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오늘 밤 네가 직접 1억을 내 손에 가져와. 그렇지 않으면 내일 너의 사진이 해성 전역에 퍼질 거야. 오늘 밤, 난 지서현 너만 기다릴 거다.”왕우현은 이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수화기 너머 지서현은 휴대폰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하승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양아버지랑 통화하고 있었어?”익숙한 소리에 지서현이 뒤를 돌아보자 하승민이 어느새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그의 시선은 지서현의 손에 들린 상자에 머물렀다. 이윽고 키가 크고 듬직한 하승민의 실루엣이 그녀 앞
방금 전, 하승민은 발코니에 서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유정우가 지서현에게 샤넬 한정판 가방을 건넸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지서현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이 유정우 씨에게 제가 가방을 좋아한다고 말한 거예요?”하승민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대답했다.“아닌가? 내가 알기론 넌 가방 좋아하던데.”지서현은 그 대답에 피식 웃더니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아니, 전 안 좋아해요. 전 더 비싼 걸 좋아하죠. 다이아몬드 목걸이 같은 거? 그러니까 다음엔 유정우 씨한테 다이아 목걸이를 사라고 말씀하세요.”하승민의 잘생
하승민은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말씀하세요.”“10년 전, 왕우현 씨는 아동 성추행 및 학대, 강간 미수 혐의로 수감되었습니다.”서류 위에 서명하던 하승민의 손이 뚝 멈췄다.금세 정신을 차린 하승민은 충격에 휩싸여 조현우를 올려다보았다.“그 피해자가... 설마 지서현인가?”조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맞습니다. 사모님의 양아버지, 왕우현은 끔찍한 인간쓰레기입니다.”하승민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눈빛엔 날이 섰다.그는 오래전부터 지서현과 그녀의 양아버지 사이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다고 느꼈다.하지만
왕우현은 흰색 봉고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는데 가끔 백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거리며 보았다.그곳에 지서현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왕우현은 운전을 하면서도 그녀의 몸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훑었다.마음같아선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하지만 만약을 위해, 우선 이곳을 떠나는 것이 급선무였다.어느 누구도 모를 곳으로 가기만 하면 그때부터 지서현은 절대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왕우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서현을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그 생각만으로도 온몸이 뜨거워졌다.그
쫙!옷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서현의 피부가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었다.그 순간 끔찍했던 기억이 그녀를 무자비하게 과거로 끌고 갔다.그때도 바로 이곳과 같은 음습한 동굴 속에서 지서현은 왕우현에게 짓눌려 있었다.그의 불결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다가왔고 온몸이 공포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그때의 어린 지서현은 죽어가고 있었다.기댈 곳이 하나도 없던 지서현은 속으로 애타게 하승민을 외쳤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그런데 지금 성인이 되어서도 왕우현의 몸이 지서현의 위로 내려앉았다.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절
하승민은 조용히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자신의 차, 롤스로이스의 조수석에 내려놓았다.그는 곧 핸들을 잡고 부드럽지만 힘 있는 움직임으로 엑셀을 밟았다.차는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조용한 차 안,지서현은 온몸을 그의 넓은 코트 속에 묻고 있었다.따뜻한 온기, 그리고 하승민에게서 은은하게 퍼지는 깨끗하고 시원한 향.지서현은 작은 코끝을 붉히며 조용히 그 향을 들이마셨다.마음 한구석이 이상한 감정으로 출렁였다.사실 하승민은 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예상과 달리 그는 빠르게 현장으로 도착했다.지서현은 고개를 돌려
하승민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서현과 함께 방으로 향했다.지서현은 걸음을 옮기면서도 조금 전의 일이 떠올랐다.“아까 사장님이 말한 유료 물품이 뭐였을까요?”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그 말에 하승민은 잠시 지서현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하승민이 너무 이상했지만 지서현은 별생각 없이 그냥 궁금함을 접었다.503호 방 안으로 들어서자 공간은 예상보다 깔끔했지만 문제는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것이었다.지서현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이 침대에서 오늘 같이 자야 하나? 어떻게 그래?’당
하승민 이미 씻고 나온 상태였으니 소아린의 음성 메시지를 다 들은 상태였다.지서현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아니, 하 대표님. 그게 아니라...”너무 당황한 탓에 지서현의 손에서 휴대폰이 미끄러져 침대 위에 떨어졌다.그 바람에 소아린의 음성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하 대표님 몸도 정말 좋아 보이고 선명한 복근도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하 대표님 손가락도 길잖아. 소문에 의하면 손가락 긴 남자는 침대 위에서 정말 대단하다고 들었어. 서현아, 이번엔 하 대표님이랑 자봐!]변명이라도 하려던 지서현은 다시 말문이 막혔
엄수아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 버렸다.하은지는 어이가 없었다.그때, 조군익이 성큼성큼 다가와 엄수아의 앞을 가로막았다.“수아야, 너 진짜 진세윤 좋아하는 거야?”엄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조군익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진세윤을 좋아할 수가 있어? 나 약 올리려고 그러는 거지? 수아 너도 밀당하는구나? 내 관심 끌려고?”엄수아는 어이가 없었다.“군익아, 잘 들어. 너랑 나는 이미 끝났어. 어렸을 때니까 네가 날 이용하고 양다리 걸친 거, 그래, 넘어가 줄게. 사실 나도 너한
엄수아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의 머리핀은 숙모가 선물해 준 것이었다.양지혜는 웃으며 말했다.“넌 760만 원짜리 샤넬 머리핀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니지만 진세윤은 그 돈 벌려면 한참 걸릴걸? 그런데도 너희 둘이 어울린다고 생각해?”엄수아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우리가 어울리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어쨌든 너랑 진세윤은 안 어울려!”“너!”그때 진세윤이 양지혜에게 말했다.“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세 번 말하게 하지 마.”양지혜는 진세윤을 좋아하면서도 두려워했다. 진세윤의 차가운 눈빛이 그녀에게 향하자,
진세윤은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놓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 안전거리를 확보했다.엄수아는 콧속이 뜨거운 것을 느꼈다. 손으로 만져 보니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었다.“앗, 코피 나!”엄수아는 놀라서 소리쳤다.진세윤은 그녀를 흘끗 보았다. 코피가 나고 있었다.그는 휴지를 두 장 뽑아 그녀에게 건넸다.“고개 들고 있어. 금방 멈출 거야.”엄수아는 휴지를 받아 들고 고개를 들었다.“왜 코피가 나는 거지?”진세윤은 대답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스쳤다. 몹시 추웠지만 그의 주변에 감돌던 달콤한 소녀의
엄수아는 또박또박 말했다. 네가 내 몸을 다 봤다고.그녀를 보며 말했다.“못 봤어.”“아직도 거짓말해? 방금 봤잖아?”진세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봤다. 그는 눈이 멀쩡했으니까.엄수아의 예쁘고 아름다운 얼굴은 홍조로 뒤덮였다. 방금 일을 생각하니 부끄러웠다. 지서현인 줄 알았는데 그가 서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방금 뭘 봤고 뭘 들었어?”엄수아가 물었다.진세윤은 침묵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엄수아는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싫었다.“벙어리야?”진세윤은 말했다.“D컵이 되고 싶다고
탈의실에서 엄수아는 새 옷을 꺼내 들고 등을 돌린 채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다.그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서현이가 벌써 왔나?'엄수아가 말했다.“들어와.”탈의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지서현이 아니라 진세윤이었다.진세윤이 온 것이다.진세윤은 탈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있는 엄수아를 보았다.엄수아는 교복 치마를 입고 위에는 새 브래지어를 하고 있었는데 가느다란 두 팔을 뒤로 돌려 브래지어 훅을 채우고 있었다. 진세윤은 순간 당황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왔는데 이런 모습
곧 구경하는 학생들이 몰려들었다.“큰일 났다! 여기 싸움 났어!”양지혜는 그 말에 덜컥 겁이 났다. 학교에서 싸움을 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너무 아팠다.양지혜는 엄수아에게 꼼짝없이 당했다. 다른 여학생들이 엄수아를 에워싸고 공격했지만 엄수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양지혜만 계속 때렸다.양지혜는 온몸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그녀는 엄수아를 밀치며 소리쳤다.“엄수아, 너 가만 안 둬! 내가 사람 데려올 거야!”그 말을 남기고 양지혜는 다른 여학생들과 함께 도망쳤다.엄수아도 상처를 입었고 옷도 찢어졌다. 엄수아
다른 여학생이 말했다.“진세윤 아빠가 마약상이라던데?”양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어. 진세윤은 마약상 아들이야. 게다가 엄마는 눈이 안 보이고 중학생 여동생도 하나 있는데 집안 형편이 말도 아니래. 그런데 마약상 아버지, 눈먼 어머니, 공부하는 여동생, 망가진 진세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내 도전 의식을 자극하더라. 하하.”양지혜와 주변 여학생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진세윤의 가정을 비웃고 있었다.엄수아는 기분이 상했다. 그녀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예쁜 눈으로 양지혜 일행을 쏘아보았다.“그만 좀 웃으시죠?”엄수아의 갑작스
하승민은 답장하라고 명령했다.지서현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누군데 명령하는 거지? 회사 사장인가? 왜 그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지서현은 다시 한번 무시했다.운전석에 앉은 소문익이 웃으며 말했다.“서현아, 하 대표랑 이혼은 했지만 뭔가 깔끔하게 정리된 것 같지는 않네. 하 대표 그 녀석이 아직 너한테 미련이 남은 것 아니야?”지서현이 대답했다.“글쎄요.”소문익이 말을 이었다.“매장에서 내가 네 허리를 감싸 안았을 때 하 대표 눈빛이 내 손을 잘라버릴 듯하던데. 서현아, 네 가짜 남자친구 노릇하는 것도 쉬
지동욱과 강미화는 예비 사위 C 신에게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하지만 지예슬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C 신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지예슬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여보세요, C 신?”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없는 번호라고?’지예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기계적인 여자 목소리만 들려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이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지예슬은 곧바로 카톡을 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