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헛소리하지 마라!”역검문 소속의 한 젊은 제자가 눈이 충혈된 채 허리의 검을 반쯤 뽑아 들었다.“설명 사숙께서는 분명 간악한 자의 계략에 당해 마음을 조종당하신 것이다! 그대들은 그 원흉인 현면객은 찾으려 들지도 않고, 여기서 우리를 향해 떨어진 자를 더 짓밟기만 하는구나!”“우리 진맹 사형은 한평생 강직하게 살아왔소. 어찌 적에게 투항했겠소. 사해여인숙의 그 처참한 광경이, 우리 열화문이 스스로 바라서 만든 일이라고들 생각하시오?”열화문의 한 장정이 가슴을 치며 발을 구르다시피 하며 통곡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철의문 부문주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으나, 억지로 냉소를 지어 올렸다.“철의문의 정예들은 거의 전부 쓰러져 나갔고, 유 사형은 행방조차 묘연하여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대들은 진범을 쫓을 생각은 하지 않고, 먼저 우리 같은 피해자부터 모조리 몰아낼 궁리부터 하는가. 이게 그대들이 내세우는 명문정파의 모습이란 말인가.”양쪽의 감정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며, 오가는 말은 점점 더 날이 서 갔다.곳곳에서 병기가 부딪치는 쇳소리가 드문드문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버릴 듯했다.자그마한 뜰은 어느새 화약통이 된 듯했다.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어느 순간 폭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형세였다.김단은 줄곧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차갑게 식은 눈길로 분노에 휩싸인 사람들을 한 번씩 쓸어보았다.곧게 선 몸가짐은 흐트러짐이 없어, 이 혼탁한 소란 속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차분해 보였다.여러 문파 사람들이 드디어 손을 뻗어 서로에게 무력을 행사하려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르자 김단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제발, 잠시만 조용히 하시지요.”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또렷한 기운이 실려 모든 소란을 단번에 누르고 퍼져 나갔다.그 소리에는 분명 두터운 내공이 실려 있었다.그 탓에 격하게 맞서던 양측의 동작이 동시에 굳어 버리듯 멈추었다.김단은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천천히
문지기를 서던 제자는 다가오는 사람을 보고 먼저 얼굴이 환해졌다.“설 사숙! 무사히 돌아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하고 소리쳤다.그러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대답이 아니라,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검빛 한 줄기였다.설명은 두 눈이 붉게 충혈된 채 눈빛이 텅 비어 있었다.손에 쥔 추수검을 거침없이 뽑아 들더니, 앞으로 나와 그를 맞이하던 제자 몇 명을 순식간에 베어 쓰러뜨렸다.곧장 낙래여인숙 안으로 들이닥친 그는 검을 사납고도 정확하게 휘둘렀다.예전의 온화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눈에 띄는 사람마다 찔러댔다.객잔 안은 순식간에 피가 사방으로 튀고,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역검문의 문주와 몇몇 장로들이 잠에서 벌떡 깨어 허겁지겁 뛰쳐나와 맞섰다.낙래여인숙 대청의 책상과 의자가 산산이 부서지며 순식간에 쑥대밭이 되었다.정예 제자 몇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나간 끝에야, 특별히 마련해 둔 실그물과 쇠사슬을 던져 미친 사람처럼 날뛰는 설명을 가까스로 묶어 눌렀다.거의 같은 시각, 사해여인숙에 머물던 열화문 무리의 거처 뒤뜰 장작더미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돌아온 진맹은 제자 대부분이 불길에 놀라 달려 나가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는 틈을 타, 어디선가 빼앗은 무거운 동봉 하나를 움켜쥐고 우리에서 튀어나온 미친 호랑이처럼 예전 동문들을 향해 광폭한 공격을 퍼부었다.그는 힘이 없어 보였다. 봉이 휘둘릴 때마다 거센 바람이 일었고, 동작은 거칠기만 할 뿐 전혀 맥도 없었다.적과 아군을 가려 움직이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그와 각별하게 지내던 한 사제가 정신을 깨우려 조심스럽게 다가가 외쳤다.“진 사형! 정신 차리십시오, 우리입니다!”그러나 진맹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반대로 봉을 내질렀다.천근 같은 힘이 실린 한 방이 그의 가슴을 정통으로 내려쳤고, 제자는 그 자리에서 심장이 찢어지듯 가슴이 부서지며 피를 토하고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철의문 일행이 묵고 있는 운래여인숙 역시 유 사형의 습격을 피하지 못했다.
폐궁을 나온 최지습은 곧장 주상을 다시 알현했다.그는 맹 씨가 민승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보인, 상식을 벗어난 극도의 공포와 광기에 가까운 반응, 그리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느니, 사람이라기보다 귀신이라느니 하는 흩어진 말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아뢰었다.주상 앞에서 그는 곧장 단정을 내리지 않았다. 다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맹 씨가 이처럼 반응하는 것은 결코 예사롭지 않습니다. 신은 그해 민승안의 죽음에 다른 내막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사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주상의 얼굴빛을 살폈다. 이내 다시 이어 말했다.“만약 민승안이 정말 죽지 않았다면, 그때 궁중 어딘가에서 반드시 누군가가 손을 보태 이 눈을 속이는 계책을 완성했을 것입니다. 그 자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궁 안에 숨어 현면객이 조정을 엿보고 소식을 퍼뜨리는 눈과 귀가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화근을 뿌리 뽑지 못하면 궁중이 편치 않을 뿐 아니라, 전하의 안위 또한 근심스러울 수밖에 없사옵니다.”주상은 그의 말을 들으며 유리등 불빛 아래에서 얼굴빛을 굽혔다 폈다 했다. 손끝으로는 무의식중에 어서 위를 톡톡 두드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길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허락하겠다. 자네가 은밀히 캐보되, 내각에 봉인해 둔 옛 기록과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불러 물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명심해야 한다.”주상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최지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이번 일은 내 명성과 조정의 안정을 건 일이다. 반드시 숨죽여 처리해야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 뱀을 놀라게 하거나 쓸데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신, 분부를 받들겠사옵니다. 반드시 신중히 움직이겠나이다.”최지습은 속이 한결 가라앉았다. 주상이 분명한 재가와 권한을 내린 이상, 앞으로의 조사는 명분도 힘도 갖추게 된 셈이었다.먼저 그는 내각에 봉인되어 있던 문서들을 열람하게 했다. 민정승이 숨을 거둔 그날의 금군 순찰 기록과 내시들의 근무 교대 명부, 시신을 검안한
마당 가득한 잡초는 절반 이상이 이미 누렇게 말라 있었고, 사람 무릎께까지 자라 있었다.저무는 해의 남은 빛을 받아 길고 비뚤어진 그림자를 끌며 드리워진 풀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뒤척이며 쓸쓸한 황량한 바다가 일렁이는 듯한 풍경을 만들었다.한때는 공들여 깔았을 법한 청석 길은 이미 이끼와 잡초에 잠식되어 여기저기 금이 가고 깨져 있었다.구석구석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깨진 기와와 부서진 잔해가 흩어져 있었고, 낡은 궁등 하나가 흙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등갓은 오래전에 썩어 사라져 버려 대나무로 짠 뼈대만 남았고, 그 텅 빈 골격이 잿빛 하늘을 향해 검게 입을 벌린 듯 서 있었다.오직 회랑 처마 아래에 놓인 등나무 의자 한 점만이 그나마 온전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마저도 먼지와 세월이 남긴 얼룩으로 뒤덮여, 마치 잊혀진 해골 한 구가 이 죽은 뜰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폐중전 맹 씨는 바로 그 등나무 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너무나 삭아 빠진 몸은, 본래 빛조차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때가 밴 이불에 거의 삼켜질 듯 파묻혀 있었다.희끗하게 바랜 마른 머리칼은 엉킨 풀더미처럼 어깨와 등에 흐트러져 있었고, 몇 가닥 은빛 머리카락이 야윈 뺨가에 들러붙어 있었다.그 가닥들이 미약한 숨결과 가을바람에 휘감길 때마다, 힘없이 가늘게 떨려 올랐다.최지습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녀와 다섯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예를 갖추어 허리를 깊이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인사를 올렸다.“중전마마.”폐중전 맹 씨가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밀초처럼 누렇게 뜬 얼굴에 박힌 두 눈은 탁해져 있어 초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갈라진 입술이 옅게 벌어지며, 어딘가 허망한 웃음이 입가에 떠올랐다.“평신하라, 애경은 어서 평신하라. 오늘은 어찌 조참에 들지 않았느냐?”최지습은 그녀의 헛소리를 그대로 흘려보냈다.불빛을 머금은 듯한 눈매로 흐릿해진 동공을 곧게 응시한 채, 또렷한 목소리로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궁궐 깊은 곳, 어서재 안에는 촛불이 붉은 그림자를 어른거리게 하고 있었다.용연향의 옅은 내음이 전각 안을 가볍게 감돌았으나, 숨 막히는 듯한 무거운 기운만은 끝내 누르지 못했다.최지습은 어상에서 서너 걸음 물러난 자리에 서서, 곧은 소나무처럼 꼿꼿이 몸을 세우고 있었다.그는 태상관에서 벌어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뢰었다.현면객과 맞붙었던 순간에서부터, 그 자의 가면이 산산이 부서지며 스쳐 지나간 얼굴, 그리고 민 씨 집안 멸문 사건에 얽힌 수많은 의혹까지, 빠뜨림 없이 모두 전했다.어좌 위에 앉아 있던 주상은 그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유리등이 부드러운 빛을 드리워 주상의 얼굴을 비추었다.그러나 명암이 교차하는 사이, 그 얼굴은 더욱 어두워져 표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다만 깊은 눈동자 속에서만, 감춰진 물결이 은밀히 뒤척이는 듯했다.“민승안……”주상은 그 이름을 천천히 되뇌었다.무심코 손가락 마디로 어상을 여러 차례 쓸어 내리며, 나무 위에 옅은 자국을 몇 줄 남기고서야 낮게 입을 열었다.“지금 그대가 한 이 추측이 조정 안팎에 퍼져 나간다면, 어떤 거센 파란이 일어날지 알고 있느냐?”그의 목소리는 낮고 약간 쉰 기색이 돌았다.그 속에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완전히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놀라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마치 거슬러서는 안 될 비늘을 건드린 거대한 용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누르고 있는 듯한 기색에 더 가까웠다.최지습은 주상의 매서운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눈을 피하지 않고 또렷이 말했다.“소신도 이 일이 얼마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하산 길에서 일어난 멸문 사건에는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현면객이 조정과 강호 곳곳에 파고든 깊이와, 그가 쓰는 수단의 잔혹함은, 보통 도적 무리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더 단단해진 목소리로 이어 갔다.“소신은 자신의 눈을 믿
“역검문도 그러겠습니다!”“열화문도 그러겠습니다!”사람들은 뜻을 모아, 일단 시선과 역량을 폐허에서 더 넓은 강호의 수색으로 돌렸다.뜰 안을 짓누르던 긴장된 공기는 그제야 조금 누그러졌다.그러나 최지습의 미간에서는 여전히 주름이 가시지 않았다.사라진 세 고수의 행방은 가시처럼 마음을 찔렀고, 더 날카롭고 차가운 또 하나의 가시는 천기당에서 은밀히 전해 온 소식에서 비롯되고 있었다.수색이 일단락된 바로 그날 밤, 눈에 잘 띄지 않던 한 마리 전서구가 천기당의 첫 조사 결과를 물고 날아들었다.쪽지에 적힌 내용은 짧고도 간단했으나, 최지습은 등불 아래에서 그것을 몇 번이고 되읽으며 손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김단이 탕약을 들고 들어왔을 때, 그는 작은 쪽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깜빡이는 촛불 아래 비친 얼굴은 유난히 굳어 보였다.“천기당에서 소식이 온 것입니까?”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으며 약이 담긴 사발을 그의 곁에 내려놓았다.최지습은 곧장 대답하지 않고, 먼저 쪽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김단은 쪽지를 받아 눈으로 훑어 내려가다가,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민 씨 일가 수십 명이 옛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노주 경내 서하산 길에서 흉악한 도적들의 습격을 받아, 집안 사람들과 종, 마부를 합쳐 모두 마흔일곱 명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그녀가 끝까지 읽어 내려가자, 곧이어 최지습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서하산 길이야 비록 관문 대로는 아니지만 인적이 드문 첩첩 산중도 아니오. 어떤 흉악한 도적들이기에 그런 곳에서 수십 명이 탄 일행, 그것도 전 정승의 마차 행렬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잔혹하게 칼을 휘둘러 단 한 사람의 산 자도 남겨 두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짙게 내려앉은 밤빛을 바라보았다.마치 시공을 꿰뚫어 그날의 피비린내 나는 산길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했다.“노략질하는 자들은 재물을 노리는 것이 상식이오.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 일도 종종 있지. 하지만 보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