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조명 아래, 백림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무심코 메시지를 열어보려 했지만, 그 순간 뒤에서 유정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너, 여기 어떻게 왔어?”백림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서며, 유정의 손에 든 칵테일을 힐끗 보고는 가볍게 눈썹을 들었다.“이 늦은 시간에 술까지 마셔?”“아직 할 일이 좀 남았거든. 정신 좀 차리려고.”유정은 책상 쪽으로 걸어가 핸드폰을 들었다. 그녀도 아마 주준이 보낸 메시지를 본 듯,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며 답장을 보냈다.백림은 유정을 옆눈질하며 살짝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단지 작업 파트너라더니, 이제는 서로 일상까지 챙기는 사이가 됐나?”유정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찌푸렸다.“혹시 내 핸드폰 본 거야?”“그냥 테이블 위에 있어서, 슬쩍 본 거지.”백림이 담담히 말하자, 유정은 설명했다.“그냥 예의상 한 말이야.”백림은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며 무심하게 말했다.“유정아, 내가 하나 조언할게. 너희 둘이야 잘 맞는 사이라고 쳐도, 결국 온라인으로만 연결된 사이잖아.”“정체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사적인 감정까지 엮는 건 조심하는 게 좋아.”그러나 유정은 곧장 단호하게 말했다.“우린 떳떳한 관계야. 그리고 걱정하지 마, 주준은 분명한 신사야.”“신사?”백림은 여유롭게 웃었다.“그러면 신사가 뭔데?”유정은 백림에게 싫은 티를 내며 말했다.“적어도 너 같은 사람은 절대 아니지.”그 말에 백림은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유정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유정에게 다가갔고, 유정은 곧장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조백림, 그렇게 대놓고 뻔뻔하게 굴지 마!”“뻔뻔?”백림은 유전을 내려다보며,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더니 순식간에 들어 올려 책상 위에 앉혔다. 그리고 몸을 숙여 손으로 책상을 짚자 두 사람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유정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백림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경박하고 뻔뻔한 건 확실히 신사는 아니야.”백림은 낮게 웃었는데, 그 웃음은 매혹적이면서
유정은 귀 끝까지 빨개지며 웃음을 터뜨렸다.“시장 질서 파괴했다고 누가 고소하면 어쩔래?”백림은 태연히 말했다.“난 오직 너만을 위해 서비스하니까. 너만 안 고소하면, 난 안전하지.”‘오직 나만을 위해?’유정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그 말을 믿으란 말인가?’그래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묘한 어색함은 그 농담들로 확실히 사라진 듯했다.“잠깐만 기다려.”유정은 빠르게 병실로 달려갔고, 곧 숨을 몰아쉬며 돌아와 백림에게 작은 봉투를 건넸다.“안에 약 있어. 어깨에 바르긴 발라야지.”백림의 눈빛은 한층 부드러워졌다.“직접 발라주는 게 진짜 정성 아니야?”유정은 그에게 약을 밀어주며 말했다.“요 며칠은 내가 엄마 대신 병실에서 밤을 샐 수도 있어. 언제 돌아갈지 몰라. 네가 알아서 발라.”“간병인 있지 않아?”유정이 고개를 저었다.“아빠랑 더 있고 싶어서 그래.”백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고, 유정과 인사를 나눈 뒤 병원을 나섰다.오후, 유정은 장의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우리 저번에 갔던 그 바 말이야, 단속 들어갔대. 불법 성 접대 관련으로 꽤 크게 걸렸나 봐!]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유정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백림이었다.‘혹시 백림이 한 일일까?’[야, 유정아?]의현이 유정이 조용한 걸 눈치채고 불렀다.“듣고 있어. 누가 신고했대?”[잘 몰라. 하여튼 분위기 심각해.]의현은 아쉬운 듯 말했다.[내 낙이 사라졌어.]아애 유정은 웃음을 터뜨렸다.“너희 동네에 바가 그거 하나냐? 너무하네.”[무슨 소리야! 거기 남자 댄서 중에 내가 팬인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의현은 티타임 중이라 몇 마디 더 나누고는 곧 전화를 끊고 업무로 돌아갔다. 유정은 당연히 백림한테 물어볼 생각은 없었다. 괜히 스스로 자기 무덤 파는 것 같았다.이후 일주일간, 유정은 퇴근 후 매일 병원으로 향했다. 밤늦게까지 엄마와 함께 유탁준의 곁을 지키다 집으로 돌아갔다.주말엔 백림이 어머니와 함께 병문안을 왔다.
유정은 갑자기 눈을 뜨자, 백림의 깊고 짙은 눈동자 안에는 별빛처럼 반짝이는 감정과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다.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은 작고 연약해, 그 눈빛에 휩쓸려 삼켜지는 듯했다. 백림은 유정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쥐었다.마치 깨지기 쉬운 것을 소중히 품듯 부드럽게, 입맞춤은 너무도 능숙해서 도망칠 틈조차 없었다. 마치 전류가 온몸을 타고 흐르듯, 전신이 저릿하고 어지러웠다.유정은 백림에게 기댄 채, 저절로 눈을 감았다.한밤중 흐릿한 조명 아래, 백림의 몸에서는 은은한 단향이 났고, 뜨거운 입술과 혀의 움직임은 유정을 황홀하게 만들었다.그 감각은 마치 사막을 걷다 지쳐 쓰러지기 직전, 따뜻한 욕조에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물살이 몸의 피로와 먼지를 씻어내듯, 신경 하나하나가 느슨해지며, 유정은 멈출 수 없이 그 물속에 잠겨 드는 것 같았다.이때, 백림이 갑자기 멈췄고, 유정은 무심코 백림의 셔츠를 움켜잡고, 눈을 감은 채 낮게 말했다.“가지 마. 팁 더 줄게.”말이 떨어진 순간, 상상의 욕조가 갑자기 차갑게 식었다. 심지어 얼음처럼 싸늘해졌고, 그 추위에 유정은 몸을 움찔 떨었다. 눈을 뜨자, 백림의 깊은 눈빛이 유정을 바라보고 있었다.“자기야, 그동안 어디 있었어?”유정의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렸고, 백림을 밀치고 그대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백림이 손을 뻗었지만, 유정의 부드러운 니트만 움켜잡았고, 유정은 마치 연체동물처럼 가볍게 몸을 틀며 백림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유정은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재빨리 잠금장치를 걸었다. 그러고는 문에 등을 기대고 서서 숨을 헐떡였다.잠시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정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문에 이마를 기댄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음 날 아침.백림이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맞은편 방문은 이미 열려 있었고, 유정은 나가고 없었다.이윽고 초인종이 울려, 백림이 문을 열자 배달원이 서 있었다.“유정 씨가 시킨 아침 식사예요.”백림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친 유신희는 우아하게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나갔고, 백림은 시선을 떨군 채 유정을 바라보며 장난스레 웃었다.“어쩐지 늘 손해만 보더라. 수싸움으로 따지면 확실히 한참 뒤처지긴 하지.”유정은 백림이 자신을 말하는 걸 알았다. 곁눈질로 그를 흘겨보고는 팔을 뿌리치듯 놔버리고 그대로 돌아서서 걸어갔다. 이에 백림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서은혜는 유정에게 돌아가서 좀 쉬라고 했지만, 유정은 완강히 버텼다. 백림 역시 끝까지 남겠다고 했고, 결국 두 사람은 밤늦도록 병원에 머물다 서은혜의 거듭된 권유에 병원을 나섰다.다시 망강 아파트로 돌아온 유정은 해성에서 비행기를 탈 때 결심했던 일들이 다시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고 방 안 공기도 답답했다.그래서 유정은 유리문을 밀고 베란다로 나가자, 늦가을 새벽 공기가 차갑게 가슴을 파고들었다.이윽고 유정의 뒤로 백림이 다가와 옆에 나란히 섰고, 유정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가서 쉬어. 나 혼자 있고 싶어.”“유정아.”낮고 가라앉은 백림의 목소리에 유정이 돌아보았다.“응?”이때, 백림은 갑자기 팔을 뻗어 유정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유정은 반사적으로 몸을 빼려 했지만, 남자의 손이 가녀린 어깨를 단단히 눌렀고, 곧장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그날 밤은 내 잘못이야. 인제 그만 화 풀어.”유정은 너무 지쳐서였을까? 당장 뿌리치지 못하고, 그냥 조용히 남자의 품 안에 기대었다.백림의 어깨는 넓고 단단했고, 왠지 모르게 이대로 잠깐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백림은 유정의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절대 유신희랑 결혼 안 해.”유정은 베란다 밖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을 보며, 헛웃음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걱정했다고?”백림은 그녀의 옆얼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걱정 안 했어? 그럼 왜 내가 유신희랑 같이 있는 거 보고, 곧장 와서 내 약혼자라고 했는데?”“내가 언...!”유정은 얼굴이 뜨거워져 백림을 밀치려 했으나, 백
해성에 이틀 머문 뒤, 강성으로 돌아가는 날 유정은 마음을 정했다. 조백림의 집에서 당장 나가고, 이후 집안과 파혼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오후 네 시, 비행기가 착륙했다. 유정은 휴대폰을 키자 서은혜에게서 부재중 전화 세 통이 와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걸어 나오면서 유정이 바로 전화를 걸자 서은혜는 곧 받았다. 운 듯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 있었다.[유정아, 네 아버지 쓰러졌어. 지금 병원에서 응급처치 중이야!]유정의 머릿속이 윙 하고 울렸고,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어느 병원이에요? 무슨 병인데요?”[뇌출혈이래.]서은혜는 병원 이름도 말하자, 유정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가며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 내내 마음이 타들어 갔고, 병원에 도착했을 땐 하늘이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응급실 복도에는 유씨 집안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유정아!”서은혜는 유정을 보자 달려와 안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유정은 창백한 얼굴로 응급실에 켜진 불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빠는 어때요? 어떻게 갑자기 뇌출혈이에요?”그 어떤 징조도 없었기에 당황스러웠고, 서은혜는 울먹이며 말했다.“나도 잘 모르겠어. 점심에 너희 아버지랑 외식했는데, 식사 후에 차를 가지러 갔거든. 한참이 지나도 안 와서 내가 가봤더니 차 옆에 쓰러져 있었어.”“너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더라. 다행히 백림이가 근처에 있었고, 걔가 나랑 같이 병원으로 옮겼어. 제일 좋은 의사도 백림이 수소문했고, 수속도 다 밟아줬어.”서은혜는 완전히 겁에 질려 중심을 잃은 상태였기에, 백림이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다.유정은 고개를 들어 천천히 다가오는 백림을 바라봤다. 해는 저물었고,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백색 조명 아래, 백림의 얼굴은 늘 그렇듯 잘생겼지만, 지금은 장난스럽고 나른한 기색 없이 깊고 고요했다.지금까지의 모든 분노는 이 순간의 불안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유정은 목이 메어 낮게 말했다.“고마워.”백림은 유정의 피곤에 찌든 모습
“그럼 너희 관계는 대체 왜 유지하는 거야?”의현이 못마땅한 듯 말하자, 유정은 술잔을 꼭 쥐었다.‘그래,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결국 시간 낭비일 뿐이야.’유정은 돌아가면 약혼부터 깨야겠다고 다짐했고, 의현이 그녀 팔을 툭 치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저기 뒤쪽 봐봐.”유정이 힐끗 시선을 돌리자, 한켠에 한 사십대 여성이 잘생긴 남자 둘 사이에 앉아 있었다. 남자들이 좌우에서 들이대며 여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다.의현이 말했다.“조백림이 밖에서 그렇게 놀아도 되는데, 너도 왼쪽 오른쪽 한 번 안아봐야 손해 안 보는 거 아냐?”유정은 고개를 저었다.“됐어, 그런 거 나한텐 안 맞아.”의현은 놀란 눈으로 유정을 쳐다보았다.“설마 너 아직도?”그러고는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오늘 밤, 우리 한번 미쳐볼까?”그 한마디에, 삼십 분 뒤 유정은 의현과 함께 룸바에 앉아 있었고, 건장하고 잘생긴 남자 두 명이 각각 옆에 앉아 있었다.남자들은 딱 붙는 셔츠를 입고 있었고, 단단한 가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중 한 명은 유정의 등 뒤 소파에 팔을 걸치고, 낮고 깊은 목소리로 물었다.“처음 오셨어요?”룸 안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향이 감돌았고, 유정은 어지러움과 빠른 심장 박동에 휩싸였다.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감각이 흐려졌다.그러나 유정은 억지로 숨을 고르며 여유 있는 척 말했다.“아뇨, 처음은 아니에요.”그 남자는 유정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 천천히 위로 움직였고, 시선은 그녀의 얼굴을 훑고 있었다.“진짜 예쁘시네요. 눈이 너무 매력적이에요.”하지만 남자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오히려 유정은 오한에 가까운 거부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의 손을 눌러 막으며 술잔을 잡으려 했지만, 남자가 먼저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유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그 눈빛은 진득하고 유혹적이었다. 입술이 거의 닿으려는 순간, 그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백림으로 변했다. 그 차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