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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대를 그리지 않으리
다시는 그대를 그리지 않으리
작가: 돈나무

제1장

작가: 돈나무
"이틀 뒤 가을 사냥터에서 내가 실수로 절벽에서 떨어진 것처럼 꾸미려 해. 그때 네가 경공으로 나를 받아 줘. 그래야 내가 소지훈에게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다."

강서연의 말을 들은 유채영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너무도 황당해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었다.

예전에 강서연과 소지훈이 혼인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못지않게 놀라웠다.

상의원 창고의 가장 낮은 신분인 시녀와,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정왕부 세자. 이런 조합은 소설에 써도 지나치게 과장됐다며 욕을 먹을 일이었다.

소지훈의 아버지는 현 황제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친형, 정왕이었고, 어머니는 조정 태사의 외동딸이었다.

게다가 소지훈 본인 역시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다. 열세 살에 과거에 장원급제했고, 열다섯 살에는 군을 따라 출정해 흉노를 물리쳤으며, 황제가 직접 진국장군으로 봉했다.

그런 그가 한낱 시녀를 세자비로 맞이하겠다고 청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세간에서는 이 일을 두고 온갖 말이 오갔다.

누군가는 소지훈에게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있었고, 강서연은 그 여인과 닮은 대체품일 뿐이라고 추측했다.

또 누군가는 정왕부의 권세가 지나치게 커져 황제의 의심을 살까 두려워, 일부러 자신의 명성을 망치려고 그런 터무니없는 일을 벌인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소지훈은 지난 삼 년 동안 행동으로 증명했다. 이 혼인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그가 강서연을 미치도록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소지훈의 어머니는 그를 위해 수십 차례나 꽃놀이 연회를 마련했고, 명문가 아가씨 수백 명과 만나 보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러다 궁에서 빨래하던 강서연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그는 군공을 내세워 황제에게 청해 그녀를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게 해 주었다. 또한 승상에게 그녀를 양녀로 삼게 하고, 상점 수백 곳을 마련해 주어 번듯한 신분과 평생 먹고살 걱정 없는 삶을 안겨 주었다.

매일같이 물 흐르듯 승상댁으로 보내는 선물 외에도, 소지훈은 강서연의 이름으로 각 고을에 여학당을 세우고 자우당(慈佑堂)을 열었으며, 곳곳에 죽을 나누어 주는 곳을 마련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강서연을 알고, 그녀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게 하고 싶었다. 언젠가 그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설령 자신이 곁에 없더라도 어디에 있든 누군가는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 진심은 마침내 강서연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분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정왕부 사람들은 강서연을 들이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고, 설령 들인다 해도 정실로 맞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녀 같은 신분이라면 첩으로 들여 잠자리 시중을 드는 시녀 노릇을 하게 해도 과분하다는 것이었다.

효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던 시대에, 소지훈은 이 일로 수없이 부모에게 맞섰다. 그 때문에 열여섯 번이나 가법으로 벌을 받았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 지금도 등에는 채찍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자, 그는 세자의 자리마저 내려놓았다. 차라리 평민으로 살지언정, 반드시 강서연을 정실로 맞이하겠다고 했다.

정왕 부부도 더는 소지훈을 어쩌지 못해 결국 한발 물러나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혼인 후 소지훈은 곁에서 시중들던 시녀들을 모두 내보내고, 사내 하인들만 남겨 두었다.

강서연이 한 번도 요구한 적은 없었지만, 그는 매일 조회를 마친 뒤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술자리에 나가지도, 유흥을 즐기지도 않고 오직 강서연만 바라보며 지냈다.

두 사람의 금슬은 세간의 미담이 되었고, 어떤 이는 그들을 본떠 『천생연분』이라는 소설까지 써냈다.

그 소설은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팔려 나가며 큰 유행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모두 소지훈 같은 부군을 얻었으니 이보다 더한 복이 어디 있겠느냐며 강서연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강서연을 제외한 그 누구도 세상에 둘도 없는 좋은 부군이라 칭송받던 소지훈이 그녀 몰래 외방 여인을 두었고, 그 여인과 쌍둥이까지 낳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강서연은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끝내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소식을 들은 소지훈은 조회마저 제쳐 두고 세자부로 미친 듯 달려왔고, 이틀 밤낮 동안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녀의 침상 곁을 지키며 정성껏 간호했다.

강서연이 눈을 떴을 때, 소지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침상 곁을 지키며 약이 너무 뜨겁지는 않은지 살피고 있었다.

"깨어났구나.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소지훈은 그녀의 차가운 손을 제 얼굴에 가져다 대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열다섯 살에 전장에 나가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사내였다. 그런 그가 강서연이 피를 토했다는 말을 듣고는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걱정과 초조함이 가득한 그의 눈을 바라보자, 강서연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 아팠다.

눈빛에 담긴 사랑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이 사내가 육하린에게도 이런 눈빛을 보낸 적이 있지 않을까.

그녀에게도 이토록 달콤한 말을 속삭인 적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육하린이 바로 소지훈의 외방 여인이었다. 그녀는 본래 상서의 딸이었고, 소지훈과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해 소지훈이 강서연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소문이 퍼진 뒤, 육하린은 한 꽃놀이 연회에서 강서연이 자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취 팔찌를 훔쳤다며 모함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사로이 벌까지 내려 강서연의 손가락 두 개를 부러뜨리고, 그녀를 음흉한 환관들에게 넘겨 욕보이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강서연을 찾아온 소지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때 소지훈은 대대로 이어 온 두 집안의 정분 따위는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곧장 육씨 집안을 풍비박산 냈다. 상서였던 육씨는 참수당했고, 육하린은 영남(嶺南)으로 유배되었다.

정왕비가 막지 않았다면, 소지훈은 몇 번이고 사람을 보내 육하린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다면, 강서연은 꿈에도 소지훈이 육하린을 외방 여인으로 두었고, 심지어 아이들이 벌써 한 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을 것이다.

강서연은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돌렸다. 이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베개 한쪽을 흠뻑 적셨다.

소지훈은 그녀의 눈물을 보고 그저 몸이 아파서 그러는 것이라 여겼다.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연아, 방금 어의가 네 맥을 짚어 보고 회임한 지 두 달째라고 했어. 마침내 우리에게 아이가 생겼구나."

밖에서는 늘 차갑고 고고하던 진국장군이, 지금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닷새만 지나면 우리가 혼인한 지 삼 년이 되는 날이야. 참으로 겹경사구나!"

강서연은 순간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걷어차여 얼어붙은 강물에 오래도록 빠져 있었고, 그 일로 몸이 크게 상했다.

여러 명의도 그녀가 평생 아이를 갖기 어려울 것이라 했다.

그 일 때문에 안 그래도 강서연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정왕 부부는 몇 번이나 싫어하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들이 소지훈의 부모였기에 강서연은 묵묵히 참고 넘어갔지만, 소지훈은 그녀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소지훈은 곧바로 강서연을 데리고 황제가 하사한 세자부로 거처를 옮겼다.

"서연은 제가 깊이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녀와 혼인한 것만으로도 전생에 큰 덕을 쌓아 얻은 복이지요. 또다시 그녀가 억울한 일을 겪게 된다면, 그때는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끊고 다시는 왕래하지 않겠습니다."

강서연은 아랫배를 가만히 어루만지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이 아이는 어찌하여 하필 이런 때에 찾아온 걸까.'

소지훈은 강서연을 품에 끌어안고 다정하게 달랬다.

"왜 갑자기 우는 것이냐? 누가 우리 서연의 마음을 상하게 했느냐? 내가 대신 벌해 주마."

하지만 그 순간 강서연은 소지훈의 몸에서 희미하지만 낯선 연지분 냄새를 맡았다. 거기에는 어린아이 특유의 젖내마저 섞여 있었다.

강서연은 소지훈을 거칠게 밀쳐 내고, 침상 가장자리에 몸을 숙인 채 헛구역질을 했다.

소지훈은 입덧이라 여겼는지, 무의식적으로 두 손을 내밀어 그녀가 토하는 것을 받아 주려 했다. 그녀가 제 몸에 토할까 봐 꺼리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강서연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부인이 아이를 가졌으니, 물론 기쁘지 않을 리 없었다.

그해 육하린이 회임하고 아이를 낳을 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곁을 지켰기에 여인이 아이를 품고, 낳고, 산후조리하기까지 얼마나 고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강서연은 멍하니 소지훈을 바라보았다.

심한 결벽증이 있는 그가 그녀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해 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평소 입는 옷은 물론, 신는 신발까지 하나하나 모두 그가 손수 빨아 주었다.

소지훈은 지난 삼 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그녀를 사랑해 왔다. 강서연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이미 그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 순간 강서연은 차라리 마지막 남은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싶었다. 소지훈이 육하린과의 관계를 깨끗이 끊기만 한다면, 두 사람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소지훈의 측근 하인이 들어와 그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를 전했다.

소지훈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정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말만 남긴 채 황급히 떠났다.

강서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곁을 지키던 시녀 다은에게 몰래 뒤를 밟으라 일렀다. 다은은 무예를 익힌 데다, 미행에 특히 능했다.

반 시진 뒤, 다은이 돌아왔다.

"세자비, 세자께서... 의춘원(倚春苑)으로 가셨습니다."

의춘원은 바로 육하린의 거처였다.

그 소식은 강서연의 마지막 기대마저 산산조각 냈다. 그녀의 부군은 다른 여인을 두었고, 그 여인과의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

그는 이미 처음의 약속을 저버린 뒤였다.

강서연은 곧바로 세자부를 나서 유채영을 찾아갔고,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강서연은 소지훈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 순순히 갈라서지 않을 것이고, 더더욱 자신을 보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분명 이성을 잃고 날뛸 것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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