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희도 그의 물음에 잠깐 멍해지더니 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그러자 장시원이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럼 다른 사람과 결혼했어요?"소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제 아이가 아니라, 친구의 아이에요."대답하고 있는 소희의 표정은 어딘가 착잡해 보였고, 요요를 안고 있는 손에도 덩달아 힘이 들어갔다.사실 청아는 장시원에게 요요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아했다. 그러니 그녀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거고.그런데 이렇게 공교롭게도 여기서 장시원을 만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장시원이 듣더니 아주 미세하게 한숨을 돌리고는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얼굴을 보노라니 알 수 없는 친절한 느낌이 들었다."정말 예쁜 아이구나. 이름이 뭐야?""요요."소희가 대신 대답하고는 요요에게 말했다."아저씨라고 불러야지, 요요야."요요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장시원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두 손을 내밀었다."아저씨 안아줘!"소희가 순간 멍해졌다.요요는 낯선 성인 남성을 엄청 두려워하는 편이라 밖에서 모르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 되도록 피해 다녔다. 그런데 지금 주동적으로 장시원에게 안기려 하다니. 소희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이것이 바로 부녀간의 텔레파시인가?’하지만 그것도 그럴게,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혈연이 그들을 얽매고 있었으니.장시원도 다소 의외였지만 즉시 손을 내밀어 요요를 품에 안았다.그러자 요요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안았다. 심지어 즐거운 나머지 발차기까지 했다.장시원은 처음으로 어린아이를 안는 거라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단아하게 웃으며 말했다."참 낯가림이 없는 아이네요."소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어디로 가는데요? 데려다 줄게요.""괜찮아요. 택시 타면 돼요."소희가 말하면서 손을 뻗어 요요를 안으려 했다."요요야, 우리 이제 집에 가야 해. 아저씨도 바빠."하지만 요요는 장시원의
"그렇죠."장시원은 더 이상 청아에 관한 일을 묻지 않고 고개를 숙여 품속의 깜찍한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이 아이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으니 아이의 부모님도 틀림없이 엄청 이쁘게 생기셨겠죠?”소희가 장시원을 한 번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대답했다."네, 두 분 다 엄청 이쁘게 생겼어요."차가 천천히 천위 호텔 밖에 멈추었고 장시원이 요요를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는 곰돌이를 안은 소희가 따르고 있었다.조백림이 약혼식을 위하여 천위 호텔의 비낙룸 전체를 전세 냈다. 오색찬란한 유리구슬로 만들어진 불은 중국식 고풍스러운 룸 전체를 환하게 비춰주었고 도처에 꽃과 분홍색의 풍선으로 꾸며져 사치스럽고도 호화로워 보였다.마침 오진수 등이 임구택을 둘러싸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높은 소리로 말했다."장 도련님도 왔어!”그리고 그의 소리에 다들 분분히 뒤돌아보았다. 멀리서 장시원이 품속에 아이를 안고 한 소녀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소녀는 품속의 거대한 곰돌이에 의해 얼굴이 가려져 누구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오진수가 바로 웃으며 말했다."장 도련님이 어떻게 아이를 안고 있는 거야? 설마 우리 몰래 낳은 건 아니겠지?""오늘은 조 도련님이 약혼식을 올리는 날인데 장 도련님이 아예 아이를 안고 오다니. 이건 조 도련님보다 더 뛰어나겠다는 거잖아.""역시 장 도련님이야. 매사에 앞선다니까."다들 하나같이 농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장시원과 그 옆의 소녀가 천천히 불빛이 밝은 곳까지 걸어왔고, 다들 그제야 소녀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다.그런데 소녀를 알아본 순간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몇 사람은 더욱 약속이나 한 듯 임구택의 눈치를 살폈다.임구택도 소녀를 알아보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일찍 알아보았다.하지만 눈동자에는 여전히 냉담함으로 가득 차 있어 태도나 감정을 알아낼 수가 없었다.왕년 임구택과 소희의 일에 대해 알 사람들은 다 알고있었다. 비록 지금은 이미 세월이 흘러 많은 것들이 변했다
장시원이 요요 안을 안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명원은?""명원이 여자친구 데리러 갔어. 조금 있다가 도착한대."오진수가 대답했다.그렇게 다들 웃고 떠들며 함께 연회장으로 들어갔다.연회장에 들어서니 하객들이 이미 거의 다 도착한 상태였다. 현장에는 강성 각계의 명류들이 술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그리고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몇몇 사람들이 임구택을 발견하고 분분히 와서 임구택과 이야기를 나누었다.장시원은 요요가 불안해 하고 있는 모습에 요요와 소희를 데리고 옆에 그나마 한적한 곳으로 갔다."소희 씨, 요요를 데리고 먼저 여기서 놀면서 음식을 먹고 있어요. 내가 금방 다시 돌아올게요."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전 그냥 조 도련님을 축하 해주러 온 거니까, 곧 갈 겁니다.""그건 나중에요."장시원이 웃으며 소희에게 요요를 건네고 요요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요요야, 아저씨 이따가 다시 와서 요요랑 놀아줄게."요요가 빛나는 큰 눈으로 장시원을 보며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아저씨 빨리 돌아와야 해!"아이의 깜찍 발랄한 목소리에 장시원은 갑자기 한 가닥의 말할 수 없는 정서가 솟아올랐다. 특히 요요의 맑고 깨끗한 두 눈을 쳐다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한 여인이 생각났다.방금 오진수 그들은 요요의 눈이 그를 닮았다고 농담을 했지만, 그는 요요의 눈이 그 여인과 더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래서 다정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곧 돌아올게."오늘 처음 만난 아이지만, 그는 아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소희는 곰돌이를 의자에 놓고 요요를 안은 채 음식 가지러 갔다.순백색 정교한 식탁보 위에 놓여 있는 각종 먹음직한 디저트는 보는 사람들마저 기분 좋게 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고민이 이런 정교한 디저트 앞에서는 전부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 같았다.요요도 순식간에 자신이 각별히 의지했던 장시원을 잊어버리고 디저트만 바라보았다.소희는 요요가 가장 좋아하는 우유 푸딩을 퍼서 아아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웃었다."아~ 해야지.
오히려 장시원은 일관적인 다정함을 드러내고 있으면서 또 약간의 소외감도 있는 것 같아 그가 여인에 대한 감정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장시원의 바람둥이 기질로 보면 저 여인이 전 여자친구가 아니면 지금 꼬시고 있는 여인인 게 분명했다.요요의 말랑말랑한 작은 손을 잡고 있는 소희는 갑자기 흥이 깨졌다.그래서 장시원이 옆의 여인과 이야기를 끝내면 가서 그와 인사를 하고 떠나려 했지만, 잠시 후 장시원이 다가와 바로 요요를 안아갔다. 그러고는 웃으며 말했다."화원에 음악이 나오는 분수와 불꽃쇼가 있거든요. 내가 요요를 데리고 가서 좀 놀다 올 거니까 소희 씨 먼저 뭐 좀 먹고 있어요."그러자 소희가 바로 말했다."저와 요요는 이만 가볼게요. 게다가 이렇게 파트너를 두고 자리를 뜨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은데요."장시원이 소희의 눈빛을 따라 쳐다보았다. 순간 그의 눈에 귀찮음이 스쳐지났다."내 파트너 아닙니다."우민율이 거의 2년 동안 그를 쫓아다녔지만 하필이면 그는 그녀에게 아무런 흥미도 없었다.소희는 의외인 듯 눈썹을 올렸다."아무튼 그렇게 서둘러 가지마요. 백림이 특별히 나에게 소희 씨를 잘 돌보라고 당부했거든요.""그럴 필요 없는데."장시원이 웃으며 말했다."난 그럼 먼저 요요를 데리고 놀러 갔다 올게요.""네."소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장시원이 요요를 안고 떠난 후, 소희는 의자를 찾아 앉았다. 주위의 사람들도 점차 조용해졌다. 조백림과 그의 약혼녀는 모두의 주목하에서 반지를 교환하고 있었다.여인의 뒤에 있는 탁자 위에는 각종 금기, 비취, 옥 조각품들이 놓여 있었다......여인도 명문가 출신으로 신분이 고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사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조백림과 약혼할 수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조건이 서로 맞는 가문의 아가씨여야만 했다.그들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결국 가문간의 통혼을 피할 수 없었으니까.물론 결혼하게 될 사람이 마침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느님
그런데 이때, 소희의 핸드폰이 울렸다. 소희가 수신번호를 한 번 보더니 일어나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진작에 화면에 뜬 이름을 본 임구택의 눈빛은 순간 어두워졌고 입술도 덩달아 일직선으로 오므려졌다.소희가 걸으면서 말했다."우리 지금 천위 호텔에 있어."핸드폰 맞은편의 심명이 듣더니 바로 물었다.[거기서 뭐하는데?]"오늘 조 도련님이 약혼하는 날이야. 시원 씨가 나와 요요를 데리고 왔거든."심명이 불쾌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왜 미리 나에게 말하지 않았어? 걱정했잖아.]이에 소희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웃으며 말했다."뭐가 걱정된다고 그래? 조금만 더 있다가 돌아갈 거야."[그래도 안 돼. 집에 오자마자 널 못 보면 걱정되고 불안하단 말이야.]심명이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아니다, 그냥 지금 데리러 갈게.]"응."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보니 나란히 있는 두 좌석이 모두 비어 있었다. 임구택은 언제 떠났는지 보이지 않았다.소희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앞에 있는 두 사람이 인사를 끝내기를 기다렸다. 그러고는 손님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나서 일어나 요요 찾으러 화원으로 갔다.화원에는 젊은이들이 모여서 불꽃놀이를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분수 옆, 장시원은 어디서 거품을 뿜는 장난감을 구했는지 현란한 불빛에 거품을 뿜고 있었고 요요는 깔깔거리며 거품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함께 놀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소희는 차마 앞으로 나가 방해하지 못했다."소희 씨!"그런데 이때, 뒤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장명원과 간미연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지난 2년 동안 세 사람은 줄곧 연락을 하고 있었기에 소희가 강성으로 돌아온 것에 대해 두 사람은 딱히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장명원이 흥분하고 격동된 표정을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지만 원망하는 말투로 말했다."돌아오자마자 우리를 가장 먼저 찾지는 않고, 조 도련님이 약혼한다니까 바로 달려오고. 보아하니 소희 씨의 마음속에서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제일 적
장명원의 말에 간미연은 순간 고개를 돌려 눈을 가렸고, 소희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그렇게 몇 사람이서 요요를 에워싸고 한창 놀고 있는데 심명이 이미 천위 호텔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걸려왔다.장시원이 시간을 한 번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마침 가야 하는데. 내가 가서 백림에게 인사만 하고 올테니, 같이 가요.""네."소희가 요요를 안고 장시원을 기다렸다.조백림은 소희가 떠난다는 걸 듣고 약혼녀와 함께 그녀를 배웅하러 나왔다.호텔 문밖으로 나오니 심명이 자신의 차에 기대어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소희를 보더니 바로 전화를 끊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심 아빠!"요요가 심명을 보자마자 작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안기려 했다.심명은 즉시 요요를 품에 안고 아이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소희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집에 가자.""응."소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뒤에 있는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요요가 ‘심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에 장시원은 마음속에 순간 이상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그 느낌보다 임구택의 반응이 더욱 궁금했다.전에 심명이 소희를 한 번만 힐끗해도 임구택이 참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소희가 심명의 여인으로 되었으니.심명이 한 손으로 요요를 안고 한 손으로 소희를 잡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다들 마음이 복잡해 나는 느낌이 들어 임구택의 반응을 몰래 살폈다.임구택은 멀지 않은 천위 호텔 문앞 큰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서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져 얼굴의 표정은 똑똑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 주위의 분위기는 초여름인데도 겨울에 처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심명은 고의로 임구택 쪽을 한 번 쳐다보고는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웃음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차문앞에 서서 직접 차문을 열어 소희가 차에 타기를 기다렸다. 동작은 너무나도 다정하고 자상했다.소희가 차에 오른 후 심명은 요요를 그녀에게 맡기고 운전석에 올랐다.세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훈훈하여 마치 한 가족 같
"전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요요가 청아의 아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어. 설령 안다 하더라도 자신의 아이일 줄은 생각지도 못할 거야."그래서 그녀는 안심하고 장시원에게 요요를 맡겼던 것이다. 설령 옆에서 무심코 요요와 그가 닮았다고 농담하더라도 장시원은 절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심명이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재밋네."소희가 듣더니 농담하듯 말했다."내가 너라면 나도 밖에 사생아가 있지 않을까하고 먼저 생각할 것 같은데."심명의 웃음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바로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절대 그럴 리가 없어!""그렇게 자신이 없어?"소희가 계속 놀리듯 물었다.심명이 눈부시도록 이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무튼 절대 그럴 리는 없으니까, 걱정마."심명의 대답에 소희는 눈썹만 한 번 올리고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오늘 청아가 병원에서 지내야 하는 날이라 소희가 요요와 함께 자야 했다. 처음엔 요요가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집으로 가는 도중에 깊이 잠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차에서 내릴 때 심명이 담요로 요요를 감싸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 다행히도 요요가 한 번도 깨지 않았다.보아하니 오늘 밖에서 노느라 많이 지친 듯 했다.소희는 요요의 신발을 벗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수건으로 요요의 얼굴과 손발도 닦아줬지만 요요는 여전히 달콤하게 잠들어 있었다.그 모습에 소희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방에서 나오니 심명이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가 나온 걸 보고 즉시 고개를 들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내가 남아줄까?"이에 소희가 그를 진지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자꾸 그런 농담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내가 잘못했어!"심명이 즉시 그녀의 말허리를 끊고 일어섰다."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넌 나와 선을 그을 수도 없고,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막을 수도 없어."소희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심명, 진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너에게
소희가 얼굴색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탄식했다."확실히 나의 잘못이긴 하지. 나만 아니었으면 너와 노명성은 진작에 아이를 낳았겠는데.”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성연희가 노명성과 헤어졌다고 한 건 거짓말이었다. 소희와 함께 떠나고 싶어서.소희 때문에 그들은 결혼식을 취소했고, 지금까지도 거행하지 않았다."왜 또 그 얘길 꺼내?"성연희가 시큰둥하게 소희를 흘겨보았다.그러면서 요요를 안고 다가가 소희의 곁에 털썩 주저앉았다. 표정이 왠지 복잡해 보였다."소희야, 그냥 솔직히 말할게. 나와 노명성 사이에 정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소희가 바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무슨 뜻이야? 설마 또 회사 연예인이 그를 꼬시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어?""아니! 아마 너무 오래 함께 있어서 이젠 상대방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소희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상대방을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말이야?""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안전감이 없이."성연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아무래도 사람 마음이라는게 항상 변하잖아!"성연희의 말에 소희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사람 마음이 변한다라......그녀보다 이 말에 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소희가 성연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세상 사람들이 다 헤어지더라도 너희 둘은 헤어져서는 안 돼.""감정에 있어서 누가 그렇게 확신할 수 있겠어."성연희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너희가 헤어지면 난 죄인이 될 거야.""그렇게 무슨 잘못이든 전부 다 네 자신한테 돌리려 하지마."성연희가 소희의 어깨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어차피 변할 사랑이라면 결혼해도 소용이 없어. 더 번거로울 수도 있고. 그러니까 이 얘기는 그만하고, 날씨도 좋은데 우리 요요를 데리고 놀러 가자!""나 사부님 뵈러 가고 싶어."소희는 돌아온 지 며칠이 되었지만 한 번도 사부님을 보러 가지 못했다. 갔다가 욕만 먹을까 봐 두려워서. 그런데 마침 오늘 성연희도 있으니, 함께 사부님의 화에 마주하면 딱 좋을 것
“그날 밤 전화했을 때 말이야.”유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게 바로 그날이었어요?”“그래.”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그는 서선영이 무슨 짓을 꾸미는지 몰랐다. 혹시 다시는 유진을 볼 수 없게 될까 두려워, 마지막으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사실은 유진에게 자기 집으로 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았다.유진은 자책하듯 말했다.“나도 그때 뭔가 이상하단 걸 느꼈어. 근데 안 찾아갔어요.”은정은 유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그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고, 유진은 단지 모호한 한 통의 전화로 구씨 저택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유진의 마음속은 여전히 무겁고 미안했다.“내가 갔더라면, 그 여자의 계략이 통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요.”“유진아, 우리 이제 과거에 대해 그만 후회하자. 응?”은정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며 말하자, 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중요한 건, 서선영 모녀의 거짓말을 어떻게 밝혀낼지였다.“그 여자가 떠나라고 하니까, 진짜 떠나려던 거예요? 도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됐어?”유진이 화가 난 듯 말하자, 은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듯 부드러운 눈빛으로 대답했다.“내 명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어. 네가 그 일 알고 나서 날 더 미워할까 봐, 그게 무서웠지.”호텔에서 유진이 여씨 집안 가족 모임에 참석한 걸 봤을 때, 그는 마음이 무너졌다.자신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앞으로도 더러운 과거 때문에 손가락질받을 인생인데, 그런 자신의 곁에 유진을 두는 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유진은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픈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유진은 두 손으로 은정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개 낀 듯한 눈동자가 그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은정의 어두운 그림자를 밀어내고 그 마음속까지 빛으로 채우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이번에는 유진이 먼저 입을 맞췄는데, 그 키스는 애틋하고 따스했
“정말 못됐어요. 그런데도 난, 이렇게 좋아하니까.”유진은 코끝을 훌쩍이며 속삭이듯 말하자, 은정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고, 유진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유진은 흐느낌 속에 물었다.“그래도 또 떠날 거예요?”“안 떠나.”은정은 마치 유진의 몸이 자기의 일부라도 된 것처럼 꼭 끌어안았다.유진은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도 입가엔 참을 수 없이 번지는 미소가 피어올랐다.멀찍이서 둘을 바라보던 소희는 마침내 안도한 듯 미소를 지었고, 잠시 바라보다 조용히 돌아섰다.은정은 티켓 환불을 마치고, 유진의 손을 꼭 잡고 공항 로비를 빠져나왔다.그때 소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유진이는 맡길게. 잘 달래줘. 난 먼저 갈게.]은정은 묵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소희, 정말 고마워.”[혹시 집안 문제,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은정은 원래의 냉정한 눈빛을 되찾으며, 대답했다.“아니, 내 일은 내가 해결할게.”[그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임씨 집안 쪽 설득도 내가 도와줄 수 있어.]은정은 낮게 웃었다.“혼자 힘으로 안 되면 그때 부탁할게.”전화를 끊은 뒤, 유진이 옆에서 물었다.“소희, 갔어요?”“응. 우리 집에 가자.”은정은 다시 유진의 손을 꼭 잡았다.유진은 그날 회사에 가지 않고, 전화를 걸어 휴가를 냈다. 이경 아파트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선 은정은 유진을 번쩍 안아 들고 그대로 입을 맞췄다.유진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고, 두 다리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세게 은정을 끌어안고 입맞춤에 응했다.유진의 반응은 은정을 더욱 자극했고, 입술은 불꽃처럼 뜨거웠다. 은정은 강렬함과 부드러움을 오가며 끊임없이 유진의 반응을 확인했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었을 때에야 숨을 고르며 입술을 떼었다.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언제 기억난 거야?”은정은 유진의 입술 위에서 낮게 물었다.유진의 커다란 눈동자엔 얇은 안개 같은 물기가 맺혀 있었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남아 붉
“나쁜 놈!”유진은 이를 악물고 욕설을 내뱉으며, 손등으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그대로 뛰쳐나갔다.허둥지둥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던 중, 예상치 못하게 1층 현관 앞에서 막 차에서 내리는 소희와 마주쳤다.유진은 달려가 소희를 끌어안으며, 눈물로 목소리가 떨렸다.“소희야. 그 사람, 갔어.”소희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침착하게 말했다.“지금쯤 공항 도착했을 거야. 얼른 차 타. 우리가 가서 막자.”유진은 울먹이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응.”차에 올라탄 후, 소희는 아침 출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가능한 한 빠른 길로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유진은 여전히 망연자실한 얼굴이었다.소희는 유진을 스치듯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두려워하지 마. 이번엔, 걔가 지구 반대편까지 도망친다 해도 내가 꼭 데려올게.”유진은 이를 악물며 눈물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공항에 도착하자, 소희는 시계를 확인했다.“지금쯤이면 막 보안 검색대 들어갔을 거야. 넌 안으로 들어가. 난 밖에서 기다릴게.”유진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북적이는 공항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탑승 게이트 앞, 마침내 수많은 인파 속에서 그토록 익숙하고, 아프도록 그리운 구은정의 뒷모습을 발견했다.너무 긴장한 탓일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은정이 거의 들어가려던 순간, 유진은 겨우 목을 눌러 뜨거운 한마디를 토해냈다.“서인!”이에 은정의 발걸음이 멈췄고,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사람들 사이 너머로, 유진이 서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소음, 움직임. 모든 게 멀어지고, 과거와 현재가 한꺼번에 겹쳤다.처음 만났던 순간.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 건네주던 은정의 등.“정말 대단해.”감탄하던 유진의 눈빛. 차가웠던 은정의 반응. 하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은정이 궁금했고, 따랐고, 그렇게 샤브샤브집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유진은
방연하는 어이없다는 듯 여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지금 진심이에요? 머리 괜찮아?”여진구는 연하를 째려보았다. 연하는 주변의 예쁘게 꾸며진 꽃길과 풍선을 둘러보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했다.“이거 진짜 예쁘네요. 나도 나중에 이런 대접 한번 받아볼 수 있을까요?”“너한테 고백할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하면, 내가 대신 해줄게.”진구는 시원하게 말하자, 연하는 헛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미리 감사 인사드릴게요, 여진구 사장님.”그 시각, 유진은 집에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뒤숭숭했고, 계속 뭔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날 밤은 뒤척이기만 하다가, 새벽이 되자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아침 7시가 되자, 임유민이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문에 기대선 그는 느슨하게 말했다.“누나, 이번 주 금요일 우리 학교 축구 경기 있어. 내가 수비수로 나가는데, 학교에서 가족 참관 받는대. 올래?”유진은 고개를 들어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좋지. 꼭 응원하러 갈게.”유민은 그녀가 짐을 싸는 걸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근데 누나, 짐은 왜 싸?”유진은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며 말했다.“이젠 다시 이경 아파트로 돌아가려고.”유민은 조금 놀랐다.“안 돌아가겠다고 하지 않았어?”유진은 눈을 내리깔며 담담하게 대답했다.“가고 싶어졌어.”유민은 문에 기댄 채 웃으며 중얼거렸다.“역시 내 예상이 맞았네. 근데 이번에는 그렇게 바보처럼 굴지 마.”유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뭐라고?”이에 유민은 씩 웃었다.“엄마는 아침 일찍 나갔고, 할머니한테는 꼭 인사하고 가. 안 그러면 또 가출했다고 난리 나실걸.”유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집에 없을 땐, 네가 좀 더 착하게 굴어. 할머니 기분 잘 맞춰 드리고.”유민은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말했다.“그건 숙모한테나 하라고.”유진은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짐을 정리한 후, 운전기사에게 짐을 차에 실어달라 부탁하고 자신은 할머니에게 인사드리
유진은 은정이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다시 호텔 위층으로 돌아갔다. 혹시나 여씨 집안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할까 봐 대비해야 했다.라운지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흩어졌고, 유진이 그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여씨 집안의 두 명의 며느리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셋째네는 평소에 그렇게 거칠게 굴더니, 오늘 자기 아들이 그렇게 당했는데도 조용하네?”다른 여성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들었는데 인후가 아가씨를 모욕해서 그렇게 된 거라더라고요. 이 일, 임씨 쪽이 알게 되면 여인후 가만두지 않을걸요?”“그래서였구나! 근데 때린 사람이 누군데?”“그건 잘 모르겠어요.”유진은 고개를 돌려 벽에 기대었다. 그 순간, 조금 전 은정의 어두운 눈빛과 먹먹한 표정이 머릿속을 스쳤고, 가슴이 다시 시리게 아파왔다.그때 여진구가 메시지를 보내오자, 유진은 핸드백을 챙겨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유진아!”호텔 정원에서 진구가 유진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꺼내려 했지만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선배!”이에 진구는 웃으며 말했다.“먼저 말해봐.”유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진구를 바라보며 말했다.“선배, 전 늘 당신을 선배로, 좋은 친구로 생각했어요. 그 이상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요.”“오늘 가족 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들 뭔가 오해한 것 같은데, 부디 오해가 더 커지지 않도록, 할아버지랑 어른들께는 확실히 말씀드려 주세요.”진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직 아무 말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유진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간파하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유진은 미소를 지었지만 그 표정엔 피곤함이 묻어났다.“조금 피곤해서 먼저 갈게요. 할아버지께는 대신 인사 부탁드려요.”유진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몇 걸음만 걸었을까? 그 순간, 뒤쪽 정원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형형색색의 하트 모양 꽃장식이 환하게 빛났고, 수많은 풍선과 조명이 하늘로 떠올랐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풍
“여진구 제대로야. 임씨 집안 딸이랑 결혼하면 우리 집안의 공신 되는 거지. 할아버지도 계속 웃고만 계시잖아. 아이, 우린 왜 그런 복이 없을까.”“네가 저 아가씨랑 결혼했으면, 진구 대신 네가 후계자 됐겠지.”누군가 농담을 건네자. 여인후는 코웃음을 치며 비꼬듯 말했다.“너희는 저 여자가 뭐 대단한 줄 아는 모양인데, 내 눈엔 그냥 싸구려야. 한쪽으론 우리 집안 며느리 노릇하려 들고, 한쪽으론 구씨그룹 사장한테 붙어먹고 있다니까?”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다른 한 명이 조심스레 물었다.“그거 어떻게 알아?”“내가 봤다니까, 거짓말일 것 같아? 할아버지 생신 잔치 때, 임유진이 구은정이랑 서로 잡고 끌고 하는 장면 내가 직접 목격했어.”인후는 비웃듯 말했다.“진구는 그걸 모르고 좋아 죽고 있겠지. 이미 유진한테 다른 남자가 생긴 줄도 모르고.”이에 사람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저 아가씨는 겉으론 참 청순해 보였는데, 의외네.”인후는 유진이 자신을 무시했던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고, 진구에 대한 질투도 더해져 그의 말은 점점 도를 넘었다.“겉으로 고상하고 순해 보이는 애들이, 뒤로는 더 음란한 거 몰라? 저런 여자가 제일 문란하게 노는 법이지.”“쾅!”갑작스레 문이 거칠게 열렸고, 인후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지만,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강한 주먹이 얼굴을 가격했다.그 한 방에 코뼈가 부러지고, 머릿속은 울려댔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아찔했다.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살기 서린 기운을 뿜어내며, 냉혹한 기세로 여인후를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여씨 집안 사촌 형제들도 함께 맞았다. 차례차례 쓰러져 바닥을 뒹굴었다.유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중, 옆방에서 들려온 날카로운 비명과 고통스러운 신음을 듣고 깜짝 놀라 즉시 방향을 틀어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멍하니 굳어버렸다.바닥엔 네댓 명이 쓰러져 있었고, 은정은 여인후의 머리채를 붙잡고
그날 밤, 여씨 집안의 한 어르신이 귀국해, 강성의 모 유명 5성급 호텔에서 가족 만찬이 열렸다.임유진은 여진구와 함께 도착했다. 메인 테이블은 여씨 직계 가족들로만 채워져 있었고, 무려 30명 가까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원탁이었다.진구의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은 그의 큰할아버지였다. 회장님의 친형으로, Y국에서 거주하다 이번에 가족을 데리고 일시 귀국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가족 모임은 여씨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다.유진은 처음에는 단순히 가족들끼리 조용히 저녁식사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초대한 것도 분위기만 맞춰주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파티장에 들어서자, 진구는 유진을 이끌고 바로 메인 테이블로 향해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렸다.한혜란 여사와 여순호도 유진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넸다.여순호는 직접 자신의 큰형에게 유진을 소개하며 자애로운 웃음을 지었다.“우리 진구가 신뢰하는 아가씨야.”그러고는 자기 옆자리에 의자를 추가해 유진이 외부인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에 앉게 했다.물론 유진은 임씨 집안의 딸이라는 명확한 신분이 있긴 하지만, 이토록 특별하게 대우하는 것을 보며, 진구와 유진의 관계는 이미 대부분의 사람 머릿속에서 확정된 분위기가 되었다.순식간에 파티장 안은 칭찬과 축하, 아첨의 말들로 가득 찼고, 진구와 동년배의 친척 중 몇몇은 눈에 띄게 부러움과 질투를 숨기지 못하며 억지로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유진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자리는 단순한 가족 식사가 아니었다. 이에 유진은 재빨리 핸드백을 챙겨 나갈 구실을 찾고 파티장을 빠져나왔다.호텔 복도 쪽으로 나와서야 숨을 돌린 유진은 진구에게 따졌다.“선배 왜 말 안 했어요? 오늘 선배 큰할아버지 귀국한 날이고, 집안 전체가 다 모이는 행사였다는 걸요. 처음부터 알았으면 나 안 왔을 거예요.”“할아버지가 꼭 널 데려오라고 했어. 부탁이라기보단 명령이었지.”진구는 웃으며 말했으나, 유진은 고개
정현준은 업무 능력은 있었지만, 결국 남녀 문제로 스스로 무너졌다.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 정리되자 여진구는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저녁, 우리 집에서 가족 모임 있어. 같이 가자.”그러자 유진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가족 모임에 내가 왜 가요?”이에 진구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가 널 보고 싶대. 지난번 생신 때는 제대로 인사도 못 했다면서, 꼭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도 할 말이 있어.”사실 진구는 오늘 저녁, 유진에게 고백할 계획이었다. 유진은 진구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한다는 말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몇 시에 가면 돼요?”“저녁 7시쯤. 내가 호텔로 데려다줄게.”“그래요.”진구는 미리 소혜와 시양의 해고를 결정해 두었기에, 두 사람의 자리를 대신할 인력을 미리 배치해 두었고, 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유진이 사무실로 돌아오자, 마케팅 부서 직원들이 하나둘 들어와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팀장님, 저희가 소혜 씨한테 휘둘려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앞으론 함부로 휩쓸리지 않을게요. 이번 일로 크게 깨달았어요.”“눈으로 본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그깟 사진 몇 장으로 괜한 오해 했네요.”...유진은 담담하게 모두의 사과를 받아주며 말했다.“괜찮아요. 이미 지난 일이고, 전 이 일로 누구 미워하지 않아요. 앞으로 일에만 집중하죠.”유진의 대인배적인 반응에 부서 내에서의 평판은 확 올라갔다. 유진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신뢰와 존재감을 동시에 확보했다.더 이상 누구도 진구 라인이라는 말로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어쩌면 현준이 사직과 업무 인수인계를 하러 다시 회사에 오게 된다면, 자신이 예전에 소혜에게 했던 말을 떠올릴지도 모른다.타협이 안 되면, 뿌리째 잘라낸다는 그 말, 소혜는 그 말을 흘려들었다. 그리고 현준도 이와 얽히고설켜 끝내 유진이 베어내야 할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업무를 마치기 전, 진구는 방연하에게 메
곽시양은 임유진의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있다가 나왔다. 복도로 나서자 동료들의 시선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시양은 다들 자신이 승진한 걸로 수군대는 줄 알고 웃으며 지나치려 했지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료 한 명이 다급하게 말했다.“시양 씨, 얼른 회사 이메일 확인해 봐요.”시양은 곧장 사내 메일함을 열어봤고, 그 내용을 확인한 뒤 3분 넘게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고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에 잡히는 물건을 움켜쥐고 그대로 진소혜를 향해 달려들며 집어던졌다.소혜도 가만히 있지 않았고, 두 사람은 한순간에 몸싸움으로 번졌다. 동료들이 달려와 가까스로 둘을 떼어놓자, 시양은 눈에 광기를 담고 소리쳤다.“진소혜, 이 악랄한 년! 팀장님도 모함하고, 나도 똑같은 수법으로 뒤통수 쳐? 너 같은 건 세상에서 그냥 사라져버려야 해!”소혜도 물러서지 않았다.“미쳤어? 그게 왜 내 탓인데? 그딴 더러운 짓을 해놓고 몰래 찍혔다고 나한테 화를 내?”“너야! 너밖에 없잖아!”시양은 미친 사람처럼 소혜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이때, 현준이 달려 나와 그녀를 막으며 말했다.“진정 좀 해!”“꺼져!”시양은 손을 뻗어 정현준의 뺨을 그대로 후려쳤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당신이 날 찍었지! 그리고 진소혜한테 넘겼지! 둘 다 정말 비열해!”현준도 결국 폭발했다.“유혹한 건 당신이 먼저였잖아!”시양은 그대로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아악!”유진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이 난장판을 조용히 지켜봤다. 몇 마디 오가는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어찌 돌아간 건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시양은 입사 이후 내내 소혜에게 눌려 지냈다. 겉으론 아첨하며 따라다녔지만, 소혜가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듯 대하던 걸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시양은 현준이 소혜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도 소혜에게 특혜를 줬던 그를 시양은 일부러 유혹했다. 현준을 차지해 소혜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현준은 시양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