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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Author: 윤서완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08 14:06:14

가볍게 담을 넘어서 학교 밖으로 나왔다. 안전하게 착지하고 걸음을 옮기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담 넘는 거 참 안 어울린다.”

유라가 담벼락에 기대어 있었다. 평범한 교복을 입었음에도 예쁜 외모와 풀 메이크업 때문에 꼭 학생 컨셉의 촬영을 하는 거 같았다.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테지만 유라를 보는 선우의 눈빛은 덤덤했다. 거기서부터 그녀는 자존심이 상했다.

‘한은성 걔만 없으면 술술 풀릴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은성이 아파하는 것을 보고 오늘 선우가 담을 넘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 일이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공들여 화장을 하고 담을 넘어와서 그를 기다렸다. 은성이 곁에 없는 몇 안되는 기회였다.

유라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그는 돌아서 발길을 재촉했다. 담을 넘은 이유는 단순했다. 담임의 허락을 받아야 밖에 나갈 수 있다. 여자친구의 약을 사러 약국에 나가야한다는 황당한 이유였지만 선우가 말했다면 담임은 들어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은성이 아픈게 싫었다. 그게 담을 넘은 이유였다.. 무반응에 당황한 유라가 그를 따라갔다.

“내 말 안 들려?”

“들었어.”

“근데 왜 답을 안해?”

“답을 왜 해야하는데.”

선우가 걸음을 멈춰서는 바람에 뒤따라오는 유라와 몸이 닿았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는 메스꺼움을 느껴 구토를 했다.

“우욱…!”

“괜찮아…?”

놀란 유라가 다가서려했지만 그가 손을 들어오지 말라는 표시를 했다. 진정이 되고 나서 그는 무미건조하게 응시했다.

“오늘 같은 일 다시는 없었으면 해. 반에서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편하거든.”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유라가 소리쳤다.

“거짓말! 너 나 좋아하잖아.”

선우가 멈칫했다. 그 반응을 보고 유라는 자신감을 얻고 말했다.

“사람들 눈 피해서 나 보는 거 모를줄 알아?”

동요한 것도 잠시 이내 무감한 눈으로 유라를 응시했다.

“왜 사람들 눈을 피해서 보는지 몰라?”

“내가 좋은데 한은성이 있어서…”

“그 정도 가치 밖에 없으니까.”

그 말에 유라의 몸이 굳었다.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그가 서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은성이 이름 말하지 마. 은성이 네가 그렇게 불러도 될 사람 아니야.”

그 말을 마치고서 선우는 다시 걸음을 움직였다. 점점 빨라지더니 곧 달려갔다. 그러나 유라는 한걸음도 옮길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정도 가치 밖에 없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은성보다 자신이 훨씬 예뻤다. 그리고 가정부 딸인 그녀와는 다르게 자신은 기업가 오너의 딸이었다. 물론 중견기업이라서 대기업 자제들이 많은 이곳에서 쳐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은성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서 그녀는 선우가 한 경고를 잊고 좋을데로 생각하기로 했다.

“날 훔쳐봤다는 걸 인정했어. 날 좋아한다는 거야. 그럼 나도 가능성이 있어.”

박선우는 너무나도 탐나는 상대였다. 한성그룹 로열패밀리라는 것 자체가 매력적인데 김선희 회장의 유일한 후계자였다. 잘생기고 키 크고 공부까지 잘한다. 사실 이러한 조건을 가진 이들은 종종 있지만 대부분 유흥에 빠지거나 문란한 연애를 즐기는 이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선우는 그렇지 않았다.

“선우를 가정부 딸 따위한테 빼앗길 수 없어.”

그녀의 눈이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

조용한 교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열린 창문을 파고드는 바람 소리를 듣고 은성이 잠에서 깼다.

“선우 아직도 안 왔나?”

그때 교실 뒤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여기서 여기서 뭐해?”

고개를 돌리니 도희가 있었다. 키가 큰데다가 머리가 숏컷이라서 멀리서 보면 호리호리한 남학생으로 보일정도로 중성적인 느낌이 났다.

“체한 거 같아.”

도희가 주변을 한번 스윽 둘러보니 끄덕거렸다.

“체했는데 양호실은 가기 싫어서 선우 오빠가 약 사러 갔나보네.”

“어떻게 알았어?”

눈이 동그래진 은성을 보고 도희가 별일 아니라는 듯 선우가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언니가 아픈데 선우 오빠가 가만히 있을리가 없잖아. 근데 양호실이 아니라 교실에 있다는 건 언니가 가고 싶지 않았던 거고, 그러면 선우 오빠는 약 사러 갔겠지, 뭐.”

“상황 파악 한번 빠르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내가 언니를 유치원때부터 봤는데!”

피식 은성이 웃었다. 이래서 도희가 좋았다. 뭐든 시원시원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그렇다고 경솔한가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비슷한 신분이라는 점도 동질감을 더해주었다. 운정고는 특성화 고등학교가 아닌 일반 인문고였다. 이 학교에서의 신분은 크게나뉘었다. 선우처럼 있는 집 자제들이 첫번째였고, 그 다음은 은성처럼 그러한 집안의 고용인들의 자식이다. 도희도 후자에 속했다. 빙그레 웃으면서 은성이 말했다.

“언니라고 안 불러도 돼. 동갑이나 마찬가지잖아.”

“에이. 그건 아니야. 깍듯하게 언니로 모실게!”

유치원때부터 같이 다녀서 언니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었다. 하지만 도희가 빠른 년생이라 초등학교는 같은 해에 입학했고, 지금 같은 고3이었다. 도희가 조심스레 은성의 얼굴을 살폈다.

“언니,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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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2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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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283화

    “그건 아닌데… 보면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다는 말에 은성은 미간을 좁혔다. 선우가 저렇게 말하는 것 보니 검은 노트때처럼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거 같았다. 하지만 그 안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했다.“무슨 여자 연예인 사진이라도 넣어놨어?”“내가 무슨 여자 연예인 사진을 넣어 놔!”모욕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선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은성이 아기를 눈짓하면서 말했다.“작게 말해. 아이 깨겠어.”“알았어… 미안해.”“그럼 뭔데?”은성의 물음에도 선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눈빛으로 채근하자 마지못해서 그는 입을 열었다.“혼인관계증명서…”“응?”귀를 의심했다. 혼인 관계증명서라니 자신이 맞게 들은건지 의아했다.“혼인관계를 증명하는 서류, 그걸 말하는 거야?”“응…”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선우는 시선을 피했다. 은성은 자기가 잘못 들은게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의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혼인관계증명서를 왜 파일에 넣어둔거야?”“중요하니까… 못 믿겠어?”“못 믿는 게 아니라…”못 믿는 게 아니었다. 다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인 관계 증명서를 왜 파일에 보관하는 건지 말이다.“내일 강 대리한테 가져오라고 할게.”부끄러운 것을 들킨 사람처럼 선우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4화

    “네가 가면 나도 가.”“내가 안 가면?”“나도 안가.”어이없다는 듯 그녀가 피식 웃었다.“그런게 어딨어.”“여기 있어.”고집 부리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얼굴에 걱정이 떠올랐다.“회사 물려받으려면 유학 다녀와야하는 거 아니야?”“너랑 떨어지면서까지 가야할 정도로 회사가 의미있지 않아.”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내려다 보다 입을 열었다.“그럼 유학 가고 싶어?”“응. 가고 싶어.”선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왔다.“왜 가고 싶은데?”“같이 유학 가면 우리 둘만 있을 수 있잖아.”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처럼

  •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3화

    “네.”긴장한 은성이 무슨 일이냐는 듯 선우를 봤다. 선우는 빙그레 웃을 뿐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도 선희도 찻잔을 향해 손을 뻗었고 아주 잠시 손이 닿았다. 더러운 것이라도 만진것처럼 손을 황급하게 거둬드린 그가 구토를 했다.“우욱…!”스치는 접촉에도 그의 몸은 정직하게 반응했다.선우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은성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선희의 눈치가 보여서 가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 불편한 모자 사이는 많았지만 잠깐 손이 닿는 접촉만으로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없었다. 한성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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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성은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비밀번호만 누르면 방문을 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방은 안에서 잠글 수 있게 되어 있었지만 이 방은 특이하게도 밖에 번호키가 있어 안에서는 문을 열고 나올 수 없었다.비밀번호는 자신의 생일이라서 잊어버릴 수가 없었지만 손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방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두려움이 컸다. 그 안에는 그녀의 남자친구인 선우와 유라가 있을 것이다. 바람 현장을 잡으러 온 것이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최음제를 선우에게 먹이고 유라와 이 방에 집어넣은 것이 바로 은성이었다. 그럼에도 확인하는 건

  • 달콤하고 잔인한 나의 세계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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