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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6 20:58:41

수진은 티맵이 안내하는 낯선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핸들을 꺾었다. 오늘 처음 가보는 곳이라 내비게이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조금 전 주차장에서 본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회전입니다."

안내음을 따라가면서도, 수진의 눈앞엔 자꾸만 그 장면이 되풀이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던 유진희의 손길. 눈물을 흘리던 미래의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걸 감싸던 이상한 공기.

'말도 안 돼. 진원 엄마가 어떻게……'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춘 사이, 수진은 저도 모르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룸미러 속 자신의 얼굴이 낯설 만큼 상기되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수진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진원 엄마가 어떤 사람인데. 대치동에서 제일 우아하고, 제일 흐트러짐 없는 사람이잖아.'

하지만 곧바로 다른 생각이 밀려들었다. 병원도 아닌 곳에서, 그것도 단둘이 탄 차 안에서, 그렇게 얼굴을 감싸 쥐는 게 과연 원장과 환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혹시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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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9. 무엇을 숨기고 있는거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오랜만에 아빠와 함께 거실에서 실컷 먹고 영화를 보며 한바탕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마침내 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거실의 요란했던 열기가 가라앉고, 성웅과 미래도 조용히 침실로 들어섰다.미래는 샤워를 마친 뒤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과 몸에 수분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투명한 크림을 펴 바를 때마다, 저녁에 진희가 보냈던 문자가 스쳐 지나갔다.[오늘 밤에는 수분크림 듬뿍 발라요.]그 짧은 한마디에 심장이 아릿하게 조여왔다. 진희와 헤어지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현실의 벽이 얼마나 높고 단단한지 알면서도, 미래는 그 불가능한 사랑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성웅이 씻고 나왔다.화장대에 앉아 멍하니 크림을 바르던 미래의 뒤로 다가온 성웅이,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그리고 거울 너머가 아니라, 미래를 직접 돌려세워 깊고 차분하게 눈을 맞추었다."미래야…… 너 강아지 아니야."뜬금없는 그 말에 미래가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새벽녘 자신이 던졌던 그 한마디를, 성웅은 잊지 않고 있었다. 성웅은 미래를 화장대 의자에서 일으켜 세워 자신의 품에 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더 말없이 미래의 로브와 슬립을 부드럽게 벗겨내고, 마치 가벼운 인형이라도 되듯 그녀를 번쩍 안아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침대에 조심스럽게 미래를 눕힌 성웅은 그 위로 몸을 겹치며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미래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아주 낮고 정중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늘은 어때?…… 해도 되는 거야?"아내의 의사를 존중하려는 듯 다정하고 배려 깊은 물음이었지만, 지금의 미래에게는 그 태도가 오히려 더 잔인한 족쇄처럼 다가왔다.미래는 성웅의 다정한 눈빛을 마주하지 못한 채,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원하지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것은 남편을 향한 사랑도, 오랜만에 차오른 욕구도 아니었다. 진희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8. 깨진 철칙

    미래가 전화를 받자마자, 진원이가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엄마! 올 때 콜라랑 큰 아이스크림 사다 줘! 아, 그리고 짜파게티도 떨어졌으니까 그것도 같이 사 와야 돼!"이어 수화기 너머로 성웅의 목소리가 겹쳐 들려왔다."미래야, 아직 멀었어? 얘네들 지금 어렸을 때 봤던 스파이더맨 시리즈 다 찾아내서 다시 보겠다고 난리야. 많이 늦니?"진희와 단둘이 있을 때의 달달하고 부드럽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미래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진희는 눈앞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긴장으로 굳어버린 미래의 모습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숨소리마저 조심스럽게 죽인 채, 미래가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요.""그래, 얘네들 그동안 엄마 눈치 보느라 못 먹었던 거 오늘 아주 작정하고 다 먹겠다네. 너무 늦지 않게 들어와."뚝, 하고 전화가 끊어졌다.머릿속으로는 수없이 예상했던 모습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틈에서 살아가는 미래의 일상이 어떨지, 그 그늘이 얼마나 깊을지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화 한 통에 이토록 무력하게 얼어붙는 그녀의 진짜 현실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진희의 가슴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게 무너져 내렸다.'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숨이 막히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구나…….'차 안에는 다시 묵직하고 서늘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래는 스마트폰을 쥔 손을 잘게 떨며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고, 진희는 그런 미래를 말없이 바라보며 씁쓸하게 굳어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엄밀히 말해, 세상의 빛을 받지 못할 이 관계 속에서 진짜 침입자는 자신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역전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온전한 시간을 짓밟으며 들이닥친 진짜 침입자는, 성웅과 아이들이라는 현실이었다.진희는 아무 말 없이 미래를 끌어당겨 자신의 가슴에 푹 안아주었다. 떨리는 작은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차가운 현실의 서늘함이 틈타지 못하도록 그저 묵직하고 따스한 온기로 그녀를 다독일 뿐이었다.한참 뒤,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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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가 끝나고 진희는 땀을 훔치며 대학생들과 가볍게 손을 맞부딪쳤다. 그리고 벤치 쪽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잠깐만요. 물 좀 사 올게요."진희가 편의점으로 뛰어간 사이, 미래는 혼자 차에 올라 조수석에 몸을 기댔다. 손에 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다 녹아 미지근해져 있었다. 창밖으로 아직도 공을 튀기는 대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그 속에서 소년처럼 웃던 진희의 얼굴이, 감은 눈꺼풀 위에 자꾸만 떠올랐다.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리고 진희가 생수 두 병을 들고 올라탔다. 땀에 젖은 머리칼에서 밤공기 냄새가 났다."자, 미래 씨도 하나……."물병을 건네려던 진희의 손이 멈췄다.미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미래 씨?"미래는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떨려 나왔다."미안해요.""…….""나 같은 사람이…… 진희 씨를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그 말과 함께, 참고 있던 눈물 한 방울이 미래의 뺨을 타고 뚝 떨어졌다.진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들고 있던 물병을 조용히 내려놓고, 두 손으로 미래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젖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내가 더 미안해요."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진희는 천천히 몸을 기울여, 눈물이 맺힌 미래의 눈 위에 입술을 내려놓았다. 한쪽 눈에, 그리고 다른 쪽 눈에. 이어 이마에, 다시 젖은 눈가에, 그리고 눈물이 지나간 뺨 위에. 마치 그녀가 흘린 눈물을 하나하나 거두어 가겠다는 듯, 느리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었다.입술을 뗀 진희가 다시 미래의 눈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래는 그 눈을 마주하지 못한 채, 젖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미래 씨. 나 봐요."미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우리 서로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 대신…… 더 사랑해요.""진희 씨, 나 때문에……."미래가 무언가 말하려던 그 순간, 진희는 조용히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 더 이상 아픈 말을 꺼내지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6. 엇갈린 계절

    살랑이는 밤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기를 잠시, 눈에 익은 하늘색 차 한 대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미래는 자연스럽게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바로 그 순간, 길 건너 양재천 산책로 쪽에서 걸어오던 한 여자의 걸음이 멈췄다. 작년 5학년 때 진원이와 같은 반이었던 윤지 엄마였다.커피 두 잔을 들고 하늘색 차에 올라타는 뒷모습. 그 익숙한 실루엣에, 윤지 엄마의 눈이 커졌다.'어? 진원 어머니 아니야?'윤지 엄마는 걸음을 멈춘 채 멀어지는 미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러고 보니 진원 엄마, 길거리에서 보면 더 확 튀게 곱단 말이지…… 애 엄마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분위기도 젊고. 근데 저 표정 봐,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네. 저렇게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가?'커피 두 잔을 들고 차에 오르는 뒷모습에서부터, 숨길 수 없는 설렘과 생기가 묻어났다. 윤지 엄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출발하는 차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아, 진원 아버님이랑 데이트 가시나 보다. 진원 아버님이 저런 하늘색 타이칸 같은 튀는 차를 타셨었나? 평소엔 점잖은 세단만 타시는 줄 알았는데, 차가 아주 멋지네…….'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윤지 엄마의 시선 뒤로, 두 사람을 태운 타이칸은 밤의 거리 속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미래가 조수석에 타자마자, 진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미래의 손을 꽉 잡았다. 차가 부드럽게 도로를 빠져나가는 동안 진희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몇 시까지 있어요?""음…… 10시 정도까지만 들어가면 돼요."그 말에 진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신호 대기 중에 미래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오늘 보고 싶은 거 어떻게 참았어요?"미래가 뺨을 살짝 붉히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저 그래서 안 참았잖아요."그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대답에, 진희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 미래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우리 아가씨,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요?"달달한 공기가 차 안을 가득 채우던 그때, 진희가 무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5. 반칙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수진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아~ 그 언니요? 저 이사 오고 한 달 뒤에 이사 왔어요. 이사 온 사람끼리 금방 친해졌죠, 뭐.""아…… 그래?"유진맘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하긴…… 생각해 보니까 둘이 뭐 그런 사이인 건 말도 안 되지. 이 동네가 어떤 동네인데 그런 위험한 짓을 해? 게다가 진원이 아버님이 또 얼마나 젠틀하고 완벽한 남편이야. 아이구~ 유진희 원장, 사람이 너무 친절해도 문제네, 문제야."유진맘이 이마를 짚으며 웃자, 민서맘도 맞장구를 쳤다."그러게요, 언니! 우리가 맨날 유 원장한테 '누구는 무슨 시술해요?', '우리도 똑같이 해줘요', '결혼은 왜 안 하셨어요?' 하고 막 세게 들이대니까, 우리한테는 안 그러나 봐요.""그러네, 그런가 보다!"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진맘이 장난스럽게 웃었다."흥, 다음에는 우리도 유진희 원장 눈웃음 좀 제대로 받게 들어가서 아주 살살 물어봐야겠네."옆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수진은 속으로 식은땀을 닦아내며 애써 태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대치동을 뒤흔들 뻔한 거대한 스캔들은 한바탕 해프닝과 수진의 기막힌 엄호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하지만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완벽한 알리바이로 덮으려 해도 결국 터져 나오고야 마는 법이다. 세상에 숨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던가. 기침과, 가난과, 그리고 사랑.가까스로 눈앞의 불길을 껐다고 안도하는 그 순간에도, 미래와 진희가 서로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그 뜨거운 눈빛과 스치듯 닿는 손끝의 온기만큼은, 철옹성 같은 대치동의 시선 속에서 언제 터질지 모를 위태로운 불씨처럼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오랜만에 가족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은 저녁이었다. 서윤의 시험이 끝난 홀가분한 분위기 속에, 평소 바쁘던 성웅도 일찍 들어왔고 진원 역시 학원을 일찍 마치고 합류해 집안은 온통 들뜬 기분으로 가득 찼다."엄마, 우리 오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74. 일촉즉발

    "아, 왜 계속 통화 중이야……!"결국 전화를 포기한 유진맘은 답답한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파트 상가 지하에 있는 마트로 차를 돌렸다. 마트 옆 작은 커피숍 테라스 쪽을 지나치던 그녀의 눈에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왔다. 민서맘을 비롯해 지호·지원 엄마인 최수진, 그리고 반 여자아이 엄마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마침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는 분위기였다."어머, 유진 어머니~!""안녕하세요!""담에 뵐게요.""안녕히 가세요."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헤어지려던 찰나, 유진맘은 다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민서맘의 팔을 덥석 잡았다. 민서맘과 수진은 다음 주에 있을 여자아이들 인라인 스케이트 수업 간식 담당 건으로 이야기를 마저 나누던 참이었다."민서맘! 나 좀 잠깐만 봐봐. 숨 좀 돌리고…… 자기 저번에 진원맘이랑 월드베스트피부과 유진희 원장이랑 뭔가 묘하다고 했었지? 나 그거 오늘 진짜로 봤어!"그 순간, 옆에서 가방을 챙기던 수진의 손이 멈췄다.'……안 돼.'수진의 머릿속에, 며칠 전 아침 주차장에서 본 두 사람의 모습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민서맘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네? 오늘요? 어디서요?""나 지금 피부과 다녀오는 길인데, 시술실 문이 살짝 열려 있더라고. 처음엔 그냥 진원맘이 누워 있길래 시술받나 보다 했는데, 글쎄……!"유진맘은 흥분해서 말을 잇다가, 곁에 서 있던 수진의 눈치를 슬쩍 살피며 목소리를 낮췄다."유진희 원장이 진원맘 베드 옆에 딱 붙어 앉아가지고 직접 머리를 귀에 꽂아주고 있는데, 눈빛이 아주 그냥…… 꿀이 떨어지다 못해 달달해 죽으려고 하더라고! 자기가 저번에 얘기했던 그 묘한 분위기, 그거 진짜 맞는 거지?!"수진은 자기가 들킨 것도 아닌데 심장이 쿵 하고 떨어져 내려, 하마터면 숨이 멎을 뻔했다. 등골이 오싹하게 서늘해지며 머릿속에서 비상벨이 울렸다. 여기서 유진맘의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면, 대치동 한복판에 폭탄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였다.수진은 바짝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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