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한 박스에 얼마나 들어있는 거죠?"남자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한 50 박스 정도요."소희의 표정은 경악으로부터 어색함으로 변했다."그럼 구택 씨 어떻게 카운터까지 가서 계산했어요?"캐셔는 마치 변태를 보는 것처럼 그를 보지 않았을까?구택은 이마를 찌푸렸다."카운터요?"소희는 숨을 들이마셨다."바로 마트에서 물건을 산 다음 돈을 내는 곳이요."구택은 눈살을 더 심하게 찌푸렸다."마트 매니저가 박스를 내 차로 옮겨주고는 내가 직접 그한테 돈을 줬는데요.""……""왜요?" 남자가 물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소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마트 매니저는 기껏해야 구택이 도매를 하는 사람인 줄 알겠지?마트에 가서 그렇게 많이 샀으니 매니저가 직접 차에 옮겨줬을 것이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진지하게 말했다."앞으로 그 마트에 가지 마요!""왜요?" 남자가 물었다.소희는 담담하게 대답했다."그 매니저가 구택 씨 찾아서 도매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할까 봐 걱정돼서요!"구택은 그녀를 보며 갑자기 웃었다.소희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는 물결처럼 반짝이며 아리땁고 부드러웠다.구택은 가슴이 설레며 그녀의 턱을 쥐고 키스했다. 그는 급하게 키스하며 마음속의 그 설렘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다음 날은 일요일, 바로 미술관의 그림 전시회가 정식으로 개최하는 날이었다.소 씨네 집. 진원은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소연에게 옷을 골라주었다. 오늘 그림 전시회에 가서 소연의 그림을 보는 날이니까 그들은 당연히 예쁘게 입어야 했다.갑자기 테이블 위의 전화가 울리자 진원은 전화를 받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9시에 열어요. 우리 이제 곧 떠나요. 이따 봐요."소연은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 진원이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엄마, 다른 사람도 같이 가는 거예요?""그래, 오 부인, 류 부인, 정 부인, 그리고 평소에 나와 마작 하던 그 사람들 내가 전부 오늘 보
그녀는 멈칫하다 문득 침울하게 말했다."하지만, 할아버지가 또 일찍 나를 시집보내실까 봐 걱정돼요. 난 엄마 곁에 오래오래 있고 싶은데."진원은 전의 일을 떠올리며 화가 났다."네 할아버지는 노망이 나셨어. 안심해. 나는 절대 너를 서휘경 같은 사람한테 시집보내지 않을 거야. 만약 시집보낸다 하더라도 소희를 보낼 거야."소연은 활짝 웃으며 진원을 껴안았다."엄마, 지금까지 나한테 너무 잘해 주셨어요. 내가 평생 효도할게요.""우리 딸 착해라!"모녀 두 사람은 감동하며 또 많은 감동적인 말을 했다. 한참 지나서야 진원은 일어섰다."시간도 다 돼가니까 빨리 옷 갈아입고 우리 얼른 출발하자."소연은 귀엽게 웃었다. "네."소연의 그림이 전시회에 전시된다는 것은 소 씨네 집안에 있어서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정인은 모든 일을 미루고 차를 몰고 모녀 두 사람을 데리고 미술관에 도착했다.오후에 그들은 소가네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시 오려고 했다.그림 전시회밖에 도착하자 진원과 약속한 인들과 소연이 초청한 친구들은 모두 도착했다. 그들은 소연을 보자마자 인차 그녀를 에워싸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정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이번 그림 전시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국화계의 명가라고 들었어. 우리 연이는 나이도 가장 어리니까 앞으로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다른 사람들도 잇달아 감탄했다.진원은 더욱 자랑스러워하며 소연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우리 연이는 그림을 그리는 데 확실히 천부적인 재능이 있죠."정 부인이 말했다."더는 기다릴 수 없을 거 같네요. 우리 빨리 들어가서 한 번 봐요."많은 사람들은 소연을 둘러싸고 문앞의 안전검사를 거쳐 함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정 부인은 진원의 곁을 걸으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내가 보기에 진 부인도 연이한테 연회를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 부인도 불러서 말이야. 전에 방가네 생신 잔치 때 생긴 일 때문에 뒤에서 진 부인하고 연이를 얼마나 비웃었다고요. 이번에 반드시 사람들
여정이 대답했다."너 지금 미술관에 있어? 원래 너한테 전화해서 말하려고 했는데 요 며칠 그림 전시회 때문에 너무 바빠서 잊었구나. 아무튼 다른 이유로 네 그림이 철거됐다."소연은 머리가 윙윙 소리를 내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멍해지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이미 확정된 일 아니었나요? 어제까지만 해도 선생님이랑 같이 와서 봤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철거될 수가 있어요?"여정은 사과했다."확실히 그렇게 됐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내가 일찍 너한테 말했어야 했는데."소연은 눈물을 왈칵 흘리며 울먹였다."다시 상의 좀 할 수 없을까요?"여정은 나지막이 말했다."그럴 순 없어! 하지만 괜찮아, 넌 아직 젊어서 앞으로 기회가 있으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소연은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여정은 그녀를 위로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진원은 소연의 반응을 보고 큰일 났다는 것을 알고 급히 그녀를 한쪽으로 끌고 가서 낮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소연은 흐느끼며 입을 가리며 말했다."내 그림이 철거됐대요.""뭐?" 진원은 안색이 변했다."너 전에 이미 확정된 일이라 하지 않았어? 어떻게 변할 수가 있니?"소연은 억울하게 울었다."여정 선생님은 내 그림이 선정됐다고 했어요. 나도 어제 보러 왔고요. 확실히 전시회에 걸려있었어요. 왜 철거됐는지 모르겠지만요."진원은 안색이 엄청 흉해지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었다."내가 여정한테 전화해서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봐야겠어."정인은 바삐 그녀의 손을 잡았다."좀 진정해. 당신이 여정 선생님한테 따질 자격이나 있어? 연이 앞길을 망치려고 작정이라도 한 거야?"진원은 화가 났다."그럼 어떡하라고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데리고 연이의 그림을 보러 왔는데, 지금 와서 그림이 철거됐다고 말하라고요?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예요! 이렇게 큰 망신을 당했으니 앞으로 그들은 우리를 엄청 비웃을 거라고요!"소연은 더 심하게 울었다.정인도 안색이 좋지 않았
소연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 그림이 복구되면 그때 다시 너희들 요청할게.""알았어, 너도 너무 슬퍼하지 마!" 두 여자는 몇 마디 하고는 황급히 떠났다.사람들은 기분 좋게 왔다가 마지막엔 불쾌하게 흩어졌다. 돌아가는 길에 진원은 줄곧 말을 하지 않았다. 소연은 그저 작은 소리로 울기만 했다.집에 돌아온 진원은 철저히 폭발하여 하인이 건네준 물컵을 바로 땅에 집어던졌다."화가 나 죽겠네. 이게 무슨 일이야 대체?"소연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다."엄마, 미안해요!"진원은 짜증이 났다."넌 앞으로 일을 제대로 확정한 후에야 나한테 말해 줄 수 없니? 내가 너 때문에 이게 무슨 망신이야."소연은 진원의 분노한 얼굴을 보며 공포와 실망을 느끼며 얼굴을 가리고 위층으로 달려갔다.정인은 하인더러 카펫 위의 도자기 조각을 깨끗이 치우라고 하고는 나지막이 말했다."됐어, 이런 일이 생겼으니 연이도 틀림없이 속상해할 거야. 당신도 너무 연이 탓하지 마!"진원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씩씩거렸다.정인은 눈살을 찌푸렸다."이 일은 확실히 좀 수상쩍어. 내가 가서 알아볼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어떻게 갑자기 연이의 그림이 철거될 수가 있는지를."진원은 눈빛을 돌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가서 조사해요. 나는 반드시 누가 우리 연이의 그림을 철거했는지 알아야 해요!"월요일에 소연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오후에 수업이 끝날 때 하나는 소희와 수다를 떨었다."우리 학교의 여신님 소연이 글쎄 자신의 그림이 전시회에 선정됐다며 사람들을 초대해서 보러 갔는데 그림 전시회에 아예 그녀의 그림이 없어서 큰 망신을 당했데."소희는 눈빛이 침착했다."넌 어떻게 알고?"하나는 탄식했다."오전 내내 학교 전체에서 퍼졌어."소연은 성적이 우수하고 예쁘게 생겼으며 집안도 좋아서 학교의 여신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작은 일이 생겨도 학교 전체는 그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소희는 코웃음쳤다."그녀가 그림 전시회를 보러 가자고 청한
이틀이 지나자 소연의 그림이 철거된 일에 대해 정인은 약간의 정보를 알아냈다.그는 돈을 들여 그림 전시회의 한 스태프를 매수했다. 그 사람은 그에게 그림 전시회가 개막되기 전날 오후, 책임자가 도 씨네 어르신과 그의 두 학생을 청해 그림을 보러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에 소연의 그림은 철거되었다.구체적인 원인에 대해서 그는 몰랐다.정인은 집에 돌아간 후 이 소식을 진원과 소연에게 알려주었다.진원은 추측했다."설마 도 씨 어르신이 연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겠죠?"정인은 대답했다."도 씨 어르신은 업계에서 덕망이 엄청 높아. 여정은 비록 명성이 있지만 어르신의 가장 득의한 학생이 아니야. 만약 어르신이 연이의 그림에 대해 의견이 있었다면 아마 여정 선생님도 감히 뭐라 하지 못했을 거야."소연은 이미 며칠간 감히 학교에 가지 못하고 매일 자신을 방에 가두었다. 2~3일 동안 그녀는 많이 초췌해졌다. 그녀는 힘없이 입을 열며 물었다."그럼 어떡해요?"진원은 사색에 잠겼다."그럼 우리 여정 선생님을 찾아가서 도 씨 어르신을 방문하는 게 어때요? 그림 전시회는 한 달 동안 열리는데 만약 어르신이 동의하신다면, 연이의 그림은 다시 전시할 기회가 있지 않겠어요?"소연은 곧 눈빛이 밝아졌다."정말이에요?"정인은 눈살을 찌푸렸다."도 씨 어르신은 외출을 자주 하지 않고 사람이 겸손하여 아마 그렇게 쉽게 볼 수 없을 거야.""여정 선생님 있잖아요?"진원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다급하게 말했다."전에 스태프가 연이의 그림을 가져가서 복구했다고 했잖아요. 만약 이틀 뒤에 그림 전시회에서 전시할 수 있다면 그 사람들은 다시 우리를 믿어줄 거예요."이렇게 되면 잃어버린 체면도 모두 만회할 수 있었다.소연은 즉시 말했다."그럼 내가 선생님께 전화할게요."정인은 나지막이 말했다."그래도 내가 하는 게 좋겠다. 이번 일은 어쨌든 여정 선생님한테도 책임이 있어. 그러니까 그도 우리를 도와줄 거야."진원은 머리를 굴리며 좋은
만약 소연이 그들과 어울릴 수 있다면, 그녀의 인맥과 지위는 모두 다른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높이일 것이다.그들 두 사람은 그녀와 함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은 소 씨네 집안 전체, 강성 전체에서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살수 있을 것이다.진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격동되었다. 그녀는 심지어 소 씨네 본가와 큰집, 작은 집이 찾아와 그들에게 아부하며 소설아만이 소 씨네 집안의 가장 대단한 딸이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닌 상상까지 했다.소연도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소 씨네 집안에서 자리를 잘 잡아 본가더러 자신의 가치를 보게 해야 했다. 더 이상 그녀를 물건처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팔지 않도록!이튿날 점심, 여정은 전화를 걸어 그들에게 토요일 오후 도 씨 어르신께 시간이 있으면 소연을 데리고 방문하러 갈수 있다고 알려주었다.정인은 이 소식을 진원과 소연에게 알려주었다. 몇 사람은 기뻐서 며칠간 잠을 잘 자지 못했고 이리저리 어르신의 취향을 알아보며 여러가지 귀중한 선물을 준비했다.토요일, 여정은 소가네를 데리고 어르신의 집에 갔다.차에서 진원은 소연 보고 이따 잘 표현해서 도 씨 어르신의 환심을 사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소연도 이번이 그녀의 인생에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가락까지 모두 차가웠다. 그녀는 오늘 반드시 그녀가 배운 모든 것을 바쳐 도 씨 어르신의 호감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차가 서양식 건물 밖에 멈추자 소연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얼굴에 옅은 미소를 짓고 대범하게 여정의 뒤를 따랐다.하인은 그들을 맞이했다. 도 씨 어르신은 그들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거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어르신을 보자 정인과 진원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여정은 한창 소연을 어르신께 소개하고 있었다.소연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달콤하게 입을 열었다."어르신, 선생님께서 줄곧 어르신에 대해 언급하셨어요. 오늘 마
여정은 일어서서 웃으며 말했다."선배님."그는 고개를 돌려 소 씨 가족한테 소개했다."이 분은 저의 선배님인 진석이에요."소 씨네 세 사람은 즉시 일어나 눈앞의 젊고 영준한 젊은이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매우 놀랐다. 이 사람은 엄청 젊어 보였지만 뜻밖에도 여정의 선배였던 것이다.그들은 도 씨 어르신의 두 학생이 북극 디자인 작업실을 설립했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king이고 다른 한 사람은 성이 진 씨였다. 설마 눈앞의 이 사람일까?여기까지 생각하니 몇 사람의 표정은 더욱 공손해졌다. 소연은 남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고 긴장함에 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진석은 어르신 곁에 앉았다. 그는 기질이 우아하고 담담했다."소연 씨의 그림은 약간의 경지가 부족했어요. 특히 여정 선생님의 그림과 함께 놓여 있었으니 차이가 선명했죠. 이번 그림 전시회는 강성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의 문화 교류이기도 했기에 내가 사람들더러 소연 씨의 그림을 철거하라고 했어요."정인과 진원은 눈을 마주치며 매우 난처했다.소연은 갑자기 입을 열며 맑은 목소리로 물었다."진석 선생님의 말이 맞아요. 여정 선생님께서도 전에 제가 나이가 어리고 경력이 부족하여 그림을 그리는 경지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어요."진원은 완곡하게 입을 열었다."만약 도 씨 어르신께서 소연의 부족점을 좀 지적해 주셔서 그녀가 그림을 수정한다면 그 그림은 다시 전시할 수 있나요?"진석은 싸늘하게 말했다."우리가 그녀를 도와서 그림을 수정하면 그럼 이 그림은 누구의 것이 되는 거죠?"진원은 그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단번에 얼굴을 붉혔다.여정은 진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진석이 재능이 뛰어나 줄곧 오만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도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을 이렇게 가혹하고 싸늘하게 대한 적은 거의 없었다. 오늘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왜 그는 조금도 소 씨네 가족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 것일까?여정은 인차 웃으
있어도 괜찮았다. 그녀에게 기회만 준다면 그녀는 반드시 그가 그녀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하면 진석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날씨가 점점 더워지자 소희는 절제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마구 먹었다. 그 결과 생리가 왔을 때 그녀는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그녀는 다섯 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몸이 줄곧 좋았지만, 유독 여자의 생리적 결함을 공략할 수 없었다.연희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며 그녀의 나른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생리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하인더러 오골계 생강탕을 끓이라고 한 뒤 어정에 들고 왔다.그녀는 어정에 몇 번 왔었기에 매우 쉽게 소희의 집을 찾았다. 작은방 침대에 웅크리고 있는 소희를 보며 연희는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났다."너 죽을래, 배가 아픈데도 에어컨을 이렇게 춥게 틀어?"소희는 눈을 깜박였다."환자를 대할 때 좀 부드럽게 대할 순 없니?""그래, 내가 하겐다즈 두 박스 더 사서 한 입 한 입 먹여 줄게, 그럼 됐지?"연희는 에어컨을 끄면서 콧방귀를 뀌었다.소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갑자기 전에 구택이 콘돔 한 박스를 샀던 일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이불 안에 숨겨 몰래 웃었다."웃는 거 보니까 아직 덜 아프네. 일어나서 이거 마셔." 연희는 그녀의 이불을 젖혔다.소희는 방금 진통제를 먹었기에 좀 나아졌다. 그녀는 머리를 정리하며 침대에서 내려와 주방에 가서 생강탕을 마셨다.연희는 생강탕을 그릇에 부으며 소희에게 건네주었다."뜨거울 때 얼른 마셔."소희는 창백한 얼굴로 그릇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 뜨거운 오계탕이 뱃속에 들어가자 그녀의 배는 즉시 따뜻해졌다.연희는 입을 열었다."요 며칠 너 밥하지 마. 내가 사람 시켜서 제때에 너한테 먹을 거 보내줄게."소희는 눈을 들어 물었다."너 안 귀찮아?""그럼 네가 우리 집에 오던가. 마침 우리 엄마도 요 며칠 네 걱정만 하시거든.""안 가. 난 스스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어." 날씨가 워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