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이준 씨, 나는 이럴 때마다 당신이 너무 원망스러워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내가,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노력해서 얻으려고 할 때마다 전부 빼앗아서 곽혜영한테 줬잖아요. 당신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아요?”과거의 일들이 떠오르자, 임혜린은 서러움에 눈가가 빨개졌다.“어릴 때, 내가 오랫동안 먹고 싶었던 케이크를 곽혜영한테 사주고는 그녀가 먹지 않겠다고 바닥에 버리니까 그걸 주워서 나한테 줬었죠? 나는 그 케이크가 당신이 나를 위해 사준 건 줄 알고 기뻐하며 먹었어요. 그때는 그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케이크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그 케이크가 다른 사람이 버린 쓰레기라는 걸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자신을 스스로 혐오했는지 알아요? 그깟 케이크 한 조각 때문에,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내가 너무 한심하고 어이없었어요. 한이준 씨, 당신은 가끔 사람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네요. 다른 사람의 존엄을 발로 깔아뭉개는 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 놓고 인제 와서는 나한테 주려 했던 걸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해 곽혜영한테 줬다고요? 20년 동안 똑같은 레퍼토리가 지겹지도 않아요? 당신이 주는 건 이제 아무것도 받지 않을 거예요. 도저히 감당되지 않네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더 이상 사지 마세요. 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직접 사면 돼요.”임혜린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한이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내가 나쁜 놈인 건 알아. 하지만 혜린아, 그때는 정말로 그저 화가 나서 그런 거야. 매번 네가 허도현과 함께 있을 때마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화가 났어. 내가 허도현을 얼마나 질투했는지 넌 모를 거야. 심지어 그의 얼굴을 뜯어내서 내 얼굴에 붙이고 싶을 정도였어. 네가 허도현과 함께 있을 때마다 도저히 이성의 끈을 잡을 수가 없더라. 너한테 내 존재를 알리려고 그런 짓을 했던 거야. 혜린아, 날 때려. 내가 잘못했어. 오랜 시간 내가 정말 너한테 너무 많은 잘못을 했어. 내 남은 인생으로 보상할 테니까 제발 나를 밀
다음 날 아침, 한이준과 임혜린은 경매에 참석했다.소규모 경매였지만, 올라온 물건들은 모두 왕실의 소장품으로 각각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했다.당연히 참석한 사람들도 모두 부자나 귀족 출신이었고 대부분은 최상위 재벌 가문의 인물들이었다.그중, 한이준은 특히 한 쌍의 앤티크 결혼반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독특한 디자인에, 소박하지만 화려함을 잃지 않는 분위기.임혜린도 반지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반지는 옛날 왕이 왕후에게 청혼할 때 사용했던 결혼반지였기 때문에 가격이 엄청나게 높았다.한이준은 임혜린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는 반지를 꼭 손에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다행히 결혼반지는 용도가 특별해서 경매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경매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이 한이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청혼용으로 사려는 것임을 눈치채고 특별히 경쟁하지 않았다.결국 그는 천6백억을 내고 반지를 낙찰받았다.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건 왕관이었는데 유명한 공주가 아끼던 물건이었다.임혜린의 보석함이 항상 허전하다고 생각했던 한이준은 왕관을 한 번 보고는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4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가격에 모두가 놀랐고 그를 향해 경의를 표했다.그 뒤로부터 한이준은 마치 구매에 중독이라도 된 듯, 임혜린이 한 번이라도 눈길을 준 물건은 모두 사들이기 시작했다.임혜린은 어이없어하며 그의 팔을 계속 잡아당겼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구매를 이어갔다.결국, 경매가 끝날 때까지 총 8점의 소장품을 구매했고 각각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중했다.하지만 경매가 끝난 뒤에도 임혜린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한이준은 그녀가 아직 뭔가 부족한 줄 알고 근처에 있는 큰 규모의 주얼리 가게를 돌아다니려 했지만, 임혜린은 그를 무시한 채 바로 차에 올라탔다.한이준은 조심스럽게 임혜린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여보, 오늘 산 물건들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임혜린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저걸 다 어디에 써요? 배고플 때 밥 대
말을 마친 그는 눈을 부릅뜨고 부하 중 한 명을 가리키며 말했다.“네가 저 여자랑 같이 찍어. 사진이라도 팔게.”곽혜영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남자에게 애원했다.“제발 찍지 마세요! 돈을 드릴게요! 얼마든지 드릴게요!”남자는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며 말했다.“네가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내가 요즘 노리고 있는 사람들보다 더 많아?”뺨을 연속으로 얻어맞은 곽혜영은 입가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었다.“돈이 적다고 생각하시는 거면 제가 돈 많은 사람을 알려드릴게요. H국 최고의 부자인데 이 근처에 살고 있어요. 그 집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니 알려드릴 수 있어요!”남자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그 부자가 한 씨야? 그 사람과 무슨 관계인데?”곽혜영은 울먹이며 말했다.“사진을 찍지 않고, 찍은 사진까지 돌려주겠다고 약속만 해주시면 알려드릴게요.”남자는 그녀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네년이 지금 조건을 내세워? 말하지 않으면 벌거벗은 네 사진이 오늘 내로 전 세계에 뿌려질 거야. 이리 와서 더 찍어! 전신이 다 나오게 찍도록 하고, 여러 명을 상대하는 기분이 어떤지도 맛보게 해야지!”곽혜영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아니에요! 말할게요. 말한다고요!”등골이 오싹해진 곽혜영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한이준, 날 원망하지 마. 이건 전부 당신 탓이야. 당신 눈에는 그 여자밖에 없잖아.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야.’“그 사람은 H국 최고 재벌이거든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어요. 아시아 쪽 연예계 절반 이상을 그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의 친구들도 돈이 많아요. 그 사람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친구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를 손에 넣는다면 평생 먹고도 남을 재산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남자는 험악한 눈빛으로 이를 갈며 말했다.“그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번에는 오전처럼 창피하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대신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수첩을 닦고 구겨진 페이지를 모두 펼친 다음 수첩을 조심스럽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마치 그 수첩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인 것처럼.그가 휴게실에서 나왔을 때 허도현도 막 병실에서 나오고 있었다.한이준을 본 그는 코웃음을 치더니 임동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동현이는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무슨 일이 있거나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삼촌한테 연락하고.”임동현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옆에서 듣고 있던 한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너한테 전화할 일도 없고 네 돈도 필요 없으니까 빨리 꺼져.”임동현은 한이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좀 쿨하게 행동하라고 했잖아요. 왜 이렇게 쪼잔하게 굴어요.”그러더니 허도현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삼촌, 안녕히 가세요.”허도현은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말했다.“요즘 이곳 치안 상황이 별로야. 몇몇 깡패 조직들이 문제를 일으키는데 주로 외국 사람들을 노리고 있어. H국처럼 안전한 곳도 아니고 워낙에 흉악범도 많은 나라니까 경찰들도 원만한 건 신경 안 써. 그러니까 여기 오래 머물지 말고, 최대한 빨리 돌아가.”한이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너나 잘해.”허도현은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고 금세 대문 밖으로 사라졌다.임동현은 대문 밖을 바라보며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어휴, 역시 남자는 품격이 있어야 하는 거네요. 아빠처럼 이렇게 옹졸한 남자는 되지 말아야겠어요.”한이준이 이를 갈며 아들의 볼을 꼬집자, 임동현은 계속 앙탈을 부렸다. 아이와 한참 투덕거린 뒤에야 한이준은 전화를 꺼내 들었다.신경 안 쓰는 척했지만 방금 허도현의 말이 마음에 걸렸었다.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허도현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며 함부로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이준도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한이준이 함께 커왔다는 허도현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던 찰나, 임동현이 그의 옷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빠, 좀 쿨하게 행동해요. 삼촌도 엄마와는 그냥 친구 사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러지 마요. 창피해요.”한이준은 임동현을 안고 한쪽으로 돌아서서 물었다.“정말 그렇게 말했어?”임동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 삼촌이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삼촌이 엄마를 좋아하는 건 잘못이지만 그래도 엄마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했어요.”그러면서 작은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이건 제가 엄마 방에서 찾은 거예요.”학교에서 나눠줬던 수첩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본 한이준은 손을 뻗어 빼앗으려 했다.“뭐라고 썼는지 보자.”임동현은 즉시 몸을 옆으로 틀어 수첩을 감추며 말했다.“이건 내가 찾은 거예요. 아빠가 갖고 싶으면 뭔가와 바꿔야죠.”엉뚱한 아들의 말에 한이준은 어이없어하며 말했다.“또 뭘 갖고 싶은 건데?”임동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엄마 이름으로 카드를 만들고 2천만 원을 넣어서 저한테 주세요. 돈이 필요해요.”“어디에 쓰려고?”“그건 아빠가 상관할 바 아니에요. 줄 거예요, 안 줄 거예요? 미리 말해두는데 이 수첩을 안 가지면 후회할 거예요.”한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2천만 원이 뭐 별거라고. 하지만 그 돈으로 나쁜 짓을 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겠지? 이제 수첩 내놔.”임동현은 수첩을 내밀며 말했다.“약속 어기면 안 돼요. 그리고 될수록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보세요. 아빠가 또 우시는 걸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아휴, 창피해. 다른 집 아빠들은 남자 대장부로써 눈물 한 방울 안 흘린다는데 우리 아빠는 반년 동안 두 번이나 울다니.”한이준은 임동현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요놈이, 아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임동현은 얼굴을 휙 돌리더니 그를 휴게실이 있는 방향으로 밀며 말했다.“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보세요. 내가 삼촌이 엄마에게 너무
원래도 기운이 없었던 터라 그의 키스에 숨까지 막혀왔던 임혜린은 서서히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를 밀어내려 손을 뻗어봤지만, 오히려 그의 강렬한 그립에 더 깊숙이 끌려들 뿐이었다.한이준은 마치 오랜 굶주림에 미친 야수처럼 입술이 닿자마자 본능적으로 빼앗으려 들었고, 숨 쉴 틈조차 주지 않았다.임혜린이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되어서야 한이준은 그녀를 놓아주었다.임혜린은 침대를 잡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참 후 겨우 숨을 고른 그녀는 화가 치밀어 베개를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미쳤어요? 왜 이래요?”한이준은 억울해하며 말했다.“그냥 키스 한 번 했을 뿐이야. 당신은 내 아내잖아. 반년 동안 키스 한번을 못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반성할 줄 모르는 그의 태도에 임혜린은 화가 치밀어 당장이라도 뺨을 때리고 싶었지만, 기력이 없어 문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나가요!”한이준은 임혜린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밥상을 다시 차리더니 그녀를 부축해 식탁 앞에 앉히며 말했다.“조금이라도 먹어. 계속 안 먹으면 얼굴이 다 소멸해서 없어질 것 같아.”겉으로는 순해 보이지만, 어릴 때부터 고집이 세서 누구도 꺾을 수 없었던 한이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던 임혜린은 더 이상 그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대충 몇 숟가락 뜨고 그릇을 밀어냈다.“됐죠?”한이준은 거의 손대지 않은 반찬들을 보고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아니. 너무 적어.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잖아.”그는 죽을 조금 맛보고 말했다.“맛이 괜찮네. 전부 최고급 전복으로 직접 끓인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먹어. 당신 지금 봐봐. 엄청나게 야위었다고.”요 며칠 부쩍 야윈 임혜린의 갸름해진 얼굴에 한이준은 가슴이 아려왔다. 게다가 하얀 목선이 유난히 도드라져 몰래 쓰다듬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그녀가 화를 낼지 두려워 그저 머리만 쓰다듬으며 말했다.“착하지. 조금만 더 먹자.”마치 집에서 키우는 골든 리트리버를 쓰다듬는 듯이 자신을 쓰다듬는 한이준의 행동에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