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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Author: 안철
병원을 나온 송지윤은 눈 덮인 길을 밟으면서 관사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집 앞에 도착하자, 유규한이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

“어디 갔다 왔어?”

유규한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정말 몸이 안 좋은 거야?”

화를 내려고 기다렸던 모양이지만, 새하얗게 질린 송지윤의 얼굴을 보니 정말 아픈 사람 같았다.

송지윤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래. 조금 전 당신이 직접 나를 바닥에 밀어 넘어뜨렸잖아. 기억 안 나?”

그제야 유규한은 자신이 다급히 나가다가 송지윤과 부딪친 일을 떠올렸다.

“미안해. 그때 너무 급했어. 다친 데는 없어?”

송지윤은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진혜라의 아이는 어떻게 됐어?”

“다행히 괜찮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

유규한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송지윤에게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앞으로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렇게 어린 아기에게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어?”

송지윤은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다 문득 낯선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당신 마음속에서 내가 그런 사람이야? 진혜라가 일부러 아이를 내 손 앞으로 내밀었다고 하면 믿겠어?”

“송지윤!”

유규한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

“혜라 씨에게 누명 좀 그만 씌워. 3년이나 지났는데 넌 왜 아직도 똑같아?”

예상대로 유규한은 믿지 않았다.

3년 전 진혜라가 처음 집에 왔을 때도 일부러 자기 몸에 뜨거운 물을 쏟고는 지윤이 그랬다고 말했다.

함께 백화점에 갔을 때는 계단에서 스스로 굴러 떨어진 뒤, 지윤이 발을 걸었다고 그랬다.

심지어 한 번은 가위로 자기 몸을 찌르고, 지윤이 죽이려 했다고 울면서 매달렸다.

거듭된 모함과 유규한의 편들기. 다시 합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송지윤은 정말 지쳤다.

“유규한, 조금 전 이혼해도 좋다고 한 말, 아직 유효해?”

이혼이라는 말을 듣자 유규한은 급히 달랬다.

“여보, 임신 8개월인 사람이 무슨 이혼 타령이야? 아까 한 말은 화가 나서 내뱉은 것뿐이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난 너와 이혼하지 않을 거야.”

송지윤 되물었다.

“당신 아들이 혼외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두렵지 않아?”

유규한은 흠칫했다.

“난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 하나뿐이야. 혜라 씨에게는 책임만 느껴.”

“준영이는 내 전우였고 죽기 전에 진혜라를 부탁했어. 그러니 외면할 수 없잖아. 혜라 씨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것도 알지?”

송지윤 갑자기 웃었다.

“우울증이 있으면 당신과 자도 돼? 아이까지 낳아도 되는 거야? 유규한, 진혜라에게는 지켜야 할 선도 없어?”

물론 송지윤도 진혜라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말을 알고 있었다.

3년 전 송지윤과 유규한이 이혼 직전까지 간 이유도 진혜라의 우울증 때문이었다.

이준영이 세상을 떠난 뒤 유규한은 진혜라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 무렵 진혜라는 유규한과 송지윤이 어떤 식으로든 가까이 지내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도 안 되고, 안는 것도 입을 맞춰도 안 됐다. 같은 방에서 자는 것조차 막았다.

유규한이 조금만 무심하게 굴면 진혜라는 죽겠다며 자해했다.

그럴수록 유규한은 진혜라와 가까워졌고, 밤이면 진혜라의 방에서 함께 지내기까지 했다.

송지윤도 질투하면서 다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유규한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준영이는 내 소중한 전우였고 혜라 씨는 준영이 가장 아낀 사람이야.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넌 나를 이해해 줄 수 없겠어?”

송지윤은 계속 참았다. 그러다 둘이 자신의 침대에서 몸을 섞는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제야 더는 견딜 수 없어 이혼을 요구했다.

3년이나 흘렀는데도 유규한은 같은 핑계로 바람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정말 역겨워.’

“아이가 태어났으니 이제 진혜라와는 관계하지 않을게. 네가 싫다면, 아이의 가족관계등록도 다른 쪽으로 처리할 수 있어...”

유규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여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규한 씨, 방금 한 말 진심이야? 나와 아들을 버리겠다는 거지?”

진혜라는 얇은 옷차림으로 힘없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알았어. 내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질게. 이제 두 번 다시 규한 씨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

진혜라는 울면서 멀리 달아났다. 유규한이 뒤쫓으려고 하자 지윤이 팔을 붙잡았다.

송지윤은 떨리는 목소리로 마지막 한 번만 애원했다.

“유규한, 가지 마.”

“미안해. 혜라 씨가 무슨 짓을 할까 봐 두려워.”

잠깐 망설이던 유규한은 결국 송지윤의 손을 떼어 내고 주저 없이 진혜라를 쫓아갔다.

송지윤은 텅 빈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마음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무언가마저 완전히 죽었다.

‘유규한, 그렇게 진혜라를 놓지 못하겠다면 나는 당신 없이 아이만 키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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