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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Author: 윤서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8 14:07:15

“사실은…”

어제 선희에게 유학 제안을 받았고, 오늘 아침에 경자와 있던 일들을 말했다. 얕은 한숨이 도희의 호흡에서 흘러나왔다.

“확실히 껄끄러운 상황이긴 하다. 회장님 도움 받으면서까지 유학 가고 싶지 않은 거잖아.”

“응. 그런데 선우는 가고 싶나봐.”

“선우 오빠는 가고 당연히 가고 싶겠지. 은근히 독점욕 있어. 아니다, 대놓고 있어.”

못마땅하다는 듯 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선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 그 사실을 티낸 적은 없지만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아마 은성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애초에 알고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선우한테 불만이 많나 봐?”

“불만이 없겠어? 내가 언니랑 있을 때 마다 불청객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날 본단 말이야. 덩치 큰 강아지가 주인 따라다니는 것처럼 맨날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녀. 언니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니야?”

말하다보니 흥분이 되는지 얼굴이 도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선우에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선우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던데.”

“그러니까 언니는 유학 가면 안돼. 나랑 세정대 가자.”

“왜 네 마음대로 그걸 결정해?”

급하게 다녀왔는지 선우는 땀에 젖어 있었다. 은성은 얼른 일어나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

“뛰어 갔다 왔어?”

“응. 너 아픈 거 싫어서 뛰었어.”

아까 도희에게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애교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 모습이 도희는 몹시도 못마땅했다.

“오빠는 손이 없어요?”

“손이 있어도 여자친구 손길이 더 좋아서.”

“우웩!”

도희가 토하는 시늉을 하자 잠시 잊고 있던 메스꺼운 감각이 돌아왔다. 이런 은성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건 선우였다.

“얼른 약 먹어.”

“응.”

선우는 먼저 은성을 앉히고 약을 먹였다. 그 와중에도 도희에게 가라고 눈치를 주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

“치사하고 드러워서 가요. 가!”

한마디를 남기고 나가자마자 그의 흡족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은성아. 우리 같이 유학가자.”

은성은 바로 답하지 못하고 선우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입술이 초조하게 달싹였다. 긍정의 답을 기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거절할까 불안했다. 그러한 선우의 감정을 은성은 고스란히 느꼈다. 좋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둘이만 있고 싶어서 같이 가고 싶은 거야?”

“응. 둘이서만 있고 싶어.”

선우는 자세를 낮춰 은성을 올려다 봤다. 그 모습이 마치 선택을 기다리는 아이 같았다. 다른 무언가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눈빛, 그것이 용기를 불어넣었다.

“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유라를 어떻게 생각해?”

“그게… 무슨 소리야?”

일순간 선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 관계가 깨어져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고개를 처들었다. 묻지 않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피한다고 해도 앞으로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결국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마니까.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끔 네가 유라를 보고 있는 걸 봤어.”

“…”

“혹시 유라 좋아해?”

선우가 매달리듯 은성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릴리가 없잖아. 내가 유라를 좋아한다면 왜 너랑 사귀겠어.”

한가지 가정이 은성의 머리속에 떠올랐으나 이내 지워버렸다. 선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연인이 된지는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6살때부터 그를 알아왔다. 가끔 아무렇지 않게 선을 넘곤 했지만 그는 항상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을 주었다. 그러니 이러한 가정을 떠올리는 거 자체가 미안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선우가 말했다.

“아까 담을 넘다가 최유라를 만났어. 가끔 걔가 날 거슬리게 할 때가 있어서 본거뿐이야.”

유라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별 것 아닌 걸로 은성에게 시비를 걸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 시비를 거는 것도 가끔 빈정거린다던가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것이 선우가 딱 달라붙어 있어 무언가 할 틈을 주지 않았다. 애원하듯 그가 말했다.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마.”

“미안해.”

그가 은성을 끌어안았다. 그녀는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는 듯 그의 등을 쓸어주었고, 그는 아이처럼 품을 파고 들었다. 계속 묻지 못해온 이야기를 꺼낸 그녀의 얼굴은 개운했다. 또 한편으로는 괜한 의심을 한거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진작 물어볼 걸.’

하지만 정작 그의 얼굴에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서려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긴 포옹이 끝나고 그는 가방에서 머리핀을 꺼내어 내밀었다.

“선물이야.”

“생일도 아닌데 갑자기 웬 선물이야.”

“주고 싶어서 그래.”

그는 부드럽게 나비핀을 꽂아주었다. 단아한 느낌이 드는 머리핀은 은성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그녀는 고마웠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비싼 선물이 어떤 대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마음에 들어.”

여러 감정이 드는 것을 한켠에 밀어두고 은성은 환하게 웃었다. 지금은 그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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