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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후, 남편의 빚을 정산합니다

사망 후, 남편의 빚을 정산합니다

By:  계명Completed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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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후 5년, 늘 바빠서 결혼식을 미루기만 했던 소방관 남편이 갑자기 시간을 냈다. 하지만 정작 드레스를 입고 기다리던 결혼식 당일, 남편은 온종일 연락 두절이었다. 의문은 소방서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로 풀렸다. 화면 속에서 여자 후배가 남편의 팔짱을 낀 채 시장에게 ‘소방 영웅’ 표창을 받고 있었다. 단톡방은 칭찬과 부러움으로 도배됐다. “신 팀장님 아내분 진짜 미인이시네요. 우리 남편이 말하던 ‘집안일만 해서 폭 삭은 마누라’랑은 차원이 다른데요?” “맞아요. 당당하고 품위 있는 게, 전형적인 내조의 여왕이네요.”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손을 떨며, 내가 진짜 신재형의 아내라고 막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이었다. 펑! 주방에서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 살점이 타들어 가는 지옥 같은 통증 속에서, 나는 남편에게 구원 요청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되자마자 돌아온 건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또 무슨 행패야? 너한테 결혼식 하자고 괜히 거짓말한 줄 알아? 바로 이런 식으로 매달릴까 봐 그런 거야.” “유림이 아버님은 나 살리려다 돌아가셨어. 그 딸한테 하루쯤 아내 자격으로 상 받게 해주는 게 그리 배가 아파?” 내가 어안이 벙벙한 사이, 전화는 미련 없이 끊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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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한 달 후, 채유림이 화상을 입었다.

신재형은 후배에게 피부를 이식해 주려고 그제야 나를 떠올렸다.

“기 싸움도 정도껏 해야지, 언제까지 이럴래?”

“30분 안으로 와. 유림이 몸에 흉이라도 생기면, 너한테 들어간 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청구해서 길바닥으로 나앉게 할 거니까.”

이 말인즉슨 그동안 전업주부로서 바친 내조와 노고를 액수로 매기겠다는 뜻이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협박이었다.

내가 겁을 먹고 결국 기어 나올 거라 확신했겠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다.

나와 배 속의 아이는 이미 한 달 전, 뜨거운 화염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혼령이 된 직후에는 솔직히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누군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절절한 그리움이 있어야만 죽은 자리를 떠난다고.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집 문밖조차 나가지 못했다.

남편이라는 인간이 단 한 번도 나를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애타게 찾는 이유가 고작 채유림에게 피부를 이식해 주기 위해서라니.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하긴, 살아있을 때도 안중에 없었는데 죽었다고 다르겠는가?

신재형은 채유림의 상처를 직접 소독해 주고 있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속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애틋함이 묻어났다.

휴대폰이 울리자, 신재형은 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내 전화라 확신하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화면에 뜬 건 소방서의 출동 요청이었다.

“부팀장은 폼으로 있나? 말했잖아, 채유림 대원이 다쳐서 병원에서 간호해야 한다고.”

“우수 대원 평가 따위 상관없어. 유림이를 위해서라면 그깟 기회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으니까.”

통화는 겨우 10초 만에 끊겼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미어터질 듯 아팠다.

신재형은 나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같이 있기 싫었을 뿐.

혹은 그의 원칙을 깨부술 존재가 오직 소중한 후배뿐이었거나.

채유림은 앵두 같은 입술을 삐쭉거렸다.

요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고운 얼굴에 화사한 기운이 감돌았다.

“재형 선배, 희연 언니가 피부 이식해 주기 싫어서 일부러 잠수 탄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중에 시집 못 가면 평생 소방서 경비나 서면서 살죠, 뭐.”

그 말을 들은 신재형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돌변하더니, 처음으로 내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는 무심한 신호음만 이어질 뿐이었다.

결국 조바심이 난 그는 내 친구에게 연락했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친구는 매서운 폭언을 퍼부었다.

“신재형, 이 개자식아! 희연이가 산 채로 타 죽어갈 때 너 어디서 뭐 하고 있었어? 그거 알아? 희연이, 네 애 임신 중이었어!”

신재형은 비웃음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이혼신청서 양식을 다운로드받았다.

“둘이 짜고 나를 속이겠다? 내가 소방 팀장인데 우리 집에 불이 났는지 안 났는지도 모를까 봐?”

“정희연한테 얘기해. 계속 이따위로 기 싸움을 할 거면 당장 이혼이라고!”

이혼이라...

진작에 멈춰버린 심장인데, 가슴이 또다시 찢겨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반투명하게 비치는 몸을 내려다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신재형, 이혼 절차 따위 밟지 않아도 돼. 넌 이미 한 달 전에 완벽한 자유를 찾았으니까.’

친구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며 통곡하자, 그는 더욱 매정하게 쏘아붙였다.

“그래?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 이거지? 좋아! 정희연한테 연락해서 지금 당장 사과하라고 해. 안 그러면 지적장애 있는 장모님, 요양원에서 쫓아내서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 테니까!”

말을 마치고는 전화를 뚝 끊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친구는 오열하고 있었다.

“엄마라니... 이제 엄마가 어디 있다고. 희연이네 가엾은 엄마는 너한테 딸 좀 살려달라고 찾아가던 길에 이미 차에 치여 돌아가셨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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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한 달 후, 채유림이 화상을 입었다.신재형은 후배에게 피부를 이식해 주려고 그제야 나를 떠올렸다.“기 싸움도 정도껏 해야지, 언제까지 이럴래?”“30분 안으로 와. 유림이 몸에 흉이라도 생기면, 너한테 들어간 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청구해서 길바닥으로 나앉게 할 거니까.”이 말인즉슨 그동안 전업주부로서 바친 내조와 노고를 액수로 매기겠다는 뜻이었다.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협박이었다.내가 겁을 먹고 결국 기어 나올 거라 확신했겠지만, 그는 꿈에도 몰랐다.나와 배 속의 아이는 이미 한 달 전, 뜨거운 화염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을.혼령이 된 직후에는 솔직히 이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누군가 그랬다. 사랑하는 사람의 절절한 그리움이 있어야만 죽은 자리를 떠난다고.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나는 집 문밖조차 나가지 못했다.남편이라는 인간이 단 한 번도 나를 떠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리고 이제 와서 애타게 찾는 이유가 고작 채유림에게 피부를 이식해 주기 위해서라니.나는 씁쓸하게 웃었다.하긴, 살아있을 때도 안중에 없었는데 죽었다고 다르겠는가?신재형은 채유림의 상처를 직접 소독해 주고 있었다.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속에는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깊은 애틋함이 묻어났다.휴대폰이 울리자, 신재형은 번호도 확인하지 않은 채 내 전화라 확신하며 코웃음을 쳤다.하지만 화면에 뜬 건 소방서의 출동 요청이었다.“부팀장은 폼으로 있나? 말했잖아, 채유림 대원이 다쳐서 병원에서 간호해야 한다고.”“우수 대원 평가 따위 상관없어. 유림이를 위해서라면 그깟 기회 얼마든지 넘겨줄 수 있으니까.”통화는 겨우 10초 만에 끊겼다.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가슴이 미어터질 듯 아팠다.신재형은 나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같이 있기 싫었을 뿐.혹은 그의 원칙을 깨부술 존재가 오직 소중한 후배뿐이었거나.채유림은 앵두 같은 입술을 삐쭉거렸다.요리 한 번 해본 적 없는 고운 얼굴에 화사한 기운이 감돌았다.“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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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몇 분 후, 신재형은 여전히 반응 없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문득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그도 그럴 것이, 예전의 나는 집안일 외에는 온종일 신재형의 연락만 기다리던 사람이었다.그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면 감사해하며 헐레벌떡 콜백을 보내도 모자랄 판에, 아무런 연락조차 없는 건 분명 이상했다.신재형이 소방서에 직접 화재 신고 내역을 확인해 보려던 순간, 채유림이 황급히 막아섰다.“선배, 시상식 끝난 뒤로 들어온 신고 전화는 제가 다 받았는데, 희연 언니한테서 온 건 하나도 없었어요.”그 말을 듣자 신재형의 찌푸려졌던 미간이 단숨에 펴졌다.“유유상종이라더니, 아주 친구라는 것들도 하나같이 거짓말이나 해대고 말이야.”그는 씩씩대며 이혼신청서 양식을 다운받은 화면을 캡처해 내게 전송하려 했다.하지만 연락처를 아무리 뒤지고, 이름을 검색해 봐도 프로필을 찾을 수 없었다.내 메시지에 답장할 가치조차 못 느꼈던 인간이라 닉네임조차 변경해 두지 않았던 것이다.반면, 후배인 채유림과의 대화창은 언제나 메신저 최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신재형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결국 찾기를 포기했다.이때 채유림이 살뜰하고 이해심 깊은 척 그를 위로했다.“선배, 어차피 희연 언니랑 이혼할 생각이면 아예 정산해서 청구하겠다고 해봐요.”“지난 5년 동안 집에서 전업주부로 꿀만 빨았잖아요. 선배한테 뱉어낼 돈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나오면 겁먹어서 헐레벌떡 달려올걸요?”신재형은 무릎을 탁 치며 즉시 모든 은행 거래 내역을 뒤졌다.그가 매달 준 생활비 20만 원은 물론, 그 외 모든 비용을 반반으로 정산해 두었다.식비, 여행 경비, 숙박비, 심지어 피임기구 비용까지도.직업이 없던 내가 쓴 돈은 결국 신재형이 준 생활비였으니, 모아놓고 보면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이때, 신재형의 눈에 새로 출시된 어플 하나가 들어왔다.앱을 켜자 메인 화면에 큼지막하게 ‘정산 이혼’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그는 곧바로 신청 버튼을 눌렀다.휴대폰으로 즉시 문자가 도착했다.[현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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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내 친구는 정산 내역서를 받자마자 음성 메시지를 쏟아냈다.신재형이 하나라도 재생했더라면, 친구가 전해주는 화재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나와 관련된 거라면 사람이고 뭐고, 그의 인내심은 언제나 바닥이었다.30분이 지나도록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신재형은 곧바로 요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안녕하세요, 신재형입니다. 정희연 모친 앞으로 된 모든 비용 지원 중단하고, 지금 당장 내보내세요.”간호사는 멈칫하더니 기록부를 뒤적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정희연 씨 어머니 말씀이신가요?”“네.”“그분은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신재형은 숨을 헉 들이켰다.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곧바로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정희연이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어요? 요양원에 있는 사람이 무슨 교통사고? 거짓말도 좀 그럴듯하게 해야지. 당장 쫓아내세요. 두 번 말하기 싫으니까.”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통화 종료음에 간호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중얼거렸다.“아니, 딸 결혼식 참석한다며 나갔다가 소방서 앞에서 차에 치여 돌아가신 건데...”하지만 이 말조차 신재형에겐 닿지 않았다. 그는 결혼식 준비로 바빴다.일찍이 채유림 아버지에게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노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채유림의 생일 소원 또한 신재형과 결혼하는 것이었다.신재형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유림아, 너랑 혼인신고까지 하고 정식 부부가 될 수는 없지만 이 세상에서 제일 로맨틱한 결혼식을 올려줄게.”채유림은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왜요? 희연 언니가 선뜻 이혼해 준다면요?”“그럴 리 없어.”신재형이 단칼에 잘라 대답했다.“나 역시 그럴 생각 없고. 이혼 소리 꺼낸 건 정희연을 불러들여서 너한테 피부 이식해 주게 하려는 것뿐이야.”“우리 무려 8년 동안 같이 살았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다고. 그동안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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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한 차례 격정적인 정사가 지나간 뒤, 채유림은 지쳐 잠이 들었다.이상하게도 신재형은 문득 조강지처인 나를 떠올렸다.그는 조심스레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뒤적였다.‘신재형을 영원히 사랑해’라는 상태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했는지, 마치 은혜라도 베풀 듯 내게 문자를 보냈다.[작작 하고 돌아와. 진짜 돈 갚으라는 거 아니니까 유림이한테 피부 이식만 해줘.][아직 한창때인 애 얼굴에 흉이라도 남으면 어떻게 시집을 가? 군말 말고 빨리 와. 병원에서 기다릴 테니까.]하지만 야속하게 화면만 켜졌다 꺼지길 반복할 뿐, 끝내 답장은 오지 않았다.그는 화풀이라도 하듯 채유림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나는 씁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비참하면서도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비참한 건, 예전의 나라면 미련하게 날아갈 듯 기뻐하며 금세 답장을 보냈다는 사실이었다.바람을 피운 뒤 찾아오는 죄책감이 간헐적인 다정함의 실체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그리고 다행인 건...나는 납작한 배를 문지르며 파리하게 웃었다.‘아가야,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그 뒤로 신재형은 채유림을 데리고 다니며 웨딩드레스와 반지를 골랐다.하지만 계약금을 결제하려던 순간, 모든 계좌가 동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말도 안 돼. 이 여자가 대체 내가 준 카드로 무슨 짓을 한 거야!”분노로 일그러진 신재형의 얼굴을 보며, 나는 허탈감이 들었다.내가 언제 카드 같은 걸 받아보기나 했던가.결혼 생활 내내 휴대폰은 물론, 은행 계좌 심지어 마트 포인트 카드 비밀번호조차 알려준 적이 없었다.달마다 쥐여주던 생활비 20만 원 외에는 단 한 푼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내 탓으로 돌리다니.“유림아, 나 집에 잠깐 다녀와야겠어. 넌 병원에서 기다려.”“네, 선배. 얼른 가세요.”신재형이 급히 떠나자, 채유림은 침대에서 일어나 가방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집에 도착한 신재형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완전히 넋을 잃었다.한때 아늑하고 온기가 감돌던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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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말도 안 돼! 내가 정희연한테 이렇게 큰돈을 빚졌을 리가 없잖아. 그 여자 그냥 전업주부였을 뿐이라고.”“정희연은 어디 가고 왜 네가 나서서 난리인데? 이건 엄연한 사기야!”신재형은 어안이 벙벙한 채 4억 원이 눈 깜짝할 사이에 0으로 줄어들다가 마이너스로 곤두박질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반면, 친구의 머리 위에 떠 있던 마이너스 금액은 점점 적어지더니 급기야 4억 원에 도달했다.장내를 메운 사람들도 친구가 대신 단상에 올라간 것은 명백한 부정행위라며 거세게 항의했다.채유림은 한술 더 떠 바닥에 떨어진 생수병을 집어 들어 친구를 향해 던졌다.“뭐 이딴 시스템이 다 있어? 결국 다 짜고 치는 연극이었네! 정희연 당장 나와서 돈 갚으라고 해!”“맞아요. 당장 돈 갚아라! 갚아라!”구경꾼들이 동조하며 고함을 질렀다.친구를 향해 날아가는 생수병을 나도 모르게 막았지만, 허공을 가른 병이 내 몸을 통과하는 걸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부팀장 하준수가 나타나 생수병을 잡았다.“괜찮아요?”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은 동시에 돌아서서 이를 갈며 채유림을 노려보았다.정작 그녀는 여전히 기세등등한 표정이었다.가정법원 관계자가 나와 질서를 정돈하며, 정산 시스템에는 절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않았다. 시스템이 친구의 기억을 불러와 그녀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내 모습을 화면에 띄우기 전까지는.천둥과 함께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시어머니를 위해 나는 빗길에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달려가 밤새 간호했다.신재형에게 전화를 걸어 알리려 하자, 시어머니는 혐오스럽다는 듯 눈을 흘기며 소리를 질렀다.“재형이한테는 말도 꺼내지 마. 넌 온종일 내 아들 덕에 호의호식하며 이 늙은이보다 편하게 살지만, 재형이는 목숨 걸고 일하는 영웅이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사람이야.”“며칠 동안 내 똥오줌이나 받아내. 할 일 없이 놀고먹는 것보다 낫잖아?”말을 마치고는 콧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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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방청석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시집간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이걸 왜 돈으로 계산해요?”“남편이 밖에서 피땀 흘려 돈 벌어오면, 마누라는 당연히 집안 살림 챙겨야죠.”가정법원 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가사 도우미를 고용하면 돈이 들어요, 안 들어요?”아래에서 답변이 돌아왔다.“그야 들죠.”“청소 업체는요?”“당연히 돈 내야죠.”“그럼 간병인은요?”“돈 안 주고 어떻게 써요!”“다들 돈이 든다는 건 인정하시는군요. 그 말은 이 노동에는 분명 가치가 존재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어째서 결혼만 하고 나면 다들 여성의 가치, 특히 전업주부의 가치를 부정하려 드는 걸까요?”순간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이내 어디선가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어쩌면 묵묵히 헌신해 온 이 세상 모든 여성의 눈물일지도 몰랐다.나는 그 흐느낌을 들으며 문득 실소를 터뜨렸다.신재형과 결혼을 결심했던 이유는 그저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돌아보니, 우리 둘 중 행복이라는 특권을 누린 건 오직 신재형뿐이었다.주변 사람들의 비난이 멈추자, 채유림은 안달이 나 발을 동동 굴렀다.이내 신재형의 머리 위에 떠 있는 6천만 원 남짓의 금액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럼 저 남은 돈은요?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신재형 씨 돈이잖아요. 근데 왜 마이너스까지 곤두박질치냐고!”순간, 신재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그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옷자락을 매만졌다.직원은 형식적인 미소를 지은 채 신재형의 자산 내역을 화면에 띄웠다.화면에 나타난 명세에 따르면, 신재형의 집과 차는 모두 대출을 끼고 산 것이었다.채유림의 안색이 돌변했지만 여전히 악에 받쳐 억지를 부렸다.“재산은 나누면서 대출금은 같이 안 갚겠다는 게 말이 돼요?”나는 눈을 감고 실소를 터뜨렸다.반면, 신재형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변해갔다. 직원이 쏟아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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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방청석 사람들의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들은 화면에 떠오른 숫자를 보며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내 친구가 차갑게 비웃으며 추궁을 이어갔다.“신재형, 아니, 신 팀장님. 혼인신고 하던 날, 희연이 평생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한 달에 고작 20만 원 쥐여주면서 이런 굴욕을 견디게 하는 게 네가 말한 사랑이었어?”“똑똑히 봐. 희연이한테 빚진 게 어디 이것뿐인 줄 알아? 제대로 계산된 거 맞냐고!”신재형이 겁에 질려 고개를 저었다.역시나, 조금 전 친구 머리 위에 떠 있던 4억 원에 도달하려면 아직 4,000만 원가량이 모자랐다.그는 문득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입술까지 파르르 떨었다.“말도 안 돼... 그럴 리가...”“3,500만! 이 숫자, 기억나?”친구의 눈에서 마침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붉어진 눈시울에는 나를 향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다.“대학교 3년 치 등록금 총 3,500만 원, 그거 다 희연이가 피땀 흘려 번 돈이야. 너 등록금 대주겠다고 6개월 만에 체중이 7kg이나 빠졌다고!”친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면에는 다시 내 모습이 떠올랐다.술집, 편의점, 고깃집... 나는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톱니바퀴처럼 쉬지 않고 일했다.늦은 밤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불량배들에게 시달리고, 기숙사 침대에서 숨죽여 울던 날들.그렇게 번 돈을 보내면서도 나는 담임 교수한테 제발 비밀로 해달라며 간곡히 부탁했었다.“제가 고생해서 번 돈인 걸 알면 재형이가 안 받으려고 할까 봐 그래요.”교수님은 한숨을 쉬며 내가 모아 온 등록금을 신재형에게 전달했다.서 있는 채로 잠이 들 만큼 피곤함에 지쳐 있었지만, 내 웃음은 장미보다 화사했다.그렇다. 나는 영혼까지 태워 그를 사랑했다.하지만 신재형이 바라본 것은 헌신이 남긴 잿더미뿐이었다.내가 피워낸 온기는 당연한 듯 누리면서, 그 흔적이 자기 삶을 더럽힌 쓰레기라며 불평했다.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신재형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이를 악물고 채유림을 향해 물었다.“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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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신재형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두 귀를 의심했다.정희연이 죽었다니? 말도 안 된다.“그럴 리가! 결혼식 날, 난 화재 신고 따위 받은 적 없어. 멀쩡한 사람이 왜 죽어?”하준수가 실소를 터뜨렸다. 신재형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팀장님은 못 받았겠지만, 그 잘난 후배는 분명 연락을 받았을 텐데? 채유림이 조금만 일찍 우리한테 알려줬어도...”끔찍한 광경이 떠올랐는지 하준수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그렇다. 단 몇 분만 빨리 출동했어도 살아남았을지 모른다.하지만 고의로 지연된 시간 때문에, 나는 자욱한 연기 속에서 숨을 거두어야 했다.“희연이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했어.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문 앞까지 기어 나왔지만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지.”“일반인이라면 진작에 의식을 잃었을 거야. 아이를 품은 엄마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친구는 오열하며 가방에서 초음파 사진과 임신 진단서를 꺼내 들었다.서류에는 내가 임신 8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희연이는 결혼식 날 이 소식을 너한테 전하려고 했어. 그런데 넌 처음부터 끝까지 속임수뿐이었지.”“후배 챙기느라 희연이를 방해물 취급하면서 신혼집으로 돌려보냈잖아. 그 바보는 네 말만 믿고 집에서 기다리다가 가스가 폭발하는 바람에 봉변당한 거야.”“원래 그날 나랑 예쁜 원피스 사러 가기로 했었는데... 희연이가 그랬어. 네가 변해버린 것 같아서, 이대로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진실이 신재형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났다.이윽고 스크린에는 그날의 화재 현장 보도 자료가 투사되었다.지옥을 방불케 하는 화염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진입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거센 불길에 뒤로 밀려났다.하준수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진입 불가야! 신 팀장님은? 방수차 조종은 그 인간 전문이잖아. 대체 어디 간 거야!”누군가 큰 소리로 답했다.“방금 전화했는데 채유림이 받았습니다! 신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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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여보세요. 신재형입니다. 희연이 어머니 아직 거기 계시죠? 잘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따가 모시러 갈게요.”남겨진 장모를 보살피는 것만이 신재형이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속죄의 방법이었다.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짓밟아 놓았다.“제가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정희연 씨 어머니 돌아가셨다고.”“그게 무슨 소리죠?”“하아, 소방서 바로 앞 도로에서 차에 치여 숨지셨어요. 정녕 모르고 계셨던 거예요?”신재형의 손가락에 힘이 풀리며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허공에서 방황했다.당최 믿기지 않았다.보다 못한 친구가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뺨을 때렸다.“신재형, 이 짐승만도 못한 자식아!”“희연이 엄마 일곱 살 지능으로 평생 사신 분이야. 아무것도 몰라도 제 자식 구하겠다고 소방서로 달려갔다고.”“사위가 자기 딸을 살려줄 거라 믿고,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네 이름만 불렀단 말이야.”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장이라도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신재형이라는 굴레에 묶여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시작은 기막힌 ‘정산 이혼’이었으나, 이미 재산 분할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한 사람이 가정을 위해 바친 피와 눈물의 가치는 결코 통장에 찍힌 몇 자리의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법이니까.신재형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절규했다. 이혼만큼은 절대 못 한다고 울부짖었다.하지만 거친 손길들이 그를 짐짝처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이혼을 안 한다고? 네 따위가 감히 무슨 염치로 거부해! 희연한테 진 빚을 뭐로 갚을 건데!”신재형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가정 법원 직원에게 질질 끌려갔다.이때, 대형 스크린에는 다시 한번 정산 이혼의 조항이 떠올랐다.[본 신청은 제출 즉시 철회가 불가능하다. 배우자가 사망했을 경우, 변제 의무자는 상대방이 죽음 직전에 느낀 고통과 기억을 그대로 체감해야 한다.]끔찍한 기억을 체감한 신재형에게 남은 건 불길에 뼈가 녹아내리는 육체적 고통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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