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가족의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하늘은 버려졌다는 상처로 낮은 자존감 속에 살아간다. 첫사랑 재현과의 연애는 집착과 폭력으로 변질되고, 벗어나려는 순간 사고로 기억을 잃는다. 과거의 고통을 모른 채 다시 시작하게 된 하늘 앞에, 진심으로 그녀를 지키려는 동혁이 다가온다. 잃어버린 기억과 왜곡된 사랑 사이에서, 하늘은 스스로의 삶과 진짜 사랑을 선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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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고개가 돌아가는 속도보다 비릿한 통증이 먼저 뇌를 강타했다.
정점을 찍은 분노가 손바닥을 타고 재현의 뺨에 무겁게 박혔다.
고요하다 못해 서늘했던 실내에 파열음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흩어졌다.
“하늘아!”
뒤늦게 달려온 바다의 외침이 텅 빈 거실에 울려 퍼졌지만, 하늘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붉게 달아오른 재현의 얼굴을 쏘아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생경할 정도로 투명했다.
“내가 언제까지 네 그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놀아날 줄 알았어?”
하늘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얼음송곳처럼 예리하게 재현의 고막을 뚫고 들어갔다.
재현은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바로잡으며 하늘을 응시했다.
그가 아는 유하늘이 아니었다.
손끝만 스쳐도 바들바들 떨며 자신의 그림자 뒤로 숨던 그 가련한 ‘내 여자’가 아니었다.
“누…나?”
“누나라고 부르지 마. 아니, 내 이름조차 네 입에 올리지 마. 그 불결한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거, 소름 끼치게 싫으니까.”
재현은 순간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자신이 견고하게 지어 올린 새장이, 단 한 번의 손짓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이 울타리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자신의 오만한 믿음이 발밑에서 산산조각 났다.
“네가 날 조종하려 들 때마다 눈치는 챘어. 그래도 그게 네 방식의 사랑이라 믿고 싶어서, 바보같이 널 믿어줬던 거야. 아니, 당해줬던 거지. 그랬더니 내가 여전히 네 손바닥 위에서 노는 광대로 보이니? 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온 내가, 아직도 네 헛소리에 속아 넘어갈 그 어린 여자로 보여?”
하늘은 한 걸음 다가섰다.
재현이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뒤에는 차가운 벽뿐이었다.
공포의 주체가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재현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일렁였다.
비굴한 눈빛은 찰나에 휘발되었고, 그 자리에 서늘한 본성이 올라왔다.
그는 붉게 부어오른 뺨을 혀로 밀어 올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 많이 컸네, 유하늘.”
가면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태도를 바꾼 재현의 눈에는 더 이상 애정도, 미련도 없었다.
오직 살기만이 감돌았다.
“그렇게 나오면 재미없는데. 7년 전처럼 울고불고 매달려야 내가 좀 봐주지 않겠어?”
재현이 서서히 팔을 뻗어 하늘의 턱을 낚아채려 했다.
그러나 하늘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곁에 서 있던 동혁이 그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움켜쥐었다.
새장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수고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하늘을 전율하게 했다.
하늘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재현의 가슴팍을 세차게 밀쳐냈다.
제법 힘이 실린 일격에 재현이 중심을 잃고 현관 밖 복도로 밀려났다.
철컥,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가 나기 직전, 하늘은 문틈 사이로 차갑게 얼어붙은 일갈을 내뱉었다.
“다신 찾아오지 마. 한 번만 더 내 눈앞에 나타나면 그땐 바로 경찰서로 처넣을 거니까.”
재현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자신의 통제 아래 있다고 믿었던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지나치게 서늘했다.
하늘은 그런 재현을 벌레 보듯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리고 착각하지 마. 내가 많이 큰 게 아니라, 내가 원래 너보다 컸어. 이 장유유서도 모르는 무식한 자식아.”
누나라는 지위를 이용해 가스라이팅을 일삼던 재현에게 던지는, 가장 원색적이고도 통쾌한 일침이었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같이 쌓아 올린 공포의 벽이 무색할 만큼 조소 섞인 말투였다.
‘쾅—!’
문이 닫혔다.
두꺼운 문 너머로 재현의 비릿한 체취가 차단되자, 하늘은 그제야 팽팽하게 당겨졌던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등 뒤로 차가운 문을 기대고 선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거대한 숙제를 끝낸 뒤에 찾아오는 기분 좋은 전율이었다.
거실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바다는 굳어버린 채 동생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알던, 남자의 그림자만 봐도 숨을 헐떡이던 하늘이 아니었다.
“하늘아… 너 괜찮아?”
바다의 떨리는 물음에 하늘은 깊은숨을 한 번 내뱉더니 고개를 들었다.
눈동자에는 더 이상 패배자의 흔적이 없었다.
“응, 오빠. 이제 진짜 괜찮아.”
실내에서 새어 나오는 웃음소리는 현관문 너머 복도에 홀로 남겨진 재현의 고막을 잔인하게 긁어댔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세상의 전부였어야 할 여자가, 이제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하늘 씨.”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구동혁의 음성은 낮고 단단했다.
그 안에는 재현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상대를 온전히 존중하는 자의 깊은 염려가 담겨 있었다.
하늘은 그 다정한 부름에 화답하듯, 떨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 괜찮아요. 저한텐 오빠도 있고, 그리고… 동혁 씨도 있잖아요.”
‘동혁 씨.’
재현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일렁였다.
다정한 호칭이, 생면부지의 남자에게는 저토록 쉽게 건네지고 있었다.
재현이 공들여 쌓아온 고립의 성벽이 타인들의 온기에 의해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나도! 나는 왜 빼?”
이때 시은이 서운하다는 듯 장난스레 끼어들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아이, 당연히 언니도 있지. 언닌 이미 내 가족인걸.”
하늘의 웃음 섞인 대꾸에 이어 실내에는 따뜻한 온기가 감돌았다.
그 평화로운 소음들이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재현에게는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박혔다.
재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당황과 수치심으로 얼룩졌던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비릿한 분노로 일그러졌다.
자신이 부여한 공포 없이는 숨도 못 쉬어야 할 존재가, 감히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가족’과 ‘연인’을 논하고 있었다.
재현은 문손잡이를 부서져라 움켜쥐려다 멈췄다.
안에서 들리는 웃음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심장 밑바닥에서는 검은 타르 같은 증오가 차올랐다.
‘가족? 동혁 씨? 웃기지 마. 네가 돌아갈 곳은 결국 내 발밑이야, 유하늘.’
재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았다.
센서 등이 꺼진 어두운 복도,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비참함이 분노로 치환된 자리에는 광기 어린 집착이 독버섯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85화. 즐거운 주말“팀장님…….”‘쪽.’갑자기 거리를 좁혀온 동혁의 입술이 하늘의 달아오른 입술 위로 짧고 가볍게 내려앉았다가 떨어졌다.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서늘한 향수 냄새와 함께 뜨거운 온기가 부딪쳤다.“팀장님 금지라고 했을 텐데요.”동혁이 하늘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사내에서 그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오직 제 연인 앞에서만 무장해제 되는 어여쁜 웃음이었다.남자가 이토록 예쁘게 웃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호선 그린 입매가 저녁 조명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바, 밥 먹다 말고 진짜 뭐 하시는 거예요! 빨리 밥이나 먹어요.”하늘은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를 숨기려 허둥지둥 숟가락을 쥐고 국물을 크게 떠 넣었다.뜨거운 국물 때문인지, 방금 전의 입맞춤 때문인지 두 뺨이 새빨간 장미처럼 화사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귀 끝까지 붉어진 채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은 하늘을 보며, 동혁은 흐뭇한 눈길로 다시 수저를 들었다.“토요일에 같이 장 보러 가요.”동혁이 물컵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못을 박았다.단순히 흘러가는 말이 아닌, 주말의 일정을 확실하게 고정해 두겠다는 다정한 통보였다.세상 밖으로 나가 적응하겠다던 하늘의 조금 전 결심을, 그는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고 곧장 현실의 계획으로 실행에 옮겨준 것이다.“네!”하늘이 기다렸다는 듯 활기차게 대답했다.붉게 물들었던 두 뺨에는 여전히 부끄러운 기색이 남아 있었지만, 대답하는 목소리만큼은 주방의 정적을 단숨에 깨뜨릴 정도로 싱그럽고 청량했다.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일부러 숟가락으로 밥알을 꾹꾹 누르며 배시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냈다.오빠라는 거대한 울타리에서 벗어나 홀로 서는 첫걸음이 구동혁이라는 남자와 함께라는 사실이, 두려움보다는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동혁은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다시피 한 하늘의 정수리를 보며 가볍게 콧노래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저렇게까지 정직하게 반응해 주니, 앞으로 다가올 주말이 벌써 길게 느
84화. 세상에서 가장 멋없는 프러포즈어둠이 밀려든 거실에는 낮게 맞물리는 숨소리와 옷가지가 스치는 서글픈 마찰음만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동혁의 입술은 하늘의 도발을 집어삼키듯 집요했고,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은 손길에는 빈틈이 없었다.밀어낼 생각도 없으면서 동혁의 단단한 어깨를 유영하듯 쥐고 있던 하늘의 손가락 끝이 점차 잘게 떨려왔다.얼마나 숨을 나눴을까.입술이 떨어지는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노골적으로 얽혔다.하늘은 붉게 달아오른 숨을 몰아쉬며, 제 목덜미를 받치고 있는 동혁의 손등 위로 뺨을 살며시 기댔다.“……반응이 너무 정직하신 거 아니에요?”하늘이 자극적인 장난기를 거두고 조금은 물기 어린 음성으로 속삭였다.동혁은 엄지손가락으로 하늘의 젖은 입술 가장자리를 천천히 쓸어내렸다.그의 시선은 하늘의 얼굴을 지나 거실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 쇼핑백으로 향했다.유바다가 밤새 피를 말려가며 개어놓았을 동생의 흔적들.동혁은 그것이 하늘에게 줄 안도감과 슬픔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정직하지 않으면 잡아두질 못하니까.”동혁이 하늘의 이마 위로 가볍게 입을 맞추며 밀착했던 몸을 한 걸음 물리 시켰다.남자의 품이 떨어져 나가자 차가운 거실 공기가 그새를 메웠다.동혁은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며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저녁은 먹었습니까.”“아직요. 팀장님 기다리느라.”“구동혁입니다.”동혁이 냉장고 문을 열며 낮게 정정했다.“집에서까지 그 딱딱한 직함으로 불리고 싶진 않군요. 입을 맞추고 싶을 때 부르는 치트키라면서, 방금은 도발치고 너무 진지했습니다.”하늘은 소파에 멍하니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냉철하기로 소문난 남자가 제 호칭 하나에 이토록 예민하게 구는 모양새가 제법 비현실적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하늘은 소파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은 채,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조리대 위에 늘어놓는 동혁의 등판을 가만히 응시했다.완벽하게 재단된 와이셔츠 위로 드
83화. 발칙하게자신이 채워주지 못했던 어른의 울타리, 그리고 하늘이가 가질 수 없었던 완벽한 안전지대를 구동혁이라는 남자는 고스란히 쥐고 있었다.동혁은 바다의 감사 인사에 소리 내어 답하지 않았다.그저 옅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을 뿐이었다.그 침묵의 무게가 오히려 어설픈 대답보다 훨씬 더 신뢰가 갔다.“면목 없다는 말은 이제 그만하죠.”동혁이 다시 숟가락을 들며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하늘 씨를 지키는 건 이제 내 몫도 섞여 있으니까, 바다 씨는 본인 몸이나 먼저 챙기세요. 회사에서 기획안 엉망으로 들고 오면 사적인 감정 배제하고 칼같이 반려할 생각이니까.”일부러 공적인 궤도로 대화를 돌리는 동혁의 배려에 바다는 참았던 자그마한 실소를 흘렸다.굳어 있던 어깨의 긴장이 그제야 스르륵 풀려나갔다.바다는 비로소 가벼워진 손짓으로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떠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모래 맛 같던 음식이 이제야 겨우 삼켜지기 시작했다.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식당을 나와 빌딩 숲 사이의 짧은 산책로를 걸었다.정오의 볕은 제법 뜨거웠지만,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오월 특유의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 겉면에 맺힌 물방울이 바다의 손가락을 타고 차갑게 흘러내렸다.동혁은 슈트 재킷 단추를 하나 채우며,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덤덤하게 물었다.“쇼핑백은 뭡니까? 식사 내내 발치에 두고 신경 쓰던데.”바다는 제 왼손에 들린 커다란 종이 쇼핑백을 슬쩍 내려다보았다.아침에 자취방을 나오며 하늘이의 방에서 고르고 골라 담은 옷가지들이었다.“아, 이거…… 하늘이 짐입니다. 당장 몸만 빠져나간 애라 갈아입을 옷도 마땅치 않을 것 같아서요.”바다가 멋쩍게 긁적이며 쇼핑백을 동혁 쪽으로 슬며시 내밀었다.직접 전해주기엔 아직 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숨 막혀 할 동생의 눈빛이 두려웠고, 그렇다고 모른 척 연을 끊고 살기엔 눈에 밟혀 미칠 것 같았다.결국 선택한 것은 상사를 통한 대리 전달이었다.
82화. 구동혁이라는 울타리정오를 알리는 알람과 함께 빌딩 숲에서 쏟아져 나온 직장인들로 식당가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찌개 끓는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한 한식집 안쪽, 유독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테이블이 있었다.동혁과 바다는 마주 앉은 채 정갈하게 차려진 탕 반상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평소라면 업무 이야기로 매끄럽게 흘러갔을 점심시간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사뭇 달랐다.사내에서는 완벽한 상사와 부하 직원이었으나, 사적으로는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복잡한 관계의 파편들이 수면 위로 찰랑거렸다.바다는 숟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하늘이는 좀 어떻습니까? 팀장님께 면목이 없습니다.”사적인 질문이었기에 목소리는 한없이 낮아졌다.동혁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했다.초췌해진 부하 직원의 얼굴에는 숨기지 못한 죄책감과 피로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제 연인을 지옥 같은 고통으로 밀어 넣은 장본인이었지만, 동시에 그 연인이 목숨보다 아끼는 유일한 혈육이기도 했다.“많이 진정됐습니다.”동혁의 음성은 담백하고 차분했다.섣부른 위로나 과장된 안심은 없었다.“마음은 아직 정리가 다 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제 앞에서는 애써 웃어 보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그렇겠죠…….”바다가 쓰라린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제 앞에서 울부짖던 하늘이의 마지막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저를 보며 숨도 쉬지 못하던 아이가, 다른 남자의 곁에서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독하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밥도 제때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동혁은 물컵을 쥐며 덧붙였다.“하늘이의 마음이 풀릴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죠……?”바다가 물기를 머금은 눈으로 동혁을 올려다보았다.수십 년 동안 꽁꽁 싸매어 둔 진실의 벽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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