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문세윤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거두고 세라를 향해 말했다.“빨리 그 제안서 가져와서 부사장님께 보여드려요.”세라는 기다렸다는 듯 준비해 둔 자료를 꺼내 우행에게 건넸고, 남자는 서류를 받아 들고 화영을 향해 돌아섰다.아까의 차가운 업무 태도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스쳤다.“잠깐만 기다려요. 배고프면 먼저 디저트 조금 먹어요.”테이블 위에 놓인 웰컴 디저트를 본 문세윤은 화영에게 접시를 밀어주며 직접 과일주스까지 따라주었다.“그래서 제가 아까 먼저 주문하자고 했던 거죠. 화영 씨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면 실례니까요.”화영은 단정하고 우아한 분위기로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건네고는 잔잔히 웃으며 우행을 바라봤다.“편하게 해요. 난 오후에 티타임을 가져서 아직 배고프진 않거든요.”우행은 그 시선을 받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다시 제안서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다.맞은편에 앉은 세라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우행이 화영에게 다정하게 굴며 과하게 배려하는 모습까지 겹치자, 알 수 없는 질투와 불편함이 뒤섞여 치밀어 올랐다.테이블 아래에 둔 손이 저절로 힘을 주며 움켜쥐었다.세라는 우행이 일부러 자신 앞에서 화영과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에 우행은 몇 장 넘기지도 않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문세윤과 세라는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지만 우행의 표정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그리고 결국 단단하게 잘린 목소리가 떨어졌다.“문세윤 사장님, 효율을 운운하시면서 이런 부실한 자료를 가져오시면 서로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 아닌가요?”문세윤은 재빨리 세라를 흘끗 보고는 반박은커녕 바로 고개를 숙였다.“부사장님 말씀 맞지만 이번엔 전체적인 방향이 맞는지 먼저 여쭤보려고 초안만 가져왔어요.”“방향만 문제없다면 훨씬 디테일하고 완성도 높은 안을 다시 드릴 예정이고요.”우행은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의도는 이해합니다만 이 정도 수준이면 저희 쪽에서는 볼 가치가 없거든요
“좋아요. 그렇게 하죠.”문세윤은 활짝 웃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세라는 가볍게 인사만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저녁 7시, 세라와 문세윤은 약속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고급 서양식 레스토랑의 룸은 벽 한쪽이 와인 셀러로 채워져 있었고, 새하얀 테이블보와 은빛 촛대가 은은하게 빛이 났다. 따뜻한 색감의 샹들리에가 내려앉은 공간은 절제된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했다.문세윤은 소파에 앉아 시간을 확인했다.실례가 되지 않도록 10분 먼저 도착해 준비할 시간을 넉넉히 확보해 둔 터였다.“세라 씨.”문세윤이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솔직히 말해서 이번 임씨그룹과의 협력 건은 우리 회사가 오래전부터 여러 번 시도해 온 일이에요. 이번에 성사될 수 있을지 전적으로 세라 씨에게 달려 있고요.”그러자 세라는 흐트러짐 없이 앉아 차분히 대답했다.“입사한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일을 맡겨 주셔서 부담도 되지만,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게요.”세윤은 이미 확신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진우행 부사장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죠. 나는 세라 씨 능력을 믿어요.”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그러자 세라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아마 부사장님께서 오신 것 같아요. 문은 제가 문을 열게요.”문세윤도 급히 일어서 셔츠 매무새를 정리하며 미소를 띠고 뒤를 따랐다.문이 열리자 그곳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본 이세라는 얼굴이 굳어졌다. 방금까지 입가에 걸려 있던 잔잔한 미소도 순식간에 사라졌다.곧 화영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세라 씨?”우행도 당황한 듯 물었다.“너 여기서 뭐 해?”“부사장님!”문세윤이 잽싸게 앞으로 나와 환한 웃음으로 손을 내밀었다.“저는 문세윤이라고 해요. 드디어 뵙게 되었네요.”우행도 간단히 손을 맞잡았다.“반갑습니다.”세윤은 손을 거두고 이번엔 화영을 바라보았다.“그럼 이분은?”그저 우행이 데려온 비서나 직원쯤으로 짐작했지만 분위기에서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이에 우
이틀 뒤, 오후에 출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엠의 오랜 고객인 임수향이 화영에게 전화를 걸어왔다.[화영 씨, 오늘 저녁 시간 괜찮아요? 같이 밥이나 먹어요.]그 요청에 화영은 부드럽게 거절했다.“오늘 밤은 남자친구랑 할머님 뵈러 가야 해서요. 다음에 제가 대접할게요, 여사님.”[남자친구라고요?]임수향은 끝말을 길게 늘이며 은근한 재미를 감추지 못했다.[지난번 말한 그 사람인가요?]이에 화영은 담담하게 인정했다.“네.”[언제 결혼할 거예요?]임수향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기대가 섞여 있었다.“좋은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드릴게요.”[꼭이에요, 꼭이요.]“네.”[그러면 데이트 방해하지 않을게. 시간 되면 지엠에 들를 테니까 얼굴 봐요.]“네.”전화를 끊은 뒤, 화영은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러다가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퇴근 무렵, 세라는 사장실로 향했다.“사장님, 임씨그룹 협업 프로젝트 제안서 완성했어요. 오늘 저녁에 진우행 부사장님 뵙는 게 어떨까요?”입사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세라는 빠르게 승진해 이미 사장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위치가 되였다.그러자 문세윤은 놀란 얼굴로 물었다.“이렇게 빨리 끝냈어요?”그러고는 시계를 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근데 지금 연락드리면 퇴근 시간이라 부사장님이 안 받으실 수도 있어요.”그러자 세라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진우행 부사장님은 효율적인 사람을 선호하세요. 사장님이 제안서가 완성됐다고 직접 말씀드리면 분명 좋게 보실 거예요.”“그리고 업무에 정말 성실하신 분이니까, 저녁 시간에 여유만 있으시면 반드시 만나주실 거예요.”문세윤은 이미 세라를 우행의 연인이라 믿고 있었기에 그 말이 곧 확신으로 들렸고 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지금 바로 전화해 보죠.”전화를 누르며 문세윤이 세라에게 말했다.“만약 진 사장님이 오늘 저녁에 보자고 하시면, 같이 가서 제안 설명 좀 해줘야 하니, 오늘은 고생 좀 해야겠어요.”세라는 상냥하게 웃었다.“
우행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의사 선생님이랑 얘기 좀 하고 올 테니까 희유 곁에 있어요.”화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우행이 나가고 간병인도 자리를 비우자 병실 안에는 화영과 진희유만 남았다.화영은 희유의 손을 감싸며 낮게 속삭였다.“희유 씨, 정말 혼자서 산에서 떨어진 거예요? 아니라면 마음에 쌓인 억울함이 분명 있을 텐데.”“그러니까 빨리 일어나서 알려줘요. 누구보다 본인이 직접 말해줘야 해요.”그 말을 끝낸 순간, 희유의 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다.화영은 놀라 이름을 부르며 몸을 앞으로 숙였지만 희유는 여전히 그대로였다.호흡도 평온했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아까의 움직임은 자신이 손을 너무 세게 잡은 탓으로 생긴 착각처럼 보였다.화영은 잠시 실망스레 이마를 매만지다가 천천히 희유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그리고 마음속으로 희유는 반드시 깨어날 거라고 단단히 믿었다.‘반드시 깨어날 거야.’병원을 나온 뒤, 두 사람은 함께 우행의 본가로 향했는데 신서란을 뵙기 위해서였다.희유의 일이 생긴 뒤로, 신서란은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늘 평온하던 얼굴에도 잔잔한 수심이 어려 있었다.하지만 화영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만큼은 오랜만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집안일이 다 해결된 거야?”신서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깊게 배어 있었고 화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제 괜찮아요.”신서란은 마치 이미 모든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더 묻지 않고 그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너도 많이 힘들었겠네.”화영은 신서란의 손을 잡아 따듯하게 웃었다.“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다들 제 걱정해 주시는데 저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그동안 울리던 우행의 전화가 다시 진동했고 화영은 남자에게 다녀오라고 눈짓해 보냈다.그렇게 화영은 혼자 남아 신서란의 곁에서 담담히 대화를 이어갔다.신서란은 화영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를 보면 자꾸 희유가 떠올라.사고 나기 전날 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행은 화영이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걸 눈치챘는지 여자의 손가락을 감싸 쥐며 웃었다.“무슨 일인데 이렇게 기분이 좋아요?”화영은 손가락을 가볍게 맞물리며 미소를 띠었다.“내일 시간 있으면 우리 희유 씨 보러 가고, 그다음에 할머님 뵈러 가요.”“좋아요.”우행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창밖의 비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하늘 어딘가 구멍이 터진 듯 빗물이 쏟아졌고, 강성의 밤은 거대한 빗속에 잠겨 버렸다.유리창은 끊임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에 시야가 흐릿해졌고 차는 속도를 최대한 줄여 조심스럽게 움직였다.그리고 화영은 우행의 어깨에 기대어 거칠게 부딪지는 빗소리를 들었다.하지만 불안함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묘한 안정감이 차분히 스며들었다.우행은 팔을 들어 화영의 어깨를 감싸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화영 씨.”“응?”화영은 고개를 들어 우행을 바라봤다.“아니에요.”우행은 손끝으로 화영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이마를 톡 건드리며 다시 어깨에 기대도록 조심스레 눕혔다.화영이 이렇게 자신에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행은 충분히 만족했고, 진심으로 편안했다.집에 도착한 뒤, 두 사람은 나란히 샤워를 마치고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침실로 향했다.우행은 화영의 허리에서 욕실 수건을 잡아 빼고. 턱을 들어 올리듯 손가락으로 여자의 턱선을 감싸 연달아 입술을 포개 왔다.밖에서는 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쳤고 퍼붓는 빗줄기는 유리벽 전체를 쉼 없이 두드렸는데 밤새도록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이에 우행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내려앉았다.“추신수 씨 아기 얼굴 귀여운 거 봤어요?”번쩍하고 한 줄기 번개가 방 안을 밝히고 몇 초 뒤, 귀 가까이를 울릴 만큼 큰 천둥소리가 울렸다.그 소리에 화영의 목소리가 거의 묻힐 정도였다.“귀여워요.”“갖고 싶어요?”“음.”우행의 음성이 더 깊어지자 화영은 입술을 세게 물고 작은 숨을 삼킨 뒤 작게 답했다.우행은 고개를 숙이며 화영의 입술을 천천히 벌리듯 밀어
가윤은 얼굴을 잔뜩 굳힌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희문이 늘 나만 감싸니까 화영이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일부러 기윤 씨더러 용서 못 하게 만드는 거지.”희문은 즉시 고개를 들었다.“화영은 방금 돌아온 사람이고 그런 뜻 아니니까 괜히 추측하지 마.”몇 마디 더 오가고 있을 때, 우행이 화영과 함께 돌아왔다.“날씨가 좋지 않아서 우리 먼저 갈게. 계산은 끝냈으니까 너희끼리 편하게 이야기해.”곧 기윤도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나도 이제 집에 가볼게요.”“나도 갈게.”수호도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외투를 챙겼다.일곱 명 중 네 명이 일어서거나 이미 나가려 하니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세라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그럼 우리랑 같이 나가자.”그리고 우행을 향해 말했다.“원래 내가 사려던 자리였는데 결국 네가 계산하게 됐네.”우행은 담담했다.“괜찮아.”몇 사람은 함께 넘버 나인을 나섰다.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공기는 한층 더 촉촉해져 있었다.희문이 기윤이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다.“운전기사가 곧 도착하니까 내가 데려다줄게.”하지만 기윤은 고개를 세게 저었다.“아니야. 택시 이미 잡아놔서 금방 와.”희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조심해서 들어가.”기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아주 조금 고개만 끄덕인 뒤, 걸려 온 전화를 받으며 서둘러 빗속으로 향했다.그 사이, 우행은 검은 우산을 펼쳐 화영의 어깨 위로 기울였다.비는 굵었고 우행은 거의 절반 이상이 빗물에 젖고 있었지만, 남자의 시선과 몸은 오로지 화영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그 모습은 빗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산 같았다.폭우가 쏟아져도 우행은 화영을 지키는 자세를 계속 유지했다.세라는 건물의 계단 위에서 그 둘을 바라보았는데 눈빛에는 차갑고도 엷은 빛이 번득였다.가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둘은 결국 안 돼. 그러니까 너무 좌절하지 마.”세라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집에 가자.”말을 마치고 조용히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