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학은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소한이 분명 단이와 원이를 본처로 맞이한다고 하지 않았는 가, 어찌 하루만에 단이가 소한의 처형이 될 수 있는가.그는 혼이 나간 것 같은 표정으로 진산군 관저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진산군, 임 씨 부인 그리고 임원이 그를 맞이했다.임학이 멈칫했다.“아버지, 어머니. 어디 가십니까?”진산군이 미간을 찌푸렸다.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였다.“어디긴 어디야? 너를 찾으러 가려고 했었다! 말하거라, 네 누이를 찾으러 간 것 이냐?”임 씨 부인은 눈물을 흘렸다.“그렇게 네 누이를 한양에서 내쫓고 싶었던 것이야?”임원도 눈물을 흘렸다.“오라버니, 몸종들의 말을 마음에 두지 마세요. 소녀는 누이를 믿습니다, 그럴 사람이 아니옵니다! 어제 누이께서 성문을 나가시려고 할 때, 저희가 어찌 말렸는지 기억 못 하십니까? 누이가 연극을 할 리가 없사 옵니다!”“그래, 단이는 연극을 하지 않았어.”임학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임원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이게 무슨 말 인가,김단이 무슨 말을 한 것인가.하지만 임원은 다짜고짜 물어볼 수는 없었다.이때, 임 씨 부인이 다급하게 물었다.“진정 단이를 찾으러 간 것이야? 또 화를 낸 것이야? 이 놈아! 어쩜 그리 생각이 없어!”그녀는 임학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임학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갑자기 임 씨 부인의 손을 잡았다.“아버지, 어머니! 단이와 혼인하는 자는 소한이 아니옵니다! 소한이 아니라 소하 이옵니다!”그의 말에 가족들이 얼어 붙었다.진산군이 다시 되물었다.“뭐? 누구에게 혼인을 간다고?”임학이 답했다.“소하, 소한의 친 형이요!”임 씨 부인도 눈을 크게 떴다.“소한이 성지를 얻어 단이를 본처로 맞이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왜 갑자기 소하와 혼인을 한다는 것이냐.”그녀는 어제 성문에서의 일을 알지 못했다.그저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을 뿐이다.임원은 밤새 우느라 눈이 아직까지도 부어 있었다.어찌 하루만에 바뀐 것일까.임원도
더하여 주상께서는 소 씨 가문을 총애하지 않는가.다리를 못 써도 단이는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니라.소하가 지켜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소한이 나타나 지켜 줄 것이 아니한가.생각할수록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귀까지 걸렸다.진산군은 그제야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임학처럼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하가 두 다리는 못 쓰게 되었지만 주상의 총애를 받은 자가 아니더냐, 더하여 그 다리도 주상이 그를 전쟁터에 보냈기 때문이다. 소하를 향해 죄책감이 있을 터, 어쩌면 단이를 염려해두고 성지를 내렸을지 모른다.”하지만 임 씨 부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허나, 소한이 산적을 소탕한 군공으로 성지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단이가 소하와 혼인을 치르는 것을 어찌 순순히 받아들이겠느냐.”“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임학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소하의 다리가 못 쓰게 되고, 문 밖을 나간 적이 없습니다. 요 근래에 처음 문밖을 나간 건, 태부댁에서 단이를 구하기 위함입니다, 소 대감과 소 대부인이 좋아하실 텐데, 소한은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임학은 말을 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어찌 소하가 단이를 마음에 품었을 까요, 혹여 그때 단이를 침상에 눕혔던 것을 본 것이 아닐까요?”임 씨 부인이 세게 그를 내리쳤다.“그 이야기는 입 뻥끗도 하지 말거라! 대체 언제 철들 생각이냐?”진산군도 미간을 찌푸렸다.“어제 단이는 네게 마지막 체면을 지켜 주었다… 헌데, 너는 나이가 어리지 않은 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야! 보아하니 너는 두 누이들이 다 시집을 가면, 내가 혼인을 주선해야겠구나. 너를 잘 가르칠 수 있는 아내로 말이다.”임학은 머리를 긁어 보였다.“그래도 좋게 해결된 것 아니 옵니까?”진산군과 임 씨 부인은 서로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단이가 소하와 혼인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한편, 임원은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며 불안함이 밀려왔다.진산군의 말대로 소하는 다리를 쓰지
임원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자리에 얼어붙었다.임학이 그때의 일을 다시 되물을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당황스러운 마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예?”임학이 다시 물었다.“네가 몸종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들의 말을 듣고 단이를 찾아간 것을 어찌 알았느냐 말이다.”임학은 이 순간만큼은 임원에게 의심을 품었다.만약 이각이 제 시간에 오지 않았더라면, 단이를 오해해서 무슨 일을 벌였을지 모른다.이미 단이는 절연을 하여 집을 나갔지만, 자칫하다가 남은 남매의 정마저도 사라질 뻔하지 않았는 가.임학은 임원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하지만...모든 것이 너무 맞아 떨어졌다.어찌 자신이 문밖에 있을 때, 몸종들이 단이의 험담을 늘어놓았겠는가.임원은 그제야 제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답했다.“저, 저도 몸종들의 험담을 들었 사옵니다. 또 오라버니께서 씩씩거리며 나가셨다고 하니, 어쩌면 오라버니께서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좋은 변명이었다.관저의 사람들은 착한 임원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임학이 처음 그녀를 향해 따지는 모습에 임원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임 씨 부인과 진산군이 서로를 향해 바라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임학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 관저에서는 거짓을 퍼뜨리는 몸종은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야.내가 네 몸종들을 모두 쫓아낼 것이니, 마음 놓거라. 다른 몸종들을 옆에 붙여주마.”진정 이 일이 원이와 무관하다면,혀를 놀리는 몸종들을 없애는 것이 탁월한 방법이다.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 또한 원이에게 경고가 될 것이다.임학은 자신의 처리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임원은 눈물을 흘렸다.하루종일 우는 바람에 눈이 심하게 부었는데,또 눈물을 흘리자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허,허나 저를 따르는 몸종은 몇 없사옵니다. 관저로 돌아올 때 부터 저를 챙겨준 몸종이옵니다... 명희도 없고, 오라버니께서 다른 이들도 쫓아내면 저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바닥으로 떨어졌
임 씨 부인이 임원을 부축했다.“이제 네가 유일한 아내이지 않느냐, 그러니 그만 울 거라. 가례일까지 부종이 낫지 않으면 어찌하려고.”진산군이 뒤에서 말을 더했다.“소 씨 집안은 아마도 소하와 소한을 같은 날에 혼례를 치르게 할 것이오, 성지도 내려졌으니 혼례일도 멀지 않을 것이오. 부인, 어서 두 여식의 혼수를 준비합시다!”임 씨 부인이 미소를 지었다.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요, 집을 나갔어도 단이는 진산군의 양녀 이올시다. 하물며 주상 전하의 성지가 내려졌지 않사 옵니까, 최선을 다해 준비하도록 하지요.”이때, 임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녀의 표정을 눈치를 챈 것일까, 임 씨 부인이 말을 이었다.“허나, 원이야말로 진산군 관저의 여식이 아니 옵니까. 소한도 왕의 총애를 받고 있나이다. 혼수를 잘 준비하여 소한의 체면도 챙길 뿐 더러, 저희 진산군 관저의 체면도 챙길 것 이옵니다. 원아, 걱정하지 말거라. 네 혼수가 네 누이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야.”심지어 임원은 김단보다 더 좋은 혼수를 챙길 수 있다.임 씨 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큰 아씨의 혼수는 대감마님과 부인께서는 염려하지 마시옵소서.”그들은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수 나인이었다.그녀는 백성의 의복을 입고 보따리를 품에 안고 있다.임학이 깜짝 놀랐다.“벌써 가실 생각이오?”수 나인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예, 큰 마님의 오칠재도 지났습니다.노비도 이제 떠나겠습니다!”그녀는 조모와 서로 의지하는 사이였다.조모가 세상을 떠나자, 수 나인도 머물 생각이 없었다.사실 진산군과 임 씨 부인이 여러 번 수 나인을 말렸다.하지만 수 나인은 이미 결정을 내린 것 같이 단호했다.그 이후로는 그들도 더 이상 찾아 말리지 않았다.수 나인의 미소가 점점 진해졌다.“큰 마님께서 살아생전 가지고 계신 혼수를 모두 큰 아씨께 드렸나이다!그러니, 대감마님과 부인께서는 작은 아씨의 혼수만 준비하면 될
잠시 뒤, 수 나인이 마당 문을 두드렸다.그녀의 방문에 숙희가 기뻐했다.덥석 나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향했다.집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숙희가 크게 외쳤다.“아씨, 누가 오셨는지 보십시오!”숙희가 기뻐하는 목소리에 김단이 서둘러 문 앞을 바라보았다.문 앞에는 수 나인이 서 있었다.백성 의복을 입고 간단하게 머리를 올려 묶었다.손에는 작은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김단이 서둘러 그녀를 맞이했다.“수 나인께서 어찌 오셨나이까?”“아씨를 뵈러 왔사옵니다.”수 나인이 눈 웃음을 지어 보였다.“며칠 동안 신세를 질 생각입니다, 부디 용서하시옵소서.”김단이 손을 저었다.“찾아오셔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그리고 수 나인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수 나인에게 물을 한 잔 따라 주었다.“복장을 보아하니, 고향에 돌아가시려 합니까?”수 나인은 물을 한 입 마시고 답했다.“예. 사실 한 달 전에 가려고 했습니다. 허나, 큰 마님의 오칠재가 끝나고 가는 게 좋다 생각하여 남았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은 영 믿음이 가지 않기도 합니다.”곧이어 김단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드러났다.조모의 장례를 끝내고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얼마나 불효인가.수 나인은 김단의 마음을 눈치챘다.“살아 계실 때, 효도하는 것이 진정 효도라 하옵니다. 죽고 나서 하는 효도는 그저 보여주기 위함 이지요. 안심하세요, 큰 마님께서는 아씨가 얼마나 효녀이신지 아실 겁니다.”곧이어 김단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고개를 끄덕이고는 대화 주제를 돌렸다.“수 나인께서는 얼마나 계실 생각입니까?”“큰 아씨의 혼례날까지 있을 생각입니다.”수 나인은 빠르게 답했다.여전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흐릿한 두 눈동자에서는 자상함이 느껴졌다.조모의 눈동자와 똑같았다.곧이어 수 나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노비는 아씨의 곁에 몸종이 숙희밖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도와주기도 할겸, 큰 마님을 대신하여 아씨가 혼례옷을 입은 모양도 볼 생각입니다.”살아생전 큰
수 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은 작은 아씨를 위해 이렇다 할 혼수를 마련하지 못할 것입니다.”사실 진산군 관저의 체면이 구겨지는 것이 싫었다.하지만 김단에게 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김단은 수 나인의 손을 잡았다.“염려 마십시오. 조모께서 주신 물건은 제 것이옵니다. 누가 와도 절대로 주지 않을 것이옵니다.”수 나인은 그제야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나인이 내일부터 하나씩 준비를 하여, 아씨의 가례를 돕겠나이다.”계속 옆에 서서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숙희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저도 돕겠나이다! 저는 아씨의 혼수 시녀이옵니다!”수 나인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렇지. 자네야말로 아씨의 제일 귀중한 혼수이지 않은가!”수 나인의 말에 숙희가 얼굴을 붉혔다.얼굴에는 자신만만한 표정이 드러났다.숙희는 수 나인이 큰 마님을 지킨 것처럼, 자신도 큰 아씨를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그날 밤, 진산군 관저 안.진산군과 임 씨 부인이 탁자 앞에 앉아있다.관저의 장부를 들여다보기 바빴다.진산군은 걱정가득한 표정이다.“이걸 어찌 하면 좋소? 관저에 이것밖에 남지 않았으니, 좋은 혼수를 어찌 내놓는가 말인가.”곧이어 들려오는 임 씨 부인의 말에 원망이 섞였다.“어머니께서 혼수를 단이에게 모두 넘겨줄지 알았습니까? 살아생전 단이를 아끼신 것은 맞지만, 원이야말로 관저의 여식이지 않습니까? 노망이 들어도 전부 다 단이에게 주시다니요!”진산군은 움찔거렸다.“지금 뭐라 했소?”어찌 어머니를 향해 노망이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임 씨 부인은 서둘러 설명했다.“그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습니까? 왜 제게 화를 내시 옵니까? 차라리 이제 어찌하실지 말씀만 하시지요.”진산군은 자신의 태도가 성급했다고 생각했다.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 홀로 이 관저를 지키셨소. 친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혼수를 남한테 줄지 어떻게 알았겠소?”그의 눈
3일 뒤, 소씨 가문에서 혼인 서약서를 보냈다.혼서와 함께 혼례를 주관할 여섯명의 관리원과 금은보화, 비단, 가축 등 많은 예물이 왔다.김단은 이런 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저택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그녀는 몹시 당황했다.다행히 수 나인이 능숙하게 하인들에게 물건을 정리하도록 지시했고, 김단에게 혼례 예절을 가르쳤다.모든 일이 끝나자, 이미 두 시간이 흘러 있었다.김단은 피곤해 의자에 앉았고, 숙희는 김단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이 모습을 본 이각은 김단 앞에 서서 인사를 올렸다. “도련님이 직접 오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가씨께서 수고가 많으십니다.”김단은 웃으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수 나인과 숙희도 소하가 김단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소하가 나타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그럼에도 멀리서 예물을 나르는 하인들을 보며 수 나인은 이각에게 조용히 물었다. “소씨 가문에서는 오늘 두 집안과 동시에 정혼을 하는 것입니까?”이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이각은 오랫동안 소하 곁에 있으면서 눈치가 빨랐기에, 곧장 대답했다. “수 나인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두 집안의 혼례 형식은 모두 동일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저희 대감 마님께서 특별히 당부하시길, 김씨 아가씨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수 나인은 이각의 말을 듣고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제 말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아닙니다.” 이각은 하인들이 예물을 다 옮긴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품 속에서 두 개의 옥패를 꺼내며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이것은 저희 대감 마님께서 수 나인과 숙희 낭자에게 전해 드리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저희 대감 마님께서 몸이 불편하시어 김씨 아가씨에게 직접 가시지 못하니, 수 나인과 숙희 낭자에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수 나인은 김단이 시집가기 전부터 소하가 뇌물을 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표정에 놀라움과 기쁨이 동시에 드러났다.
김단의 표정도 굳어지기 시작했다“그럼 만나 보도록 하겠소. 만약 피한다면 내가 뭔가 숨기는 것처럼 보일 테니.”그렇게 말하고 하인에게 임씨 부인을 들이라고 했다.임씨 부인이 들어왔을 때, 수 나인은 김단에게 예단 목록을 읽어주고 있었고, 임씨 부인이 온 것을 모르는 척 목록을 다 읽은 후에야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어머, 부인께서 여긴 어쩐 일이신지요?”연기가 다소 어설펐다. 숙희는 입을 가리고 웃었고, 김단도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정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반대로 임씨 부인은 다소 당황하였다. “수 나인이 여기 있을 줄 몰랐네. 오늘 소씨 가문에서 혼례를 준비했다고 하는데, 단이 곁에 도와줄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되어 왔네. 수 나인을 보니 마음이 놓는 구려.”수 나인도 웃으며 말했다. “부인께서 너무 걱정이 많으십니다. 혼례 결정이 내려온 지가 며칠인데, 아가씨 곁에 사람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이 말인즉, 수 나인이 임씨 부인의 위선적인 태도를 비꼬고 있는 것이다! 혼인 결정이 내려지고 며칠이 지나도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더니, 오늘 소씨 가문에서 혼례 예물을 보내자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임씨 부인은 말솜씨가 좋지 않았고, 수 나인의 나이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수 나인의 비꼬는 말에 그녀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임씨 부인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우물쭈물거리는 모습을 본 김단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수 나인, 숙희와 함께 창고에 가 물건을 정리해 주시겠소?"수 나인은 깜짝 놀랐다. 그녀는 김단을 위해 임씨 부인을 내쫓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김단이 눈짓으로 안심하라고 했고, 이에 수 나인은 수긍하며 숙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수 나인이 떠나자마자, 임씨 부인의 표정이 밝아졌다.김단은 비웃음이 지어지는 걸 참으며 말했다. “임씨 부인께서는 오늘 조모님의 혼수를 받으러 오신 겁니까?”임씨 부인은 김단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황하며 얼굴이 붉어졌다.
이튿날 아침, 김단은 궁무를 맡지 않았기에 평양관저에 머물며 맹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인지 맹영지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김단의 곁에 있을 때만큼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조용한 정원, 김단은 맹영지와 함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계수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숙희가 건네준 과자가 들려 있었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있었다. 맹영지는 고개를 들어 만개한 계화를 바라보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어제 소하가 평양관저를 찾아왔으나 그는 맹영지와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 애썼다. 아마도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바라보며 과거 소하가 왜 그리도 그녀를 칭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때 소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답게 그녀는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가까웠던 두 사람이었는데 맹영지는 어쩌다 소하에게 독을 먹이려 했던 것일까?김단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맹영지의 몸과 마음이 회복되면 그때 자연스럽게 그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김단이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평양관저의 겸인이 급히 달려와 말했다.“아가씨, 맹가 사람들이 도착했습니다.”이런 큰일이 발생했으니 맹씨 집안에서 그녀를 보러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김단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겸인에게 말했다.“알겠소. 이리로 모셔오시오.”잠시 후, 맹씨 부인이 정원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김단에게 예를 갖추어 인사한 뒤 슬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김 의원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원님이 아니었다면 제 딸이 그 짐승 같은 자에게 학대받으며 살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입니다.”말을 마친 맹씨 부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김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과찬이십니다, 맹씨 부인. 민태훈, 그 자의 말에 따르면 맹영지 아가씨의 병은 이미 4~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회
소한은 코웃음을 치며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소하의 조용한 목소리가 방안의 침묵을 깨뜨렸다.“이번에는 정말 잘했어.”영의정 저택에서 벌어진 일은 소한이 형벌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소하의 귀에 들어갔다. 만약 소한이 과감하게 영의정 저택에 침입하지 않았다면 김단은 쉽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비록 민씨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김단을 해치지 못한다고 해도 그녀가 겪었을 모욕과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웠다.소하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소한은 많이 당황한 듯했다.“제가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때로는 그 충동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소한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김단의 얼굴을 떠올렸다. 처음에 그녀도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 듯했지만 곧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였다. 김단은 마차에 오를 때까지 자신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가 나타나자마자 바로 그의 품에 안기며 그를 향해 미소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는 너무나도 차갑게 변해버렸다. 자신을 외면하는 그녀가 소한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는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큰 실수를 저질렀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며 굳게 결심했다.그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이미 어떤 대가든 치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반 시진 후, 김단은 방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그러자 숙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다.“아가씨?”김단은 정신을 차리고 숙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냐?”“두 도련님께서는 모두 돌아가셨습니다.”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발생한 일을 되새겨 보았다. 그녀는 소한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도 그는 소가를 위해, 전하를 위해 심지어 임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러나 그녀만은 제외였다.그녀는 소한이 자신의 어머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평양관저로 따라온 것도 단지 자신의 동정심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상처
김단은 아무 말 없이 소한을 부축하며 걸었다. 궐에서 나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고요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무겁고 느렸으며 말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궐문에 도착했을 때 소한의 마차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도 말을 타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상태로 다시 말을 타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된 김단은 곁에 있던 경씨에게 부탁했다.“도령님, 장군님을 먼저 집으로 모셔다 주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소한이 놀란 듯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내게 약을 발라주지 않겠다는 것이오?”김단도 당황해하며 되물어 보았다.“소가에는 의원이 없습니까?”소한은 김단의 물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내가 또 다쳤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걱정하겠소? 그러니 그냥 근처에서 치료받을 것이오. 낭자는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돌아가시오.”김단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먼저 평양관저로 함께 가서 약을 바르시죠.”소한은 그녀의 제안에 놀란 기색을 내비쳤다.“불편하지 않겠소?”김단은 그를 바라보며 단호히 말했다.“괜찮습니다.”그렇게 소한은 김단과 함께 평양관저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김단의 몸종 숙희였다.소한을 발견한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자 김단이 숙희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숙희야, 장군님을 객실로 안내해 주거라. 나는 약을 준비하러 가야겠구나.”그녀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김단의 지시를 따랐다.객실에 혼자 남은 소한은 조심스럽게 상의를 벗고 등을 드러냈다. 그의 등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등을 바라보며 오늘의 형벌이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음을 깨달았다.하지만 그는 김단이 이 상처를 보면 마음 아파할 것이라 생각하며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약을 들고
긴장감이 맴도는 분위기 속에서 전하는 이해 안 되는 듯한 어투로 물었다,“조선의 장군인 네가, 수많은 전공을 세운 네가, 원하는 여인 하나 얻는 것이 그리 어렵단 말이냐? 어찌 김단 하나 때문에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이야? 그 낭자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전하의 말투는 엄중했지만 그 속에는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그러자 소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그렇습니다.”전하는 눈썹을 찌푸리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김 의원, 들었소?”그 순간 소한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조용히 서있는 김단이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담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소한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사실에 당황했지만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소한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김단, 왜 이곳에 있는 것이오?”그녀는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전하에게 예를 올렸다.“소녀 김단, 전하를 뵙습니다.”전하는 손짓으로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일어나거라. 오늘 발생한 일에 대해 자세히 말해 보거라.”김단은 소한을 보지 않기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한 채 차분하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제가 직접 목격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민대부를 제외하고는 영의정 댁 장남의 부인에게 감히 손을 댈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전하는 그녀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맹 낭자의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두 명의 궁녀를 보내겠다. 평양관저에서 확인해 보도록 하거라.”학대의 이유가 무엇이든 맹영지는 필시 중전의 친척이었다. 만약 폭력을 가한 사람이 민대부라고 할지라도 이는 중전의 가문을 모욕하는 행위와 다름없었기에 결코 그를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전하는 소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네 죄가 묻힐 수도 있겠구나.”민씨 가문의 잘못이 드러나게 된다면
소한은 곧바로 병사들과 함께 어서재에서 물러났다.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향 한 자루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소한이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본 전하는 하던 일을 멈추고 냉랭하게 물었다.“영의정이 너를 더 때리라고 명하지 않았느냐?”소한은 조용히 전하 앞으로 걸어가 무릎을 꿇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대답했다.“전하의 깊은 뜻을 아는 자입니다. 그러니 더 심한 처벌을 요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전하는 코웃음을 치며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내 뜻이 무엇이더냐?”소한은 고개를 들어 전하를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 영의정을 불러 제가 벌을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하셨죠. 그리고 동시에 제가 전하의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셨습니다. 전하께서는 영의정이 이 사실을 눈치채기 바라신 것 아니었습니까?”전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붓을 책상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 불경한 자식아! 내 너를 아낀다고 해서 이렇게 제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영의정 저택 외에 또 어디에 첩자를 심어두었느냐?”소한은 눈을 내리깔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3품 이상의 모든 관료의 집에 첩자를 두었습니다.”그 말을 들은 전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한을 가리켰지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한참 동안 방안을 서성이었다.잠시 후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다시 한번 소리쳤다.“네가 감히! 그렇게 많은 곳에 첩자를 심어두고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이렇게 행동하면 내가 소씨 집안을 멸문시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소한은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조용히 말했다.“저도 위험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다섯 해 전, 저희 소가는 거의 멸문 당할 뻔했습니다.”그 해 소하가 지닌 병권은 다른 집안의 탐욕스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로 인해 조정의 문
김단은 그제야 잊고 있었던 민태훈을 떠올렸다.그녀는 맹영지를 몸종에게 맡기고 민태훈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허벅지에 박힌 은침을 뽑아냈다.침이 빠져나가자마자 민태훈은 마치 고통에서 해방되기라도 한 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 가닥의 은침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큰 마님은 김단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그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말이다.그때 경씨가 마차를 몰고 도착했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걸어 나오자 경씨는 놀란 얼굴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낭자, 괜찮소?”방금 전 김단이 영의정 저택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소한은 급히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덕분에 한발 늦게 도착한 경씨는 자신이 더 일찍 김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말했다.“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소.“김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대답했다.“저는 괜찮습니다. 먼저 맹 아가씨를 평양관저로 모시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그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과 몸종이 맹영지를 부축하며 마차에 오르자 경씨는 바로 마차를 출발 시켰다.김단은 마차에 오르기 전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조용히 서 있는 소한에게로 향했다. 소한은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단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소한은 그런 김단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 후 소한은 곧장 궁으로 향했다.어서재에 도착한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오늘 영의정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에게 보고했다.그의 말을 들은 전하는 노여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한을 꾸짖었다.“네가 감히 허락도 없이 영의정 저택을 침입했단 말이냐? 정말 대담하구나! 내가 너를 벌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느냐?”그러나 소한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벌을 달게 받겠습니다.“전하는 그의 담담한 태도에 더 분노하며 외쳤다.“민가
김단은 민씨 부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다.보내서는 안 된다라...오늘 이 자리에서 맹영지뿐만 아니라 김단 자신도 민가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김단은 민씨 부인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릴 줄 몰랐다.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선택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김단의 눈빛이 서서히 날카롭게 변해갔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분노와 실망이 교차했다.큰 마님은 민씨 부인의 표정을 보고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맹영지의 몸에는 증거가 남아있었고 그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게 된다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이다.하지만 지금 김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그녀는 분명 궐로 들어가 이 일을 고발할 게 뻔했다.지금 김단을 적으로 돌린다면 그에 따른 후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큰 마님은 사랑하는 손자를 바라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김단을 보내면 민태훈의 입지가 위험해질 것이고 보내지 않는다면 민가 전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녀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그때, 한 하인이 급히 달려와 외쳤다.“큰 마님! 소 장군님께서 오셨습니다!”소 장군? 소한을 말하는 것인가?그의 이름이 언급되자 큰 마님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소한이 이렇게 빨리 이곳에 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김단도 그가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녀가 생각에 잠긴 사이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큰 마님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뵙게 되어 송구합니다.”모두들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당당하게 정원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한의 모습이었다.“소한, 주인의 허락도 없이 들어오다니! 대체 영의정 저택을 무엇으로 보시는 것이오? 이곳은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오.”소한은 그 말을 한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이런 무례를 범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곧 전하 앞에서 사죄드리지요.”그는 정원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큰 마님에게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