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와 2층의 전당으로 들어서자, 성연희는 이미 결혼식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 드레스는 소희가 디자인한 것으로, 끈 없는 스타일의 상의는 튤립 꽃잎으로 디자인되었고, 아래쪽은 매우 큰 스커트로 진주가 수놓아져 있어 고전적이면서도 단정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냈고, 오늘 성의 예식장 분위기와 완벽하게 어울렸다.많은 사람이 연희 주변을 둘러싸고 연희의 웨딩드레스가 어느 디자이너의 작품인지 묻자 연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누구겠어요, 당연히 King이죠!”King의 이름을 듣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감탄했으며, 일부는 실망했다. 이 디자이너를 직접 고용하고 싶었지만, King이라고 들으니 아마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희는 사람들 뒤에서 소희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익살스럽게 웃었다.결혼식이 반 시간 후에 시작될 예정이어서 모든 하객이 예식장에 도착했다. 강재석과 도경수는 앞줄 주요 자리에 배치되었다. 몇몇 사람들이 강재석을 알아보고 노씨 집안과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 왜 강재석을 초대했는지에 대해 수군거렸다.웅장하고 고전적인 성의 예식장 안에서는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로마 기둥들이 균일하게 세워져 있고, 높은 천장의 로비, 웅장한 문, 그리고 방방곡곡에 배치된 신선한 꽃들이 로맨틱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더했다.우아한 음악이 천천히 울려퍼지기 시작하면서 모든 하객이 점점 조용해졌다. 남자 들러리와 여자 들러리들이 대문 양쪽에서 나와 양쪽으로 펼쳐진 회랑을 따라 걸어왔다.심명과 소희는 들러리 행렬의 맨 앞에서 걸어왔다. 심명은 계속 소희를 바라보며 소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았다. 잘생긴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지만, 심장은 참을 수 없이 빨리 뛰고 있었다.그 짧은 몇 초 동안 심명은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만남, 서로 경계하며 지낸 시간, 그리고 나중에 생사를 함께 한순간들을 떠올렸다. 마치 어제 일처럼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이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니!
임구택의 눈빛은 깊어졌고 말없이 소희를 바라봤다. 구석에 앉아 있던 소씨 집안 사람들도 소희를 주시했다. 홍해인은 소희가 방금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아 면목을 상하게 했다는 사실에 여전히 화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장연경은 비웃듯이 말했다. “우리 소희가 들러리네!”소설아는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하며 냉담하게 말했다. “소희는 정말 명문이라면 가리지 않고 들러붙는 것 같아요.”이에 하순희가 비웃으며 말했다. “방금 들었는데, 연희의 웨딩드레스를 King이 디자인했다더군요 아마도 소희를 연희가 특별히 초대한 게 아닐까요?”주위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으며 하순희의 말을 듣지 않은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신랑 신부의 등장을 기다렸다.소희는 구택이 나타난 후로 심란해져 끊임없이 관객석을 살폈고 심명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중 좀 해, 소희야!”소희는 심명을 흘겨보며 말했다. “알겠는데 결혼식 끝나고 나면 넌 바로 가.”“왜, 구택이 나한테 손댈까 봐 걱정하는 거야? 네가 이렇게 날 신경 써 준다면, 구택의 손에 죽어도 괜찮아!”만약 이곳이 하객들로 가득 찬 장소가 아니었다면, 소희는 심명을 한발에 크리스털 샹들리에에 매달아 버렸을 것이다!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심명은 소희의 손을 잡고 무대 위로 걸어갔고, 소희의 손을 잡고 돌아가며 가까이에서 속삭였다.“소희야,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해.”소희는 순간 당황해, 몸을 돌려 자리를 떴고, 심명은 신사답게 소희의 손을 놓고 옆으로 걸어갔다.들러리들은 양쪽에 서서, 로맨틱한 웨딩 행진곡에 맞춰 서 있었다. 노명성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회전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반대편, 예식장의 큰 문이 서서히 열리고, 눈부신 빛 속에서 연희는 성동일의 손을 잡고 천천히 들어왔다. 연희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11개의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티아라를 쓰고 있었다. 연희의 아름다운 얼굴이 예식장을 숨죽이게 했다.요요와 또 다른 꽃동은 각각 웨딩드레스의 한쪽을 잡고, 마치 동화
결혼식장 가운데에서 노명성이 성연희에게 걸어갔다. 성동일은 이미 벅차올라 연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우리는 27년 동안 우리 딸 연희를 키워왔고 사랑했으니 이제는 자네가 우리 연희를 잘 챙겨주길 바라.”명성은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연희를 키우고 보호해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연희를 맡겨주신 것에 대한 신뢰에 감사드립니다.”“저도 약속드릴게요. 연희를 영원히 챙기고 사랑할 것이며, 오늘부터 더 사랑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성동일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연희의 손을 명성에게 넘겼다. 그 모습에 연희도 갑자기 목이 메어 겨우 입을 열었다.“저 앞으로 계속 행복할 거고요. 제가 시집간다고 해도 난 영원히 엄마 아빠 딸인 거 잊지 마요.”성동일은 눈물을 급히 닦으며 끄덕였다. “좋아, 명성이와 함께 가렴.”명성은 다시 한번 성동일에게 인사를 한 후, 연희의 손을 꽉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은 새로운 인생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인생 여정에서, 둘의 관계는 더욱 밀접해질 것이며,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면서 인생의 더 많은 희노애락을 즐기게 될 것이다.결혼식장에서, 주례자는 성경을 펼친 채 엄숙하게 서서 물었다. “신랑, 당신은 신부를 아내로 맞아 이곳에서 신부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을 맹세합니까?”“가난하든 부유하든, 병들었든 건강하든, 젊든 늙든, 신부를 영원히 사랑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맹세합니까?”명성은 연희를 애틋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저는 제 유일한 사랑인 신부를 아내로 맞아 이곳에서 영원히 사랑하고, 보호하고, 지지하면서 살아갈 것을 하나님께 맹세합니다.”명성의 말에 연희는 눈물이 고였다. 연희의 크고 맑은 눈동자는 명성과 떨어지지 않고 마주 보았다.명성과 연희의 관계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희는 감회가 새로웠다. 둘은 어린 나이에 만났고 둘 다 한눈팔지 않고 쭉 상대를 사랑해
방 안의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했다. 오범석은 임구택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녹음을 재생하자 곧바로 심명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조금만 더 안아도 될까?”“이렇게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나를 그리워하지 않았어?”“나는 그리워서 몸무게까지 줄었어.”“이번에 돌아왔으니 더는 가지 않을 거야.”“아버지 말씀이, 제대로 된 여자친구만 생기면 다시 돌아오게 해 주신대.”“그건 간단해, 나중에 널 아버지에게 소개시켜 주면 되지.”심명의 목소리는 흥분과 애정이 섞인 듯,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어조로, 마치 소희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내비치고 있었다. 구택은 눈을 반쯤 감고 입술을 굳게 다물었는데 온몸에서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이에 범석은 구택의 얼굴색을 조심스레 살피며 말을 이었다. “그 후에 심명이 저를 때렸어요. 저는 기절했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눈을 떴을 때, 심명이 그 여자를 계속 안고 있었어요.”그 말을 끝내자마자, 구택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고, 일어나서 범석을 발로 찼다. 이에 범석은 공중으로 날아가며 바닥에 ‘퍽’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범석의 가슴은 극심한 통증에 뒤틀렸고, 이빨 두 개가 부러지면서 입에서 피가 흘렀다.구택은 외투를 벗고 검은 셔츠만 입은 채로, 어두운 눈빛과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다가왔다. 이에 범석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범석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역력했다.“근데 왜 그곳에 있었지?” 구택의 질문에 범석은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일어나서 말해!”범석은 벽에 기대어 힘겹게 일어섰고 너무 놀란 나머지 바지는 이미 젖어 있었다.구택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두 사람이 3층에서 대화하는 동안 거기에 왜 있었는지 말해봐. 우연이라는 개떡 같은 말은 하지 말고.”“그래서 네가 그 여자를 따라갔는지, 아니면 심명을 따라갔는지 말해.”“저, 저.” 범석은 얼굴이 새하얘졌고 소희를 따라간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범석은 심명에게 발길질을 당
“싫어?” 임구택이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니요, 좋아요!” 오범석은 속으로 떨리면서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공개적으로 고백해야 해. 내가 듣지 못하면, 앞으로 여자 말고 남자만 상대해야 할 거야.” 구택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지만, 극도로 차가웠다. 이에 범석은 온몸이 떨리면서 본능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할게요, 고백할게요!”구택은 범석보다 키가 한참 더 컸고, 위압적인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심명과 이야기했던 그 여자를 알아?”범석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다시 보면 그 사람에게서 멀리해. 둘이 같이 있는 걸 본다면, 당신 아버지한테 네 가족을 위한 좋은 무덤을 준비하라고 전해.” 그러자 범석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나가.” 구택이 냉정하게 말하자 범석은 아픔을 참으며 밖으로 걸어갔다. 구택을 건드린 것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으며 가능한 한 멀리하고 싶었다.문을 열자마자 장시원이 서 있었고, 시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그리고 고백할 때는 좀 더 애절한 표정을 짓는 걸 까먹지 마시고.”시원의 웃음에 범석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달아났다. 시원이 문을 닫고 들어와 구택이 소파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임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왜 다시 담배를 피워?”구택은 속이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모금 피웠다가 담배를 꺼뜨리고, 범석이 가져온 핸드폰을 들어 땅바닥에 메쳤다.이에 시원이 물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데? 심명과 소희의 녹음이었나? 둘이 3층에서 무슨 일을 했어?”“그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하지?”구택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얼굴에는 음침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심명은 소희를 구해준 적이 있었기에 더욱더 구택을 속박하는 듯했다. 구택은 심명을 증오하면서도 손을 쓸 수 없었다. 더욱이 소희도 심명을 보호하고 있었고, 만약 구택이 심명을 건드린다면 소희와의 관계에 금이 갈 것이다. 심명 때문에 소
옆에서 누군가 탄성을 질렀다. “노명성 씨와 연희 씨의 결혼식이 정말 환상적이야. 집안도 잘 어울리고 둘 다 이렇게 잘생기고 예뻐서 마치 동화가 현실이 된 것 같아.”다른 사람이 말했다. “신랑 들러리와 신부 들러리는 누구야? 외모도 정말 최상급이네, 혹시 초청한 연예인인가?”“아냐, 들러리는 심씨 집안의 장남인 것 같고, 신부 들러리는 모르겠어!”“정말 아름답고 잘 어울려!”이에 임구택은 얼굴이 점점 더 어두워지며 굉장히 침울해졌다. 장시원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웃음을 참으며 구택을 이끌고 하객석으로 자리를 잡았다.반지를 교환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올린 후, 연희와 명성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며 결혼식을 마무리했다. 성은 연희를 이끌고 뒷문으로 나가 정원에서 사진을 찍으며 결혼 피로연이 이어졌다.심명은 요요를 안고 예식장을 떠나는데, 시원이 벌써 기다리고 있어 요요를 맡으며 미소를 지었다. “심명!”이에 심명은 웃으며 말했다. “연희가 말해줬어. 청아랑 다시 잘 지내고 있다니 축하해. 이렇게 좋은 아내와 딸을 얻게 되었네!”시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시카고에서 청아와 요요를 돌봐준 것도 고마워.”“별말씀을, 나도 요요를 정말 좋아하니까!” 심명은 요요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따뜻하게 미소 지었고 시원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택도 돌아왔고 소희와의 결혼식 준비가 한창이야. 그때 너도 와서 축하해줬으면 해.”심명의 웃음이 잠시 희미해졌다. “시원아,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겠지만, 소희를 좋아하는 건 내 문제야!”“구택과 소희는 벌써 혼인신고를 했어.”“그게 무슨 상관이야?” 심명은 무심코 말했다. “둘이 한 그 혼인신고가 뭔지 다 알고 있고, 게다가 2년 전, 구택이 소희를 한 번 상처 줬잖아.”시원은 온화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오해였어!”“오해라고? 그 오해가 소희의 목숨을 거의 앗아갈 뻔했어!” 심명의 눈빛에 서늘함이 더해졌고, 손을 들어 입술을 살짝 닦았다.
천다혜는 심명의 말에 가슴이 뛰었다. 다혜의 머릿속에서는 굉장히 로맨틱한 그림들이 그려졌다. 그래서 부케를 두고 경쟁하는 일은 이미 잊혔고, 다혜의 눈에는 오직 심명의 매혹적인 눈동자만이 남아 있었다....아무도 경쟁하지 않자, 하늘 높이 던져진 부케는 환호성 속에 소희의 손에 안착했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희를 둘러싸며 기뻐했다.포토그래퍼는 소희의 부드럽게 웃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부케를 잡은 소희는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고 본능적으로 사람들 틈에서 임구택의 모습을 찾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연희가 돌아보며 소희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기뻐했다. “자, 네가 부케를 받았으니 다음 결혼은 네 차례야!”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연희는 웃으며 말했다. “구택이 왔으니까 나랑 있을 필요 없어, 빨리 찾아가 봐!”소희의 눈빛은 일렁이었다. “그럼 강솔이 먼저 너랑 있어. 나는 나중에 갈게!”“응.”연희는 소희를 꼭 안으며 말하자 소희는 연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소희야, 나 정말 행복해!”“나도 그래!”그때 포토그래퍼가 연희와 소희의 사진을 찍었다. 해 질 녘의 꽃밭 아래 두 사람은 서로를 꼭 안고 있었다. 한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게 웃고 있어, 그림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그 순간에 고정되었다.옆에서 심명이 질문에 다는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우리 만난 적 있냐는 진부한 대시,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진부하죠!” 심명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드디어 어디서 만났는지 기억났어요!”다혜는 뒤로 손을 잡고 귀엽게 고개를 들어 심명을 바라보았다. “어디서요?”“방금 결혼식에서, 너도 신부 들러리였잖아요!” 심명이 깨달은 듯 말하자 다혜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심명이 말한 ‘만남'이 그저 방금 결혼식에서의 일이었다니, 다혜는 다소 난처해졌다. 다혜의 존재감이 그렇게 낮은가?이에 다혜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장난하시는 거죠? 모두가
“네 일은 다 끝났어?”임구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거의 다 됐어. 비행기에서 내려서 바로 여기로 왔지. 다행히 시간에 맞춰 왔네.”“자기야.”소희가 구택의 품에 안기며 속삭였다. “보고 싶었어!”구택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는데 소희의 말을 듣고, 온몸이 떨리는 듯했다. 모든 화난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확실히 소희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 단 한마디로 구택의 화난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힘. 구택은 고개를 숙여 소희의 눈과 입술에 뽀뽀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너무 보고 싶었어, 정말로!”구택의 뜨거운 입술이 소희의 하얀 뺨을 따라 부드럽게 내려가 입술에 격렬하게 입맞춤했다. 희는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벽에 기대어 열정적으로 화답했다.하늘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장내의 불빛은 하나둘씩 밝아지며 정원은 더욱 활기차고 떠들썩해졌다. 어두운 그림자 아래, 두 사람은 오랫동안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은 그들 품 안의 서로보다 중요하지 않았다.둘 다 숨이 차올랐을 때, 구택이 멈추고 소희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이 끝났으니, 우리 돌아가자.”소희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며 흐릿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했다. “나 신부 들러리인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떠나?”구택은 소희의 손에 들린 부케를 보며 더욱 꼭 안았다. “자기야, 우리도 결혼하자. 드라마 촬영 끝났으니까 나 결혼 준비 시작할게, 어때? 추운 날씨 기다리지 말고, 난 네가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 보고 싶어!”소희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그리고 할아버지와 스승님도 왔어. 당신 아버지도 같이 있으니까 그분들을 만나러 가자.”“할아버지도 왔어?” 구택은 조금 놀랐다. “원래는 스승님을 정식으로 방문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가도 될까? 너무 캐주얼로 뵙는 거 아닐까?”“괜찮아!” 소희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스승님은 그런 진부한 분이 아니야. 그런 거 따지지 않으셔. 게다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