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Chapter 1 - Chapter 10

89 Chapters

2화

‘착각이겠지?’착각일 것이다. 선우는 자신의 남자친구였고 항상 은성에게 충실했다. 잘생긴 얼굴, 뛰어난 운동실력, 무던한 성격, 좋은 집안 모든 이들이 탐낼만한 조건을 갖고 있었지만 한번도 이성문제로 은성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사귀기 전에도 그랬다. 그러니 분명히 착각일 것이다. 그래야 했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교문을 지나 기계적으로 걸어갈 때였다. 갑자기 몸이 확 끌어당겨지더니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은성을 끌어당긴 사람은 선우였다.“박선우! 깜짝 놀랐어.”“이렇게 안 하면 네가 나를 안 봐주잖아.”다시 입이 나왔다. 그것이 어렸을 적 모습을 떠올리게 해서 은성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 팔을 높이 뻗어 선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살짝 컬이 들어간 머리가 손가락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아직도 귀엽네. 우리 선우.”“이래도 귀여워?”끈적한 목소리가 귀가에 들러붙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은성을 벽으로 몰면서 몸을 붙였다. 그녀가 인상을 썼다.“여기 밖이야.”“알아.”단 한마디였지만 거칠어진 숨소리에는 흥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는 그 눈을 지그시 응시했다. 1년전부터 계속 봐왔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기에 선우와의 스킨십은 꽤나 자연스러웠다. 손을 잡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에도 흥분은 고사하고 설렘조차도 묻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때 선우가 고백했다.“은성아. 좋아해. 사귀자.”그렇게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다. 손을 잡으면 가슴이 간질거렸고, 가벼운 입맞춤에도 심장이 터질듯이 뛰었다. 그리고 너무 당연한 수순인것처럼 짙은 키스가 찾아왔다. 선우는 모든 순간에 키스하고 싶어했다. 설레여서, 좋아서, 속상해서, 서운해서 각각의 이유들로 말이다. 귓가에 대고 선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 할거야.”말이 마치기가 무섭게 선우의 입술이 닿았다. 밀어내려는 것도 잠시 은성은 입술도 움직였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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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네.”긴장한 은성이 무슨 일이냐는 듯 선우를 봤다. 선우는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선희도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고 아주 잠시 손이 닿았다.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것처럼 손을 황급하게 거둬드린 그가 구토를 했다.“우욱…!”스치는 접촉에도 그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선우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은성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선희의 눈치가 보여서 가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 불편한 모자 사이는 많았지만 잠깐 손이 닿는 접촉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한성그룹의 회장 답게 그녀는 표정을 빠르게 갈무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요즘 학교에서는 괜찮니?”“가끔 일이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괜찮아요.”선희의 접촉에만 저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여자과의 접촉에 그랬다. 은성만이 예외였다. 그래서 학교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선희는 스스로를 안정시키려는 듯 차를 한모금 마시고 다시 입을 열었다.“은성아. 선우랑 같이 유학 가는 거 어떠니?”은성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희는 고용인들에게 인색하지 않았고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그러나 유학을 갈 정도로 경자가 돈을 많이 모은 것은 아니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유학 갈 형편은 아니어서요.”“돈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 선우랑 같이 가는 건데 당연히 내가 지원해야지. 돈 생각하지 말고 유학 갈 생각 없어?”“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습니다.”빨리 돈을 벌어서 경자를 조금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유학은 그녀에게 다른 나라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녀를 선희가 지그시 응시했다.“은성이 너는 참 신기해.”“제가요?”“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서 그런가, 자기 생각을 바로 이야기하잖아. 별로 어려워하지도 않고.”“그런가요.”고개를 끄덕이면서 선희가 말을 이었다.“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어. 자신이 모시는 사람의 힘을 자신의 힘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말이야. 친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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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네가 가면 나도 가.”“내가 안 가면?”“나도 안가.”어이없다는 듯 그녀가 피식 웃었다.“그런게 어딨어.”“여기 있어.”고집 부리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회사 물려받으려면 유학 다녀와야하는 거 아니야?”“너랑 떨어지면서까지 가야할 정도로 회사가 의미있지 않아.”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내려다 보다 입을 열었다.“그럼 유학 가고 싶어?”“응. 가고 싶어.”선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왔다.“왜 가고 싶은데?”“같이 유학 가면 우리 둘만 있을 수 있잖아.”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은성이 헛웃었다.“우리 지금도 충분히 붙어있어. 같은 집, 같은 학교, 같은 학원에 있잖아. 심지어 등하교도 같이 하는데?”말이 이어질수록 선우의 입이 조금씩 나왔다.“같은 집에 살아도 너는 별채에 있어. 집에서 이렇게 맨날 둘이 있을 수 있는 것도 아니야. 학교에서는 다른 애들하고 다 같이 있어. 학원도 마찬가지잖아. 이게 어떻게 붙어있는 거야? 설마 은성이 너는 나랑 더 붙어있고 싶지 않아?”“그럴리가… 붙어있고 싶어. 나도.”충분하다고 말했지만 사실 은성도 그렇게 느끼진 못했다. 붙어있어도 고3이었고 온전히 둘이서만 있는 시간은 부족했다. 그나마 작년에는 데이트를 하러 자주 나갈 수 있었지만 고3이 되고부터는 선우의 방에 들어오는 것 외에는 둘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정말 붙어있고 싶어? 공부하는데 정신 팔린 거 같던데.”“정말 같이 있고 싶어.”“그럼 왜 같이 공부 안 해?”선우가 조르듯 은성의 옷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얼굴을 살피는 모습이 그간 궁금했는데 참아온 모양이다. 은성은 부드럽게 선우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같이 공부하면 신경이 다 너한테로 가. 어떻게 공부에 집중해?”그 한마디에 그의 입꼬리에 춤을 췄다. 그러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말을 이었다.“그렇게 내가 좋아?”은성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숙여 그의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였다.“정말 좋아. 사랑해.”대답을 기다리듯 그녀가 지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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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한번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으니까…”그는 한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적이 없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는 유치원 시절에도, 가까운 친구이던 시절에도, 연인이 된 이후에도 단 한번조차고 말한적이 없었다. 은성이 용기내어 말해도 그는 사랑한다고 말한적이 없다.“내가 괜히 쓸데없는 거에 집착하는 건가?”겨우 한마디 말에 불과한데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의 행동은 ‘사랑한다’는 말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가끔 그의 시선이 유라에게 향할 때 알 수 없는 불안이 커졌다.“내가 과하게 생각하는 거겠지?”그때 지이잉 핸드폰이 울렸고 바로 확인했다. 선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정말 미안해.]글자임에도 음성이 자동으로 지원됐다. 풀이 죽은 말투, 쭈욱 나온 입이 저절로 떠올라서 피식 웃음이 났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를 꼭 품에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문자만 보냈다.[괜찮아. 사과해줘서 고마워.]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다음날 아침, 은성은 새벽 일찍 일어나 경자와 함께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팔팔 끓인 따듯한 누릉지에 오징어 젓갈을 곁들여서 먹었다. 급하게 먹는 은성을 보면서 경자가 눈살을 찌푸렸다.“천천히 먹어. 나는 음식하러 가야하지만 넌 천천히 먹고 도련님이랑 같이 나가면 돼.”“응. 알았어.”경자는 선우를 도련님이라고 불렀다. 고용인으로서는 전혀 문제 없는 호칭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성의 남자친구이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그 호칭이 거슬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 시작됐다.“어제 선우 기분 안 좋아 보이더라. 무슨 일 있었어?”“일은 무슨.”뜨끔했지만 인정한다면 한소리 들을 것이기에 오리발을 내밀었다.경자는 예리한 눈으로 얼굴을 쓰윽 살피더니 알겠다는 듯 말했다.“너 또 선우 서운하게 했구나?”“내가 무슨 선우를 서운하게 만들어. 그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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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고민할게 뭐가 있어. 유학 가서 잘 배우고 선우랑 같이 한성그룹 들어가면 되는 거지.”“엄마, 유학가고 싶은 생각 없어. 한성그룹에 들어갈 생각은 더더욱 없고.”경자는 은성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다.“남들은 다 가고 싶어서 난리치는 유학, 너는 왜 가기가 싫어?”“내 돈으로 가는 게 아니잖아. 회장님한테 빚지고 싶지 않아.”“네가 잘 해서 한성그룹에서 일하면 되는 거야.”말이 도무지 통하지 않았다. 은성이 무엇을 걸려하는지 경자는 이해하고 싶지 않아했다. 더 이상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다 먹었어. 등교 준비할게요.”벌떡 일어난 은성은 방으로 들어갔다.“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화를 내는 거야!”경자도 감정이 상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모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선우가 다 듣고 있을 줄은 말이다.*무거운 발걸음으로 고용인 숙소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경자는 이미 본채로 넘어가서 볼일이 없었으나 감정이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오늘은 버스타고 간다고 할까?”학교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렸지만 버스를 타면 30분이면 도착했다. 선우하고 같이 다닐때는 걸어서 다녔다. 사실 그가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을 선희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차가 없는 것도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우는 차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정체된 도로도 싫어했다. 무엇보다 은성과 둘이서만 있기를 바랬고 그래서 걸어서 다녔다. 고3이 되면서 선희는 시간 절약을 위해 다시 한번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권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면 선희는 더 이상 뭐라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가끔 그녀는 친아들인 선우보다 은성을 더 편하게 여겼다. 은성은 뒷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핸드폰을 응시했다. 선우에게 문자를 보내는 게 나을지, 전화를 하는게 나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은 15분이나 빨리 나왔네.”싱그러운 웃음에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 선우가 저렇게 웃을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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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가볍게 담을 넘어서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안전하게 착지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담 넘는 거 참 안 어울린다.”유라가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다. 평범한 교복을 입었음에도 예쁜 외모와 풀 메이크업 때문에 꼭 학생 컨셉의 촬영을 하는 거 같았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테지만 유라를 보는 선우의 눈빛은 덤덤했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한은성 걔만 없으면 술술 풀릴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은성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오늘 선우가 담을 넘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들여 화장을 하고 담을 넘어와서 그를 기다렸다. 은성이 곁에 없는 몇 안되는 기회였다.유라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는 돌아서 발길을 재촉했다. 담을 넘은 이유는 단순했다. 담임의 허락을 받아야 밖에 나갈 수 있다. 여자친구의 약을 사러 약국에 나가야한다는 황당한 이유였지만 선우가 말했다면 담임은 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은성이 아픈게 싫었다. 그게 담을 넘은 이유였다.. 무반응에 당황한 유라가 그를 따라갔다.“내 말 안 들려?”“들었어.”“근데 왜 답을 안해?”“답을 왜 해야하는데.”선우가 걸음을 멈춰서는 바람에 뒤따라오는 유라와 몸이 닿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메스꺼움을 느껴 구토를 했다.“우욱…!”“괜찮아…?”놀란 유라가 다가서려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를 했다. 진정이 되고 나서 그는 무미건조하게 응시했다.“오늘 같은 일 다시는 없었으면 해. 반에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거든.”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유라가 소리쳤다.“거짓말! 너 나 좋아하잖아.”선우가 멈칫했다. 그 반응을 보고 유라는 자신감을 얻고 말했다.“사람들 눈 피해서 나 보는 거 모를줄 알아?”동요한 것도 잠시 이내 무감한 눈으로 유라를 응시했다.“왜 사람들 눈을 피해서 보는지 몰라?”“내가 좋은데 한은성이 있어서…”“그 정도 가치 밖에 없으니까.”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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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실은…”어제 선희에게 유학 제안을 받았고, 오늘 아침에 경자와 있던 일들을 말했다. 얕은 한숨이 도희의 호흡에서 흘러나왔다.“확실히 껄끄러운 상황이긴 하다. 회장님 도움 받으면서까지 유학 가고 싶지 않은 거잖아.”“응. 그런데 선우는 가고 싶나봐.”“선우 오빠는 가고 당연히 가고 싶겠지. 은근히 독점욕 있어. 아니다, 대놓고 있어.”못마땅하다는 듯 도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선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같이 있을 때 그 사실을 티낸 적은 없지만 딱히 숨기지도 않았다. 아마 은성이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두 사람은 애초에 알고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선우한테 불만이 많나 봐?”“불만이 없겠어? 내가 언니랑 있을 때 마다 불청객이라도 찾아온 것처럼 날 본단 말이야. 덩치 큰 강아지가 주인 따라다니는 것처럼 맨날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녀. 언니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 거 아니야?”말하다보니 흥분이 되는지 얼굴이 도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선우에게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선우는 이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던데.”“그러니까 언니는 유학 가면 안돼. 나랑 세정대 가자.”“왜 네 마음대로 그걸 결정해?”급하게 다녀왔는지 선우는 땀에 젖어 있었다. 은성은 얼른 일어나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주었다.“뛰어 갔다 왔어?”“응. 너 아픈 거 싫어서 뛰었어.”아까 도희에게 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애교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 모습이 도희는 몹시도 못마땅했다.“오빠는 손이 없어요?”“손이 있어도 여자친구 손길이 더 좋아서.”“우웩!”도희가 토하는 시늉을 하자 잠시 잊고 있던 메스꺼운 감각이 돌아왔다. 이런 은성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건 선우였다.“얼른 약 먹어.”“응.”선우는 먼저 은성을 앉히고 약을 먹였다. 그 와중에도 도희에게 가라고 눈치를 주는 것도 멈추지 않았다.“치사하고 드러워서 가요. 가!”한마디를 남기고 나가자마자 그의 흡족하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렇게 좋아?”“응. 좋아. 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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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토요일이었다. 낮잠을 자다 깼는데 삼촌하고 아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미쳤어? 거길 형이 왜 가!”“가야겠어. 믿을 수가 없어…”“형, 선우 생각해. 이혼한지 벌써 6년이야. 정신 좀 차려.”나가려는 아빠를 삼촌이 붙잡았다.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기억에도 없는 선우의 엄마 선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사실도…“선희 만나야겠어.”“거기 가서 뭘 어쩔건데!”한번도 본적없는 선희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귀가 쫑긋 섰다.‘엄마는 실제로 보면 어떨까?’아빠의 헤진 지갑에서 엄마의 사진을 본적이 있었다. 화려한 외모는 아니었지만 기품있는 외모였다. 가끔 뉴스에서 엄마의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그럴때마다 아빠는 멍해졌고, 삼촌은 짜증을 냈고, 할머니는 말없이 채널을 돌렸다. 그리고 무언가 알아차렸을까 선우의 눈치를 보곤 했다. 덕분에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았지만 한번도 실제로 본적은 없었다. 엄마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빠가 슬퍼할 것을 알아서 한번도 한적은 없었다. 그러한 생각이 어린 선우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빠와 삼촌이 싸우는 틈을 타서 슬리퍼를 신었다. 운동화를 신지 않은 건 나름 들키지 않도록 머리를 쓴 결과였다.‘몰래 보고 오자.’끼익- 철대문을 열자 서있는 차가 보였다. 낡은 자동차였다. 조심스럽게 자동차 뒷문을 열었다. 다행히 열려있어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뒷문을 닫았다. 그때 벌컥 대문이 열리고 아빠가 나왔다.“형! 가지 마.”“가야해.”삼촌이 막는데도 아빠는 뿌리치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쾅쾅쾅 창문을 두드리는데도 무시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처음보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무언가에 단단히 홀려있는 것 같은 모습은 생경했고 두려웠다. 그러나 그것보다 처음 만나는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엄마는 테비에서 나오는 거랑 똑같을까?’유치원에 있는 친구들은 모두 엄마가 있었다.‘나만 없어. 엄마.’정확히 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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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수학 모의고사를 끝내고 은성은 몸을 풀었다.“이번에도 앞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네.”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일단 넘어가야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 버릇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았다. 분명히 처음 선우의 해명을 들었을 때는 괜찮았다. 하지만 다시 걸리는 부분이 생겼다.“한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유라를 어떻게 생각해?”“그게… 무슨 소리야?”그 순간 선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눈빛이 느닷없이 떠올라 머리속을 헤집어 놓았다.“선우가 아니라잖아.”그렇게 말하면서도 감정은 가벼워지지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이 울렸다.[언니~ 지금 뭐해?]도희에게 온 문자였다.[수학 모의고사 풀고 잠깐 쉬려고!][그럼 나와 커피 한잔 때리자!!]문자인데도 음성이 저절로 들리는 거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도희가 쪼옥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았다. 그녀의 시선이 은성의 머리핀에 머물렀다.“선우 오빠 선물?”“응. 예쁘지?”“예쁘네. 비싼거라 다르긴 다르다. 언니.”그 말에 은성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이게 비싸?“이번에 샤옌에서 나온 한정판이잖아. 못해도 150만원 정도는 할걸.”최저시급 7530원을 기준으로 200시간 넘게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 150만원이다. 그렇게 비싼 선물을 준 것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비싼 선물 자체도 부담스러웠지만 더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건 선우가 선물을 주는 시기였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휘저을 때 도희가 물었다.“언니 무슨 고민 있어?”“아… 그게.”새로운 고민을 소화시키려면 시간이 들었다. 그래서 줄곧 걸려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도희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언니는 선우 오빠가 최유라한테 다른 감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야?”“응.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지도 몰라.”“흐음.”못마땅하다는 듯 도희가 한쪽 눈을 찌푸렸다.“최유라가 예뻐서?”“집안도 잘 살고.”“글쎄... 선우 오빠가 그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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