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명을 지른 사람은 지연이었다. 그녀가 들어 올린 손목은 커피잔에 맞았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방과 접시는 모두 땅에 떨어졌으며 그녀는 팔을 안고 뒤로 물러났다.몇 사람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소희가 난간에 기대어 지연을 차갑게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지연은 소희를 보자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드러내며 아파도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주민의 뒤로 기댔다.소희는 위층에서 내려와 주민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더 이상 유림이한테 매달리지 말고 당장 꺼져요!"주민은 어색함을 느끼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유림을 바라보았다."유림아, 나 진심으로 너 좋아하는 거야. 너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니?"지연은 주민의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오빠, 우리 가자!"주민은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오늘 여기에서 떠나면 그는 유림을 완전히 잃을 것이라는 것을.유림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바라보았다."좋아, 내가 너한테 기회를 줄게. 지금 여기에 남고 내일 회사 그만둬. 앞으로 다시는 송지연을 만나지 않는 거야."지연은 곧장 소리쳤다."오빠, 잘 생각해 봐. 우리 아빠가 다음 달에 승진해 준다고 했어. 오빠 졸업하자마자 부사장이 되는 거야. 오빠 동창들 몇 명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겠어? 하지만 오빠 지금 그만두면 아무것도 없어!"주민은 눈썹을 찌푸리며 망설이고 고민하는 듯했고 눈에 고통스러운 기색을 잔뜩 띠고 있었다.지연은 이 기회를 틈타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빨리 회사로 가자. 오후에 고객 만나야 한다며?"주민은 못 이기는 체하며 지연을 따라 밖으로 나갔고 찔리는 눈빛으로 유림을 바라보았다."유림아, 나 기다려, 내가 반드시 너한테 다 설명할게!"유림은 가방과 목걸이를 그에게 던졌다."네가 산 쓰레기들 가지고 꺼져!"주민은 이미 지연에게 끌려 나갔다. 유림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가슴이 아팠고 얼굴을 가리고 통곡했다.소희는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소리 없이 그녀와 함께 있어줬다."울고 싶
"그가 그런 쓰레기인 이상 왜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을 방에 가두는 거야?""반성하고 있어.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한지."소희다 말했다."그가 잘못한 거지 네 탓은 아니야. 그는 너처럼 이렇게 슬퍼하지도 않을 건데 넌 왜 자신을 괴롭히는 거야? 그는 지금 이미 송지연과 좋다고 사귈지도 모르잖아, 근데 넌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고 있어."유림은 목이 메었다."하긴, 그들 정말 함께 있을지도 모르겠네.""유민과 할머님 걱정하게 하지 말고 나가서 뭐 좀 먹어. 단 음식을 좀 먹으면 기분이 좀 좋아질 거야."소희가 그녀를 설득했다.유림은 흐느끼며 말했다."알았어, 지금 나갈게. 고마워, 소희야!""아니야!"소희는 전화를 끊었고 잠시 후 유민이 그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보아하니 유림은 이미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은 것 같았다.유림과 주민은 철저히 헤어졌으니 소희는 진석에게 전화를 걸어 교양 주얼리 그룹과 계약을 해제하라는 일을 준비하라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미처 계약 해제서를 송 씨네 집안에 보내지 못했을 때, 송 씨네 집안은 이미 그녀한테 보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지연의 아버지 송진일은 자수성가했고 요 몇 년 동안 돈을 좀 벌자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강성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지연이 케이슬에서 얻어맞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회사의 경호원 10여 명을 데리고 직접 찾아왔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8층에 올라가자 흉악한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며 소희를 찾겠다고 고함쳤다.수미는 그들을 막으며 웃으며 말했다."소희는 지금 바빠서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진일의 경호원은 수미의 뺨을 내리치며 흉악하게 말했다."너한테 말을 한다고? 네가 뭔데? 빨리 그 미친년 불러와서 우리 사장님한테 절을 하고 사과하라 그래! 아니면 내가 여기를 다 때려 부숴버릴 거야!"수미는 비틀거리며 표정이 어두워진 채 말했다."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 있죠? 빨리 나가요, 그렇지 않으면
진일은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시 눈앞의 남자를 훑어보며 물었다."당신은 누구지?"구택의 눈빛은 맑지만 차가웠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임구택."진일은 처음에 반응하지 못하고 그저 이름이 귀에 익다고만 생각했다. 그가 임구택이 누구인지, 그리고 이 이름이 무엇을 대표하는지 알아차릴 때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시원과 다른 사람들도 이미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조백림은 손에 술병을 들고 진일을 보며 물었다."난 모르는 사람을 때리지 않거든? 당신 이름이 뭐야?"진일은 다리에 풀리며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다. 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말했다."오해입니다, 오해! 나는 여기가 임 대표님의 곳인 줄 몰랐어요. 내가 참 눈치 없었네요!"그는 아예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때렸다."죄송합니다, 임 대표님, 그리고 다른 도련님들. 내가 죽을죄를 졌네요!"이때 수미는 이미 경호원을 데리고 와서 진일 그들을 에워쌌다.시원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데리고 나가서 때려, 우리 방해하지 말고!"시원의 말을 듣자 그 경호원들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10여 명이 다가와 진일 그들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룸 안에서 기절한 경호원도 끌려나갔다.구택은 소파로 걸어갔고 소희는 시원이 자신에게 눈짓하는 것을 보고 뒤따라갔다.방안의 깨진 탁자와 술병은 재빨리 치워졌고 시원은 다른 사람들더러 계속 놀라고 했다.구택은 손을 뻗어 담배를 들려다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멈칫하다 옆에 있는 술을 들고 잔에 따르며 눈을 돌려 소희에게 물었다."누구죠?""교양 주얼리 그룹 사장님, 송진일이에요." 소희가 말했다.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소희는 유림과 주민의 일을 모두 말했다.구택은 긴 눈을 반쯤 떨구며 잘생긴 얼굴은 싸늘해졌다."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소희는 눈빛을 떨구며 입술을 오므렸다."유림은 가족들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도 그녀를 위해 비밀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요. 그리고 나는 이건 그녀 자신의 일이라서 주민과
소희가 물었다. "구택 씨는요?"명우는 담담하게 말했다."대표님께선 일이 있으시다고 아가씨더러 먼저 돌아가시라고 하셨습니다."소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슬은 어정에서 아주 가까웠고 또 메인 거리라서 등불이 환했다. 평소에 구택이 오지 않아도 소희는 스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오늘 구택이 특별히 명우더러 그녀를 어정으로 데려다주라고 한 것은 아마도 송 씨네 사람들이 다시 그녀를 귀찮게 할까 봐 걱정했던 것이었다.그는 화가 났어도 그녀의 안전을 생각했다.어정으로 돌아간 소희는 어두컴컴한 방안을 보며 한순간 마음이 허전했다.그녀는 구택이 왜 화가 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유림이 주민과 송가네 사람들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특히 그를 속이고 있어서 화가 났고 또 지연을 때릴 때 심명이 도와줘서 더욱 화가 났다.그는 임가네 집안일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또 은근히 심명에게 빚졌던 것이다.그녀가 모르는 것은 구택은 그녀가 그를 속여서 화가 났고, 그녀가 혼자 송 씨 가족과 맞서서 더욱 화가 났으며, 심지어 그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과 맞섰다는 것에 화가 났다. 오늘 그가 케이슬에 있었으니 다행이지, 만약 그가 없었다면? 만약 송진일이 사람들을 데리고 다른 곳에서 소희를 막았다면?......한밤중에 소희는 놀라 깨어나며 시간을 확인했다. 이미 밤 두 시가 되었다.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열고 나갔는데, 남자가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았다. 거실에는 불을 켜지 않았고 달빛 아래에서 남자의 잘생기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더욱 차가워 보였다.소희는 다가가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끊었다고 하지 않았어요?"구택은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며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서 껐다."나 때문에 깼어요?""아니요, 목이 말라서 물 마시러 나왔어요." 소희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구택은 소파에 기대어 담담하게 말했다."가서 자요!"소희는 일어났지만 떠나지 않고 남자의 곁에 앉아 머리를 그의 어깨에 기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
진일은 이틀 동안 병원에 있었다. 그는 구택이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먼저 받은 것은 북극 디자인 작업실에서 보낸 계약 중지 통보서와 변호사 경고장이었다. 작업실은 그가 KING의 이름을 도용하여 홍보한 것에 대해 작업실 제1등급의 디자이너 광고 홍보 비용에 따라 교양에게 20억의 배상을 청구했다. 그리고 전체 업계에 통고를 보내 쌍방의 계약을 중지하고 영원히 다시 계약하지 않겠다고 밝혔다.진일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 일은 북극 디자인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설마 북극도 구택의 산업은 아니겠지?구택의 타격도 인차 그에게 왔다. 거의 동시에, 모든 협력 업체들이 교양과의 계약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이 밖에 인터넷에서는 교양 주얼리 그룹이 전에 탈세하고 불법 수단으로 동업자를 압박하고 자기 브랜드의 주얼리도 전부 홍보 때와 다른 불량품을 팔고 있다며 폭로했고 경찰서, 세무부문, 공상국까지 일시에 그를 찾아왔다.진일은 몸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병원을 나와 회사로 돌아왔고 모든 부서는 이미 엉망진창이 되었다.품질 불합격이란 정보가 터져 나오자 교양 그룹 오프라인 매장은 주얼리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은 전에 산 주얼리를 가져오며 재검사를 요구했고, 가짜가 섞였으면 법에 따른 3배 배상을 요구했다.교양 그룹은 이미 상장되었기에 이 일로 하여 주식은 연속으로 하락하며 거의 전 강성의 사람들이 모두 교양 주얼리가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빚쟁이들도 진일의 회사, 별장에 찾아가서 송 씨 가족들한테 돈 갚으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회사 직원들도 분분히 회사에서 도망쳤고 이렇게 큰 회사는 텅 빈 빌딩 하나와 수없이 많은 빚만 남았다.......주민은 이미 며칠 동안 출근하지 않았고, 지연도 그가 세 들어 사는 집으로 숨었다. 주민은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교양 주얼리 그룹처럼 이렇게 큰 회사, 이렇게 큰 가업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망한 것일까?그의 부사장이 없어졌을 뿐만
그때 윤미는 그녀더러 진석이 교양 그룹과의 합작을 중지하라 할 때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북극은 교양 그룹과 몇 년이나 합작한 사이였고 도중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에 그녀는 도무지 진석이 무엇 때문에 갑자기 계약을 중지했는지 몰랐다. 설사 교양 그룹이 홍보를 위해 KING의 이름을 썼다고 해도 전에 진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교양과 따지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그 후 며칠 교양 주얼리 그룹에 관한 여러 가지 기사가 터져 나오자 윤미는 그저 진석이 미리 소식을 받고 그들과 선을 그으려 했다고 생각했다.진일은 요 며칠 줄곧 골머리를 앓아서 이미 전처럼 기세가 드높지 못했다. 그는 애원했다."우리 회사의 주얼리가 가짜라고 말하는 건 모두 모함이에요. 전혀 그런 일이 없어요. 누군가가 고의로 우리 회사를 망치려고 작정하는 거예요. 제발 작업실의 대표님께 말 좀 전해 줘요. 합작을 취소하지 말아요. 북극은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에요!"윤미는 진일이 불쌍해서 마음이 약해졌다."마침 오늘 우리 대표님이 왔으니까 내가 가서 만회할 기회가 있는지 물어볼게요.""그래요, 그럼, 정말 고마워요!" 진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진일은 애타게 10분을 기다렸고, 윤미는 응접실로 돌아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송 사장님, 우리 대표님께서 뵙자고 하세요."진일은 멈칫하다 인차 기뻐하며 물었다."북극 대표님께서요?""네, 따라오세요!" 윤미는 그에게 길을 안내하고며 작업실 2층으로 향했다.진석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윤미는 두 사람을 소개했고 진일은 아첨하며 웃었다."이렇게 오랫동안 합작했는데 진 대표님을 만나 뵙는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진석은 금테 안경을 쓰고 안색이 담담했고 손을 들어 윤미더러 나가라고 하고서야 미적지근하게 진일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죠?"진일은 인차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하면서 작업실더러 기소를 취하하고 다시 계약을 하자고 했으며 KING의 이름으로
밖은 떠들썩했지만 이 일의 주인공인 유림은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의 둘째 삼촌이 그녀 대신 화풀이하는 것도 몰랐고 송 씨 집안이 곧 파산한다는 것도 몰랐다!그녀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또 외출하고 싶지 않아 소희를 집에 초대하여 그녀와 함께 있게 했다.소희가 택시를 타고 임가네 도착하자 집에는 유림과 노부인만 있었다. 노부인은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소희를 보자마자 열정적으로 그녀와 인사했다."소희야!""할머님 안녕하세요!" 소희는 부드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오냐, 이쪽으로 와서 앉아라!" 노부인은 기뻐하며 옆에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소희더러 앉으라고 했다."요즘 잘 지냈어?"소희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네!"노부인은 상냥하게 말했다."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학비를 벌고 있다는 거 들었는데, 정말 철이 든 좋은 아이야, 시간 있으면 자주 집에 놀러 오고!""네, 감사합니다, 할머님!"노부인이 물었다."너 유림이 찾으러 왔지? 유림이 도대체 왜 저런담? 하루 종일 우울해 보이는데. 유림 엄마는 출장 갔지, 내가 물어도 나한테 도통 말을 하지 않아서 원."소희는 부드럽게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따가 제가 대신해서 물어볼게요.""오냐!"두 사람이 말을 하고 있다 유림은 위층에서 뛰어내려왔다."소희야!"소희는 일어났다. "유림아."유림은 어색하게 노부인을 한번 보고는 소희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우리 위층으로 올라가자!"소희는 고개를 돌려 노부인에게 인사를 했고 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가봐, 이따가 내가 주방의 사람들더러 너희들한테 먹을 거 좀 보내라고 할게."유림은 소희를 데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 뒤 바로 문을 닫고 그녀에게 물었다."우리 할머니한테 주민 얘기 안 했지?""아니." 소희가 말했다."그럼 됐어!" 유림은 안심하고 자신의 놀란 가슴을 달래며 그녀를 끌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가족들한테 말하면 안 돼. 너무 쪽팔리잖아!"소희는 담담하게 웃었
소희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근데 넌 뭐가 있지?"유림은 멈칫하다 그녀의 말을 알아차리며 천천히 말했다."내 생일이 곧 다가오고 있어."소희는 웃었다."이게 바로 기회잖아?"......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 노부인은 하인더러 유림과 소희를 아래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다.소희도 마침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기에 유림과 함께 내려갔다.아래층에 도착하자 노부인은 웃으며 그녀들을 불렀다."이리 와서 좀 봐봐, 이 안에 있는 사람 중 어느 게 제일 예쁘니? 네 둘째 삼촌한테 와이프 하나 골라주게."소희는 작별을 하려다 이 말을 듣고 제자리에 굳어지며 움직이지 않았다.유림은 다가가서 얼굴을 찡그리고 노부인의 손에 있는 사진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할머니,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사진을 보고 며느리를 뽑아요? 할머니는 유행을 잘 아신다면서요? 할머니 너무 아웃됐는데요?"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이제 나를 비웃는 거 보니 기분이 좋아진 거야?"유림은 입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돌렸다.노부인은 소희에게 손짓했다."쟤 상관하지 마. 소희 네가 한 번 봐봐. 너희 젊은이들의 안목은 나와 다르니까."소희는 다가가서 노부인의 곁에 앉았다. 그녀의 손에는 7~8장의 사진이 있었고 그 속의 여자들은 모두 아주 예쁘게 생긴 데다 옷차림도 모두 재벌 집 아가씨처럼 보였다.노부인은 웃으며 말했다."이 사진들은 그런 엉망진창한 필터를 쓰지 않았고 이 사람들도 모두 얼굴에 손을 댄 적이 없어. 소희는 누가 예쁘다고 생각하나?"유림은 키득키득 웃었다. "어머, 할머니, 필터도 아세요?""넌 참견하지 마!" 노부인은 콧방귀를 뀌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소희를 쳐다보았다."소희가 유림이 둘째 삼촌 대신 좀 골라봐!"소희는 사진을 모두 진지하게 한 번 보았는데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모두 예쁘게 생긴걸요!"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이 여자애들은 모두 재벌 집 아가씨로서 가장 좋은 교육을 받았고 생김새나 기질도 모두 무척 뛰어났다.유림도 사진을 살펴보며
“역시 이런 식으로 문제가 될 줄 알았어요.”은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하자, 손기수가 물었다.[이제 어떻게 하죠?]구은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장말숙한테 손자가 있잖아요. 그 애를 데려가요. 안전한 곳에 숨겨두고 지켜여.”이에 손기수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그건 납치 아닌가요?]“이건 우리 엄마 뜻이에요.”은서는 그 말을 강조하듯 단호하게 말했다.“일만 제대로 끝내면, 보수는 두 배로 줄 거예요.”그제야 손기수는 만족스레 웃으며 대답했다.[좋아요. 저한테 맡기세요.]은서는 다시 신신당부했다. “숨겨두기만 해야 해요.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요.”이에 손기수는 급히 말했다.[우리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요!]은서는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 말씀만 잘 따르면,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모든 게 은정을 내쫓는 날까지만 버티면 그만이었다. 장말숙의 아들이 위협되지 않게 만들어야 했고, 지금 중요한 건 은정을 최대한 빨리 강제로 떠나게 만드는 일이었다.두 시간 후.오현빈이 급히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형님, 큰일이에요. 장말숙 아주머니 손자가 납치당했어요!”은정의 눈빛이 차갑게 되었다. 그와 유진의 계획은 장말숙의 아들이 철없는 무뢰한이라는 걸 이용해, 서선영 쪽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만들고 그 사이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그런데 서선영은 한 수 더 앞질렀다. 직접 손자를 납치해 버린 것이다. 은정은 느긋한 듯 말했지만, 말투엔 서늘한 살기가 묻어났다.“왜 못 막았어?”현빈이 대답했다.[도착했을 땐 이미 데려가고 난 뒤였어요. 아이는 집에 혼자 있었고요.]장말숙은 요즘 일을 그만두고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자기 아들은 놀기 좋아하고 도박을 일삼으며 최근 큰 빚까지 졌고, 며느리는 친정으로 들어가 버렸다.장말숙이 서선영의 돈을 받은 것도 빚을 갚고 며느리를 다시 불러들이기 위한 것이었다.그날 점심을 먹고 잠시 슈퍼에 다녀온 사이, 손자가 납치된 것이다.은정은 알고 있
“아주머니는 분명 그날 일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 사람한테 직접 확인하러 갈 거예요!”임유진은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뛰쳐나갔다.“유진아!”구은서는 몇 걸음 뒤쫓았지만, 유진은 이미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은서는 굳게 이를 악물며 눈살을 찌푸렸다.서선영이 집에 없다는 걸 알자, 그녀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장말숙 아주머니 잘 지켜봐요. 유진이 그날 일 알아보려고, 지금 그 사람 찾으러 갔으니까.”그러나 서선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걔가 뭘 안다고 찾아?]은서는 차분히 말했다.“유진은 임씨 집안 사람이야. 찾으려면 못 찾을 사람이 없죠.”이에 서선영의 말투도 조금 무거워졌다.[알았어. 내가 금방 사람 붙여서 장말숙 감시하라고 할게.]은서는 이어서 냉랭하게 따져 물었다.“절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면서요? 근데 걔는 어떻게 안 거예요?”유진이 알았다는 건, 임씨 가족들까지도 이미 감지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은서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눌렀다.서선영은 얼버무리며 말했다.[아마 도우미 중 누가 말실수했을 거야. 다시 철저히 단속해 둘게. 걱정하지 마. 소문 좀 난다 해도 너한테까지 영향은 안 가. 넌 그냥 조용히 대본 연습이나 해.][이번 영화, 내가 네 외삼촌 꼬드겨서 겨우 투자받은 거 알지? 이번 기회 잘 잡아야 해. 딴 건 신경 쓰지 마. 연기만 잘하면 돼.]은서는 그 말에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번 영화는 유명 감독의 대작이었고, 은서에게는 이미지 회복의 유일한 기회였다. 그렇기에 서선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나 곧 촬영 들어가요. 그러니까 이번 일 절대 망치지 마요.”[알았어!]서선영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유진은 급히 차로 돌아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곧장 은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선영 쪽에서 곧 움직일 거예요.”[알고 있어. 이미 준비해 뒀어.]은정의 목소리는 침착했고, 유진은 안심하며 숨을 내쉬었다.이윽고,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고생 많았어.]이에 유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
“아파요!”유진은 짧은 비명을 내뱉으며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팔을 뻗어 구은정의 목에 매달리듯 안으며, 자기 얼굴을 숨기려 했다.이에 은정은 그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낮게 웃었다.“왜 예전 같지 않아? 예전엔 몰래라도 키스하려고 했으면서, 이젠 실컷 하라고 해도 도망치기 바쁘네.”유진은 은정을 꼭 안으며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속은 터질 듯 행복했다. 이제는 몰래 키스할 필요가 없다.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은정은 유진의 발그레한 귀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전에 난 늘 걱정했어. 네가 그냥 어린 마음에 나한테 끌리는 거라고. 그저 신기하고 새로워서, 가질 수 없으니까 더 마음이 가는 거라고.”“우리가 진짜로 사귀게 되면 금세 질릴 거라고. 나는 사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야. 총 쏘고 싸우는 것 빼곤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것도 몰라. 마음도 더 이상 젊지 않아.”“그래서 넌 언젠가 내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걸 깨닫고, 그 마음이 식을까 봐 두려웠어.”유진은 목이 메어,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가 기억 잃었을 때, 왜 다시 나한테 다가왔어요?”은정은 예전엔 그렇게 차갑게 거절했던 사람인데, 교통사고 한 번 났다고 갑자기 사랑하게 된 걸까? 혹시 죄책감 때문은 아니었을까?그런 생각이 유진을 계속 불안하게 했다. 잠시 침묵하던 은정이 조용히 말했다.“아마 너 없는 세상이, 정말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차가웠기 때문일 거야.”그 말에 유진의 가슴은 요동쳤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려는 듯, 어둠을 걷어내고 자신의 빛으로 은정의 세상을 덮어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유진은 다시 한번, 은정에게 입을 맞췄는데, 이번엔 더욱 깊고 부드러운 입맞춤이었다.은정은 곧 유진을 세게 안았고, 불같이 뜨거운 열기가 유진을 감쌌다.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되살아난 사람처럼, 은정의 키스는
“그 사람들이 설마...”유진은 커다란 눈을 뜨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구은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유진은 믿기지 않는 듯 놀람과 동시에 깊은 자책의 기색을 띄웠다.“결국 내가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자꾸 그런 식으로 네 탓 하지 마.”은정은 그녀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너는 둘 사이의 더러운 사정도 몰랐잖아.”유진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서선영은 그래도 이해가 가. 근데 구은서는 왜 그렇게까지 자기 엄마한테 협조한 거예요?”“자기 명예가 달린 문제인데, 게다가 지금은 연예인이잖아요. 설령 피해자라 해도, 그런 얘기 퍼지는 게 좋을 리 없잖아요.”은정은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대답했다.“십몇 년 전 그 일 땐, 은서는 진짜로 몰랐던 것 같아. 내가 샤워 끝내고 나왔을 땐 자고 있었고, 서선영이 소리 지르고 난리 쳐도 안 일어났거든.”“그땐 그냥 서선영한테 이용당한 거지. 근데 이번엔 서선영이 어떻게 설득했는지는 나도 몰라.”유진은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서선영은 정말 너무 악랄했다. 자기 딸까지도 그런 식으로 이용한다면, 못 할 짓이 뭐가 있을까?더구나 서선영은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루머가 은정에게 가장 치명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게 바로 구은태에게도 가장 아픈 약점이라는 것을. 그래서 서선영은 또다시 그 수를 썼다.유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중얼거렸다.“그때 전화받은 아주머니, 그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찾을 수는 있어. 하지만 서선영한테서 돈을 받았고, 아마 협박도 받았을 거야.솔직히 말해줄 가능성은 작아.”은정은 냉정하게 말하자, 유진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그래도 찾아봐야죠. 당장 데리고 가서 집에 가서 진실을 말하게 해야 해요!”은정은 유진의 손목을 붙잡았는데, 목소리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웠다.“서두르지 마.”“어떻게 안 서둘러요! 지금 이미 밖에선 온갖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유진이 답답해하며 소리치자,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