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하승민은 발코니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유정우가 지서현에게 샤넬 한정판 가방을 건넸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지서현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유정우 씨에게 제가 가방을 좋아한다고 말한 거예요?”하승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아닌가? 내가 알기론 넌 가방 좋아하던데.”지서현은 그 대답에 피식 웃더니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아니, 전 안 좋아해요. 전 더 비싼 걸 좋아하죠. 다이아몬드 목걸이 같은 거? 그러니까 다음엔 유정우 씨한테 다이아 목걸이를 사라고 말씀하세요.”하승민의 잘생
하승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말씀하세요.”“10년 전, 왕우현 씨는 아동 성추행 및 학대, 강간 미수 혐의로 수감되었습니다.”서류 위에 서명하던 하승민의 손이 뚝 멈췄다.금세 정신을 차린 하승민은 충격에 휩싸여 조현우를 올려다보았다.“그 피해자가... 설마 지서현인가?”조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사모님의 양아버지, 왕우현은 끔찍한 인간쓰레기입니다.”하승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눈빛엔 날이 섰다.그는 오래전부터 지서현과 그녀의 양아버지 사이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다고 느꼈다.하지만
왕우현은 흰색 봉고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는데 가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거리며 보았다.그곳에 지서현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왕우현은 운전을 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훑었다.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하지만 만약을 위해, 우선 이곳을 떠나는 것이 급선무였다.어느 누구도 모를 곳으로 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지서현은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왕우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서현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뜨거워졌다.그
쫙!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서현의 피부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그 순간 끔찍했던 기억이 그녀를 무자비하게 과거로 끌고 갔다.그때도 바로 이곳과 같은 음습한 동굴 속에서 지서현은 왕우현에게 짓눌려 있었다.그의 불결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다가왔고 온몸이 공포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그때의 어린 지서현은 죽어가고 있었다.기댈 곳이 하나도 없던 지서현은 속으로 애타게 하승민을 외쳤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그런데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왕우현의 몸이 지서현의 위로 내려앉았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절
하승민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차, 롤스로이스의 조수석에 내려놓았다.그는 곧 핸들을 잡고 부드럽지만 힘 있는 움직임으로 엑셀을 밟았다.차는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조용한 차 안,지서현은 온몸을 그의 넓은 코트 속에 묻고 있었다.따뜻한 온기, 그리고 하승민에게서 은은하게 퍼지는 깨끗하고 시원한 향.지서현은 작은 코끝을 붉히며 조용히 그 향을 들이마셨다.마음 한구석이 이상한 감정으로 출렁였다.사실 하승민은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빠르게 현장으로 도착했다.지서현은 고개를 돌려
하승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서현과 함께 방으로 향했다.지서현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아까 사장님이 말한 유료 물품이 뭐였을까요?”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 말에 하승민은 잠시 지서현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하승민이 너무 이상했지만 지서현은 별생각 없이 그냥 궁금함을 접었다.503호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은 예상보다 깔끔했지만 문제는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지서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이 침대에서 오늘 같이 자야 하나? 어떻게 그래?’당
하승민 이미 씻고 나온 상태였으니 소아린의 음성 메시지를 다 들은 상태였다.지서현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아니, 하 대표님. 그게 아니라...”너무 당황한 탓에 지서현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침대 위에 떨어졌다.그 바람에 소아린의 음성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 대표님 몸도 정말 좋아 보이고 선명한 복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하 대표님 손가락도 길잖아. 소문에 의하면 손가락 긴 남자는 침대 위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들었어. 서현아, 이번엔 하 대표님이랑 자봐!]변명이라도 하려던 지서현은 다시 말문이 막혔
옆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고 점점 더 거리낌 없이 커져 갔다. 이래서야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는가?하승민은 손을 들어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으로 벽을 두드렸다.똑똑!그러자 옆방의 소리가 바로 작아졌고 하승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하지만 잠은 전혀 오지 않았다. 젊고 혈기 왕성한 몸이 이런 환경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바로 옆에는 지서현이 누워 있었고 부드러운 향기가 옅게 풍겨왔다. 머릿속에는 저절로 그날 밤 서원 별장의 안방에서 그녀를 벽에 밀어붙이고 손을 강제로 움켜쥐었던 장면이 떠올랐다.그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진세윤 아빠가 마약상이라던데?”양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어. 진세윤은 마약상 아들이야. 게다가 엄마는 눈이 안 보이고 중학생 여동생도 하나 있는데 집안 형편이 말도 아니래. 그런데 마약상 아버지, 눈먼 어머니, 공부하는 여동생, 망가진 진세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내 도전 의식을 자극하더라. 하하.”양지혜와 주변 여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진세윤의 가정을 비웃고 있었다.엄수아는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예쁜 눈으로 양지혜 일행을 쏘아보았다.“그만 좀 웃으시죠?”엄수아의 갑작스
하승민은 답장하라고 명령했다.지서현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누군데 명령하는 거지? 회사 사장인가? 왜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지서현은 다시 한번 무시했다.운전석에 앉은 소문익이 웃으며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랑 이혼은 했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네. 하 대표 그 녀석이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은 것 아니야?”지서현이 대답했다.“글쎄요.”소문익이 말을 이었다.“매장에서 내가 네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때 하 대표 눈빛이 내 손을 잘라버릴 듯하던데. 서현아, 네 가짜 남자친구 노릇하는 것도 쉬
지동욱과 강미화는 예비 사위 C 신에게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예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C 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지예슬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C 신?”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없는 번호라고?’지예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지예슬은 곧바로 카톡을 열어
C 신이 여자라고?박경애와 지예슬은 얼어붙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서 물었다.“소문익 씨, 무슨 말씀이세요? C 신이 어떻게 여자예요? 저랑 사귀는 사람인데, 남자라고요!”소문익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저는 C 신과 아는 사이일 뿐만 아니라 친분도 두텁습니다. 제가 여자라고 하면 여자인 겁니다.”지예슬은 충격적인 소식에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소문익 씨. 분명 거짓말이죠!”박경애 또한 믿고 싶지 않았다.“소문익 씨, 지금은 서현이 남자친구라고 해서 그런 말도
지유나도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녀는 지서현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던진 후 탈의실로 들어가 치마를 입어보았다.곧 지유나는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이윤희와 지예슬은 감탄했다.“유나야, 정말 아름답구나!”지유나는 레이스 치마를 입으니 아름다웠지만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허리가 너무 조였던 것이다.방금 탈의실에서도 숨을 꾹 참고 겨우 지퍼를 올렸다.지유나는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하승민 앞에서 한 바퀴 돌았다.“승민 오빠, 나 예뻐?”하승민은 지유나를 보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윤희가 칭찬을 쏟아냈다.“우리 유나가
지유나는 하승민에게 지서현이 입고 있는 치마를 사달라고 졸랐다.지서현에게 지기 싫은 승부욕은 그녀를 끊임없이 자극했다. 지서현에게 주목이 쏠리는 게 싫었던 지유나는 그 치마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다.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온천에 갔을 때도 지유나는 지서현의 옷을 빼앗으려 했었다.하승민은 지서현을 바라보았다.그때 소문익이 지서현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규칙이죠. 안 그렇습니까?”하승민의 시선은 소문익의 손에 꽂혔다. 아까 소문익이 지서현의 어깨에
지유나, 지예슬, 그리고 이윤희도 마치 따귀를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지서현은 하승민을 바라보았다.“하 대표님, 이제 제 말 믿으시겠죠?”그녀의 맑은 두 눈은 영롱하게 빛났고 소문익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에 하승민의 잘생긴 얼굴은 먹구름이 낀 것처럼 어두워졌다.‘이 요망한 여자가! 소문익까지 자기 치마폭에 둘러싸다니, 정말 대단한 여자야!’“서현아, 너 쇼핑하러 온 거잖아. 어때? 마음에 드는 원피스 있어?”점원은 곧바로 레이스 원피스를 가져왔다. “이 원피스가 손님께 아주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지서현은 고
소문익이 왔다.지유나 일행은 어제 동연당에서 소문익을 만났었기에 오늘 다시 만나자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소문익은 지서현 옆으로 다가왔다.“서현아, 잠깐 전화 받느라 밖에 나갔었는데 무슨 일 있었어? 뭔가 재밌는 걸 놓친 것 같은데.”지서현은 붉은 입술을 끌어올렸다.“아니. 타이밍 딱 맞춰서 잘 왔어. 다들 내 남자친구인 당신을 보고 싶어 했거든..”지서현은 소문익에게 눈짓했다.소문익은 바로 눈치채고 지서현의 가녀린 어깨에 팔을 둘렀다.“이분들은?”지서현은 한 명씩 소개했다.“이분은 지씨 가문 어르신, 이윤희 씨, 지
지예슬은 곧바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붉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서현아, 부러워할 것 없어. C신은 내 남자친구야. 우리 곧 결혼할 거라고.”지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재산이 열 배로 늘었다며? 그럼 그 돈은 어디 있어? 그 C신이라는 사람이 언제 준다고 했어?”박경애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게...”“말 안 했나 보네요. 돈이 들어온 것도 아닌데 C신이 열 배든 백 배든 마음대로 말할 수 있겠죠. 아까도 말했지만 그 C신이라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알아서들 하세요.”지예슬은 곧바로 화를 냈다. 남자친구가 C신이라는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