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씨 부인은 질책하는 태도를 보였다.더군다나, 소씨 부인의 말은 임원을 완전히 믿지 않는다는 뜻이다.임원이 어찌 알아듣지 못하겠는가?그녀는 감히 소씨 부인을 거역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울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제가 제멋대로 하지 말아야 했어요.”임씨 부인은 옆에 서서 임원이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가족들은 당연히 임원이 무고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모두 임원의 잘못 때문에 이러난 일인지는 다들 잘 알고 있다.소씨 부인은 또 말했다.“그래도 걱정하지 마, 한이가 널 내쫓을 일은 없게 해주마. 나중에 한이가 화 풀리면 데리러 오라고 할게.”조금 전과 똑같은 말이지만, 소한이 언제 화가 풀리고, 얼마 오래 지내야 임원을 데리러 올 것인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임원은 흐느끼면서 눈물을 닦고 있었지만, 눈에는 음험함이 가득했다.소씨 부인은 또 임원에게 위로하는 말을 몇 마디하고는 갔다.임씨 부인은 소씨 부인을 배웅하러 나갔다.그들이 나가자마자, 임원은 바로 방에서 화냈다.“다 김단 탓이야! 김단만 아니면 소한 오라버니는 나를 내쫓지 않을 것이야!”그녀는 소리 지르면서 울었다.문밖의 시녀들은 이미 물러갔고, 지금, 영희만 그녀 옆에 남아서 돌보고 있다.영희는 임원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조마조마했다.그 일은 분명히 큰 아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둘째 아씨가 명희를 해치려 했지...명희는 예전에 둘째 아씨한테 그렇게 충성을 다했는데도 죽었다. 그럼, 그녀는?그녀는 둘째 아씨의 일을 이렇게 많이 알고 있는데, 나중에...“영희야!”영희는 임원이 갑자기 큰 소리로 그녀를 불러서 깜짝 놀랐다.임원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뭐 생각하고 있어?”영희는 바삐 손 흔들었다.“아니, 아닙니다.”임원은 미간을 더욱 세게 찌푸렸다.“내가 곤경에 빠질 때, 넌 거기서 딴생각이나 하고 있어?”임원은 영희가 명희보다 못하다고 느꼈다.어쨌든 명희는 그녀의 친여동생이고, 뭐 하든 그녀
시간이 하루하루 지나가더니,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김단은 한 달 동안 소하 마당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그녀는 매일 돌 던지는 연습 외에는 가끔 소하 방에 가서 병서를 봤다. 그녀는 또 가끔 소하랑 바둑을 두기도 해서, 하루하루 유쾌하고 충실하게 보냈다.소한은 그날 뒤로 한 번도 오지 않았다.정확하게 말하면, 매일 청소하러 오는 시녀 외에 누구도 오지 않았다.김단은 가끔 소하의 마당이 별천지이고, 모든 지저분한 사람과 일을 모두 마당 밖에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것도 좋겠지만, 여기는 결코 별천지가 아니다.이날, 소씨 부인은 오늘이 소씨 대감의 생신이어서 한 가족이 모여서 밥 한 끼 먹자고 전하라고 사람을 보냈다.소하가 다친 후부터, 일 년에 그저 소씨 부모님의 생신날에만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소하는 김단을 걱정했다.“내가 부모님께 김 낭자 몸이 편찮다고 말해도 돼오.”그는 김단이 소한을 보기 싫을 거로 생각했다.김단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상관없다고 했다.“밥 한 끼 먹을 뿐인데, 괜찮아요.”그녀는 맏며느리로서 가지 않으면, 소씨 대감이 불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더군다나, 벌써 한 달이나 지나갔다.김단은 처리할 일도 거의 다 처리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소하랑 같이 대청에 들어설 때, 분위기는 아주 저조했다.소씨 대감은 상석에 앉아서 탁상을 뚫어지게 보면서 얼굴에는 노여움이 가득했다.소씨 부인도 소씨 대감의 옆에 앉아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소정온도 소씨 부인의 옆에 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감히 하지 못했다.소한은 다른 한쪽에 앉았는데, 원래 냉담한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소씨 대감이 이유 없이 노여워하는 것 같았다.김단을 보자, 소한의 음험한 눈동자가 살짝 반짝이더니, 다시 어두워졌다.그의 시선은 김단의 얼굴에서 그리 오래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관심 없는 듯했다.소한의 이
소하도 따라서 잔을 들었다.“저도 아버지께서 행복하시고, 장수하시기를 기원합니다.”김단도 소하를 따라 잔을 들었다.소씨 대감의 기분이 결국에는 조금 좋아졌는데, 눈길은 소한을 향했다.세 명의 아이 중 두 명이 그에게 술을 올렸다. 소한만 가만히 있어서 소씨 대감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꼈는지, 소한은 그제야 술잔을 들었다.“아버지께서 백 세까지 장수하시길 바랍니다.”소씨 대감은 그제야 다시 웃으면서 술을 마시고는 또 한마디 더 말했다.“네가 날 화나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백 세까지 살 것이다!”분위기가 또다시 가라앉았다.소씨 부인은 꾸짖듯 소씨 대감을 살짝 쳤다.소씨 대감은 그제야 그의 말이 조금 나아진 분위기를 다시 깬 것을 알고 표정이 조금 어색했다.소한이 갑자기 콧방귀를 끼더니 비웃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소씨 대감은 순간 노여움을 참지 못했다.“너 무슨 뜻이야?”소한은 여전히 냉담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불효라고 하시니, 소씨네 아들도 참으로 하기 힘드네요.”소한의 말에는 소씨네 가족과 연을 끊겠다는 의미가 조금 들렸다.소씨 대감은 두 눈을 부릅떴고, 소씨 부인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소하도 술잔을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이것은 소씨 대감과 소한의 일이어서, 그는 참견하기 싫다.김단도 점점 조용해졌다. 다른 사람이 그녀를 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옆에 있는 소정온이 오히려 나서서 소한을 설득했다.“둘째 오라버니, 아버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맞아, 그런 뜻이야!”소씨 대감도 화가 나서 막무가내로 말했다.“누가 너처럼, 한 달 사이에 진산군댁으로 이혼장을 세 번 보내니? 다른 사람이 알기라도 하면 우리 소씨네 체면은 또 어디에 두는데?”이 말을 듣자, 김단은 자기도 모르게 몰래 소하와 눈을 마주쳤다.그들은 한 달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들은 소한이 임원을 내쫓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김단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조심하고 젓가락을 떨어트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화두는 그녀에게로 돌렸다.소씨 대감은 탁상을 치며 일어섰다.“망할 놈, 단이는 네 형수야!”소하의 미간에도 불쾌함이 물들였고 살짝 내려다보는 눈에는 한기가 한 층 덮였다.김단은 묵묵히 똑바로 앉아서 젓가락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한을 제외한 소씨네 가족은 모두 그녀를 보고 있었다.소한은 도도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소씨 대감을 쳐다봤다. 그의 입가에는 심지어 하찮게 여기는 미소를 지었다.“지금, 내가 임원을 내쫓는 말을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무슨 상관입니까?”그는 죽어도 ‘형수’라는 말을 내뱉을 수 없다.그래서 지금 김단은 그저 다른 사람일 뿐이다.소씨 부인이 봤을 때, 김단은 소한의 시선을 끌려고 조금 전에 일부러 젓가락을 떨군 것 같았다.아무튼, 소한이 계속 임원을 내쫓으려는 것은 무조건 김단 때문이다!소정온마저 불쾌한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봤다.그녀는 김단이 아직도 예전처럼 소한 앞에서 존재감을 찾고 싶은 것으로 생각한다.아니면, 왜 가만히 있는 젓가락을 떨어트리는가?김단도 당연히 소씨 부인과 소정온의 불쾌한 시선을 느꼈다. 그녀는 그저 눈을 내려다보면서 못 본 척했다.지금, 그녀가 말할 자리가 아니다.소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좀 힘든 것 같아서 단이랑 먼저 가보겠습니다.”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바퀴를 굴려서 가려고 했다.‘천천히 드세요.’는커녕, ‘물러가겠습니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모든 말과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는 그들이 단이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것을 싫어한다.그러나, 소하가 돌아설 때, 마침 한 시녀가 국 한 그릇을 들고 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는 피하지 못했다. 시녀 손에 있는 국은 거의 소하 다리에 다 쏟았다.“아!”시녀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는 바삐 뒤로 물러서고는 무릎을 꿇
소정온은 바삐 일어나서, 얼굴에 기쁨이 넘치는 소씨 대감을 보고 말했다.“아버지, 너무 기쁘셔서 잊었어요? 큰 오라버니의 다리는 큰 형님이 침을 놓으셔서 고친 것인데, 다른 의원을 찾아서 뭐 해요?”소씨 대감은 소정온의 말을 듣고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맞네, 맞아, 단이가 고친 거지, 단이가 정말 큰 일을 해냈어!”소한의 침울했던 얼굴색도 조금 좋아졌다.그는 소하의 다리가 언젠가 다시 감각이 있을 줄 몰랐고, 이 또한 소씨 집안에서 아주 기쁜 일이다.이 순간, 소씨 집안 모든 사람이 감격하는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봤다. 마치 조금 전에 불쾌한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보던 사람이 그들이 아닌 것 같았다.다행히도 김단은 개의치 않았다.그녀는 언젠가는 소씨 집안을 떠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소씨 집안 사람의 태도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저 소하의 다리가 회복할 수 있다면 그녀는 만족한다.그녀는 진산군댁 의원을 찾아가서 이후로의 치료 방안을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소씨 부인이 갑자기 얼굴에 눈물이 범벅 한 채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단이야, 내가,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그녀의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해 감격함도 있었지만, 미안함도 있었다.소하의 친어머니는 그녀의 친언니이고 소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상 떴다. 소하를 더 잘 보살피기 위해서 소씨 부인이 소씨 대감에게 시집왔다. 그녀는 소하를 친자식으로 대했다.소하가 다리를 다친 후, 소씨 부인은 거의 매일 눈물을 흘렸고, 세상 뜬 언니에게 미안해했다.소하의 다리가 다시 좋아질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니!그녀는 마음속으로 김단을 많이 싫어했다. 또 전에 김단이 소한에게 시집오는 것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방해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김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하지만, 소씨 부인은 김단에 대한 미안함을 소한이 보는 앞에서 말할 수 없다.김단은 소씨 부인이 이렇게 눈물 흘리며 감격하는 것을 참아 볼 수 없어 바삐 고개를 흔들었다.“어머님, 이러시지 않으셔도
소한이 가버리자, 소씨 대감은 아주 화가 났다.소씨 대감은 제 자리에 앉아서 보이지도 않는 소한의 뒷모습을 가리키면서 화냈다.“망할 놈! 가라 그래! 가거든 다시 돌아오지 말라 그래!”소씨 부인은 바삐 다가가서 소씨 대감의 등을 만지면서 꾸짖었다.“왜 또 홧김에 이런 말 해요? 한이가 집에 오기를 한 달 동안 바래 놓고는, 이제 가면, 또 돌아오길 바라야 하잖아요.”소씨 대감의 마음이 들켜버리자, 그는 눈을 희번덕거렸다.소한은 전에 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서 부르면, 그저 군에 일이 있다고 핑계 댔다. 그러나 지금 전쟁할 때도 아닌데, 군에 뭐 그리 바쁠 게 있다고 소한이 밖에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른다.이번에도 소씨 대감의 생신을 핑계로 소한을 불러왔는데, 또 이렇게 불쾌하게 헤어졌다.이 광경을 보고, 소정온이 나서서 위로했다.“그래도 큰 오라버니께 좋은 소식이 있잖아요! 둘째 오라버니는..., 우리가 둘째 오라버니께 조금 더 시간을 줘야 할 것 같아요!”소정온의 말을 듣자, 소씨 부인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고, 소씨 대감은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세 사람의 분위기는 소한이 떠나고 나서 많이 가라앉았다.소하는 걱정하는 눈빛으로 김단을 바라봤다.그는 소한이 그렇게 화가 나서 가버리면 김단이 어색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김단은 소한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고, 심지어 그와 눈이 마주칠 때 웃었다.“우리, 돌아가서 침놓을까요?”오늘은 아직 침을 놓지 않았다.김단은 먼저 침을 놓고, 다시 진산군댁의 의원을 찾아가서 다음 단계의 치료 방법을 구하려고 한다. 그녀는 조금 더 노력하면, 소하가 구정 전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소한이 한 달 동안 집에 돌아오든 말든, 소한이 진산군댁에 이혼장을 얼마나 보냈든 모두 그녀와 상관없다.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것을 보고, 소하는 그제야 눈에 웃음을 띠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시오.”그는 소한의 성격까지 통제할 수 없다.어렸을 적에는 소
소씨 부인도 조금 불쾌했다.“제가 가서 데려오면 뭐 해요? 한이가 돌아오지도 않는데...”“그럼, 방법을 대서 돌아오게 해야지오!”소씨 대감도 화가 잔뜩 나서 소씨 부인을 째려봤다.“부부 사이에 싸우다가 금방 좋아지는데, 이렇게 계속 따로 살면 언제 화해할 수 있소?”소씨 대감은 이렇게 말하고는 소하와 김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소하랑 단이 봐 봐, 지금 얼마나 좋소.”소씨 부인도 소하와 김단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김단은 소하를 밀고 가면서도 가끔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소하랑 이야기했다. 소하 역시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김단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소하의 표정은 아주 기쁘다고 할 수 없지만, 아주 편안해 보였다.예전에 그가 혼자서 마당에 갇혀 사람을 만나지 않을 때랑 비교하면 아주 좋아졌다.비록 소하는 이번에도 한 달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김단과 같이 있어서, 둘 사이의 감정은 아마 더 좋아졌을 것이다.소씨 부인은 이렇게 생각하자, 조금 전에 소씨 대감이 한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부부 사이의 원한은 하룻밤을 지나지 말아야 한다.어쨌든 같이 살면 좋아질 것이다.그래서 소씨 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제가 내일 원이를 데리고 올게요.”이 일은 이렇게 결정되었다.이튿날, 소씨 부인은 아침 일찍 진산군댁으로 갔다.임원은 소씨 집에서 그녀를 데리러 왔다는 것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대청에 갔지만, 임씨 부인과 소씨 부인만 있었다.그녀는 소한이 그녀를 데리러 온 줄 알았다.임씨 부인도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한이 오지 않고 소씨 부인만 온 것을 보고, 그녀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사돈댁, 제가 장모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벌써 한 달이 지났소. 한이는 원이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았고, 편지 한 통도 없었소. 오늘 원이를 데리고 간다면서도 얼굴도 보이지 않았소. 이러면, 제가 어찌 마음 놓고 원이를 보내겠소?”임씨 부인은 전에 소한이 임원을 쫓아낼까 봐 걱정해서 임원을 빨리 데리
소씨 부인은 뜻대로 임원을 집에 데려왔고, 소한도 뜻밖에 집으로 돌아왔다.그녀는 임원이 돌아온 줄 알고, 소한이 그와 함께 온 것이라 생각하며 다소 기뻤다.“부부 사이에 터놓고 말하면 되지, 이렇게 오래 화나는 게 어디 있어.”소씨 부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임원을 소한에게 밀었다.“됐다. 내가 원이를 데리고 왔으니, 한이도 더는 화내지 말거라. 너희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니, 이야기 나누거라, 난 먼저 가겠다.”소씨 부인은 부부 사이에 따로 말할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먼저 갔다.소씨 부인이 임원을 미는 바람에, 임원은 하마터면 소한 품에 안길 뻔했다. 그녀는 소한이 거부하는 것 같아서 억지로 발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소한 옆에 서 있었다.두 사람 사이는 그녀가 손만 뻗으면 그의 손등에 댈 수 있는 거리여서, 그녀의 마음은 조금 떨렸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부드럽게 소한을 불렀다.“소한 오라버니...”“연기하지 마시오.”소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소한은 음험한 눈빛으로 임원을 흘겨봤다.소한의 깊은 눈동자는 임원의 연약한 척하는 외면을 알아차리고 말투도 거침없었다.“요즘 당신이랑 싸울 시간이 없소. 눈치껏 집에서 조용히 있으시오. 그렇지 않으면...”소한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았지만, 흉포한 눈동자는 사람을 놀라게 했다.그는 김단 때문에 돌아왔다.소씨 대감이 아이를 낳으라고 한 말이 그의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돌아왔는데, 임원이 돌아올 줄 몰랐다.하지만, 오히려 임원이 있어서, 소씨 부모님이 그에 대해 조금 덜 경계할 수도 있다.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를 건드릴 수 있는 건 아니다.임원은 소한의 말에 놀라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그를 보지도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계속 눈물이 돌았다. 그녀는 겁에 질린 듯 말했다.“소한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제 더는 말썽 피우지 않을게요.”그녀는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말썽’이라 말했다.지금까지도 그녀는 잘못을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김단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마님, 만약 지금 이 자리에서 저를 막으신다면 저는 곧장 궐로 가 이 모든 일을 고할 것입니다.”그녀의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그 안에는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김단의 말이 끝나자 민가의 사람들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큰 마님은 눈썹을 찌푸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그녀는 김단이 단순한 의원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김단은 진산군 댁의 적녀이자 평양원군의 의남매이다. 그리고 그녀는 소가의 두 형제와도 깊은 인연이 있었다. 지금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곧 여러 권세 있는 가문을 적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었다.큰 마님은 민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고통에 찬 얼굴로 땀을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그러나 동시에 마음속에는 김단에 대한 의심도 피어올랐다. 만약 그녀의 말이 과장된 것이라면 민씨 가문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한참을 고민하던 큰 마님은 굳게 결심한 듯 민씨 부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네가 직접 확인해 보거라. 만약 낭자의 말이 거짓이라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민씨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김단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김단은 조심스럽게 맹영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녀의 팔 안쪽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민씨 부인은 숨을 들이켰다.“이런 상처가… 정말로…”그녀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김단은 차분하게 말했다.“다리 쪽은 더 심각합니다. 보시겠습니까?”민씨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이 상처, 정말로 태훈이의 짓입니까?”김단은 잠시 침묵하더니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그 말에 민씨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우리 태훈이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닙니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었단 말입니다.”김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공주의 이름이 거론되자 민씨 일가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다. 그러나 큰 마님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낭자가 공주의 명을 받고 우리 영의정 저택에 들어와 병자를 돌보는 것은 알겠소. 허나 공주의 허락 없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무엄한 일이오. 공주라 할지라도 국법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함부로 공주의 이름을 빌어 협박하지 마시오.”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민가의 큰 마님은 김단이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을 치켜세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단의 입가에는 더욱 짙은 미소가 떠올랐고 눈빛에는 경멸이 스쳤다.“공주님께서도 국법을 지키셔야 하는데 민가의 사람들은 더욱 그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민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높이며 반박했다.“그게 무슨 뜻이오? 우리 민씨 일가는 예로부터 법을 준수하며 국법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소!”“김 의원께서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우리 민가에 누명을 씌우려는 것 아니오?” 김단은 그저 조용히 서서 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두려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김단의 이런 차분한 태도가 큰 마님의 신경을 건드렸다.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김단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큰 며늘 아씨는 중전마마의 친조카이시며 공주자가의 사촌이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분의 치료를 맡게 되었지요. 원래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으나 오늘 갑자기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이는 분명 누군가가 큰 며늘 아씨의 회복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의원으로서 제 환자가 이곳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제가 데려가야겠습니다. 만약 제 앞을 가로막으신다면 다음번에는 민대부님의 다리에 은침을 꽂아 버릴 것입니다.”이에 큰 마님은 지팡이를 바닥에 세게 내리치며 외쳤다.“허튼소리 마시오! 낭자의 의술이 부족해서 생긴 일을 왜 우리한테 덮어씌우려는 것이오?”“맞소! 무슨 명의의 제자라더니... 다 헛소리구
김단은 며칠 동안 정성을 다해 맹영지의 상태를 호전시켰건만 민태훈의 갑작스러운 악행으로 인해 그간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다.맹영지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해독제를 찾는 일도 어려워질 것이다.김단은 맹영지를 영의정 저택에 더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곁에 있던 몸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맹가 사람들에게 전하거라. 내가 맹영지를 데려가겠다고 말이다.”몸종은 놀란 눈으로 김단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지금 맹영지를 민대감한테서 떨어뜨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나 김단이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사실을 민가 사람들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김 의원님께서 몰래 모셔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김단은 냉정하게 대답했다.“네가 도와준다 한들 민가 사람들에게 들키게 된다면 너의 신분으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서 민가 사람들을 불러오거라. 누구든 상관없다. 내가 알아서 판단하고 행동할 것이다.”몸종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예.”얼마 지나지 않아 맹영지의 뜰은 소란스러워졌다. 조정에서 전하와 정무를 논의 중인 영의정 대감을 제외하고 민가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였다.특히 민태훈은 소식을 듣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와 김단에게 따지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방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서 날아온 은침이 그의 허벅지를 정확히 찔렀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며 신음을 토했다.민가의 큰 마님은 몇몇 마님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착하였다.맹영지의 뜰에 도착한 그녀가 본 장면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손이 땅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즉시 분노를 터뜨리며 지팡이로 땅을 세차게 내리쳤다.“어디 이런 무례한 의원이 다 있단 말이오? 감히 우리 영의정 저택에서 사람을 해치다니! 이 자를 당장 붙잡거라! 내가 직접 궐에 데려가 이 무엄한 짓이 누구의 명령인지 따져 물을 것이다!”영의정 저택의 병사들은 즉시 명령에 따라 방으로 돌진하려 하였다. 그러나 방 안에서 또
김단은 다시금 영의정 저택을 찾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맹영지를 문병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 서원공주한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탓이었을까?김단이 몇 차례 영의정 저택에 들렀음에도 불구하고 민태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김단이 문을 열고 들어가기도 전에 맹영지 방에서 나오는 그를 마주치게 되었다.김단은 무의식중에 얼굴빛이 굳어졌다. 그 바람에 마땅히 올려야 할 예까지 잊고 말았다. 민태훈은 그런 김단의 무례한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다. “김 의원은 공주님을 모시더니 자기 위치를 잊은 것이오? 어찌 본관을 보고도 예를 갖추지 않는단 말이오?”김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민 대감을 뵙습니다.”민태훈은 코웃음을 치더니 발걸음을 옮겨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그가 눈앞에서 사라지자마자 김단은 급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슴속에 품었던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맹영지는 침대 구석에 웅크린 채 두 팔로 어깨를 감싸안고 몸을 떨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생기를 잃었고 옷은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김단은 섣불리 다가갔다가 맹영지를 놀라게 할까 두려워 선뜻 가까이 가지 못했다.그때 맹영지의 몸종 하나가 탕약 한 사발을 들고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맹영지의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손에 든 약그릇을 떨어뜨리고 말았다.그 소리에 맹영지는 격렬하게 반응하며 소리쳤다.“때리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제발…”몸종은 그 자리에서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맹영지를 안아주려고 했지만 그녀는 더욱 격렬하게 저항하며 몸종을 때리고 할퀴었다.이 광경을 본 김단은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앞으로 달려들어 맹영지한테서 몸종을 떼어내고 그녀의 목덜미를 내리쳐 기절시켜 버렸다.그러자 몸종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모두 다 소인의 불찰입니다. 큰 며늘 아씨께서 과자를 드시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엌으로 가 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그 사이에 대감님께서
김단은 여전히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모를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남의 고통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남의 불행 앞에서도 해맑게 웃을 수 있는 것이겠지.그때 소정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럼에도 도련님을 걱정하고 계신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진산군 댁의 의원과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을 리 없잖아요.”김단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뭐 어떻게 되었든, 도련님께서는 낭자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방금 약을 마시고 잠들었는데 잠결에 부르는 이름도 낭자였거든요. 예전에는 사이좋은 남매였는데...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도련님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피를 나눈 사이인데 꼭 이렇게 멀어져야만 하나요?” “소정원 낭자.”김단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결 단호하고 날이 서 있었다.생각보다 묵직한 음성에 소정원은 당황한 듯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김단은 길게 한숨을 내쉰 뒤 허리춤에서 작은 손목 염주 하나를 꺼내 들었다.“이것은 소한 장군님의 물건입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그분에게 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이 염주는 그녀가 시간 날 때마다 손수 꿰어 만든 것이었다. 소정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게 정말 소한 오라버니의 것이 맞나요? 제 기억으로는 큰 오라버니도 비슷한 염주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서요.”김단은 작게 눈썹을 찌푸릴 뿐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소정원이 다시 물었다.“그런데 한이 오라버니 물건을 왜 낭자가 가지고 있는 겁니까?”그 물음에는 짙은 의문과 약간의 의심이 담겨 있었다.김단은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낭자,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시오. 제 실수로 소한 장군님의 염주를 끊어버렸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손수 꿰어 만든 것일 뿐이오.”소정원은 그제야 고개를 끄
소정원은 순간 당황했다. 김단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진산군 앞에서 친히 임학에게 약을 먹이라니...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보여줘라는 뜻 아닌가?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으나 무의식적으로 약그릇을 받아들고 있었다.김단은 몸을 돌려 진산군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진산군께서는 모르시겠지만 도련님을 깨운 건 소정원 낭자입니다.”그 말에 진산군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그게 정말이냐?”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임학과 소정원을 번갈아 쳐다보았다.“그럼 너희 둘은...”소정원의 두 뺨은 어느새 붉게 물들었고 임학에게 약을 먹이던 손마저 긴장으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부자연스러운 그녀의 행동을 바라보는 임학의 눈에는 따스함이 서려있었다. 그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머금자 소정원의 얼굴은 더욱 빨갛게 달아올랐다.그 장면을 말없이 바라보던 김단과 진산군은 눈치껏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그러나 밖으로 나온 진산군의 얼굴빛은 여전히 밝지 않았다. 보다 못한 김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도련님께서는 이제 눈을 뜨셨고 거기에 좋은 인연까지 맺게 되셨으니 기뻐해야 할 일 아닙니까?”현재 진산군의 집안 사정을 헤아려봤을 때 혼인과 같은 경사로 액운을 풀 수만 있다면 더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진산군의 미간에는 여전히 주름이 깊게 잡혀있었다.“소정원 낭자가 싫다는 게 아니다. 다만 너도 알지 않느냐? 우리 집안은 소씨 가문과 이미 두 번이나 혼례를 맺으려다 결국...”그는 임학과 소정원도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김단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번은 다릅니다. 그 두 번의 혼사는 모두 거짓이었잖아요.”애초에 김단과 소하의 혼사는 거짓된 약조에 불과했다. 허울뿐인 인연인데 어찌 아름다운 결말이 따를 수 있겠는가?진산군은 김단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한참 동안 생각을 정리하던 그는 마침내 굳어있던 표정을 풀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기억은 아마 평생 잊히지 않을 것이다.김단 역시 그 일을 떠올렸다. 그날 임학은 소정원의 치맛자락에 붙은 불을 끄느라 여념이 없어 김단을 챙겨주지 못했었다.김단은 그것도 모르고 등불회장 한가운데서 임학을 찾아 헤맸고 결국 소한이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그 때문에 김단은 오랫동안 임학에게 서운함을 품고 있었다.왜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여러번 따져 물었지만 임학은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감정이 싹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소정원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그때부터였습니다. 도련님만 떠올리면 괜히 웃음이 나고 그러더군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김단은 임학의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깜짝 놀란 그녀는 즉시 은침을 꺼내 임학의 두정혈에 찔렀다.은침의 자극이 신경을 자극하자 임학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정원은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임학 도련님...”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중상을 입고 막 깨어난 임학은 눈꺼풀을 드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그는 가장 먼저 소정원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자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임학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그는 미약하게나마 소정원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그 모습을 본 소정원은 더욱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깨어나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임학은 말할 기운이 없어 대답하지 못했지만 시선은 어느샌가 김단에게로 옮겨졌다.그녀는 침대 곁에 앉아 있었기에 소정원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방금 전 꿈속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들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그는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마른 목구멍에서 겨우 한 마디를 뱉었다.“단아...”“방금 깨어났으니 말을 아끼세요.”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임학을 내려다보며 차분하게 얘기했다.“저는 약을 달이러
그러다 문득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김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큰 아가씨, 소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소 아가씨? 소정원을 그러는 것일까? 김단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김단은 긴가민가하며 문을 열었고 마당에는 어린 시절 자신의 경쟁자였던 소정원이 서 있었다.두 사람은 그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임학 때문일 것이다. 김단은 조심스레 그녀를 방 안으로 들였다.“사실 일찍 오고 싶었는데 오라버니들이 말리셨습니다. 임학 도련님의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제가 와봤자 방해만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늘에야...”그녀는 말을 흐리며 침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더니 다시 김단을 바라보며 물었다.“임학 도련님은… 지금은 어떠세요?”김단은 살짝 웃으며 얘기했다.“맥박은 안정되었고 상처도 서서히 아물고 있소.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속 깨어나질 않소.”그 말을 들은 소정원의 이마가 즉시 찌푸려졌다. 김단은 그녀가 임학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김단은 부드럽게 말했다.“도련님을 좀 봐주시오. 나는 물 한 잔 가져오겠소.”김단이 찻잔을 들고 물을 따르는 순간 소정원의 외침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김단 낭자! 어서 와서 보세요!”갑작스럽게 들리는 큰 목소리에 김단은 놀라 물을 흘리고 말았다.하지만 김단은 물 따위는 신경 쓸 틈도 없이 황급히 침대 옆으로 뛰어갔다.김단은 임학에게 무슨 큰일이 생긴 줄 알았다.하지만 소정원은 임학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보세요. 도련님께서 울고 계십니다.”임학의 눈가에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김단은 그가 혼수상태에 빠졌기에 자신이 했던 말은 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하지만 그의 눈물을 보니 어쩌면 김단이 방금 전에 했던 모든 말들, 즉 그를 향한 분노와 원망, 그리고 그 간절한 바람들이 그의 가슴을 울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소정원은 어리둥절해하며 나
그는 소한의 거침없는 기질이 가끔 부러울 때도 있었다.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얼마나 편할까?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자신이 소한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의 방식대로 소한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대로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삼일 뒤, 김단은 평소처럼 임학의 상태를 보기 위해 진산군 댁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스승이 임학의 맥을 짚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조용히 걸음을 옮겨 침상 곁으로 다가갔다.“스승님, 어떻습니까?”그는 수염을 쓸어내리며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독은 이미 다 해독되었고 맥도 안정적이오. 그래서 호흡도 고르고 안색도 며칠 전보다 훨씬 좋아졌소. 그런데 이상하오. 이쯤 되면 일어나야 하는 게 정상인데 말이지...”김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진맥해보았을 때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깨어나야 할 시점인데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임학을 바라보며 스승은 미간을 찌푸렸다.그 모습을 본 김단은 조심스레 물었다.“스승님께서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신가요?”그는 김단을 한 번 바라보더니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직접 겪은 적은 없지만 예전에 약왕곡 주인께서 비슷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소.”그의 목소리는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이어졌다.“만약 어떤 이가 스스로 죽음을 간절히 바란다면 아무리 육신이 다 나았다 해도 정신은 죽음의 문턱에 머물러 있다고 했소. 우리가 온 힘을 다해 끌어내려 해도 본인이 거부하면 방법이 없다는 뜻이오.”지금 임학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김단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그녀의 시선은 다시금 임학의 얼굴로 향했다.까무잡잡한 피부와 앙상한 빰이 병사의 길을 걸었던 그의 지난 세월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화려한 옷을 입고 도련님이라는 소리를 듣던 진산군 댁의 장남은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돌아왔다.“낭자, 잠시 이 아이를 봐주시오. 나는 약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