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혼인신고 후 5년, 늘 바빠서 결혼식을 미루기만 했던 소방관 남편이 갑자기 시간을 냈다. 하지만 정작 드레스를 입고 기다리던 결혼식 당일, 남편은 온종일 연락 두절이었다. 의문은 소방서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로 풀렸다. 화면 속에서 여자 후배가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시장에게 ‘소방 영웅’ 표창을 받고 있었다. 단톡방은 칭찬과 부러움으로 도배됐다. “신 팀장님 아내분 진짜 미인이시네요. 우리 남편이 말하던 ‘집안일만 해서 폭 삭은 마누라’랑은 차원이 다른데요?” “맞아요. 당당하고 품위 있는 게, 전형적인 내조의 여왕이네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을 떨며, 내가 진짜 신재형의 아내라고 막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펑! 주방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옥 같은 통증 속에서, 나는 남편에게 구원 요청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되자마자 돌아온 건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또 무슨 행패야? 너한테 결혼식 하자고 괜히 거짓말한 줄 알아? 바로 이런 식으로 매달릴까 봐 그런 거야.” “유림이 아버님은 나 살리려다 돌아가셨어. 그 딸한테 하루쯤 아내 자격으로 상 받게 해주는 게 그리 배가 아파?” 내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전화는 미련 없이 끊겨버렸다.
View More“여보세요. 신재형입니다. 희연이 어머니 아직 거기 계시죠?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따가 모시러 갈게요.”남겨진 장모를 보살피는 것만이 신재형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의 방법이었다.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아 놓았다.“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정희연 씨 어머니 돌아가셨다고.”“그게 무슨 소리죠?”“하아, 소방서 바로 앞 도로에서 차에 치여 숨지셨어요. 정녕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신재형의 손가락에 힘이 풀리며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에서 방황했다.당최 믿기지 않았다.보다 못한 친구가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뺨을 때렸다.“신재형,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아!”“희연이 엄마 일곱 살 지능으로 평생 사신 분이야. 아무것도 몰라도 제 자식 구하겠다고 소방서로 달려갔다고.”“사위가 자기 딸을 살려줄 거라 믿고,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네 이름만 불렀단 말이야.”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신재형이라는 굴레에 묶여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시작은 기막힌 ‘정산 이혼’이었으나, 이미 재산 분할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한 사람이 가정을 위해 바친 피와 눈물의 가치는 결코 통장에 찍힌 몇 자리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법이니까.신재형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절규했다. 이혼만큼은 절대 못 한다고 울부짖었다.하지만 거친 손길들이 그를 짐짝처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이혼을 안 한다고? 네 따위가 감히 무슨 염치로 거부해! 희연한테 진 빚을 뭐로 갚을 건데!”신재형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가정 법원 직원에게 질질 끌려갔다.이때, 대형 스크린에는 다시 한번 정산 이혼의 조항이 떠올랐다.[본 신청은 제출 즉시 철회가 불가능하다.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변제 의무자는 상대방이 죽음 직전에 느낀 고통과 기억을 그대로 체감해야 한다.]끔찍한 기억을 체감한 신재형에게 남은 건 불길에 뼈가 녹아내리는 육체적 고통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신재형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두 귀를 의심했다.정희연이 죽었다니? 말도 안 된다.“그럴 리가! 결혼식 날, 난 화재 신고 따위 받은 적 없어. 멀쩡한 사람이 왜 죽어?”하준수가 실소를 터뜨렸다. 신재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팀장님은 못 받았겠지만, 그 잘난 후배는 분명 연락을 받았을 텐데? 채유림이 조금만 일찍 우리한테 알려줬어도...”끔찍한 광경이 떠올랐는지 하준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그렇다. 단 몇 분만 빨리 출동했어도 살아남았을지 모른다.하지만 고의로 지연된 시간 때문에, 나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다.“희연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문 앞까지 기어 나왔지만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지.”“일반인이라면 진작에 의식을 잃었을 거야. 아이를 품은 엄마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친구는 오열하며 가방에서 초음파 사진과 임신 진단서를 꺼내 들었다.서류에는 내가 임신 8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희연이는 결혼식 날 이 소식을 너한테 전하려고 했어. 그런데 넌 처음부터 끝까지 속임수뿐이었지.”“후배 챙기느라 희연이를 방해물 취급하면서 신혼집으로 돌려보냈잖아. 그 바보는 네 말만 믿고 집에서 기다리다가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봉변당한 거야.”“원래 그날 나랑 예쁜 원피스 사러 가기로 했었는데... 희연이가 그랬어. 네가 변해버린 것 같아서, 이대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진실이 신재형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났다.이윽고 스크린에는 그날의 화재 현장 보도 자료가 투사되었다.지옥을 방불케 하는 화염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진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센 불길에 뒤로 밀려났다.하준수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진입 불가야! 신 팀장님은? 방수차 조종은 그 인간 전문이잖아. 대체 어디 간 거야!”누군가 큰 소리로 답했다.“방금 전화했는데 채유림이 받았습니다! 신 팀
방청석 사람들의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들은 화면에 떠오른 숫자를 보며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내 친구가 차갑게 비웃으며 추궁을 이어갔다.“신재형, 아니, 신 팀장님. 혼인신고 하던 날, 희연이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한 달에 고작 20만 원 쥐여주면서 이런 굴욕을 견디게 하는 게 네가 말한 사랑이었어?”“똑똑히 봐. 희연이한테 빚진 게 어디 이것뿐인 줄 알아? 제대로 계산된 거 맞냐고!”신재형이 겁에 질려 고개를 저었다.역시나, 조금 전 친구 머리 위에 떠 있던 4억 원에 도달하려면 아직 4,000만 원가량이 모자랐다.그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3,500만! 이 숫자, 기억나?”친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붉어진 눈시울에는 나를 향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대학교 3년 치 등록금 총 3,500만 원, 그거 다 희연이가 피땀 흘려 번 돈이야. 너 등록금 대주겠다고 6개월 만에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고!”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는 다시 내 모습이 떠올랐다.술집, 편의점, 고깃집... 나는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톱니바퀴처럼 쉬지 않고 일했다.늦은 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시달리고, 기숙사 침대에서 숨죽여 울던 날들.그렇게 번 돈을 보내면서도 나는 담임 교수한테 제발 비밀로 해달라며 간곡히 부탁했었다.“제가 고생해서 번 돈인 걸 알면 재형이가 안 받으려고 할까 봐 그래요.”교수님은 한숨을 쉬며 내가 모아 온 등록금을 신재형에게 전달했다.서 있는 채로 잠이 들 만큼 피곤함에 지쳐 있었지만, 내 웃음은 장미보다 화사했다.그렇다. 나는 영혼까지 태워 그를 사랑했다.하지만 신재형이 바라본 것은 헌신이 남긴 잿더미뿐이었다.내가 피워낸 온기는 당연한 듯 누리면서, 그 흔적이 자기 삶을 더럽힌 쓰레기라며 불평했다.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신재형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를 악물고 채유림을 향해 물었다.“왜 거
방청석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시집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이걸 왜 돈으로 계산해요?”“남편이 밖에서 피땀 흘려 돈 벌어오면, 마누라는 당연히 집안 살림 챙겨야죠.”가정법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면 돈이 들어요, 안 들어요?”아래에서 답변이 돌아왔다.“그야 들죠.”“청소 업체는요?”“당연히 돈 내야죠.”“그럼 간병인은요?”“돈 안 주고 어떻게 써요!”“다들 돈이 든다는 건 인정하시는군요. 그 말은 이 노동에는 분명 가치가 존재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어째서 결혼만 하고 나면 다들 여성의 가치, 특히 전업주부의 가치를 부정하려 드는 걸까요?”순간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이내 어디선가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어쩌면 묵묵히 헌신해 온 이 세상 모든 여성의 눈물일지도 몰랐다.나는 그 흐느낌을 들으며 문득 실소를 터뜨렸다.신재형과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돌아보니, 우리 둘 중 행복이라는 특권을 누린 건 오직 신재형뿐이었다.주변 사람들의 비난이 멈추자, 채유림은 안달이 나 발을 동동 굴렀다.이내 신재형의 머리 위에 떠 있는 6천만 원 남짓의 금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럼 저 남은 돈은요?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신재형 씨 돈이잖아요. 근데 왜 마이너스까지 곤두박질치냐고!”순간, 신재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옷자락을 매만졌다.직원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신재형의 자산 내역을 화면에 띄웠다.화면에 나타난 명세에 따르면, 신재형의 집과 차는 모두 대출을 끼고 산 것이었다.채유림의 안색이 돌변했지만 여전히 악에 받쳐 억지를 부렸다.“재산은 나누면서 대출금은 같이 안 갚겠다는 게 말이 돼요?”나는 눈을 감고 실소를 터뜨렸다.반면, 신재형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직원이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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