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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 사냥꾼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1 18:11:02

성웅은 잠시 숨을 고르며 시술실 안으로 들어와, 차가운 베드 위에 몸을 눕혔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진희의 손이 성웅의 피부 위를 스쳤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기는 시술실의 건조함과는 전혀 달랐다. 성웅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진료실에서 목격했던, 미래와 진희 사이의 그 숨 막히는 눈빛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설마…… 내 아내가, 이 남자와?'

그렇게 되뇌어 보았지만, 성웅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진희가 조용히 레이저 기기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

"조금 따끔할 수 있습니다. 힘 빼세요, 박 대표님."

그 다정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한 목소리를 들으며, 성웅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성웅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의심을 터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위험한 줄타기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감은 그의 턱 끝이 단단하게 굳었다. 사냥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서늘하고 예리한 기운이 베드 위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진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숨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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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92. 사냥꾼

    성웅은 잠시 숨을 고르며 시술실 안으로 들어와, 차가운 베드 위에 몸을 눕혔다.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진희의 손이 성웅의 피부 위를 스쳤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를 채우고 있는 공기는 시술실의 건조함과는 전혀 달랐다. 성웅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진료실에서 목격했던, 미래와 진희 사이의 그 숨 막히는 눈빛이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설마…… 내 아내가, 이 남자와?'그렇게 되뇌어 보았지만, 성웅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진희가 조용히 레이저 기기를 조작하며 입을 열었다."조금 따끔할 수 있습니다. 힘 빼세요, 박 대표님."그 다정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한 목소리를 들으며, 성웅은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성웅은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의심을 터트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 위험한 줄타기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눈을 감은 그의 턱 끝이 단단하게 굳었다. 사냥감을 앞에 둔 사냥꾼처럼, 서늘하고 예리한 기운이 베드 위를 무겁게 내리눌렀다.진희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다. 숨기려 애쓰는 기색조차 없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늘 품고 있던 그 뜨겁고 절박한 감정을, 진료실에서부터 이 시술실까지 성웅 앞에서도 그대로 품은 채였다. 의사의 가운 아래, 미래를 향한 마음만큼은 조금도 감추려 들지 않는 그 대담함이, 레이저 팁의 미세한 온도에 실려 성웅의 피부를 정면으로 찔러댔다.의심을 품고 상대를 도려내려는 남자와, 숨길 생각조차 없이 제 감정을 그대로 내보이는 남자. 두 사람의 엇갈린 시선이 시술실 안의 공기를 무겁게 조여들었다.시술을 먼저 마친 성웅은 가볍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미래가 주사를 맞고 있는 베드 쪽으로 다가갔다.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지친 기색으로 누워 있는 미래를 잠시 내려다보던 성웅은, 아무 말도 얹지 않고 그대로 시술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로비를 나선 그는 대기하고 있던 박 기사의 차에 올라 곧장 회사로 향했다.달리는 차 안에서, 성웅은 미래에게 짧은 문자를 남겼다.[나 시술 끝나서 먼저 가.]주사실 베드에 누워 있던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91. 포착

    다음 날 아침, 무겁고 서늘한 공기가 내려앉은 식탁 위. 성웅이 무심하게 툭 던졌다."오늘 예약 10시였지? 피부과에 영양 주사도 따로 있잖아. 그것도 좀 맞아."미래는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말이 없다는 것은 곧 알았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얹고 싶지 않은 무기력함의 표현이기도 했다.성웅은 곧바로 전화를 들어 김 상무에게 간단한 업무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이내 외출 준비를 마친 미래를 재촉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피부과 VIP 진료실 앞. 성웅은 자연스럽게 미래의 어깨를 감싸듯 이끌며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그곳은 다름 아닌, 유진희의 진료실이었다.미래의 발걸음이 그 자리에 멎었다. 성웅과 함께 저 문 안으로 들어가 진희와 마주한다는 것. 그것은 지옥 불길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같아 머뭇거렸지만, 어깨를 감싼 성웅의 손에 은근히 힘이 실렸다. 미래는 결국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문 안으로 발을 디뎌야 했다.진료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역류하듯 걷잡을 수 없는 기억들을 미래의 머릿속으로 쏟아부었다.이 하얗고 정제된 공간.처음 이곳에 와서, 떨리는 마음으로 진희에게 무릎 소독을 받았던 그 아찔했던 순간.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던 그날, 진료실 커튼 안쪽에서 숨소리마저 죽이며 두근거렸던 기억.진희가 부드럽게 눈을 맞추며 '모범 환자'라고 장난스럽게 건네던, 그 다정한 목소리.그리고 그보다 훨씬 앞서, 멈춰버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서로의 향기와 숨결만으로 '바로 이 사람'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채고 벼락을 맞은 듯 아찔했던, 그 첫 만남까지.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머릿속을 스치는 모든 장면들이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파고들었다.이토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깃든 공간에서, 이제는 남편의 눈치를 보며 그 남자의 아내로 마주 앉아야 한다니. 미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숨을 겨우 삼키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움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90. 추적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을 움켜쥔 채, 수진의 온몸으로는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월요일 아침이 밝았지만, 미래의 마음에는 여전히 서늘하고 무거운 기류가 가라앉아 있었다. 몸의 열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가슴속에 깊이 패인 열병은 오히려 더 걷잡을 수 없이 곪아들고 있었다.식탁 위에는 팽팽한 침묵이 감돌았다. 성웅은 수저를 들며 미래를 힐끗 바라보았다. 몸은 다 나았다고 하지만, 어딘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하지만 성웅은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수저를 드는 척, 국을 뜨는 척하면서 미래의 얼굴을 낱낱이 읽고 있었다. 그날 밤 품 안에서 느꼈던 그 낯선 온도. 아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반드시 표정 어딘가에 균열이 날 것이었다.성웅이 무심히 국을 한 술 뜨며 입을 열었다."그러고 보니 내일 피부과 예약이던데."성웅은 국을 뜨던 수저를 멈추고, 미래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그 유 원장한테."미래의 젓가락 끝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네.""그날 고마웠다고 인사라도 해야겠네. 주말에 일부러 집까지 와줬잖아."성웅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하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미래는 시선을 밥그릇에 떨군 채, 겨우 대답했다."……저도 같이 예약되어 있어요.""그래? 언제 했어?"짧은 질문이었다. 미래의 목이 바짝 말랐다."……지난번에, 화상 치료 받으러 갔을 때요.""그래."성웅은 그 이상 묻지 않고 다시 국을 떴다. 묻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그때, 식탁 분위기를 깨며 서윤이 반짝이는 눈으로 성웅을 보며 졸랐다."아빠! 나도 제주도 요트 타야 하잖아. 언제 가?"성웅은 딸의 투정에 피식 웃으며 여유롭게 대답했다."그래, 아빠가 지금 일정 조율하고 있어. 내일까지 확실하게 알려줄게. 근데 우리 서윤이, 미국 갈 준비는 차근차근 잘하고 있어? 예방접종도 해야해."서윤이 콧잔등을 찡긋하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하고 있어!"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89. 퍼즐 조각

    성웅이 나간 뒤 조용해진 방 안, 그 정적을 깨듯 미래의 핸드폰 화면이 짧게 빛났다. 조심스럽게 울린 알림창에는 진희가 보낸 문장이 떠 있었다.[몸은 좀 어때요? 열은 내렸어요? 같이 있고 싶은데…… 비겁하게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네요.]그 짧은 문장들 속에는 진희가 꾹꾹 눌러 담은 애타는 마음과, 그 어떤 행동도 쉽게 취할 수 없는 현실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진희 역시 자신처럼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다는 걸 알기에, 미래의 가슴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더 이상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소리 내어 울면 거실에 있는 성웅이나 아이들에게 들릴까 봐, 미래는 헐떡이는 숨을 삼키며 핸드폰을 꼭 쥐고 욕실로 뛰어들었다.욕실 문을 잠그자마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샤워기를 틀자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가 온몸을 적셨지만, 밀려오는 서글픔과 시린 통증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바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 품에 안겨 있었는데…… 오늘부터 나는, 마음속으로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거구나.'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사랑이었기에 끝내는 것이 맞다고 되뇌었지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내가 정말 이 사람과 헤어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진희 없는 세상에서 숨을 쉬고, 남편의 아내로, 아이들의 엄마로 평생을 살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 당장 이 집을 뛰쳐나가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충동이 온몸을 지배했다. 비를 맞아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 미쳐버릴 것 같은 그리움 때문에, 열이 다시 펄펄 끓어오르는 것만 같았다.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미래는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이름조차 마음대로 부를 수 없는 사람을 향해 찢어지는 마음을 삼키며 오열하고 또 오열했다.같은 시각, 대치동 골드스위스 수영장에서는 선수반 아이들의 수영 심사가 한창이었다. 관중석 한쪽에는 6학년 아이들의 심사를 지켜보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대치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88. 주사 자국

    해열제를 삼키고 수액을 맞은 덕분에, 펄펄 끓던 열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미래는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며 눈을 떴다.팔 안쪽에 남아 있는 주사 바늘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아…….'몽롱한 열병 속에서 제 손을 꽉 잡고 이마를 쓸어내리던 그 손길은, 꿈이 아니었다. 정말로 진희가 이곳에 왔던 것이다. 이 차가운 성벽 같은 펜트하우스 안까지 찾아와, 앓고 있는 자신을 돌봐주었던 거였다.미래는 팔에 붙어 있던 반창고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침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거실의 커다란 소파 쪽에서 영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웅과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고 있었다. 성웅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시선을 TV 화면에 고정한 채로 무심하게 툭 던졌다."미래야, 어떠니? 좀 괜찮니?"말뿐인 안부였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 순간, 아이들이 엄마의 기척을 알아채고 와르르 달려왔다."엄마! 많이 아팠어?"진원이 쪼르르 달려와 미래의 품에 왈칵 안겼다. 그러고는 익숙하다는 듯 작은 손을 미래의 이마에 척 얹었다."아빠! 엄마 머리 이제 안 뜨거워! 다 나았나 봐!"미래는 아이를 품에 안으며 허리를 숙여 겨우 목소리를 냈다."응, 진원아. 엄마 이제 괜찮아."그리고 소파 쪽을 향해 덧붙였다."네…… 훨씬 좀 낫네요."그때, 주방 쪽에서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던 정례가 부랴부랴 다가왔다. 성웅을 의식한 듯, 정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변명처럼 입을 열었다."아이고, 사모님! 아까 열이 펄펄 끓어서 제가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몰라요! 다행히 아파트 로비에서 우리 유 원장님을 우연히 만나 가지고, 제가 사정사정해서 부탁드렸더니 이렇게 직접 오셔서 주사까지 놔주고 가셨지 뭐예요."성웅의 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꽂힌 채 미동도 없었다. 하지만 정례는 그 굳은 등이 신경 쓰여, 진희가 '자신의 부탁으로 마지못해 온 것'임을 자꾸만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미래의 심장

  • 대치동에 미래가 없다   187. 결투

    수액이 잘 들어가자, 정례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하루빨리 진희를 이 집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정례는 슬며시 다가와 안절부절못하며 눈짓을 보냈다."원장님, 주사 다 놓으셨으면 이제 그만 가보셔요.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시네요……."하지만 그 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웅이 불쑥 나서며 가로막았다."아, 이모님. 잠깐만요."성웅은 서늘하고도 차분한 눈빛으로 진희를 향해 나직하게 말했다."유 원장님, 이 시간에 우리 미래 때문에 발걸음 하셨는데, 차 한잔 정도는 나누고 가시죠."단순한 예우가 아니었다. 아내를 바라보던 진희의 눈빛에서 스치듯 지나간 그 묘한 온기가, 성웅의 날카로운 직감에 걸렸던 것이다.진희는 순간 멈칫했으나, 이내 평정을 가장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러죠."성웅이 거실 소파로 자리를 권하자, 정례는 피가 바짝 마르는 심정으로 주방으로 뛰어갔다.'아이고, 미치겠네! 저 양반이 왜 저러는 거야……!'정례는 손을 덜덜 떨며 얼음을 꺼내 허겁지겁 시원한 녹차를 타서 거실 테이블 위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차…… 시원한 녹차예요. 드세요, 원장님."성웅은 잔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부드럽지만 속을 파고드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우리 아내 아프다고 한걸음에 달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평소에도 미래가 원장님 병원 다니면서 도움 많이 받는 것 같던데, 이렇게 사석에서까지 신세를 지네요."말로는 감사를 표하고 있었지만, 성공한 50대 사업가 특유의 관록 있는 눈매는 진희의 얼굴을 낱낱이 훑고 있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숨기고 있는지 꿰뚫어 보려는, 무서울 만큼 집요한 시선이었다.마주 앉은 진희의 입가에 옅고 서늘한 미소가 스쳤다.차를 마시고 가라는 그 짧은 권유는, 겉보기엔 호의적인 예우였으나 진희에게는 분명한 선전포고로 다가왔다. 내 울타리 안에 함부로 발을 들인 남자가 누구인지 똑똑히 확인해 주마, 하는 무언의 압박이었다.하지만 진희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속으로 서늘한 흥미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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