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중학교때 시녀로 불리던 약자인 사생아. 그녀가 모두에게 버림 받은 날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태계의 강자가 되어 나쁜 남자들과 나쁜 사랑을 빠진다. 그러다 만난 의대 최고의 바람둥이. 그와 만나고 자꾸 예전 약자로 돌아가려는데...
View More[서유진?]
자신의 한옥집 처마 밑에 앉아 차갑게 칠 (Chilled) 된 와인 한잔을 마시고 있었다.
장마전선으로 잔뜩 흐린 늦은 오후의 하늘…
그때 울린 벨소리.
요스케는 아무 생각없이 마루에 놓인 휴대폰을 확인했다.
휴대폰 화면에 뜬 예상도 하지 못한 발신인…
그는 놀라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톡도 아닌… 전화? 무슨 일이지?]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안부인사도 어떤 서론도 없이 툭하고 던지듯 물었다.
“선배… 이번 주 수요일 시간 되세요?”
“수요일? 왜?”
“저 술 사주세요”
“… …”
“안돼요?”
“돼. 몇 시?”
“3시”
“그럼 대학로 광장으로 나와”
“네.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늦으면… 그냥 가세요.
아마 그 날 저… 연락 잘 안될 거예요”
평소에 그녀라면 자신에게 술을 사달라는 전화를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그녀의 전화에 그의 가슴이 설레임으로 쿵쾅거렸다.
*
수요일 오후 4시 25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 없이 내린 비에 그는 우산도 없이 서 있었다.
이미 약속 시간이 1시간 25분이나 지나 있었다.
하지만 요스케는 대학로 거리의 인파 속에서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횡단보도 맞은편에서 유진이 보였다.
보라색 우산을 들고 하늘색 쉬폰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블랙 데님에 소매를 접어 올린 블랙 코튼 셔츠,
그레이 하이탑 스니커즈를 신은 남자…
멀리서도 그가 보였다.
눈에 띄는 모델 같은 비율의 남자…
그리고 점점 다가갈수록 비에 젖은 그의 섹시한 카리스마가 그녀의 시선을
아프게 사로 잡았다.
“미안해요. 너무 늦어서…”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약속에 늦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유진은 왜 늦었는지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미안해서였는지 그를 제대로 마주 보지도 못하고 피했다.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자신의 단골 술집으로 데려갔다.
작은 골목이 복잡하게 얽힌 뒷골목의 막다른 골목.
두 사람은 그 깊은 골목 안 아주 작은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소주 2병이요.
그리고… 아직 저녁 전이니까…
식사도 같이 할 수 있게 김치찌개에 소주 어때요?”
“맘대로… 해”
유진은 메뉴판의 앞 쪽에 즐비한 비싼 메뉴들을 무시하고 맨 뒷장부터 확인하고
가장 저렴한 안주와 술을 시켰다.
로맨틱한 데이트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메뉴…
하지만 그는 굳이 다른 메뉴를 권하지 않았다.
오늘의 만남이 평범한 데이트로 이어질 가망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가 편한 대로 그대로 놔두었다.
소주가 먼저 나왔고 그녀는 연거푸 2잔의 소주를 물 마시듯 단번에 마셔버렸다.
“술도 못 마시는 게…
안주부터 먹어.
술에 체하면 약도 없다”
“오늘 우리 술 약속…
진짜 기가 막히게 잡은 것 같지 않아요?
비도 오고 분위기도 우중충한 게… 술이 달아요”
“근데… 갑자기 왜 술타령이야?”
“그냥 마시고 싶었어요.
선배랑 단 둘이… 방학이라… 심심하기도 했고…”
유진의 시선이 술잔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맞은 편에 앉아 그녀만을 바라보는 요스케를 단 한번도 마주보지 않았다.
“방학동안 실험실 일은 계속 하는 거야?
아님 뭐… 다른 거… 하고 싶은 건… 없어?
“글쎄…
근데 선배는 방학인데… 일본 안 가세요?”
“잠깐 갔다 오긴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근데 왜 일본에서 의대를 안 가셨어요?”
“어머니가 적극 권하셔서…”
“아… 그렇게 안 보이는데 마마보이인가 봐요?
“글쎄… 그런가…”
“그럼 한국어는 일본에 사실 때부터 잘 하셨어요?
거기서 태어나신 거 아니에요?”
“응. 재일교포 3세…
그래서 부모님이 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시키셨어.
근데 너도 동문의 밤 때 보니 일본어가 자연스럽던데… 휘태커 교수님
혼혈이셨는데도 일본어가 굉장히 능숙하셨나봐”
“아… 동문회 밤…
그때 선배와 같이 오셨던 일본 여자 분 되게 예쁘셨는데…
그 날 의대 사람들이 선배와 그 여자분…
그림 같이 잘 어울린다고…
진짜 얘기 많이 했어요”
“카호는… 그냥 집안끼리 좀 아는 지인일 뿐이야”
“아… 그렇구나…
그럼 소개팅 안 하실래요?
저 고등학교 2년 선배가 선배 소개시켜 달라고 부탁 했거든요…
그리고 그 언니 진짜 예뻐요.
거기다 남자들이 무조건 두 팔 벌여 환영한다는 무용과…
아님 친한 언니가 스튜어디스인데…
스튜어디스는 어때요?”
순간 그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숨막히는 정적이 흘렸다.
“너… 진심이야?”
“네. 진심으로 선배가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요”
유진은 다른 날보다 유독 그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가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에게 다른 여자들과의 만남을 권유했다.
그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자신이 한심하고 허무했다.
이틀 전 뜬금없이 걸려온 유진의 전화에 그는 설레였다.
혹시나 그녀에게 보였던 호감에 긍정적인 대답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그 기대가 그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그녀가 나타나기도 전에 이미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보이는 너무도 직관적인 시그널…
그는 아직 기대를 놓지 못했던 자신이 비참하기까지 했다.
[역시… 넌 날… 정리할 생각이었던 거구나…
그때 내가 분명 부담 갖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만큼 내가 너에게 부담을 준 거니?
그냥 좀 모른 척 눈이라도 감아 버려줄 수는 없었니?
만약 그랬다면…
그 편이 더 쉬웠을까… 너에 대한 내 마음이…]
“그래서 너… 나를…
이런 쓸데 없는 여자들과 연결시켜 주려고
오늘 술 마시자고 한 거니?”
“제가… 쓸데 없는 짓 한 건가요?”
“내가… 너에게 괜한 부담을 준 것 같은데…
이제 너… 나와 학교에서 마주칠 일 없을 테니…
나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신경은… 쓰지 않아도 돼”
그때 유진이 자신에게 상상도 못했던 질문을 건넸다.
“그럼… 오늘 나랑 잘래요?”
[ 미안해…… 정말 미안해, 유진아. 네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널 그 지옥 같은 공포 속에 홀로 방치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소독약 냄새가 서늘하게 감도는 대학병원 응급 병실 앞 복도.요스케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셔츠 차림 그대로 차가운 벽에 기대어 고개를 깊숙이 떨군 채, 완전히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넋이 나가 있었다.흉포하게 들이닥쳤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멎었으나, 그의 머릿속은 여전히 유진의 숨이 멎어가던 오피스텔 거실의 잔상으로 터질 듯이 어지러웠다.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요스케가 신속하게 도어락을 따고 들어가 선호를 제압하고,곧바로 기도 확보 후 CPR을 시행한 덕에,유진의 뇌와 장기에는 큰 손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가느다란 호흡을 되찾은 유진은 병실로 이송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의식을 회복했다.하지만 수액이 떨어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병실 안,요스케의 시야 속으로 들어온 유진의 상태는 그를 분노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새하얗고 가녀린 그녀의 목덜미 위로, 강선호라는 괴물이 남기고 간 시커넓고 선명한 다섯 손가락의 목 졸린 손자국이 끔찍한 낙인처럼 박혀 있었다.그 가혹한 상흔을 똑바로 마주하는 순간,요스케는 속에서부터 살의가 치밀어 올랐다.주먹을 꽉 쥐고 떨고 있는 그의 앞에서,산소마스크를 벗어 던진 유진이 꺼칠하게 굳은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첫마디를 뱉어냈다.“선배…… 오빠… 그 사람은 지금 어떻게 됐어요?”유진은 지옥 같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의식을 찾자마자,제 목숨을 걱정하기는커녕,자신을 죽이려 들었던 가해자 강선호의 안위부터 다급하게 물었다.유진의 그 황당한 질문에,요스케는 허탈함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그 자식… 아직 이 병원 다른 병실에 누워있어. 근데 신체적으로 별문제는 없으니까 걱정 마. 그냥 잠깐 충격 줘서 기절시켰을 뿐이니까.”“그럼…… 우리 부모님은요? 서회장님이나 엄마한테 연락 갔어요?”유진이 창백해진 얼굴로
굳게 닫힌 철제 현관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는 복도에 홀로 서 있던 요스케의 청각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기 시작했다.선호의 낮고 축축한 음성이 좁은 공간을 서늘하게 울렸다.“나…… 윤정이와 결국 헤어질 거야.”“……그래서요?”유진의 목소리는 메말라 있었다.“그러니까 넌 이제 다른 생각 하지 말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줘.”“오빠, 진짜 미쳤어요?”유진의 입술 사이로 기가 막힌다는 듯한 날카로운 실소가 터져 나왔다.“윤정이…… 어제 우리 둘의 관계에 대해 전부 눈치채고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 너, 더 이상 윤정과의 의리 때문에 나를 피하거나 멀어질 필요 전혀 없어.”“……뭐라고요?”유진의 음성이 분노로 바르르 떨렸다.“진짜…… 오빠는 보면 볼 수록 너무 최악이네요.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윤정이를 책임질 생각조차 추호도 없고, 사리분별도 전혀 안 되고…… 심지어 제멋대로 망상에 빠져서 이 지독한 집착까지……. 도대체 어디까지 바닥을 더 보여줄 작정이에요? 제발 정신 좀 차려요, 강선호! 이건 내가 오빠에게 가족으로서 해줄 수 있는 정말 마지막 충고에요. 만약 오빠가 부모들의 재혼으로 엮인 내 가족이 아니었더라면…… 나 그날, 오빠 경찰에 당장 신고했을 거에요. 그러니까 이제 제발 더 이상 내 앞에 찾아오지 마세요. 날 끝까지 벼랑 끝으로 몰지 말란 말이에요!”유진의 처절한 절규에도 선호의 눈빛은 광기로 일렁였다.“네가 날 이렇게 망가뜨리고 괴물로 만든 거잖아, 서유진. 네 엄마 때문에 내 친엄마가 미쳐서 비참하게 사는 걸 뼈저리게 보면서, 내 인생에 사랑 같은 거…… 운명 같은 거…… 단 하나도 믿지 못하고 살았던 나를 이토록 변하게 만든 게…… 하필이면 너였어. 그런데…… 이제 와서 네가 날 이토록 비참하게 버리고 도망치겠다고? 아니, 난 너 절대로 못 놔줘. 너에게 난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구원이어야 해. 너도 여전히 나 사랑하잖아, 부정하지 마.”“맞아요. 한때는 오빠를 사랑했어.”유진이 피가 배어 나오는 입술을
직접 구운 따뜻한 브런치로 시작했던 눈부신 주말 아침은. 어느덧 저녁노을을 지나 짙은 밤하늘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주말의 남은 시간마저 온전히 서로에게 내어준 채 함께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삼청동의 고즈넉하고 분위기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촛불을 켜두고 나눈 저녁 식사까지,완벽하리만치 평화롭고 달콤한 시간의 연속이었다.하지만 행복이 깊어질수록 뒤틀린 비극의 잔상이 유진의 숨통을 조여왔다.식사를 모두 마치고 주차장으로 향한 요스케는, 부드러운 손길로 조수석 문을 열어 유진을 태우며 나직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오늘은 일찍 너 놔줄게. 어제부터 내가 눈치 없이 내 욕심만 차리느라 널 너무 귀찮게 굴어서, 피곤하고 지쳤을 테니까.”운전석에 올라탄 그가 시동을 걸며 건넨 다정한 배려의 한마디.하지만 그의 배려 섞인 말에 유진은 가슴 한구석이 쿡 찔린 듯, 살짝 서운한 감정이 밀려왔다.참 이기적이고 모순적이었다.요스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살을 맞댈수록,이성의 통제를 벗어나 더 많이 그와 함께 얽혀 있고 싶다는 파멸적인 갈망이, 자꾸만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유진은 뾰루퉁한 시선을 감추며 짐짓 새침하게 쏘아붙였다.“선배가 밤새 무리해서 피곤한 거 아니에요? 괜히 혼자 민망하니까 내 핑계 대는 거 나 다 알아요.”유진의 짓궂은 도발에, 요스케가 핸들을 잡은 채 슬며시 고개를 돌려 위험할 정도로 농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래? 그럼…… 지금 내 집으로 다시 갈래, 후배님?”“……!”순간 유진은 숨이 턱 막히며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위험했다.이대로 그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가는,정말로 그와 24시간 내내 몸을 섞으며 함께 하려 들 터였다.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다가……그러다 결국 평생을 이 다정한 남자의 곁에서 함께 하고 싶어질까 봐,유진은 덜컥 거 거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엄습했다.유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그에게 다시 차가운 방어벽을 세우며 그를
“오늘…… 뭐 해?”주말의 시작을 알리는 토요일 아침 7시 정각.유진의 얌전하던 휴대폰 화면 위로 징하는 진동과 함께 요스케의 짤막한 톡이 띄워졌다.암전되어 있던 침실 안, 푸르스름한 새벽빛을 받으며 눈을 뜬 유진은 액정을 확인하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슥 올라가며 얼굴 가득 화사한 미소가 번져 나갔다.“선배… 이렇게 이른 아침에 벌써 일어난 거예요?”유진이 베개에 고개를 묻은 채 답장을 보내자, 요스케로부터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인 답이 날아들었다.“우리 브런치 먹으러 갈래, 후배님?”“몇 시에 요?”“바로 지금!”“네?! 나…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도 안 하고 밍기적거리고 있는데……”유진은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톡을 보냈다.어젯밤의 격정적인 사랑의 여파로 전신이 노곤하게 풀려 있었다.“그럼… 계속 침대에서 누워서 잘 거야? 많이 피곤해?”“조금요? 가만히 시간을 계산해 보니까… 우리 어제 밤늦게까지 함께 있었잖아요. 겨우 고작 5시간 전까지 우리 같이 붙어 있었네요, 선배.”유진이 살짝 민망함을 담아 톡을 쏘아붙이자, 화면 너머 요스케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답장이 도착했다.“알았어. 그럼 억지로 안 깨울 테니까… 계속 편하게 자.”“네. 그럼…”“문만 열어줘!”“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유진이 깜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자, 요스케의 거침없는 직진 대시가 문장으로 박혔다.“아니, 문 열 필요 없고 그냥 현관 비번만 톡으로 불러줘. 넌 침대 이불 속에서 계속 달콤하게 자고 있으면 되니까.”“선배, 지금 도대체 어디인데요?”유진의 다급한 물음 끝에, 곧바로 한 장의 사진이 전송되어 화면을 채웠다.낯익은 디지털 도어락과 네이비 컬러의 문틀.다름 아닌 지금 유진이 누워있는 이 오피스텔 호실의 현관문 바로 앞이었다.요스케는 이미 그녀의 집 문앞에 있었다.유진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기분 좋은 설렘에 잠시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가녀리고 작은 손가락으로 그에게 톡을 전송했다.[ 9230*
혜경은 요스케가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하는 동안,안내받은 한옥 내부를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게 둘러보았다.1층에는 아늑하면서도 은밀한 기류가 감도는 침실과 탁 트인 거실,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주방이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었다.이어 계단을 따라 내려간 지하층에는,고급 호텔을 연상케 하는 넓은 게스트룸과 묵직한 원목 책상이 놓인 서재,그리고 최고급 홈시어터 시설이 갖춰진 미디어룸이 자리 잡고 있었다.그뿐만 아니라 안쪽에는,피로를 녹여줄 커다란 자쿠지와 은은한 편백 향이 감도는 사우나 시설까지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다.지독할
파르르 떨리던 무거운 눈꺼풀이 마침내 천천히 열렸다.희미하게 번져가던 초점 속에서,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침대 곁을 지키고 서서 굳은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던 요스케의 실루엣이었다.낯선 천장과 서늘한 공기에 잠시 몸을 떨었지만,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가슴을 짓누르던 거대한 공포가 기적처럼 가라앉으며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유진은 밤새 겪은 격정과,방금 전 윤정의 임신 고백이 남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마디마디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추슬러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웅크린 그녀의 하얀 팔목 위
오후 3시. 요스케와 만나기로 한 시간…유진은 시계의 똑딱거리며 지나가는 초침을 바라보며 초조했다.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오후 4시. 이미 약속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이나 훌쩍 지나버린 때였다.갑자기 멀쩡하던 하늘이 짓빛으로 어두워졌다.그때 후두둑 소리를 내며 굵은 빗방울이 창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다.유진은 잠시 멍한 눈으로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다가…이내 무거운 한숨과 함께 우산을 챙겨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거칠게 쏟아지는 빗줄기 너머로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그의 훤칠한 실루엣이 보였다.비
화면 위로 초록색 알림창이 반짝였다.유진은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 있다가 진동과 함께 휴대폰 화면에 들어온 톡 메시지를 가만히 확인했다.“몸은 좀 어때?”요스케였다.실험실에서 선호에게 강제로 끌려 나간 이후 그가 보낸 첫 메시지였다.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유진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자판을 눌렀다.“괜찮아졌어요”답장을 보내기가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메시지가 화면을 채웠다.요스케 역시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그때… 실험실… 남친이니?”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활자로 마주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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