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이 깜짝 놀랐다.다급하게 거지 앞으로 달려갔다.그리고 거지의 옷깃을 잡아들었다.“누구한테 잡혀 간 거야? 어디로 잡혀갔지?”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거지가 놀랐다.두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임학이 다시 한번 더 크게 소리쳤다.“피부 다 벗겨 버리기 전에 얼른 답하거라!”거지는 그제야 전전긍긍하며 답했다.“거, 거지들한테 잡혀서 한양 밖으로 나갔다 하옵니다.”임학은 손을 놓았다.그리고 서둘러 밖으로 달려 나갔다.거지는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김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김단도 그를 바라보았다.그녀는 거지를 위아래로 훑었다.그리고 그의 볼록한 가슴 위로 시선이 멈추었다.거지는 당황해하며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그의 눈빛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쭈뼛쭈뼛 거렸다.곧이어 김단을 한번 더 보고 자리를 떠났다.김단은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하지만 임원의 생사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지금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정암의 안위다.다행히도 군대의 의원은 외상을 치료하는 것이 능숙했다.소한은 서둘러 정암을 데리고 군의를 찾아갔다.김단은 정암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면 스스로를 다독였다.곧이어 쓰러진 부잣집 도련님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오늘 연회는 모두 진산군 댁에서 초래 한 일이오, 치료비나 약값을 청구하려든 진산군 댁으로 나를 찾아 오시오. 또한 정암은 소한 장군의 사람이오. 다음번에 때리기 전에는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소, 소 장군의 사람은 자네들이 감히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오!”말을 끝내고 서둘러 취향각을 빠져나갔다.오늘 정암의 행동은 결국 그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 뻔하다.더하여 정암의 신분은 결코 그들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김단은 자신의 말로 하여금 경고를 주고 싶었다.정암의 뒤에는 소한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병영에 도착했을 때,정암은 이미 깨어 있었다.그
김단은 정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그의 미소를 보자 취향각에서 자신을 보호하던 장면이 떠올랐다.그때 정암이 손님에게 했던 말이 있다.그녀를 욕하면 각오하라는 말이었다.또한 위험에 천했을 때는 그녀를 옆으로 대기시켰다.정작 제일 중요할 때에는 자신의 몸으로 김단을 보호하기 바빴다.갑자기 얼굴 반이 피로 덮였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피가 묻은 옷에 시선이 갔다.정암은 김단의 눈빛을 알아챘다.그는 서둘러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다급하게 혈흔을 숨기기 바빴다.이때, 김단이 그에게 다가갔다.뜨거운 눈물이 고인 두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다.곧이어 작은 손이 머리의 붕대 위로 올려졌다.혹여 아플까 봐 살살 쓰다듬었다.정암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그녀의 동작 하나하나가 그를 어쩔 줄 모르게 했다.심지어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김단이 입을 열었다.목소리가 마치 부서질 것 같았다.“아프십니까?”정암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김단을 바라보았다.고운 얼굴에 뺨 옆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마치 그의 심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김단의 우는 모습에 정암도 마음이 아팠다.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입가에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가 걸려있다.“괜찮사옵니다.”하지만 어떻게 괜찮을 수 있을까,그는 두골이 깨질 뻔했다.더하여 바닥에 피가 흥건할 정도로 다쳤다.정암은 김단을 안심시키려 했다.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 눈치를 챘다.그가 그럴수록 마음이 더 아팠다.눈물이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정암은 당황하면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몸이 큰 탓에 무릎을 꿇고 앉아도 서있는 김단보다 컸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정암을 바라보았다.여전히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정암은 두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았다.“전장에 나서면 이보다 깊은 상처도 수없이 당하옵니다. 그러하오니 낭자, 부디 눈물을 거두시옵소서. 낭자의 슬픔을 보고 있자니, 소인의 가슴 또한 찢어질 듯 아프옵니다.”그는 그녀가 슬퍼하는 모습
정암이 자리에 얼어 붙었다.자신이 김단에게 산사를 준 사실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그녀의 눈물을 닦아준 사실도 잊어버렸다.심지어 방금 김단이 한 말까지 잊어버리고 말았다.그가 쥐고 있던 산사도 어느새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정암의 모습을 보고 김단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산사를 건네 들고 입안으로 넣었다.볼이 볼록볼록하게 올라왔다.이때, 그녀가 다시 물었다.“저와 혼인하기 싫으신 겁니까?”정암은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왔다.“하고 싶사옵니다!”혹여 몰라 서둘러 대답했다.그 탓에 소리를 조절하지 못했다.그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하지만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허나 소인은 권력도 세력도 없는 자로서, 낭자와는 하늘과 땅의 차이 같사옵니다. 소인은 낭자와 어울리는 사내가 아니 옵니다.”그는 힘이 풀린 듯 고개를 숙였다.또한 정암은 숙희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그는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알고 있다.그저 멀리서 그녀를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그저 능력이 닿는 대로 그녀를 지켜 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이때, 김단이 양손으로 그의 얼굴을 잡았다.부드러운 감촉에 정암이 다시 얼어 붙었다.놀란 표정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눈물 자국이 가득한 작은 얼굴에는 장난기라고는 없었다.“저와 혼인을 하실 의사가 있으신지만 알려 주십시오.”만약 혼인을 한다면 두 사람은 진산군 관저라는 큰 장애물을 넘어야만 한다.곧 무엇이든 같이 해야만 한다.정암은 그제야 김단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챘다.두 사람 사이에는 큰 벽이 있다.하지만 김단이 먼저 용기를 갖고 한 발자국 다가갔다.이런 그녀를 어떻게 실망시킬 수 있을까.정암이 맹세한다는 모습을 취했다.“나 정암은 김 낭자를 아내로 맞이하고, 김 낭자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한다. 이를 어길 시, 하늘의 벌을 받겠나이다.”김단의 웃음이 점점 짙어졌다.그리고 얼굴을 잡고 있던 손으로 볼을 잡아당겼다.“왜 김 낭자라고 부르십니까?”정암이 멈칫했다.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
소한은 거부하고 싶었다.무사히 돌아왔다면 결코 심각한 일은 아닐 것이다.또한 임원은 눈물이 많다.그는 이 일이 군영에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소한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그는 김단을 한번 보고 걸음을 옮겼다.김단은 가만히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이때, 정암이 물었다.“같이 따라가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김단의 눈빛이 차가웠다.“예, 임원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야겠습니다.”그녀의 말에 정암이 미간을 찌푸렸다.“짓이라니요? 짚이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김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취향각에서 본 거지에 대해 이야기 했다.정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보아하니, 무언가 있는 모양입니다.하지만 아씨가 왜 그런 짓을 꾸몄는 지요?”김단은 대답하지 않았다.사실 임원은 그녀 때문에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곧이어 정암을 향해 몸을 돌렸다.“한번 가보겠나이다. 종사관님은 얼른 들어가 휴식을 취하시지요,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정암이 고개를 끄덕였다.찌푸린 미간 사이로 걱정이 가득했다.“조심 하셔야 합니다.”“예.”김단은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떴다.그녀는 말을 타고 왔었다.갈 때도 말을 타서 관저로 돌아갔다.잠시 뒤, 관저에 도착했다.곧이어 숙희가 그녀를 맞이했다.“아씨! 드디어 돌아오셨나이다!”숙희는 다급한 표정이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렸다.“무슨 일 있는 게야?”숙희는 항상 별당에서 그녀를 맞이한다.하지만 밖에서 김단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일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숙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작은 아씨 께서 깨자마자 울고 불고 난리 입니다. 노비가 듣기로 그러는 이유가 다 아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아씨를 기다린 겁니다.아씨, 지금 대감 마님과 도련님께서 많이 노하셨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도련님께서 아씨 입을 찢어 놓겠다고 하셨습니다. 꼭 조심 하셔야 합니다!”김단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임원은
김단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사실이기 때문이다.그들도 소한의 주량이 얼마나 강한 지 알고 있다.소한은 결코 취하지 않았으며,사람을 착각 할 일도 없다.임학이 아니라 소한도 어떠한 변명조차 없었다.진산군은 소한을 꾸짖고 싶었지만 참았었다.하지만 김단의 말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소 장군, 장군의 소 씨 가문과 우리 임 씨 가문은 혼인을 약조한 사이입니다. 허나 18년 전 여식이 바뀌는 바람에 혼동이 있었지요, 그래도 소 씨 가문과 혼인하는 사람은 여식 하나입니다. 오늘 일은 소 장군께서 제대로 말씀해 주셔야겠습니다, 그리하지 못하면 두 가문의 혼사는 없던 것이 되겠지요.”“아버지!”임원이 울면서 소리 질렀다. 그녀는 혼인을 풀고 싶지 않았다.그저 모두에게 김단이 자신의 혼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그리하면 양 쪽 부모들이 서둘러 혼인을 진행 시킬지도 모른다.그녀의 고함소리에 진산군의 기세가 약해졌다.진산군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임원을 꾸짖었다.이때, 소한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제 과오이옵니다.”“당연히 자네의 잘못이네!”임학이 화를 냈다.그리고 김단을 가리켰다.“하지만 저 계집이 아무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네.”그는 김단을 노려 보았다.분노가 같이 터져 나왔다.“소한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원이한테 알려 줘야만 했느냐? 소한이 너를 마음에 품고 있다고 알려주고, 원이를 괴롭히고 싶었느냐?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그 거지들한테…”임학은 말을 하다가 끊었다.김단은 눈살을 찌푸렸다.“거지들이 무엇을 했단 말입니까?”임원은 김단의 눈을 마주치기 두려웠다.그녀의 눈은 송곳마냥 예리하다.금방이라도 자신의 속셈을 들킬 것만 같았다.김단의 질문에도 임원은 임 씨 부인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그녀가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임 씨 부인이 입을 열었다.“원이가 연약하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느냐. 그들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짐작도 못하는 것이냐? 그리고 네 오라버니 말이 맞다. 네
임학은 김단이 사건의 발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원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김단을 향해 손을 휘두르려 했다.“지금 뭐라고 했느냐! 네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는것이냐?!”숙희는 이를 보고 다급히 달려 들어 김단을 보호하려고 했다.하지만 이번에는 소한이 한 발 빨랐다.소한은 임학이 내리치려던 주먹을 붙잡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이번 일에는 다른 사정이 있는 것 같소.”이는 소한이 스스로 판단한 것이었다. 임원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를 보아 이번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소한이 김단 앞을 가로막자, 진산군은 곧바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소 장군, 자네 지금 제정신인 것이오?”그에게 딸은 둘뿐이었고, 소한에 의해 이들이 휘둘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바로 그때, 밖에서 작은 하인이 허겁지겁 달려와 외쳤다. “대감마님, 정 종사관 나리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이 말을 들은 김단은 가슴이 조여들었다.정암은 아까 부상을 입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일까?진산군은 취향각에서 일어난 일을 아직 몰랐기에, 정암이 소한을 찾아와 중요한 군사 문제를 얘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주저 없이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라 하게!”얼마 지나지 않아 정암이 들어왔고, 그의 뒤로 어린 거지가 따라왔다.바로 며칠 전 임학에게 소식을 전했던 그 거지 아이였다.이 상황에 임학마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임원을 바라보았다.임원은 임학이 왜 그런지 알지 못했지만, 임학의 눈빛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정암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문 앞에서 예를 갖추었다.소한이 정암에게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이냐?”정암이 말했다. “신이 둘째 아가씨 일을 듣고 미심쩍게 여겨 이 아이를 찾았는데,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여기까지 말하고, 정암은 김단을 바라보며 안심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김단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어린 거지의 울음소리가 유난히 애처로워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방 안, 임원은 어린 거지의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너무 심하게 떤 나머지, 임씨 부인까지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를 눈치채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반면, 진산군이 물었다. “네가 말하는 누님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냐? 저기, 저 아이를 가리키는 게냐?”진산군은 손을 들어 김단을 가리켰다.김단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진산군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가 자신을 범인으로 생각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심지어 그녀는 진산군의 물음에 약간의 확신이 담겨 있다는 걸 느꼈다.그녀는 진산군이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면 진산군은 가차 없이 그녀를 꾸짖으며 엄중한 벌을 내릴 것이고, 그녀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무릎 꿇고 용서를 빌기를 바랄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 진산군과 그의 부인이 만족할 것이다.김단은 이미 그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어쩌면 그녀는 이미 진산군의 딸이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 진산군의 마음속에서 그녀는 중요하지 않은 존재이고, 그저 이용할 가치가 있는 낯선 사람일 뿐인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진산군이 자신을 가리키는 것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주체할 수없이 아파왔다.예전에는 그녀를 가장 예쁘고 착한 딸이라고 칭찬했던 아버지였다.하지만 지금은 그녀를 못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어린 거지는 진산군이 가리키는 곳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그럼 누구냐?”진산군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리고는 하인에게 명령했다. “어서 아이를 데리고 화공을 찾아가라! 그 여자를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예!”하인이 곧바로 명령을 받들고 앞으로 나섰다.어린 거지는 깜짝 놀라 정암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그 모습을 본 김단은 입을 열었다. “그럼 저 아이를 데리고 임 씨 낭자에게 가 보는 건 어떠실지요?”그 말을 들은 진산군은 순간 당황하더니 이내 김단의 의도를 깨달
김단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임씨 낭자, 변명이 있으면 해 보시지 그러시오?”그녀의 말에 임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임원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진산군과 임학에게 무릎을 꿇고 울부짖었다. “아버지, 오라버니, 제발 믿어주세요! 일부러 그런 일을 저지른 게 아닙니다!”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임학은 전혀 가슴 아파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너는 우리가 그들을 죽이도록 방관하고 있었단 말이냐?”그녀는 그들을 돈 주고 고용했으면서, 그가 그들을 향해 칼을 뽑는 것을 보고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그 거지들이 그녀에게 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면, 그가 그들을 죽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그는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가 평소에 성급한 면이 있긴 해도,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은 결코 없다!하지만 오늘, 임원 때문에 그의 손이 피로 물들었다…임원은 당황하여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제가 돈을 주긴 했지만, 그자들은 정말 저에게 해를 가하려고 했습니다! 오라버니가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오라버니가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저는 정말 큰일을 당했을 거예요!”하지만 지금의 임학은 더 이상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그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임원이 은을 써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진산군은 딸의 비참한 모습에 가슴 아파하며 소리쳤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냐!”임원은 계속 울면서 말했다. “저는... 저는 소 장군님께서 김씨 낭자를 좋아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장군님께서 저와의 혼인을 원치 않으실까 걱정됐고요… 저와 명희는 오랫동안 함께해 왔지만, 김씨 낭자가 돌아오자마자 명희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았습니까? 저도... 언젠가 명희처럼 버려질까 봐 두려웠습니다...”“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더 이상 저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오라버니께서 더 이상 저를 아껴주시지 않을까 봐, 모두 저를
김단은 맹영지를 소하가 있는 곳으로 보게 하였다.허나 맹영지는 반응이 느리고,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에 소하를 바라보지 않았다.“소하라고 하는 사내입니다. 기억하십니까?”김단은 여전히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다.허나 소하의 이름을 들어도, 맹영지는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이러한 그녀의 모습에 소하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이리 상황이 좋지 않을 줄은 몰랐소.”김단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소하 오라버니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여 낭자를 보살 피겠나이다.”곧이어 소하의 시선이 김단을 향했다.찌푸린 미간은 펴질 줄 몰랐다.차마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무슨 말을 해야 하는 것인가.사실 그는 맹영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눈앞의 감회는 그저 오늘날과 이전의 다름에서 온 것이라 말할까,마음에는 김단의 안위만 생각하고 있으니, 다른 생각 하지 말라고 말할까.헌데 만일 그녀가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면, 할 말이 없지 않은가.소하는 여러 생각에 휘잡혔다.허나 생각했던 말은 내뱉지 않았다.“중전 마마께서 낭자와 맹 낭자를 처소로 들이시는 것은, 분명 다른 생각이 있으실 것이오.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소?”김단이 고개를 저었다.“사실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였나이다.어쩌면 맹 씨 집안 때문이 아니겠습니까?”“어찌 되었든 간에, 낭자가 중전의 처소로 들어갔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과 같소. 항상 조심해야 하오.”“소하 오라버니, 염려하지 마시옵소서.제게는 오라버니께서 가르쳐 주신 방도가 있지 않사옵니까.”그녀의 말에 소하가 고개를 숙이고 미소를 지었다.“돌을 은침으로 대신하여, 민대부를 반나절 동안 아우성치게 하지 않았소.”“반나절이라니요, 반 시진도 가지 못했나이다!”김단은 소문이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소하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그래도 큰 인물이 되지 않았는 가.”“스승이 잘 가르쳐 준 덕분입니다.”김단은 서로 치켜세우는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중전 마마께서 기다리
해가 서쪽 하늘에 기울 무렵, 김단이 맹영지를 데리고 궁으로 들어갔다. 경씨가 옆에 서있었다.그의 얼굴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허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전하가 김단에게 맹영지와 함께 궁으로 들라는 명을 내리지 않았는 가.만일 대군께서 한양에 계셨다면 막을 수 있었을 터, 한낱 마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궁궐은 워낙 넓고, 궐 안의 금군 중에는 무예가 뛰어난 자들이 넘쳐 난다.더하여 내각에는 임금을 지키는 호위들이 따로 존재한다.자신이 몰래 궁에 들어가 낭자를 지키려 든다면, 날이 밝기도 전에 역적이라 오해를 받아 온몸이 찢길지도 모른다.김단은 경씨의 표정을 보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경씨 도령, 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제 몸 하나는 제가 잘 챙길 수 있사옵니다.하물며 소하 오라버니는 금군의 총령이니, 만일 무슨 일이 생기게 되어도 도움을 청할 수 있나이다.”경씨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부디 조심하시오.”경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숙희가 붉은 눈가를 한 채로 입을 열었다.“아씨, 노비는 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옵니까?”숙희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그저 김단과 함께 궁으로 들어가고 싶었다.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도움을 줄 수 없다 하여도 자신이 뒤집어쓸 수 있지 않은가.허나 김단은 만일 하나 일이 생겨도, 숙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저 작은 의녀에 불과해.중궁전에 거처하면서 내 몸종까지 데려간다 하면, 중전의 사람을 꺼려 한다면서 입을 놀릴 것이야.”숙희는 어렴풋이 그저 둘러대는 것일 뿐이라 느껴졌다.허나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궁 안의 규칙이 수도 없이 많은 탓에,진정 구설수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은 가.혹여 자신이 아씨를 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숙희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뜬 눈으로 김단이 맹영지와 함께 궁궐 문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양쪽으로 큰 성벽이 둘러쌓여 있어,알 수 없는 압박감에 맹영지가 긴장을 했다.그녀의 두 손은 김단의 팔을 꼭
“황공하옵니다, 마마.”향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야, 김단은 중전의 처소를 떠났다.그리고 서아름을 살피기 위해, 복화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서아름은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많이 말라 있었다.안색도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허나 자신의 나인 앞에서는 이따금 지친 기색을 보였다.마치 나인에게 곧 죽을 사람처럼 행실 하곤 했다.다행히도 나인은 눈치가 없었다.하루 종일 놀기만 하고, 서아름을 살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그 덕에 서아름도 마음이 편했다.김단을 보자 서아름이 서둘러 그녀를 배웅했다.“의녀께서 오셨나이까! 어서, 안으로 들이시옵소서!”김단은 서아름에 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물을 따라 주었다.“다 의녀의 덕분이옵니다. 근래에 걸음걸이도 훨씬 가벼워졌나이다!”사람의 몸은 아프지 않아야, 건강하다는 것을 인지 할 수 있다.낮에는 정신이 또렷하고, 밤에는 편히 잘 수 있었다.허나, 김단의 안색이 그녀와 반대로 어두웠다.“오늘 날, 전하께서 중전 마마를 옆에 두시고 숙원 마마의 상태에 대해 여쭈셨나이다.소신은 전하께 마마의 몸이 연약하지만,아이는 무탈하다 아뢰었사옵니다.”서아름이 움찔했다.그녀는 덕빈을 오랜 시간 시중을 든 사람이다.어찌 김단의 뜻을 모를 수 있는 가.자신은 살지 못하지만, 아이는 살 수 있다는 뜻이다.서아름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다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아이만 무탈하면 돼옵니다. 소인은 그저 덕빈께 아이 하나만 남겨두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아이만 무탈하면, 제 미천한 목숨 하나가 중요하겠나이까.”김단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그녀는 서아름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아이와 그녀의 목숨은 똑같은 것이라고.사람의 목숨에는 신분이 없듯이, 미천한 목숨이라는 것은 없다.더하여 귀식환 제조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제조에 성공만 하면, 서아름을 궁에서 떠나 새로운 삶을 보낼 수 있었다.허나 김단은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귀식환 제조를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실패로 돌아간다
김단은 중전의 뜻을 금방 알아챘다.중전이 서아름을 해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 뱃속의 아이 때문이었다.만일 김단이 아이가 무탈하다 말했다가, 훗날 서아름이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게 되면, 임금이 그녀를 의심할 것이 뻔하다.중전은 김단에게 눈치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김단은 시선을 거두었다.고개를 숙인채, 자신의 발만 쳐다보며 말했다.“중전 마마께서 내려주신 귀한 보약 덕에, 숙원 마마의 태아는 무탈 하옵니다. 숙원 마마께서 끝까지 버텨내신다면, 태중의 용태는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옵니다!”김단의 말에도 중전의 살기 서린 눈빛은 여전했다.허나 임금은 만족한 듯, 미소가 짙어졌다.그는 뒤를 돌아 중전을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을 잡고는 다정하게 말했다.“다 중전 덕분이오.”중전은 살기 서린 눈빛은 온데간데 없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임금의 칭찬에 그저 미소를 지어 보였다.“주상께서 후궁의 일을 신첩에게 맡기셨으니, 어찌 주상의 근심을 덜어드리지 않겠사옵니까.”“잘하셨소!”곧이어 임금은 몸을 뒤로 옮기더니, 중전의 귓가에 속삭거렸다.중전이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기다리고 있겠나이다.”“하하하, 알겠소.”임금은 그제야 손을 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짐은 아직 정사가 남았소, 자네는 중전 곁에서 말동무를 해주시오.”뒷부분은 김단을 향한 말이었다.김단은 예, 라 대답하며 임금을 배웅했다.임금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중전이 김단을 바라보았다.쌀쌀한 말투로 그녀에게 말했다.“보아하니, 의녀는 주상의 총애를 받아 자신의 주관이 뚜렷 해지셨소.”중전의 말투에 김단의 심장이 철렁했다.김단은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부디 중전 마마께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소신은 마마를 위함이었나이다.”그녀의 말에 중전이 코웃음을 쳤다.그제야 천천히 물어보았다.“말해 보시오.”“부디 마마께서 깊이 헤아려 보시옵소서. 전하께서 후손을 이토록 중히 여기시거늘, 만일 소신이 숙원 마마의 태중이 위태롭다 아뢰
임금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수고가 많았다.”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전이 입을 열었다.“전하, 신첩 또한 의녀가 수고가 많다 생각하옵니다. 영지를 돌보시는 것도 벅차신데, 궁중의 후궁들까지 살펴야 하시니 말이옵니다. 차라리 영지를 신첩의 처소로 옮겨 이곳에서 돌보게 하는것이 어떠하옵니까? 의녀는 본디 평양 대군의 관저에 임시로 거처 중이시고, 그런 곳에 사람을 데려가는 것이, 체면상 온당치 않은듯하여 감히 아뢰옵니다.”평양 대군 관저에 김단은 손님에 불과하다.어찌 손님이 손님을 데려갈 수 있단 말인 가.하물며 맹 씨 집안의 자녀가 평양 대군 관저에 머무는 것에 대해 소문이 퍼질지도 모른다.임금도 같은 생각이다.맹영지를 중전의 처소에 머물게 하는 것이, 평양 대군의 관저에 머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중전은 맹영지의 친 고모이며, 처소에서 병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지 않은가.허나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허나 맹 가의 계집은 이 자만 알아본다 하지 않았소? 만일 이곳으로 옮겨,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중전의 병세를 더욱 악화 시킬지도 모르오.”임금은 중전을 걱정하고 있었다.다정한 말투에 중전의 뺨이 벌겋게 달아올랐다.“염려하지 마시 옵소서. 의녀도 처소로 옮겨와 머물면 되지 않겠나이까.”맹영지가 알아보는 사람이 김단 뿐 이라면, 김단을 중전의 처소에 머무르게 하면 되지 않는가.그녀의 말에 김단의 얼굴이 굳어졌다.중전의 자신의 제안이 마음에 들은 모양이다.“그리하면 의녀도 수고를 덜 하겠지 않나이까.”임금도 중전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다.곧이어 김단을 향해 물었다.“자네는 어찌 생각하는 가?”김단은 내키지 않았다.궁중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허나 김단은 공주의 사람이다.공주와 중전이 같은 편이니, 중전의 제안을 감히 거스를 수는 없었다.곧이어 절을 하고 말했다.“중전마마의 각별한 보살핌에 몸둘바를 모르겠나이다.”그녀의 대답은 다른 자가 듣기에는,중전의 제안에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옆에
김단의 미소를 보아도, 맹 씨 부인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맹 씨 집안의 안주인이 되어서, 어찌 김단의 속과 겉이 다르다는 것을 모를 수 있겠는 가.비록 미소를 짓는 모습이 온화하기 그지없지만, 자칫하면 그들을 물어 집안을 피바다로 만들 수 있었다.또한 김단의 뒤를 봐주는 자들은, 감히 그들이 거들떠도 보지 못하는 인물들이 아닌가.오늘 김단은 말리려고 하지도 않았다.오히려 맹 씨 집안의 체면을 고려하여, 그녀가 맹영지를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생각에 맹 씨 부인은 답답함을 느꼈다.허나 김단을 향해 미소를 짓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맹 씨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김단의 미소가 점차 사라졌다.곧이어 숙희가 김단의 곁으로 다가갔다.목소리를 낮추고는 물었다.“맹 아씨의 친 모친이옵니다. 어찌 친 딸을 해하겠나이까, 혹여 아씨께서 너무 깊게 염려를 하신 것이 아니옵니까.”“내가 그 생생한 본보기가 아니더냐.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되는 법이지.”김단은 말하면서 맹영지에게 시선을 돌렸다.맹영지는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금색의 계화 꽃잎이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숙여 자신의 치마를 바라보았다.만일 맹 씨 부인이 ‘맹영지의 상황이 이리 심각할 줄 몰랐다’ 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김단이 직접 맹영지를 맹 씨 집안의 마차로 올려 보냈을 지도 모른다.자신의 피가 흐르는 친 자식을, 어찌 사, 오 년 동안 상황을 몰랐던 것일까.마치 그녀가 세답방에 버려지고, 삼 년 동안 어떠한 안부도 묻지 않는 그 자들과 같은 모습과 같았다.허나, 정승댁은 세답방이 아니다.맹영지는 노비가 아닌 그저 댁의 맏며느리가 되기 위해 정승댁으로 향한 것이다.어찌 친부모가 되어 아무것도 모를 수 있겠는 가.더하여 중전이 독이 맹 씨 집안의 소행이라 의심을 품고 있는 중이다.오히려 정승댁이 맹 씨 집안보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겉으로는 물러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한 수 앞을 보아 맹영지를 이곳에 머무르게 한
맹 부인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손을 거두고 두려운 표정으로 맹영지를 바라보았다.“어찌 이럴 수 있으십니까?”무언가 떠오른 것 마냥 김단을 향해 바라보았다.“의녀, 영지가..”김단은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곧이어 맹영지의 곁으로 다가갔다.“다 나았나이다.”그녀의 한 마디에 맹영지는 천천히 진정을 되찾았다.두려운 눈빛이 점차 평온해졌다.맹 씨 부인은 이러한 모습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곧이어 김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낭자께서는 소인만 알아볼 수 있으십니다. 다른 이들이 다가간다 하여도,밀쳐 내실 겁니다. 부인도 똑같이 밀쳐 내실 것이옵니다. 제 몸종도 낭자에게 긁혀 손에 상처를 입었나이다.”김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숙희가 맹 씨 부인에게 손을 보여 주었다.어제 맹영지에게 긁혀 생긴 상처였다.다행히도 김단의 설득 아래,맹영지는 드디어 숙희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그제야 그녀의 시중을 들게 해 주었다.김단의 말에 맹 씨 부인의 얼굴이 굳어졌다.“오늘 데려 가지 못한다는 뜻이옵니까?”“아니옵니다.”김단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소인은 그저 맹 낭자께서 이곳에 계시는 게 나을 듯 하옵니다. 허나, 낭자께서는 맹 씨 집안의 자식이 아니 옵니까. 부인의 뜻을 따르겠나이다.”데려 가는 것이 결코 좋지 않다는 뜻이다.현재의 맹영지의 상황으로 보아, 억지로 데려 가는 수 밖에 없었다.부모가 되어 어찌 자식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한단 말인 가.맹 씨 부인은 어찌 할 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대감이 맹영지를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었다.허나 이 상황에 평양 대군 관저의 문을 나갈 수 있다 한들,맹영지가 소리치는 모습에 다른 이들이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잠시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의녀께서는 높은 의술을 가지고 계시라 믿나이다. 혹여 영지를 잠재울 수 있는 수가 있사옵니까?”‘잠’ 이라 했지만, 사실 기절을 시킬 수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그리해야 조용히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김단이 고개를 끄덕였다.“소인에게 약은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