인했었잖아... 확신했었어.” 그 순간, 박유진의 머릿속을 스친 단 하나의 가능성. ‘설마... 지금 미연이가 말하려는 게... 그 아이가 강상미라는 말이야?’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껏 맞춰지지 않던 조각들이 하나로 이어지고 복잡하게 얽혔던 퍼즐이 비로소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박유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손끝이 얼어붙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4화

    박시훈은 눈을 깜빡이며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바라봤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을 수가 있지?’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른데요?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심미연은 이마를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박시훈은 민망해서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왜 비정상이야... 완전 정상이거든...’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상처를 확인했다. 상처는 붉게 부어 있었고 피도 조금 배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약을 꺼내 상처 위에 다시 발라주었다. 상처는 쓰라렸지만 박시훈은 이 순간이 영원히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곁에 있는 지금이 너무도 소중했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상처를 감싸고 도구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마무리를 한 뒤 장갑을 벗으며 병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 “저... 방금 야식 시켜놨는데... 같이 먹고 가주면 안 돼요?” 박시훈은 괜히 목이 메여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이렇게 소심한 사람이었다니, 스스로도 놀라웠다. ‘내가 왜 이 사람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거야...’ “저는 밤에 야식 먹는 습관 없어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야식 너무 자주 먹지 마요. 건강에 안 좋아요. 전 이만 갈게요. 야식 먹고 푹 쉬세요.” 그녀의 말에 박시훈은 마치 한겨울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었다. 심지어 발끝까지 저릿했다. 그녀가 간다. 그를 남겨두고 그냥 떠나버린다.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심미연은 이미 등을 돌린 채 병실을 나서고 있었고 박시훈의 낙담한 얼굴은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병실을 벗어난 심미연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깊게 숨을 들이켰다. 몇 시간째 이어진 수술에, 온몸이 녹초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강지한을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걸어 나왔을 때 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3화

    심미연의 시선이 하얗게 눈처럼 샌 강준형의 머리카락에 머물렀다.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려왔다. 만약 시간이 되돌릴 수 있다면. 그저 아무 걱정 없이 웃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땐 주저 없이 말했을 것이다. ‘네. 할게요.’그때 그녀는 강지한을 사랑했고 그의 가족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강지한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강준형이 걱정된다고 해서 그 바람을 무조건 들어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곁에서 조용히 그녀를 훔쳐보던 가정부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모님은 역시 마음이 떠나신 거구나...’ ‘이러다 어르신 또 며칠을 우울하게 보내시겠네...’강준형도 그녀의 침묵에서 모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인연이란 게 억지로 붙잡는다고 이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비록 아쉬움은 남지만 그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할아버지, 사실 저랑...”“딩.” 심미연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려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고개를 든 그녀는 곧장 부드러운 눈빛을 머금은 박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말은 다시 목구멍 깊숙이 삼켜졌다. “오빠, 여긴 어떻게 왔어?”박유진은 따뜻한 미소로 대답했다. “너 데리러 왔어.” 그리고 곧 예의를 갖춰 강준형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강준형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유진아, 너랑 미연이...?” 어딘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의 분위기.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이 스쳤다.“할아버지, 제가 차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심미연은 사실 내일 박유진과 혼인신고를 하러 갈 거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전, 강준형이 ‘강지한과 다시 잘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자 그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말하지 말자. 괜히 말했다가 할아버지 마음만 상할 수도 있어.”그 순간, 박유진의 손이 저절로 움켜쥐어졌다. ‘할아버지한테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2화

    하지만 정작 온지유의 칼끝을 막나낸 사람은 그다지 친하다고 할 수 없었던 박시훈이었다. 심미연의 진지한 얼굴을 본 강준형은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챘다. 더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그를 의자에 앉히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 앉아 계세요. 옷만 갈아입고 금방 나올게요.” “그래. 다녀오너라.” 강준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냈다. 심미연이 등을 돌려 복도로 사라지자 그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곁에 서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즘 사모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성격도 훨씬 부드러워지셨고요. 만약 사모님이 도련님과 다시 재결합하신다면 어르신께서도 도련님 혼자 남을까 봐 걱정 안 하셔도 될 텐데요.” 강준형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게 말이다. 미연이가 돌아온다면 지한이도 지금처럼 외롭진 않겠지. 상미도 엄마 손길이 필요하고... 지한이가 아무리 잘 챙긴다 해도 아빠는 아빠일 뿐이지. 엄마처럼 섬세하긴 어렵잖니. 게다가 지한이는 이노하이브를 이끄는 입장이라 상미를 온전히 돌보기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말이다.” “나중에 사모님께 슬쩍 한번 말씀드려보시는 건 어떠세요?” 가정부는 늘 심미연을 좋게 봐왔다. 도련님과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세상에 외모, 인품, 성격, 효심까지 갖춘 여자를 다시 만나긴 정말 쉽지 않으니까. 강준형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분위기 봐서 말해보지. 미연이가 듣기 싫어하면 더는 꺼내지 않을 거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가정부도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심미연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다가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가시죠. 할아버지.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1화

    박시훈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수술복을 입은 심미연을 단번에 알아봤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그녀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는 도저히 다른 사람과 헷갈릴 수 없는 것이었다. “날 좀 밀어줘.” 박시훈이 간병인에게 다급히 말했다. 간병인은 곧장 그의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이어 강준형도 하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심미연 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미연아, 상황이 어때?” 강준형의 목소리엔 감추지 못한 초조함이 담겨 있었다. 그때 박시훈의 시선이 다시금 심미연에게로 향했다. “당신 의사예요?”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직이 말했다. 세계 최고 해커, 그리고 의사. 그녀가 가진 아우라는 더없이 눈부셨다. 박시훈은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상태가 조금 위중해요. 지금은 언제 깨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심미연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강준형이 가장 궁금해할 말이었다.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고 일부러 마지막 문장을 강조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강준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심미연의 손을 꼭 잡았다. “미연아, 정말 고맙다. 수고 많았어.” 심미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별 말씀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 강지한은 그녀를 구해준 적이 있다. 이제 그녀가 그를 구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할아버지, 강지한이 깨어나면 병원에서 바로 연락드릴 거예요. 지금은 먼저 집에 가 계세요.” 심미연은 그의 머리 위로 보이는 은빛 머리카락을 보며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시려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강준형은 이전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미연아, 혹시 아이 좀 데려와서 나한테 보여줄 수 있겠니?” 그는 줄곧 강지한이 그녀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30화

    심미연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강지한은 자신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이지연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 보스를 죽이려고 해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 밤 그 대형 교통사고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대형 트럭을 이용해 그녀를 노렸고 때마침 강지한의 차량이 그 사이에 끼어들면서 그가 대신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게다가 차량이 폭발했다면 강지한이 그 안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사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연아?” 말이 없던 심미연을 걱정한 강준형이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전화를 끊은 줄 알고 불안해졌는지 목소리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지금 바로 갈게요. 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제가 꼭 강지한 살려낼게요.” 심미연은 단호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꼭 쥔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녀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장 안으로 들어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핸드백과 폰을 챙겨 계단을 내려섰다. 그녀는 몰랐다. 서재 문 앞에 조용히 서 있던 박유진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박유진의 눈빛은 텅 빈 허공을 떠돌 듯 쓸쓸했다. 그녀가 향하는 곳이 누구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야만 했다. 강지한이 목숨을 걸고 그녀를 지켰다면 그녀는 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아마 오늘 구청이 문을 열었더라도 심미연은 박유진과 그곳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박유진은 마음이 아프지 않은 척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당연한 거야. 나라도 갔을 거야.’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건 위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속이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잠시 후, 그는 조용히 서재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지만 화면 속 글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한 사람, 심미연. 지금 그 순간에도 그녀만이 그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29화

    ‘강 할아버지’라는 이름이 핸드폰 화면에 뜨는 순간, 박유진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강지한의 할아버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는 건 분명 강지한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강지한이 심미연을 구하려다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녀가 당연히 그를 찾아갈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미연아, 갑자기 급한 회의가 생각났어. 먼저 전화 받아. 난 서재에서 회의 좀 하고 있을게.” 박유진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고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 또한 신중했다. 마치 그녀의 마음을 흔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레 말하려 애쓰는 듯했다. 심미연은 정신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응. 다녀와. 나도 통화 좀 할게.” 박유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녀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통화 끝나면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푹 쉬어. 알았지?” “응. 오빠도 회의 끝나고 푹 쉬어.” 심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박유진은 언제나 그녀에게 따뜻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몇 번이나 외면하고 져버렸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그럼 난 먼저 갈게.” 그는 그녀의 체온을 놓치기 아쉬운 듯 한동안 손끝을 망설였지만 결국 손을 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예전에 박유진의 어머니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연이와 결혼하고 싶다면 그 아이를 절대 놓치지 마라.’ 하지만 만약... 심미연이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녀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강요하는 건 박유진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그에겐 견딜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서재 문이 조용히 닫히자 심미연은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앉자마자 아까 걸려온 전화를 다시 눌러 받았다. “미연아, 나야. 혹시 내가 깨운 건 아니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미안하구나.” 강준형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지쳐 있었고 그 안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728화

    강지한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 박시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뉴스 봤어. 네 카이엔이 폭발했다길래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네가 무사하니까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그 대형 트럭, 당장 확인해. 전부 조사하고 운전자는 반드시 찾아.” “알겠어. 지금 바로 확인해볼게.”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박시훈의 표정도 금세 굳어졌다. “조금만 기다려. 바로 연락할게.” “응. 최대한 빨리.” 강지한은 단호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와 동시에 눈앞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마치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편, 심미연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2층 서재로 향했다. 노크를 하려던 순간, 가방 안에서 핸드폰이 진동을 울렸다. 잠시 망설인 끝에 그녀는 전화를 먼저 받았다. “보스, 큰일 났어요. 누가 보스를 죽이려고 해요.” 이지연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대로 귀에 박혔다. 심미연의 머릿속엔 낮에 있었던 사고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 대형 트럭. 정말 자신을 노리고 달려든 게 맞았던 거다. 만약 그 카이엔이 없었다면 지금쯤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지연 씨, 천천히 말해봐요.”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최대한 침착하게 반응했다. ‘도대체 누가 날 죽이려는 거지?’ ‘온지유?’ 하지만 그럴 리 없었다. 온지유는 지금 그녀 손에 있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다. “저도 방금 들었어요. 육현성 씨가 누군가랑 통화한 녹음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스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어요.”이지연은 숨도 고르지 못한 채 말을 쏟아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봤어요?” 육현성이 자신을 증오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온지유까지 그녀 손에 있는 상황이니 원한을 품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지연이 말한 그 목소리는 육현성이 아니었다. 그게 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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