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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이 집의 야식 규정

Author: YuIm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05 07:54:24

한남동 집의 현관문이 열리자 채이는 캐리어 손잡이를 놓쳤다.

바퀴가 매끈한 바닥을 따라 혼자 굴러갔다. 도진이 발로 살짝 멈춰 세웠다. 망원동 원룸에서는 세 걸음 걸으면 끝이었는데 여기서는 캐리어도 더 가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느 방을 쓰실지 먼저 보시겠습니까?”

채이는 대답 대신 천장을 올려다봤다.

“겨울에 난방비 많이 나오겠어요.”

“첫 감상이 그겁니까?”

“두 번째예요. 첫 번째는 청소요.”

도진이 웃었다. 그는 집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먼저 설명했다. 정해진 요일에 청소와 식사 준비를 도와주는 사람이 오고, 그 외에는 대부분 혼자 지낸다고 했다. 채이는 방문 시간표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불편하면 조정하겠습니다.”

“불편한 게 아니라 저도 집에 있는 시간을 알려드려야죠. 갑자기 마주치면 서로 놀라니까.”

거실 너머로 강이 보였다. 채이는 끝내 창문 앞으로 가서 한참 서 있었다. 빛이 수면에 길게 놓였다. 자신이 이런 곳에 살게 됐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아 가방 끈만 만지작거렸다.

“마음에 듭니까?”

“네. 아주요.”

괜히 비싸 보인다고 흠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좋았다. 낮에도 불을 켜야 했던 방에서 햇빛이 있는 집으로 온 것은 분명한 기쁨이었다.

도진은 그녀가 바깥을 충분히 볼 때까지 말을 걸지 않았다.

채이가 고른 방은 복도 끝이었다. 창가에 작은 책상을 놓을 수 있고 욕실이 붙어 있었다. 침대 위 흰 이불을 손끝으로 눌러보니 푹 들어갔다.

“이 방 쓰겠습니다.”

“제 방은 복도 반대편입니다.”

“그건 미리 말씀 안 하셨어요.”

“가까운 방을 원하시면…….”

“아뇨. 아주 훌륭한 구조네요.”

너무 빨리 대답하자 도진이 입을 다물었다. 채이는 웃음을 참으며 캐리어를 끌어들였다.

옷을 걸고 책상 위에 노트북을 놓았다. 개인 계약 원본이 든 봉투는 잠금장치가 있는 서류함에 넣었다. 따로 보관할 사본은 원룸 짐에서 챙겨온 작은 파일에 끼웠다. 원룸은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정리하기로 해, 당장 모든 물건을 옮기지는 않았다.

이사 전에 함께 상계동에 들러 어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정숙은 도진에게 바쁘다고 밥을 거르는 사람인지 물었고, 그는 종종 그렇다고 답했다. 고치라는 말과 함께 받은 반찬 가방을 꺼냈을 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들어가도 됩니까?”

“네.”

도진은 문을 열고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짐 옮길 게 더 있습니까?”

“이거 냉장고에 넣을 건데요. 제가 쓰는 칸 따로 정해주시면…….”

“그냥 편한 곳에 넣으세요.”

좋은 집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 그 말이었다. 편한 곳이 어딘지 알아야 편하게 넣을 수 있었다.

주방 냉장고에는 채이가 이름을 모르는 잎채소와 포장도 뜯지 않은 치즈, 작은 과일 상자가 가득했다. 한쪽 깊숙이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부가 숨어 있었다. 채이는 반찬 가방을 내려놓고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았다.

“몇 분이 드시는 양이에요?”

“대개 저 혼자입니다.”

“대표님은 집에서 회식하세요?”

도진이 냉장고 안을 들여다봤다. 정말 처음 세어보는 사람 같았다.

“밖에서 먹는 날이 많아서 남는 모양입니다.”

“그럼 이 두부 기다리는 사람이 저희밖에 없는 거네요.”

채이는 아무거나 버리지 않았다. 포장에 적힌 날짜를 확인해 먼저 먹을 것만 앞쪽에 모았다. 그 사이 도진에게 작은 메모지와 펜을 부탁했다. 대표에게 사무용품을 가져오라고 한 뒤에야 입이 잠깐 굳었다.

도진은 묻지 않고 서랍에서 펜을 가져왔다.

“가정에서도 결재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적응 중이라서요.”

그는 식탁 의자를 끌어 앉았다. 채이는 방문 일정표 옆에 두 사람의 식사 여부를 적을 칸을 만들었다. 점심때까지 저녁을 먹을지 알려주고, 늦으면 짧게 연락하기. 식사 준비해주는 분에게도 남길 수 있는 간단한 표였다.

“이걸 매일 씁니까?”

“메신저로 보내주셔도 제가 옮길게요. 아니면 직접 적으셔도 되고요.”

도진이 펜을 받아 오늘 저녁 칸에 동그라미를 했다. 채이는 그 옆에 자기 것도 그렸다. 처음으로 한 집 일정표에 두 사람의 흔적이 나란히 놓였다.

“오늘은 두부하고 달걀부터 먹어야 해요.”

“식사도 윤 대리가 합니까?”

“오늘만요. 이걸 옮겨놓다가 배가 고파졌어요. 대표님은 파 좀 씻어주세요.”

도진이 소매를 걷었다. 파 한 줄기를 흐르는 물에 지나치게 신중하게 돌려 씻는 모습을 보고 채이가 웃었다.

“고장 나는 물건 아니에요.”

“잘못하면 다음 지시가 없을 것 같아서요.”

그 말에 웃음이 더 났다. 조용한 주방에서 물소리와 칼 소리가 섞였다. 두부를 굽는 동안 도진은 수저를 찾았고, 채이는 위치를 알려주려다 여기가 그의 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표님, 여기 사시는 거 맞죠?”

“오늘부터 저도 조금 의심스럽습니다.”

간단한 저녁이 식탁에 놓였다. 정숙의 멸치볶음과 채이의 두부부침, 도진이 씻은 파가 들어간 달걀국. 넓은 식탁의 끝과 끝에 앉으려던 채이를 보고 도진이 의자를 옮겼다.

“그 정도면 화상회의를 해야 합니다.”

그녀도 가운데로 자리를 당겼다.

“다음부터 저 없이 드셔도 돼요. 오늘처럼 매번 같이 먹자는 뜻은 아니에요.”

“가능한 날에는 같이 먹어도 되는 거죠?”

“가능한 날에는요.”

채이는 국을 떠먹었다. 새 냄비라 불 조절을 잘못해 조금 짰다. 물을 더 넣으려고 일어나자 도진이 주전자를 건넸다. 말하지 않아도 손이 필요한 순간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날 밤, 짐 정리를 마치고 물을 마시러 나온 채이는 주방 앞에서 도진을 만났다. 그는 냉장고 안쪽의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드세요. 왜 들키신 표정이에요?”

“먼저 먹을 순서가 있는 것 같아서요.”

“그건 내일까지 먹자는 거지 출입 금지가 아니에요.”

도진은 접시를 두 개 꺼냈다. 채이는 시간을 보고 잠깐 망설였지만 포크를 받았다. 이불 정리하느라 힘을 썼으니 한 조각 정도는 괜찮았다.

“대표님은 단 거 잘 안 드시는 줄 알았어요.”

“집에서는 먹습니다.”

“회사에서는 왜 안 드세요?”

“누가 보면 피곤해서 당이 떨어졌냐고 묻더군요.”

채이는 웃으며 케이크를 잘랐다.

“그럼 여기서는 그냥 맛있어서 드세요.”

그는 포크를 들다가 채이를 보았다. 대답은 조금 늦게 왔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으로 돌아가기 전 채이는 복도 문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짐을 풀다 남은 테이프를 반듯하게 눌렀다. 노크부터 해주세요.

지나가던 도진이 문구를 읽었다.

“이미 했는데요.”

“잘하셨으니까 계속해달라는 뜻이에요.”

“추가 규정도 있습니까?”

채이는 펜으로 아래에 한 줄 더 적었다. 밤 열두 시 이후 업무 문의 금지.

“급한 일이라면요?”

“회사 당직 연락망으로요.”

도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이가 웃으며 문을 닫으려는데 그가 문밖에서 마지막으로 물었다.

“내일 아침은요?”

“그건 업무 문의 아니죠?”

“네.”

채이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여덟 시쯤 먹을게요. 같이 드실래요?”

“그 시간 비워두겠습니다.”

문을 닫은 뒤 채이는 한동안 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하루 만에 넓은 집을 다 외우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일 아침 어디에 앉을지는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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