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가희는 다시 정해연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뺨을 내리쳤다.이에 심별하가 허겁지겁 달려와 막아서며 불같이 화를 냈다.“옹가희! 너 정말 이제 답이 없구나!”옹가희는 밀쳐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으나 심별하는 오직 정해연만을 걱정하고 있었다.“해연아, 괜찮아?”정해연은 울먹이며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아까 너무 놀라서 다리가 후들거리는 바람에 언니 웨딩드레스를 망가뜨려 버렸어요. 이제 어쩌면 좋아요?”심별하가 말했다.“괜찮아. 고작 웨딩드레스일 뿐인걸? 디자이너를 찾아 이것보다 더 비싸고 예쁜 걸로 새로 해주면 돼.”그러나 두 사람의 등 뒤로 옹가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경찰서죠? 웨딩숍에 멀쩡히 세팅되어 있던 제 웨딩드레스를 누군가 몰래 입고 악의로 망가뜨렸어요. 배상을 원하고 절대 합의는 없을 겁니다.”그러자 심별하가 바로 고개를 돌려 옹가희를 바라봤다. 옹가희는 자리에 주저앉은 그 상태 그대로였고 무릎이며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그리고 심별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낯선 이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차가웠다.당황한 심별하는 왠지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낮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가희야, 왜 경찰에까지 신고해?”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가희야, 심별하가 널 괴롭혔어?”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가 아주 잘생기고 훤칠한 남성이라는 게 느껴졌다.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고 어느샌가 입구에는 잘생기고 차가운 분위기의 진강남이 서 있는 게 보였다. 흰 셔츠에 검정 바지만 맞춰 입었을 뿐인데 분위기는 웬만한 배우 뺨칠 정도로 잘생겼다.그러나 진강남의 두 눈은 초점이 잘 맞지 않았고, 옆에 있던 두 경호원이 진강남을 인도해 세 사람에게로 걸어가게 했다.정해연은 입이 떡 벌어졌다. 심별하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진강남의 옆에 있으니, 상대도 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강남이 옹가희 앞으로 다가갔고 시야는 흐릿했지만 옹가희의 실루엣만 보고도 손을
옹가희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심별하의 손길을 피했다.“오빠, 우린 이제 끝이에요!”“아니, 애초에 시작한 것도 없으니 끝이라고 할 것도 없겠죠. 앞으로 다시 내게 연락하지 마요.”심별하는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가희야, 너 뭐라고 했어? 지금 나랑 헤어지자고 말한 거야?”옹가희는 냉소를 터뜨렸다.“착각하지 마요. 우린 만난 적도 없으니까 헤어진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그리고 혼약은 애초에 어른들이 마음대로 정한 거니까 내가 알아서 말씀드리고 없었던 일로 할 게요.”옹가희는 정해연이 두 사람의 결혼 전에 나타나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올리고 이 난동을 부렸다면 유씨 가문에 먹칠을 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되돌릴 시간이 충분했다.심별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대체 왜? 내가 해연이를 좀 도왔다고 바로 혼약을 물리겠다고? 넌 결혼 약속이 장난 같아?”옹가희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난 오빠가 착한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오빠는 착한 게 아니라 둔하고 멍청한 거였어요. 정해연이 사라지면 또 두 번째, 세 번째 정해연이 나타나겠죠. 난 오직 나만 사랑하고 나만 지켜줄 남편이 필요해요.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심별하는 잔뜩 당황해서 옹가희의 손을 덥석 잡았다.“아니야, 가희야 난 너만 사랑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속엔 너만 있었어. 너도 내 마음 잘 알잖아...”그때, 정해연이 갑자기 무릎을 털썩 꿇었다.“언니, 모두 제 탓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끼어들어서 생긴 거니까 이제 후원도,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다시 그 지옥으로 돌아갈게요. 그러면 두 사람 아무 문제도 없을 거잖아요.”“언니, 제발 별하 오빠 탓하지 마요. 앞으로 다시 오빠 따로 만나지 않을 테니까 헤어지지 마세요.”심별하는 빠르게 정해연을 부축했다.“해연아, 이건 네 탓이 아니야. 나와 가희 두 사람 문제지.”몰래 옹가희를 바라보는 정해연의 시선에는
“별하 오빠, 나도 불이 났던 그 장소에 있었어요.”심별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가희야, 그건 전에도 여러 번 말했었지만 해연이는 심장병이 있잖아. 넌 몸도 건강하고 귀도 거의 다 나았으니 사정상 해연이를 먼저 구할 수밖에 없었어.”“넌 양부모님도 계시고 친부모도 찾았잖아. 지금은 또 친부모님 옆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있고. 그런데 해연이는 우리밖에 없으니까 잘해주고 싶었어...”“닥쳐요!”옹가희는 심별하의 말을 잘랐다.“앞으로 해연이한테 잘해주고 싶으면 오빠나 그렇게 해요. 다시 나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변명 붙이지 말고요!”심별하는 자리에 얼어붙었다.“가희야,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옹가희는 웨딩드레스만 눈에 들어왔고 더는 심별하와 한 마디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심별하를 힘껏 밀어내고 정해연 앞으로 다가가 웨딩드레스를 움켜쥐며 말했다.“내 웨딩드레스니까 지금 당장 벗어!”“그리고 깜빡하고 얘기해주는 걸 잊었는데 이제 후원도 끝이야. 앞으로 네가 죽든 살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정해연도 화가 났지만 목소리를 낮게 깔며 옹가희를 도발했다.“언니, 별하 오빠가 이제 내 껀데, 고작 언니 100만 원을 내가 아쉬워할 것 같아요? 월 100만 원이 아니라 이제 월 1,000만 원도 받을 수 있을 텐데?”그리고 그 말을 마친 정해연은 갑자기 덜컥 주저앉더니 옹가희의 치맛자락을 잡으며 말했다.“언니, 내가 다 잘못했어요. 제발 후원 멈추지 말아 주세요. 그 돈 없으면 난 정말 살 수가 없어요. 다 내 탓이에요.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별하 오빠가 그런 거니까 별하 오빠한테 화내지 마세요.”그러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지듯 넘어진 정해연은 심장을 부여잡고 숨을 제대로 들이쉬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했다.옹가희는 이것조차 연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정해연이 입고 있는 웨딩드레스를 잡아당기며 이렇게 말했다.“죽기 전에 웨딩드레스 돌려주고 죽어. 넌 이 옷 입을 자격 없으니까.”정해연은 웨딩드레스를 꼭 쥐며 엉엉 울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옹가희는 급히 집을 나섰고, 옹가희가 나서자마자 진강남도 뒤따라 나왔다.비서는 진강남을 발견하고 황급히 부축하려 했고 진강남은 무표정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아직 눈 멀쩡하니까.”“가희가 어느 웨딩숍으로 가는지 따라가.”“그리고 가희가 마음에 들어 하는 웨딩드레스는 전부 사진 찍어두고 다 녹화해. 눈이 회복되면 내가 직접 볼 거니까.”“네, 대표님.”한 시간 뒤, 옹가희는 한 웨딩숍에 들어섰다. 그러나 직원은 옹가희를 보자마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희 씨, 그 웨딩드레스는...”그때, 콧소리 잔뜩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별하 오빠, 나 어때요?”옹가희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굳어버렸다. 고개를 돌리니 정해연이 피팅룸에서 본인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최고급 레이스는 화려한 불빛 아래, 마치 은하수를 펼친 듯 반짝반짝 빛이 났고 허리와 치맛자락에 수놓은 다이아몬드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이 웨딩드레스는 감히 모든 여자의 로망을 실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었고, 엄마의 친구가 옹가희를 위해 선물한 것이기도 했다.정해연은 옹가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 채 거울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별하 오빠, 어때요? 드레스 진짜 너무 예뻐요. 꼭 예쁘게 찍어줘야 해요!”그 옆의 심별하는 헤벌쭉한 얼굴로 정해연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 예쁘네. 드레스에 박힌 다이아몬드 수가 족히 300개는 넘고, 최정상급 보석 디자이너가 직접 선별해 총가격이 20억이 넘는데 예쁘지 않을 리가 없지.”그 말에 정해연은 질투심에 입을 삐죽였고 또 불쌍한 척 연기를 했다.“가희 언니는 참 행복한 사람이에요. 별하 오빠처럼 좋은 사람을 다 만나고 말이에요.”그리고 또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더니 울먹이며 말했다.“그에 비하면 난 부모님, 일가친척들한테 모두 버림받은 사람이잖아요. 두 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대학도 제대로...”정해연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흘렸다. 심별하는 허겁지겁 냅킨을 건네
웨딩드레스 샵에서는 이미 드레스를 다 만들어 놓았고 옹가희는 내일 가서 입어보기만 하면 되었다.하지만 그녀와 심별하의 일정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그 드레스가 평범했다면 가져갈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만 어른들의 정성이 담긴 만큼 반드시 가져가야 했다.그렇게 생각하며 옹가희는 나지막이 말했다.“단오야, 우리 함께할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몇 마디만이라도 좋으니 다정하게 말해 줄 수 없어?”그녀는 고개를 숙여 화해를 청하려 했지만 진강남은 그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그는 옹가희가 한 달 후 심별하와 약혼하고 심씨 가문에 시집간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진강남은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한 달 이제 단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녀와 심별하가 함께하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누나면 뭐 어때?’그들은 친남매도 아니고 그저 한 지붕 아래에서 몇 년을 살았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지켜온 사람을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진강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옹가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기사님, 집으로 가 주세요. 단오에게 밥 좀 해 줘야겠어요.”차는 천천히 출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정문 밖에 있는 고급 주택 단지에 도착했다.집은 3층 펜트하우스로 넓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구조는 거의 경원시의 전통 한옥과 비슷해서 안에 들어서면 집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가정부는 그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곧바로 점심을 차렸다.옹가희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됐어요. 오빠는 이거 안 먹을 거예요. 제가 할게요.”진강남은 뒤따라 들어오며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사골국, 사골국 먹기로 했잖아.”옹가희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아주머니에게 물었다.“장 아주머니, 며칠 전에 얼려 놓은 사골국 아직 있어요?”“네. 있어요.”“그럼 꺼내서 해동해 주세요. 저는 지금 만두를 빚으러 갈게요.”진강남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나는 냉동한 건 안 먹어.”가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웨딩드레스?’진강남의 손가락이 굳어졌다.“무슨 웨딩드레스 샵? 웨딩드레스 입어보러 가는 거야?”옹가희는 눈살을 찌푸린 뒤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석 달 전에 심씨 가문 쪽에서 먼저 약혼하자고 제안했고 내년에 내가 스무 살이 되면 혼인신고 하기로 했어...”“너도 동의한 거야?”진강남의 말투가 차갑게 변했다.“누가 동의하래?”옹가희는 차 문에 기대어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속 복잡한 감정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몇 년 전에 할아버지께서 은퇴하시고 본가는 예전 같지 않다고 하셨어요... 심씨 가문은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나는...”“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진강남은 화가 나 손까지 떨렸다. 비록 눈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눈빛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어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우리 가문이 혼인 동맹을 맺어야 할 정도로 몰락하지 않았어.”“심씨 가문이 뭔데? 설령 본가가 망하더라도 아직 강씨 가문이 있잖아. 우리 집 남자들이 다 죽은 것도 아닌데 네가 혼인 동맹을 맺을 차례는 없어. 게다가 강씨 가문은 점점 강해지고 있고 규모는 이미 몇 년 전보다 몇 배 커졌어. 네가 생각하기에 이 모든 게 혼인 동맹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거야?”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세게 쥐어서 손등에 핏줄이 솟았다.“아니면 네가 심별하를 좋아하는 거야? 심별하와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 난 거냐고.”그가 화를 내자 옹가희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어릴 때부터 그는 성격이 늘 무덤덤했고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태도를 보였다. 차갑기는 했지만 예의는 갖춰서 대했고 오직 자신에게만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그녀는 가끔 자신이 너무 싫었다. 분명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데도 여전히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이 감정은 너무 죄악스럽고 끔찍해서 안 돼. 감히 있어서는 안 돼.’수없이 많은 꿈속에서 그 감정이 발각되어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악몽을 꾸었다.한 번은 그녀가 집 문밖에서 무릎을 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