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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용서하는 일은 끝났다

당신을 용서하는 일은 끝났다

By:  안철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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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규한과 다시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송지윤은 아이를 가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유규한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낮췄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회식 후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에도 자신이 직접 맞이하지 않았고, 가사도우미에게 숙취에 좋은 콩나물국만 준비해 달라고 했다. 유규한이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도, 관사 관리실을 통해서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참고 또 참던 송지윤은 임신 8개월째, 유규한의 코트 주머니에서 낯선 여자의 수분크림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모른 척하려던 어느 날. 송지윤은 관사 근처 미래여성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던 중,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과 마주했다. 병실에서 나온 간호사 두 명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 중령님, 돌아가신 전우의 아내를 정말 지극정성으로 챙기시더라. 아기를 낳자마자 병원에서 제일 좋은 특실까지 잡아줬대.” “진혜라 씨 말이야? 유 중령님 전우의 미망인이라잖아. 낮에는 병원에서 병실을 지키고, 밤에도 관사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신경을 쓴다더라. 정말 대단한 의리야.” “그런데 유 중령님 아내분도 곧 출산 아니야?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괜찮을까?”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그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송지윤의 귀에 박혔다. 그리고 병실 안.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그 사람은 바로 그녀의 남편 유규한이었다. 송지윤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시작한 결혼도,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음도. 이제는 모두 끝낼 시간이었다. 송지윤은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유규한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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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유 중령, 축하해. 아주 건강한 아들이네!”

“송지윤 씨가 딸을 낳으면 아들딸 다 둔 셈이겠어!”

“송지윤 씨는 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

병실에는 유규한과 가까운 남자 동료 몇 명이 함께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유규한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당연히 모르지. 너희도 집사람 앞에서 절대 입 열지 마. 지금 임신 막바지라 마음이 흔들리면 안 돼.”

“언제까지 숨길 생각인데? 계속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

유규한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집사람이 출산하면 말할 거야. 아이가 생기면 떠나지 못할 테니까.”

침대에 누운 진혜라가 여린 목소리로 물었다.

“규한 씨가 난처해지는 건 아니지? 준영 씨가 세상을 떠난 뒤, 규한 씨 곁에서 대를 이을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유규한은 진혜라를 끌어안았다.

“혜라 씨를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지킬 거야. 지난 3년 동안 숨어 지내듯 내 곁에 있어야 했던 혜라 씨가 고생했지.”

송지윤은 문틈 사이로 늘 차갑고 기품 있던 유규한의 얼굴에 다정함이 가득 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입가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3년 전에도 송지윤은 유규한이 전사한 전우 이준영의 아내 진혜라와 뒤엉킨 장면을 목격한 뒤 이혼을 요구했다.

송지윤이 이혼하겠다고 하자, 진혜라는 죽겠다며 소동을 벌였다.

두 여자 사이에서 유규한은 진혜라를 택했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3년 후, 유규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멀리 떠난 송지윤을 찾아서 부남시로 향했다.

다시 만난 유규한은 송지윤 앞에 무릎을 꿇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송지윤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때 이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진혜라가 정말 목숨을 끊을까 두려운 데다가 죽은 전우에게 죄를 짓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송지윤을 안심시키겠다며 진혜라를 아예 다른 도시로 보냈다고도 했다.

알고 지낸 세월은 10년, 사랑한 시간은 5년이었다.

송지윤 역시 그 사랑을 놓지 못해서 결국 마음이 약해졌고, 재결합을 받아들였다.

다시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유규한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송지윤에게 보상하려고 했다.

송지윤이 좋아하는 딸기우유 사탕은 구하기 힘들었지만, 먼 도시의 지인에게 부탁해서 보내오게 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송지윤을 위해서 자기 패딩의 충전재까지 빼내서 두툼한 겨울 외투를 새로 맞춰 줬다.

훈련에 나가서도 틈이 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 무사하다고 알려 왔다.

하지만 지난 3년 내내 유규한이 진혜라를 보낸 적조차 없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유규한은 진혜라를 근처에 숨겨 둔 채 관계를 끊지 않았고, 둘 사이에는 아이까지 생겼다.

송지윤은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판단을 했는지 깨달았다.

자신이 유규한을 충분히 믿었고 유규한이 넘칠 만큼 사랑을 줬다 해도, 한 번 깨진 관계는 결국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었다.

며칠 전 유규한은 한 달 동안 무연령 일대로 부대 훈련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송지윤은 어리석게도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갑자기 검진을 받으러 왔다가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로 평생 속고 살았을지도 몰랐다.

송지윤의 감정이 요동치는 걸 알아차렸는지, 뱃속의 아이가 갑자기 거세게 발길질을 했다.

송지윤은 고통스럽게 배를 감싸고 허리를 굽혔다.

“아파...”

배만 아픈 게 아니었다. 마음도 갈기갈기 찢어졌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상한 걸 알아차리고 다급하게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어디가 안 좋으세요?”

“밖에 누구야?”

소리를 들은 병실 안 사람들이 일제히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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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유 중령, 축하해. 아주 건강한 아들이네!”“송지윤 씨가 딸을 낳으면 아들딸 다 둔 셈이겠어!”“송지윤 씨는 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거지?”병실에는 유규한과 가까운 남자 동료 몇 명이 함께 있었다.그 말을 들은 유규한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당연히 모르지. 너희도 집사람 앞에서 절대 입 열지 마. 지금 임신 막바지라 마음이 흔들리면 안 돼.”“언제까지 숨길 생각인데? 계속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유규한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집사람이 출산하면 말할 거야. 아이가 생기면 떠나지 못할 테니까.”침대에 누운 진혜라가 여린 목소리로 물었다. “규한 씨가 난처해지는 건 아니지? 준영 씨가 세상을 떠난 뒤, 규한 씨 곁에서 대를 이을 아이를 낳은 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다른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유규한은 진혜라를 끌어안았다. “혜라 씨를 돌보겠다고 약속했으니 반드시 지킬 거야. 지난 3년 동안 숨어 지내듯 내 곁에 있어야 했던 혜라 씨가 고생했지.”송지윤은 문틈 사이로 늘 차갑고 기품 있던 유규한의 얼굴에 다정함이 가득 번지는 모습을 지켜봤다. 입가에는 자조적인 웃음이 떠올랐다.3년 전에도 송지윤은 유규한이 전사한 전우 이준영의 아내 진혜라와 뒤엉킨 장면을 목격한 뒤 이혼을 요구했다.송지윤이 이혼하겠다고 하자, 진혜라는 죽겠다며 소동을 벌였다.두 여자 사이에서 유규한은 진혜라를 택했다.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지 3년 후, 유규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멀리 떠난 송지윤을 찾아서 부남시로 향했다.다시 만난 유규한은 송지윤 앞에 무릎을 꿇고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송지윤뿐이었다고 말했다.그때 이혼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진혜라가 정말 목숨을 끊을까 두려운 데다가 죽은 전우에게 죄를 짓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송지윤을 안심시키겠다며 진혜라를 아예 다른 도시로 보냈다고도 했다.알고 지낸 세월은 10년, 사랑한 시간은 5년이었다.송지윤 역시 그 사랑을 놓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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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송지윤을 본 유규한은 완전히 당황했다.유규한은 안고 있던 아기를 황급히 신생아 침대에 눕힌 뒤 성큼성큼 문으로 다가왔다.“여보, 왜 여기 있어?”나머지 사람들도 송지윤을 발견하자, 곧바로 표정이 굳어졌다.“형... 형수님이 오셨네?”“형수님, 설명부터 들으세요! 진혜라 씨가 출산했다기에 저희가 병문안을 왔어요. 중령님은 오는 길에 우연히 마주쳐서 함께 모시고 온 것뿐입니다.”“맞아요, 형수님.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이 지경이 됐는데도 유규한의 전우들은 대신 거짓말을 해 주고 있었다.입을 열 때마다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송지윤은 속이 뒤집혀서 토할 것만 같았다.송지윤은 천천히 눈을 들어 유규한을 바라봤다.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당신은? 당신은 뭐라고 설명할 건데?”“여보, 흥분하지 마... 다들 말한 그대로야. 정말 우연히 만났을 뿐이야.”“여기까지 와서도 거짓말을 해?”심장이 너무 오래 얼음 속에 잠겨 이제는 감각마저 사라진 줄 알았다.그러나 유규한의 거짓말은 남아 있던 송지윤의 마음까지 무너뜨렸다. 송지윤은 손을 번쩍 들어 유규한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어제는 한 달간 무연령으로 부대 훈련을 간다더니, 훈련 장소가 산부인과였어? 유 중령은 이동 속도도 참 빠르네.”유규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갑자기 일정이 바뀌었어. 미안해, 진정해. 넌 아이까지 가졌잖아.”“제 잘못이에요! 송지윤 씨, 제발 유규한 씨를 때리지 마세요.”진혜라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송지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규한 씨는 제가 불쌍해서 곁에 있어 준 것뿐이에요!” “저는 남편을 잃은 여자예요. 기댈 남자 한 사람과 살아갈 힘이 되어 줄 아이만 있으면 돼요! 지윤 씨 남편을 빼앗을 생각은 없어요!”“입 다물어! 유규한의 아이까지 낳아 놓고 빼앗을 생각이 없다고?”송지윤은 진혜라를 때리려고 손을 들었지만, 유규한이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나를 때리는 건 괜찮아. 혜라 씨는 건드리지 마. 출산한 지 며칠밖에 안 돼서 몸이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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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유규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윤아...”“규한 씨, 내가 아이를 데리고 사라질게. 이제부터는 우리가 어떻게 되든 신경 쓰지 마! 죽어도 상관하지 마!”“혼인신고도 못 했으니 이 아이는 평생 혼외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겠지. 차라리 내가 아이하고 함께 죽어 버릴 거야!”진혜라가 아기를 품에 안고 창문으로 뛰어가자, 유규한이 필사적으로 붙잡았다.“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준영이에게 널 지키겠다고 약속했어!” 유규한은 송지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지금 꼭 이런 선택을 강요해야 해? 너 정말 미쳤어!”“혜라 씨가 낳은 아이는 내 아들이야! 내 눈앞에서 아이가 잘못되는 꼴은 못 봐! 이혼하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나도 지난 3년 동안 지칠 만큼 지쳤어!”유규한은 품에 안긴 진혜라를 데리고 다급히 나갔다. 송지윤과 부딪친 사실조차 알아채지 못했다.만삭이라 몸이 무거운 송지윤은 충격에 균형을 잃고 말았다. 몇 걸음 뒤로 밀려나다가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극심한 통증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자기가 지쳤다고? 지친 건 나도 마찬가지야.’병실에 남은 사람들은 넘어진 송지윤을 부축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송지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저 여자는 질투가 너무 심해서 탈이야.”“이럴 줄 알았으면 3년 전에 유 중령님도 돌아와 달라고 매달리지 말았어야지.”“중령님도 지금쯤 후회하지 않을까? 후회해도 떼어 내긴 어렵겠지. 임신 8개월인데 이제 와서 지우라고 할 수도 없잖아.”사람들은 모두 진혜라를 따라 응급실 쪽으로 몰려갔다.떠들썩하던 병실에는 송지윤만 홀로 남았다.배에서 심한 통증이 밀려오자, 송지윤은 지나가던 사람에게 의사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미래여성병원 진료실.검사를 마친 산부인과 의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임신 8개월이면 특히 조심하셔야 해요. 어쩌다 이렇게 바닥에 넘어지셨어요?”송지윤은 눈만 깜박이며 천장만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부주의해서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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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병원을 나온 송지윤은 눈 덮인 길을 밟으면서 관사까지 천천히 걸어갔다.집 앞에 도착하자, 유규한이 미간을 찌푸린 채 서 있었다.“어디 갔다 왔어?” 유규한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정말 몸이 안 좋은 거야?”화를 내려고 기다렸던 모양이지만, 새하얗게 질린 송지윤의 얼굴을 보니 정말 아픈 사람 같았다.송지윤은 담담하게 답했다. “그래. 조금 전 당신이 직접 나를 바닥에 밀어 넘어뜨렸잖아. 기억 안 나?”그제야 유규한은 자신이 다급히 나가다가 송지윤과 부딪친 일을 떠올렸다.“미안해. 그때 너무 급했어. 다친 데는 없어?”송지윤은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진혜라의 아이는 어떻게 됐어?”“다행히 괜찮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어.”유규한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송지윤에게 다가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앞으로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될까? 그렇게 어린 아기에게 어떻게 손을 댈 수 있어?”송지윤은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다 문득 낯선 사람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당신 마음속에서 내가 그런 사람이야? 진혜라가 일부러 아이를 내 손 앞으로 내밀었다고 하면 믿겠어?”“송지윤!” 유규한의 표정이 어둡게 굳어졌다. “혜라 씨에게 누명 좀 그만 씌워. 3년이나 지났는데 넌 왜 아직도 똑같아?”예상대로 유규한은 믿지 않았다.3년 전 진혜라가 처음 집에 왔을 때도 일부러 자기 몸에 뜨거운 물을 쏟고는 지윤이 그랬다고 말했다.함께 백화점에 갔을 때는 계단에서 스스로 굴러 떨어진 뒤, 지윤이 발을 걸었다고 그랬다.심지어 한 번은 가위로 자기 몸을 찌르고, 지윤이 죽이려 했다고 울면서 매달렸다.거듭된 모함과 유규한의 편들기. 다시 합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송지윤은 정말 지쳤다.“유규한, 조금 전 이혼해도 좋다고 한 말, 아직 유효해?”이혼이라는 말을 듣자 유규한은 급히 달랬다. “여보, 임신 8개월인 사람이 무슨 이혼 타령이야? 아까 한 말은 화가 나서 내뱉은 것뿐이니 마음에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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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혼자 집으로 돌아온 송지윤은 짐을 거의 다 정리한 뒤, 관사 근처에 사무실을 둔 변호사를 찾아갔다.“송지윤 씨, 유규한 중령님이 이미 이혼 서류를 가져가셨는데 모르셨습니까?”송지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오늘 오전에 유 중령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협의이혼 서류를 서둘러 준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송지윤 씨와 이혼하겠다고 말씀하시더군요.”“조금 전 작성이 끝난 서류를 받아 가셨고요. 3년 전에 다시는 이혼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분이라... 저도 조금 의아했습니다.”변호사의 말을 들은 송지윤은 웃음이 났다.‘낮에는 병원에서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고 말해 놓고...’‘돌아서자마자 변호사를 찾아와 이혼 서류를 준비했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네...’한참동안 아무 말도 못 하던 송지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집으로 돌아온 뒤 송지윤은 결국 무너졌다.고개를 든 송지윤의 시선이 침대 머리맡의 앨범에 머물렀다.사진 속 유규한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었다. 잔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송지윤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해 보였다.그 환한 미소가 이제는 가슴을 저리게 했다.송지윤은 가위를 집어 두 사람의 웨딩 사진을 난도질했다. 갈가리 찢긴 사진을 액자째 방문 쪽으로 힘껏 던졌다.바로 그때 문이 열리면서 유규한이 들어왔다.날아간 액자는 정확히 유규한의 몸에 부딪혔다.웨딩 사진이 바닥에 떨어졌다. 유규한은 조각난 사진을 내려다보다 말없이 허리를 굽히고 사진을 주워들었다.“여보.”유규한이 옆으로 비켜 들어오자 그 뒤에 서 있던 여자가 보였다.3년 전과 똑같았다. 유규한은 또다시 진혜라를 집으로 데려왔다.아이를 안은 진혜라가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규한 씨, 지윤 씨와 잘 이야기해. 나 때문에 싸우지 말고.”말을 마친 진혜라는 가사도우미를 따라 예전에 쓰던 방으로 향했다.“원래는 혜라 씨가 계속 병원에 머물게 할 생각이었어. 네가 이미 다 알게 됐으니 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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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날 밤 유규한은 부부의 침실로 돌아오지 않았다.한밤중에 잠에서 깬 송지윤은 갑작스러운 다리 경련에 신음했다.통증을 참으며 일어난 송지윤은 유규한을 찾으러 가려고 했다.간신히 방문을 나와서 진혜라의 방 앞까지 힘겹게 걸어갔다.문을 두드리려던 송지윤 입을 열었다. “유규한, 다리에 쥐가 났어. 혹시...”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 안쪽에서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규한 씨...”“쉿. 목소리 낮춰. 아이가 깨겠어.”송지윤은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허벅지의 경련은 파도처럼 계속 번져 갔다.하지만 가슴속의 고통은 육체의 통증보다 훨씬 심했다.얇은 나무문 너머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들렸다.이어지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소리가 무거운 망치가 되어 송지윤의 가슴을 사정없이 내리쳤다.천장을 올려다보던 송지윤은 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를 떠올렸다.원래 몸이 약했던 송지윤은 임신 초기에 거의 날마다 토했다.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송지윤이 토할 때마다 유규한은 곧장 일어나 따라왔다.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며 안타까운 눈으로 말했다. “여보, 임신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다면, 평생 아이 없이 살아도 좋다고 했을 거야!”임신 후기로 접어든 뒤에는 자주 다리에 쥐가 나서 한밤중에 꼼짝도 하지 못 했다. 그럴 때면 유규한이 인내심 있게 다리를 주물러줬다.8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았고 지친 기색도 내지 않았다.이제 유규한은 송지윤의 곁이 아니라 다른 여자의 방에서 뜨거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규한 씨, 나 정말 행복해! 드디어 규한 씨와 결혼할 수 있잖아. 한 달만 부부로 살아도 충분히 만족해.”“내가 미안해. 너를 이렇게 마음고생을 시켰네. 앞으로는 너와 아이에게 잘할게.”“규한 씨, 사랑해. 정말 사랑해!”두 사람의 격한 신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새 송지윤의 다리 경련은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대신 온몸의 힘이 모두 빠져나간 듯 바닥에 주저앉았다.송지윤은 자신이 졌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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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진혜라가 아무리 도발해도 송지윤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털옷을 계속 떴다.송지윤이 무시하자, 화가 난 진혜라는 송지윤의 손에서 털옷을 빼앗아 연못에 던져 버렸다.“귀가 먹었어요? 내가 하는 말이 안 들려요?”송지윤도 결국 참지 못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털옷을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려가서 주워.”“싫어요. 안 주우면 어쩔 건데요?”“안 주워? 그럼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원망하지 마.”송지윤이 한 걸음씩 다가가자, 진혜라는 연못 가장자리까지 밀려났다.진혜라가 손을 뻗어서 송지윤을 막 연못으로 밀려고 할 때, 멀리서 걸어오는 유규한이 곁눈에 들어왔다.진혜라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걸렸다. 손에 쥔 물건 하나를 연못으로 던졌다.“지윤 씨, 안 돼요!” 진혜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우리 아기 액막이 금팔찌예요! 며칠 전 규한 씨가 사찰에서 축원까지 받아온 거라고요!” “지윤 씨가 바닥에 떨어뜨린 뒤로 아기가 계속 아팠는데, 그 팔찌 덕에 겨우 버티고 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무슨 소리야? 방금 네가 직접...”송지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진혜라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진혜라는 거짓 연기에 너무도 능숙했다.“송지윤!”송지윤이 해명할 새도 없이, 유규한이 성난 걸음으로 다가와 손목을 거세게 움켜잡았다.“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규한 씨, 나 이 집에서 더는 못 살겠어! 지윤 씨는 우리 아기가 죽기를 바라고 있어!”“내가 인사하려고 다가가서 규한 씨가 사찰에서 아기의 무사함을 빌며 받아온 금팔찌 이야기를 했더니, 갑자기 연못에다 내던졌어.”“우리 아기 따위는 팔찌를 찰 자격도 없고 애초에 죽었어야 한다고 했어!” “규한 씨하고 이혼해도 자기 아이가 태어나면, 우리 아들은 결국 혼외자일 뿐이라고도 했고!”“정말 그런 말을 했어? 송지윤, 진혜라를 받아들이려고 이혼에 동의한 줄 알았는데 전부 거짓말이었어?”“난 그런 말 한 적 없어!”붙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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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임신하면 수영도 못 하나?” 유규한이 비웃었다. “임신했다는 이유로, 내가 사랑하고 아껴 준다는 이유로 내 말을 우습게 여기니까 이런 짓까지 하는 거야!”“혜라씨, 들어가자. 신경 쓰지 마. 아이가 정말 잘못돼도 지윤이 자신이 지은 죄의 대가야!”송지윤은 연못에 몸을 담근 채 진혜라를 감싸고 떠나는 유규한의 뒷모습을 보다가 허탈하게 웃었다.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그리고 임신 사실을 확인한 날, 유규한이 눈이 빨개지도록 울던 모습이 떠올랐다.유규한은 송지윤을 품에 꼭 안고 거듭 말했다. “여보, 드디어 우리에게 아기가 생겼어! 이제 넌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내가 맹세할게. 평생 너와 아기가 조금도 억울한 일을 겪게 하지 않겠어.”그런 유규한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그는 거짓말뿐인 다른 여자를 위해 임신한 아내의 뺨을 때리고 연못에 빠뜨렸다.심지어 아내에게 그 여자가 낳은 아이의 금팔찌를 찾으라며, 물속에 가둬 두기까지 했다.송지윤의 상태를 본 부하가 안쓰러워하면서도 재촉했다. “사모님, 서둘러 찾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벌써 임신 9개월이라 언제 진통이 올지 모릅니다. 혹시라도 잘못되실까 봐 걱정됩니다.”낯선 사람도 걱정해 주는데 남편인 유규한은 이렇게까지 잔인했다.송지윤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물속으로 몸을 깊이 숙여서 금팔찌를 몇 번이고 찾아 헤맸다.해가 떠 있던 때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연못 물은 갈수록 차가워졌다. 송지윤은 온몸을 떨면서도 금팔찌를 찾지 못했다.임신 8개월의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바닥까지 잠수해 손을 더듬을 때마다 오장육부가 뜯겨 나가는 듯 아팠다.물가에서 지켜보던 부하들도 더는 두고 보기 힘들었다.“벌써 밤 10시입니다. 이대로 두면 사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겁니다.”“그래도 중령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잖아.”꼬박 4시간이 지났다. 송지윤의 손발은 물에 불어서 하얗게 변한 지 오래였다.더는 버티기 어려워질 무렵, 뱃속의 아이도 거듭 몸부림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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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악, 너무 아파요!” 송지윤은 비명을 참지 못하고 의사의 손을 힘껏 붙잡았다. “제발 아이를 살려주세요. 제 뱃속에서 9개월을 자란 아이예요. 꼭 낳고 싶어요! 이제 전화하지 마세요. 수술실로 데려가 주세요. 무슨 일이 생겨도 제가 책임질게요!”그 말을 끝으로 송지윤은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의식이 멀어지기 직전에 유규한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는 송지윤에게 차갑게 굴다 보면 그 업보가 뱃속 아이에게 돌아갈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냐고 말했다.심지어 뱃속의 아이가 정말 잘못되더라도, 그 모든 게 송지윤이 저지른 죄의 대가라고까지 몰아붙였다.그 말들만으로도 유규한은 송지윤의 아이에게 아버지가 될 자격을 잃었다.얼마나 오래 의식을 잃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희미하게 정신을 차린 송지윤은 주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서두르세요. 양수가 터졌고 태아의 심박이 약합니다. 당장 수술해야 해요!”“송지윤 씨 아니에요? 유 중령님은 어디 있죠?”“유규한 씨 말이에요? 오늘 자기 아들의 출생 축하 파티를 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무슨 축하 파티예요? 아내는 여기 있고 아이도 아직 뱃속에 있는데요!”“내연녀가 낳은 아이겠죠. 그 내연녀도 여기서 출산했다잖아요!”“대체 어떤 남편이 그래요? 매번 검진 때마다 송지윤 씨와 같이 오기에, 정말 아내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전부 가짜였네요!”“송지윤 씨, 정신 놓으면 안 돼요. 힘내세요. 아기가 곧 나올 겁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간호사가 아이를 안고 송지윤 곁에 서 있었다.“송지윤 씨, 축하해요. 건강한 딸이에요.”그때 부대의 법무 담당자가 찾아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송지윤 씨, 협의이혼 절차가 모두 완료됐습니다. 확인서입니다.”서류를 받아 든 송지윤은 서류에 찍힌 직인을 한참 바라봤다.그 순간, 오랫동안 가슴속에 눌러 담고 있던 무거운 감정이 조금씩 풀려나갔다.송지윤은 간호사를 올려다보며 나직이 부탁했다. “기차역에 연락하는 걸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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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규한의 몸은 돌처럼 굳어지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었다.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의사 말로는 사모님이 너무 오래 찬물에 있어서 자궁 수축이 일어났답니다. 양수가 터진 뒤에도 출산이 지연돼 아기가 산소 부족으로 숨졌다고 합니다.]부하의 말이 끝나자 유규한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쳤다.“말도 안 돼. 거짓말이지! 집사람이 나를 속이라고 시킨 거지?” “나한테 화가 나서 내가 괴롭고 슬프게 만들려고 거짓말한 거잖아! 당장 송지윤에게 전화 받으라고 해. 내가 직접 이야기할 거야!”“규한 형, 무슨 일이야? 형수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그러게. 표정이 왜 그래? 제수씨가 또 전화로 협박했어?”“...”유규한이 흥분한 모습을 본 친구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몰려들었다.진혜라는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마음을 애써 숨겼다.유규한의 반응을 보니 바라던 일이 정말 벌어진 듯했다.송지윤은 원래 몸이 약한 데다 임신 9개월이었다. 차가운 연못에서 몇 시간이나 버텼으니,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송지윤까지 출산으로 죽는다면, 진혜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유씨 집안의 안주인이 된다. 자기 아들도 떳떳하게 그 집안의 유일한 아이가 될 수 있었다.부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 겨우 대답했다. [중령님, 거짓말이 아닙니다. 사모님은 수술실에서 나온 뒤 바로 떠났습니다. 어디로 가셨는지는 저희도 모릅니다!][참, 중령님. 사모님이 떠나기 전에 전해 달라고 맡긴 물건이 있습니다. 지금 그걸 들고 가는 중입니다.]말이 끝나자마자, 단지를 품에 안은 남자가 멀리서 다가왔다.유규한은 남자를 보자 미친 듯 달려갔다.“집사람은 어디 있어! 대체 어디로 갔어? 병원에 있는 거야? 나한테 뭘 전해 달라고 했는데?”부하가 들고 온 단지를 내밀었다. “중령님, 사모님이 전해 드리라고 했습니다.”“이게 뭐야?”“모르겠는데 모양이 영 불길해 보여.”“어디서 본 것 같은데.”“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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