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규한과 다시 시작한 지 3년째 되던 해, 송지윤은 아이를 가졌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유규한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낮췄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회식 후 술에 취해 돌아오는 날에도 자신이 직접 맞이하지 않았고, 가사도우미에게 숙취에 좋은 콩나물국만 준비해 달라고 했다. 유규한이 바쁘다는 이유로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아도, 관사 관리실을 통해서 찾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참고 또 참던 송지윤은 임신 8개월째, 유규한의 코트 주머니에서 낯선 여자의 수분크림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제자리에 돌려놓았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걸 모른 척하려던 어느 날. 송지윤은 관사 근처 미래여성병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던 중,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장면과 마주했다. 병실에서 나온 간호사 두 명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 중령님, 돌아가신 전우의 아내를 정말 지극정성으로 챙기시더라. 아기를 낳자마자 병원에서 제일 좋은 특실까지 잡아줬대.” “진혜라 씨 말이야? 유 중령님 전우의 미망인이라잖아. 낮에는 병원에서 병실을 지키고, 밤에도 관사에 들어가지 않을 만큼 신경을 쓴다더라. 정말 대단한 의리야.” “그런데 유 중령님 아내분도 곧 출산 아니야?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괜찮을까?”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그 말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송지윤의 귀에 박혔다. 그리고 병실 안.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그 사람은 바로 그녀의 남편 유규한이었다. 송지윤은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에는 달랐다. 그녀는 더 이상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다시 시작한 결혼도, 끝까지 지키려 했던 마음도. 이제는 모두 끝낼 시간이었다. 송지윤은 이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절대로 유규한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View More“여보...”무슨 말을 해도 미안한 마음을 다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규한도 알고 있었다.유규한은 송지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올려다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거 알아. 그래도 이렇게 어린 애를 아빠 없이 살게 할 수 있어?”“누가 우리 딸에게 아빠가 없다고 했어?”송지윤은 눈썹을 살짝 치켜떴다. “앞으로 더 좋은 남자를 만나면 우리 딸에게도 아빠가 생기겠지. 그런 사람이 없다 해도 당신 같은 쓰레기를 아빠라고 부르게 하지는 않을 거야!”“당신도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지금 바로 돌아가. 다시는 나와 내 딸 앞에 나타나지 마!” “계속 이러면 딸을 데리고 바로 이사할 거야. 당신이 영원히 찾지 못할 곳으로 갈 거라고!”“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유규한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울었다. 이제야 마음이 찢어지는 아픔이 무엇인지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3년 전처럼 마지막 기회를 한 번만 더 주면 안 될까? 정말 딱 한 번이면 돼.”“기회는 이제 없어.” 송지윤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3년 전에 이미 한 번 줬지만 당신이 스스로 짓밟았어. 아내를 잃고 친딸까지 잃은 건 전부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 누구도 원망하지 마.”“지금 분명히 말해 두겠어. 당신 딸이 어릴 때부터 이곳저곳 떠돌며 살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당장 여기서 사라져!” “그러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다온이 데리고 떠날 거야!”송지윤의 말은 유규한의 마음에 남아 있던 마지막 희망까지 완전히 부숴 버렸다.유규한은 지윤 정말로 자신을 증오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지금의 증오는 3년 전보다 훨씬 깊었다.송지윤은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송지윤은 유규한을 다시 보지 않고 아이를 안은 채 집으로 돌아섰다.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품 안의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으아앙!”송지윤은 걸음을 멈추고 품에 안긴 아이를 내려다봤다.“다온아, 엄마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여보, 아이는 죽지 않았지? 우리 아이가 살아 있는 거지?”“여보, 나와서 만나 줘! 우리 아이를 봐야겠어! 왜 나를 속였어? 아이가 살아 있는데 왜 죽었다고 했어!”유규한은 이성을 잃고 철문을 잡아당기면서 고함을 질렀다. 주변의 이웃들까지 모두 구경하러 나왔다.집 안에서 송다온을 안고 놀아 주던 송지윤은 유규한의 목소리를 듣자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유규한이 대체 무슨 낯짝으로 이유를 묻는 거야?’그날 부하들이 마음을 바꿔서 송지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면, 아이뿐 아니라 송지윤까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송다온은 송지윤이 자기 목숨과 맞바꿀 뻔하면서 지켜 낸 아이였다. 유규한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었다.“유규한 저 비겁한 몹쓸 놈! 내가 나가서 정신이 들 때까지 두들겨 패야겠어!”송강산이 당장 나가려고 하자, 송지윤은 이웃들에게 둘러싸인 유규한을 바라봤다. 결국 자신이 직접 만나 제대로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아빠, 제가 나갈게요. 제가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평생 따라다닐 거예요. 정말 지쳤어요. 이제는 더 얽히고 싶지 않아요.”“그래. 그럼 아이는 아빠한테...”장수미가 송다온을 받아 안으려고 했지만 송지윤은 움직이지 않았다.“괜찮아요. 제가 다온이를 데리고 나갈게요.”송지윤 아이를 안고 집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자, 유규한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번졌다.“여보, 네가 안고 있는 아이... 우리 아이지?”유규한은 흥분으로 온몸을 떨었다. 목소리마저 잔뜩 갈라져 있었다.송지윤의 품에 안긴 아기는 커다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조그만 손을 허공에서 흔들었다. 더없이 사랑스러웠다.눈매와 눈썹은 유규한을 빼닮았고 작은 입은 송지윤과 판박이였다.유규한은 눈시울을 붉히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여보... 우리 딸이지? 우리의 딸이잖아!”철문을 사이에 둔 채 송지윤은 아무 표정도 없이 유규한을 바라봤다.“아니야.”차갑게 떨어진 대답에 유규한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아니라고?” 유규한은 믿지 못하고 고
“저놈이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사실을 알게 된 송강산은 당장 찾아가서 따지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송지윤도 진정해 달라고 만류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유규한은 가사도우미들에게 새로 산 가구를 집 안으로 옮겨 놓으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몸을 돌린 유규한은 뒤에 서 있는 송강산을 발견했다.“장인어른! 드디어 저를 만나러 와 주셨군요.”“잠깐. 유 중령은 호칭부터 조심하는 게 좋겠어. 내 딸과 이미 이혼했으니 나는 자네 장인이 아니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어.”송강산은 유규한의 말을 끊고 무거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 집을 산 이유가 대체 뭔가? 뭘 하려는 거야?”“장인어른,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지윤 씨에게 용서받고 싶어서 왔습니다.”유규한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없이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지윤 씨가 용서하지 않으면 여기서 평생 살겠습니다. 용서해 주는 날까지 기다리겠습니다.”“참 뻔뻔한 놈이군!”끝내 화를 참지 못한 송강산이 유규한을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 “3년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나? 그때도 잘못했다고 했어.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지도, 지윤이를 배신하지도 않겠다고 했지.”“결과가 뭐였지? 그 여자와 관계를 끊기는커녕 내 딸 몰래 3년 내내 붙어 다녔어. 아들까지 낳게 하고 내 딸을 이 지경으로 만든 뒤 이제 와서 용서해 달라고?”“유규한, 자네를 비열하다고 해야 할지 분수를 모른다고 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군!”“어떻게 욕하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이라는 걸 믿어 주십시오! 진혜라와는 완전히 끝냈습니다. 진혜라가 낳은 아이도 제 친아들이 아니었습니다.”“이제 알겠군.”송강산은 마침내 사정을 이해했다. “그 여자가 자네를 속이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어? 자네도 이런 꼴을 당하는 날이 오다니.”“전부 자업자득이야! 내 딸이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면 당장 이사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지윤과 다온이를 데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겠어!”송강산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도
부남시 송씨 가문 저택.유규한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꼬박 하루 동안 열차를 타고 온 탓에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러나 쉬지 않고 가장 먼저 송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했다.3년 전에도 유규한은 이곳에서 송지윤을 데려갔다.그때는 송지윤의 부모님 앞에서 평생 다시는 송지윤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그런데 불과 3년 만에 또 잘못을 저질렀다.이번에 저지른 죄는 3년 전보다 훨씬 컸다.송지윤을 볼 낯도 없었고, 송지윤의 부모님 앞에 설 면목은 더더욱 없었다.“실례지만 누구를 찾으세요?”유규한이 대문 앞을 서성이는 모습을 본 가사도우미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용건이 없으면 돌아가 주세요.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새로 고용된 사람이라 유규한을 알아보지 못했다.“지윤 씨의 남편입니다. 지윤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아, 아가씨의 전남편이라는 분이군요?”송지윤이 겪은 일은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유규한을 알아본 가사도우미의 눈에도 숨길 수 없는 반감이 떠올랐다.“죄송하지만 아가씨는 지금 산후조리 중이라 만나실 시간이 없습니다. 당장 돌아가세요!”가사도우미는 말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유규한은 포기하지 않았다. 송지윤의 방이 바로 위층이라는 걸 알기에,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지윤아! 송지윤! 여보! 나 왔어! 너를 데리러 왔어! 잠깐만 내려와서 만나 주면 안 될까?”“내가 잘못했어.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그런 여자에게 철저히 속았어! 하지만 믿어 줘. 진혜라는 유씨 집안에서 쫓아냈고 이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을 거야!”“지윤아, 부탁이야. 내려와서 한 번만 만나 줘! 몇 분이면 돼. 얼굴을 보고 제대로 이야기하자!”집 안에서 유규한의 고함소리를 들은 송지윤의 아버지 송강산은 분을 참지 못했다.미리 준비해 둔 몽둥이를 집어 들고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다. “이걸 살 때부터 내가 말했지? 저놈이 감히 찾아오면 내 손으로 때려죽이겠다고! 제 발로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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