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티셔츠와 검은색 긴 바지를 입은 소년이었다. 엄수아는 그가 진세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진세윤과 조군익은 세경대의 두 킹카로 불렸다. 조군익은 햇살처럼 밝고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이었고 많은 여학생들이 그의 팬이었다. 하지만 진세윤은 차가운 성격에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여학생들은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밤이 되면 여학생 기숙사에서는 그에 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엄수아는 진세윤을 바라보았다. 진세윤이 흉악범을 홱 잡아당기자 흉악범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음흉한 표정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죽고 싶어. 감
진세윤은 위치를 알려주었다.“사람은 기절했어요... 쓸데없는 소리 말고 포상금이나 제 계좌로 보내세요...”엄수아는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얼른 그의 재킷을 입어 드러난 몸을 가리고는 택시를 짚고 일어나 진세윤에게 고마움을 전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멀리서 익숙하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수아야! 수아야! 어디 있어?”지서현이었다.엄수아가 다시 뒤돌아보았을 때 진세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어쩜 저렇게 빨리 갈 수 있지? 고맙다는 인사도 직접 전하지 못했는데.’...하승민과 지서현이 찾
‘이 경찰관은 진세윤을 찾는 건가? 설마 아까 진세윤이 이 경찰에게 전화를 건 거였나?’엄수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갔어요.”경찰관은 더 묻지 않고 말했다.“빗방울 살인마는 저희가 데려갑니다. 내일 아가씨는 조서 작성에 협조해주십시오.”“알겠습니다.”엄수아가 대답했다.“지금 장마라 소나기가 곧 올 것 같으니 이런 날씨에 돌아가긴 위험합니다. 바로 앞에 휴게소가 있으니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옷 갈아입으세요. 감기 걸리지 마시고요.”경찰관은 친절하게 당부했다.하승민, 지서현, 엄수아는 다 젖은 데다 늦가
지서현은 맑고 투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살짝 올려 미소 지었다.“하 대표님 주변엔 사장님들이 많잖아요. 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 좀 해 주세요.”하승민은 그녀를 흘끗 보더니 시선을 돌리고 목에 맨 넥타이를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덤덤하게 말했다.“괜찮은 사람 있으면 소개해 줄게.”“고마워요. 하 대표님.”그때 욕실 문이 열리고 재빨리 샤워를 마친 엄수아가 나왔다.“서현아, 얼른 들어가서 씻어.”지서현은 사양하지 않고 욕실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씻은 사람은 하승민이었다. 그가 욕실에 들어갈 때쯤 지서
지서현과 엄수아는 한 이불 속에 폭 파묻힌 채 잠들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엄수아가 물었다.“서현아, 너 그런 남자 만나본 적 있어?”“어떤 남자?”엄수아의 머릿속에 짧은 머리의 잘생긴 얼굴이 떠올랐다.“차갑고 터프한데 싸움도 잘하고... 좀 무섭기도 한...”지서현은 옷걸이에 걸린 검은색 야구 점퍼를 바라보았다. 원래 엄수아가 입고 있었는데 조심스럽게 걸어 둔 걸 보니 엄수아를 구해 준 남자 옷인 게 분명했다.지서현은 웃으며 말했다.“진세윤 그 킹카를 말하는 거야?”엄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맞아.”
여자들의 감정은 참 단순했다. 진심에 진심으로 답하면 그만이었다.그러니 엄수아와 지유나는 평생 친구가 되긴 글렀다.하승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에서 따뜻한 수건을 가져와 지서현의 상처에 조심스럽게 얹었다. 이렇게 찜질하면 훨씬 나아질 것이다.하승민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때 휴대폰이 밝게 빛났다. 지유나에게서 온 문자였다.유명 브랜드에서 몰래 진행한 패션쇼에 나왔던 섹시 란제리 사진이었다.[맘에 들어?]지유나는 그에게 마음에 드는지 물었다.두 사람이 다시 만난 이후 지유나는 예전처럼 까탈스럽지 않고 훨씬 더 말을 잘
쿵!잠자던 하승민은 침대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승민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게 발로 차여 침대에서 떨어지다니. 그는 엄수아를 향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막내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엄수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오빠, 서현이랑 이혼했으면서 왜 서현이를 안고 자는 거야?”막 잠에서 깬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굳어 있었다. 엄수아의 말에 그도 깜짝 놀랐던 것이다.‘내가 지서현을 안고 잤다고?’“방금 오빠 손이 서현이 어깨를 감싸고 있었어. 품에 꽉 안고 자고 있었단 말이
엄수아는 사람들을 헤치고 조군익과 하은지 앞으로 나아갔다.엄수아를 보자 하은지는 겁먹은 표정으로 조군익의 뒤에 숨었다.“수아야, 제발 때리지 마... 흑흑.”조군익은 하은지를 감싸며 엄수아를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엄수아, 또 뭘 하려는 거냐?”엄수아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었다. “하은지, 너 나한테 맞는 게 그렇게 무서워? 너도 상간녀는 맞아도 싸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야?”상간녀?주변 학생들은 숨을 들이쉬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엄수아는 왜 하은지를 상간녀라고 하는 거지?”“엄수아랑 조군익은 무슨 관계야?”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
하승민의 잘생긴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누가 준 거야?”지서현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남자친구요!”남자친구?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지서현이 전에도 남자친구가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이제 그 남자친구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네 그 돈 많은 남자친구 말이야?”“네. 맞아요.”하승민은 냉소했다.“비싼 차를 몰고 좋은 집에 살게 해주다니 돈 좀 쓰는 모양인데. 해성이 좁은 동네인데, 도대체 네 남자친구가 누군지 감도 안 잡히네.”지서현은 입꼬리를 올렸다.“하 대표님, 내 남자친구가 누군지 모
지서현은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그러나 하승민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서현, 나한테 할 말 없어?”지서현은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할 말?”하승민은 입술을 깨물었다.“네가 몰고 다니는 고급 차,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 다 어디서 난 거야? 누구 돈 쓴 거냐고.”지서현은 가녀린 등을 꼿꼿이 펴고 말했다.“하 대표님, 어쨌든 당신 돈은 안 썼으니까 상관없잖아요. 더는 말씀드릴 게 없네요.”지서현은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승민의 큰 키는 마치 벽처럼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살짝
이윤희와 지예슬은 지유나가 바닥에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급히 달려가 그녀를 구하려 했다.“당장 유나를 놔줘!”“세 번째 경고입니다. 이제 내보내겠습니다!”결국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는 모두 제성아파트에서 쫓겨났다. 쾅 소리와 함께 제성아파트의 대문이 그들 앞에서 닫혔다.세 사람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그들은 이런 수모를 당해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지유나는 하승민과 함께 다니면서 항상 환대받았는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 쫓겨나다니, 생전 처음이었다.지예슬도 화가 났다.“다 서현이 때문이야! 유나야, 도대체 어떻게
이윤희가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님 미행 안 했다고 하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잖아!”“너 진짜 무섭다. 승민 오빠가 9층에 사는 것까지 알고 있었어? 너 완전 스토커잖아. 정신병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야?”지서현은 하승민을 쳐다보며 물었다.“하승민, 9층에 살아요?”하승민은 901호 문패를 가리켰다.“나 여기 살아.”“아.”지서현은 902호 문 앞으로 가서 비밀번호를 눌렀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지서현이 902호에 산다고?정말 제성
‘아니, 그럴 리가?’하승민은 스스로가 우스웠다. 어떻게 지서현을 그 눈부시게 아름다운 동연당 설립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을까?‘하 대표님, 저 좀 태워다 주시겠어요?'방금 지서현이 차 밖에서 자신을 태워달라고 했었다. 하승민은 웃음이 나왔다. 자기 차가 있으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하다니, 분명 지유나를 약 올리려는 것이었다.자신을 놀리려는 의도도 있었다.지서현은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그때 지유나, 지예슬, 이윤희가 차에 올라탔다. 지유나는 조수석에, 지예슬과 이윤희는 뒷좌석에 앉았다. 하승민은 액셀을 밟았고 롤스로
지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때 마침 새로 산 차가 도착했다.“난 여기서 차 기다리고 있었어. 이만 가볼게.”“차를 기다려? 택시?”지유나가 웃었다.“서현아, 병원 앞에서 택시 잡기 힘들 텐데?”지서현은 평소에 택시를 타고 다녔기에 지유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지예슬은 지서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서현아, 넌 정말 한심해. 다른 선배들은 다들 집도 있고 차도 있는데, 넌 아직도 택시 타고 다니잖아. 천재 소녀라는 말이 아깝다.”이윤희는 지예슬의 팔을 잡아당겼다.“예슬아, 그만해. 서현이도 불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