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아침 회의에서 채이 옆자리가 하나 비었다. 민재는 노트북 전원선 때문이라고 했지만, 전원은 테이블 가운데에도 있었다. 채이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은 척 자료를 폈다.
은정이 회의를 시작했다.
“하루온 업무는 예정대로 진행해. 개인에게 취재 전화 오면 홍보팀 연결하고, 확인 안 된 내용은 회사 답변처럼 말하지 마.”
현수가 뚜껑 닫힌 펜으로 수첩을 두드렸다.
“팀장님, 그 전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 대리가 맡은 것들, 저희가 모르는 지시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반려당했던 현장 인력 요청은 윤 대리 안으로 다시 올라가서 통과했잖아요.”
채이는 현수의 수첩을 보았다. 그가 손해를 봤다고 느낄 만한 순간이 자기에게도 기억났다. 당시 도진은 비용 근거를 더 가져오라고 했고, 채이는 상담 대기
아침 회의에서 채이 옆자리가 하나 비었다. 민재는 노트북 전원선 때문이라고 했지만, 전원은 테이블 가운데에도 있었다. 채이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않은 척 자료를 폈다.은정이 회의를 시작했다.“하루온 업무는 예정대로 진행해. 개인에게 취재 전화 오면 홍보팀 연결하고, 확인 안 된 내용은 회사 답변처럼 말하지 마.”현수가 뚜껑 닫힌 펜으로 수첩을 두드렸다.“팀장님, 그 전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윤 대리가 맡은 것들, 저희가 모르는 지시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반려당했던 현장 인력 요청은 윤 대리 안으로 다시 올라가서 통과했잖아요.”채이는 현수의 수첩을 보았다. 그가 손해를 봤다고 느낄 만한 순간이 자기에게도 기억났다. 당시 도진은 비용 근거를 더 가져오라고 했고, 채이는 상담 대기 시간을 덧붙여 수정했다. 그래도 현수의 안에서 출발한 일이었다.“현장 증원안은 과장님이 먼저 내신 게 맞아요. 그때 제가 추가한 건 시간대별 고객 대기 기록이고요.”“추가한 사람만 이름이 남았던 건 아니고요?”질문 끝이 채이를 찔렀다. 억울하다는 말이 먼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함께 야근한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부터 들어야 했다.“최종 기안에 공동 검토로 적었어요. 다만 발표 자료 맨 앞에 제 이름만 들어간 건 맞습니다. 그 부분은 같이 확인하고 고치겠습니다.”현수는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들었다. 은정이 회의록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그때 결재 조건도 같이 보자. 윤 대리 혼자 해명하게 두지 말고, 우리도 각자 맡았던 것 내. 특혜가 있었는지하고 누가 일을 했는지는 기록으로 확인해야 해.”
채이는 빈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자료는 어떤 경로로 받으셨나요?”“취재원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계약을 부인하시는 건가요?”질문은 자꾸 두 갈래로만 갈라졌다. 인정하거나 부인하거나. 그 사이에서 채이가 골랐던 일들은 통화 상대에게 필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지금 전화로 제 사생활을 확인해 드리진 않겠습니다.”“기사가 나가기 전에 입장을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통화가 끝나자 손바닥에 땀이 차 있었다. 채이는 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그가 받았다.“채이야.”“그쪽에도 연락 왔어요?”“응. 지금 홍보팀에서 확인하고 있어.”“계약서래요. 기간하고 금액을 정확히 말했어요.”도진의 숨이 전화기 너머에서 낮게 가라앉았다.“네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작은 회의실이요. 혼자예요.”“내가 가면 사람들이 더 볼 거야. 네가 원하면 갈게.”채이는 유리 벽 밖으로 지나가는 직원들을 보았다.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고 있었다. 몇 분 뒤에는 이들이 전혀 다른 눈으로 돌아올지도 몰랐다.“아직은 오지 마요. 자료를 먼저 보고 싶어요.”“오 실장이 전달할 거야. 같이 볼 수 있는 자리는 따로 마련할게.”도진은 기다렸다가 덧붙였다.“내 쪽에서 네 말을 대신 내지 않을게.”그 한마디에 채이의 등이 의자에 닿았다. 그를 믿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믿게 만드는 말이었
채이는 식탁 끝에 놓인 귤 두 개 중 작은 것을 집었다. 도진은 맞은편에서 신문을 접었다. 각방을 쓰기 시작한 뒤로 아침에는 서로의 방문 닫히는 소리가 먼저였는데, 오늘은 물 끓는 소리를 함께 들었다.“재심 접수는 오늘 할 거예요.”“응.”“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요.”“접수했다는 것도 내게 보고할 필요는 없어.”채이는 귤 꼭지를 손톱으로 눌렀다.“보고 말고 얘기하려는 건데요.”도진의 손이 멎었다. 잠깐 뒤 그가 신문을 완전히 치웠다.“잘 듣고 있을게.”그 대답에 채이는 두 쪽으로 나뉜 귤을 내밀었다. 도진이 받아든 쪽에는 하얀 귤락이 조금 더 붙어 있었다. 예전 같으면 떼어 줬겠지만 오늘은 그대로였다. 그는 군말 없이 입에 넣었다.“시다.”“그러네요.”“괜찮은 척하지 마요. 얼굴에 다 나와요.”도진이 입술을 눌렀다가 웃었다. 둘 사이에 남아 있던 어색함이 아주 조금 자리를 옮겼다. 채이는 출근 가방을 들면서 그의 옆에 놓인 남색 천 펜케이스를 보았다. 각방을 쓰는 동안에도 그 물건은 늘 그의 손 닿는 곳에 있었다.현관에서 도진이 먼저 코트를 입었지만, 채이에게 목도리를 둘러 주지는 않았다. 대신 매듭 끝이 안으로 말렸다고 알려 줬다. 채이는 거울을 보고 제 손으로 바로잡았다.“다녀올게요.”“저녁에 봐.”그 말을 듣고도 채이는 곧장 신발을 신지 못했다. 잠시 뒤 고개를 끄덕였다.***비서실 권재석 대리는 구내 카페 가장 안쪽 자리에서 손목시계를 세 번째
인사 담당자에게서 면담 요청이 왔다. 채이는 은정과 함께 작은 회의실로 갔다. 지현은 먼저 심사 권한 변경 내용을 설명했다. 대표는 이번 후보 심사와 최종 편성 결정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고, 원래 심사 담당이 독립적으로 재심 범위를 정하게 됐다.“그럼 제 이름이 다시 들어간 건가요?”채이가 물었다.“아직 아닙니다. 제외 지시는 철회됐지만 발표 자격에 대한 재심 결과는 따로 나와야 합니다.”지현은 서류를 넘겨 해당 부분을 보여줬다.“대표의 지시로 바로 복귀시키는 방식도 쓰지 않습니다. 윤 대리님이 이의를 유지할지, 자료를 더 제출할지 결정하실 수 있습니다.”채이는 문장을 읽었다. 원래 평가와 개입 경위를 확인한 뒤, 영향을 받은 후보들의 심사 기회를 함께 검토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비어 있었다. 며칠 전에는 그 빈칸을 보는 것만으로 초조했을 텐데, 오늘은 누가 대신 채우지 않았다는 점이 먼저 보였다.“기존에 제출한 평가 자료는 그대로 검토되는 거죠?”“네. 추가 자료가 필요하면 담당 심사자가 직접 요청합니다.”“지원 업무를 했다는 이유로 이의제기를 철회했다고 보지는 않고요?”“그 점도 명시했습니다.”옆에 앉은 은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이는 경위서 사본의 본인 관련 부분을 읽었다. 도진이 직접 적은 문장이 있었다. 당사자의 의사를 알고도 대표 권한으로 후보 제외를 지시했다. 업무 역량의 결함을 확인한 판단은 아니었다.보호라는 말은 이유 설명에만 있었다. 결정을 정당화하는 결론은 아니었다. 채이는 종이를 내려놓았다.“재심 신청하겠습니다. 제출할 자료와 기한 안내해주세요.”인사 담당자가 신청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채이는 습관처럼 옆으로 손을 뻗었다가 빈 이불을 만졌다. 어젯밤의 대화는 자고 일어난다고 다른 내용이 되지 않았다.거실로 나오자 작은 방 문이 닫혀 있었다. 주방에는 컵 하나만 씻어 엎어져 있었다. 도진은 먼저 일어난 모양이었다. 그녀가 냉장고에서 요구르트를 꺼낼 때 방문이 열렸다.“잘 잤어?”도진이 물었다. 채이는 뚜껑을 만지다 대답했다.“조금요.”거짓말로 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그는 물을 마신 뒤 컵을 바로 씻었다. 다른 때 같으면 뒤에서 허리를 안거나 오늘 일정을 물었을 시간이었다. 싱크대에서 돌아선 그는 채이가 지나갈 쪽을 비웠다.“회사에서 확인한 내용은 팀장님 거쳐서 전달할게.”“네.”채이는 그 한마디를 듣고 가방을 들었다. 현관에서 부츠 지퍼가 잘 올라가지 않았다. 도진이 한 걸음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녀는 앉아서 바지 끝을 정리한 뒤 지퍼를 올렸다.“다녀올게요.”“조심히 가.”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채이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냉정하게 대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다정해질 준비가 안 됐는데도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버릇부터 나오는 게 싫었다.회사에서는 지원 업무 중 당장 필요한 자료 요청이 왔다. 채이는 메일을 끝까지 읽고 은정에게 갔다.“심사 이의 확인 중이어도 팀 공통 자료는 정리하겠습니다. 다만 후보 철회에 동의한 것으로 보이지 않게 답변을 남기고 싶어요.”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보내. 이 일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한 자료까지 못 보
도진이 돌아왔을 때 채이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코트는 걸어두었고 가방도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여행 가방을 꺼내거나 연락을 끊을 생각은 없었다. 대신 같은 집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야 할지 묻고 싶었다.그는 외투를 벗고 맞은편에 앉았다. 식탁에는 물 두 잔이 있었다. 채이가 하나를 그의 쪽으로 밀었다.“여기서는 대표님 말고 도진 씨한테 물을게요.”“응.”“어젯밤 내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어떻게 들었어요?”도진은 물잔을 만지지 않았다.“네가 원한다는 건 알았어.”“그런데 왜 그랬어요?”“그 일로 네가 다칠까 봐.”채이는 눈을 내렸다가 들었다. 예상했던 대답이라 덜 아픈 것은 아니었다.“어떤 식으로요?”“명훈은 네가 대표의 아내라는 걸 이용할 거야. 발표장에서 업무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를 해야 할 수도 있어. 준비한 성과보다 그 얘기만 남을까 봐….”“그래서 성과를 보여줄 자리부터 없앤 거예요?”그가 바로 답하지 못했다. 채이는 잔의 물결을 가만히 봤다. 손이 조금 떨릴 때마다 테두리가 흔들렸다.“나는 후보로 뽑혔어요. 아직 최종은 아니었고, 떨어질 수도 있었어요. 그래도 왜 떨어졌는지 평가받고 싶었어요.”“네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그걸 도진 씨 혼자 아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목소리가 예상보다 높아졌다. 채이는 입술을 다물고 숨을 골랐다. 그가 낮게 이름을 불렀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