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비서는 말문을 닫은 채 대답을 피하고 억지로 업무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러나 송지원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집어 던지며 언성을 높였다.“수아가 어디 있는지 물었잖아. 다친 거야?”양 비서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다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하지만 뭐?”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망설이던 양 비서는 마치 도움을 청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송지원 어머니가 과도를 내려놓으며 얼굴을 찌푸렸다.“네가 이렇게 다쳤는데도 곁을 지키지 않은 여자를 대체 왜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며칠 동안 임정아의 얼굴을 보지 못한 송지원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사고 직후 혼란 속에서 임정아가 잠시 병실을 다녀갔다는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전화도 문자도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윤정희에게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마찬가지였다.그는 양 비서에게 몇 차례 임정아에게 연락해 보라고 지시했으나 그때마다 송지원 어머니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양 비서를 병실 밖으로 내쫓았다.같은 일이 반복되자 송지원은 마침내 폭발했다.어머니가 또다시 임정아를 낮춰 말하자 그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수아는 제 아내입니다. 제가 아들이라면 제 아내에 대한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세요.”그 순간 송지원 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미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다. 그녀는 손에 쥔 과도를 탁 내려놓으며 불만을 터뜨렸다.“그래. 너는 언제나 임정아 편이었지. 무슨 잘못을 해도 감싸고 보호하고 결국 그 여자를 지금처럼 버릇없게 만든 건 너야. 며칠 전에도 나랑 대화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네 아버지한테 이혼하겠다고 협박하더라. 그런 여자를 며느리라고 받아줘야 해?”송지원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과 임정아가 진짜 이혼했다고는 믿지 못하고 있었다.그저 심술을 부리며 집을 나간 것이고 언젠가는 울면서 돌아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그들은 이번 기회를 빌려 임정아의 버릇을 고쳐주고 싶었을 뿐, 진심으로 이혼시
임정아는 조용히 차 문을 열고 손에 쥐고 있던 이혼 증명서를 윤정희에게 내밀었다.“이혼했어. 시아버지가 특별 절차로 처리해 줘서 생각보다 금방 끝났어.”윤정희는 걱정하며 말했다.“정말 후회 안 해? 송지원 씨는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너도 아직 그 사람한테 마음 있잖아.”힘들지 않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임정아는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게 어떤 고통도 결국 지나가는 것이었고 중요한 건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삶이었다.임정아는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말했다.“아직도 송지원 씨를 사랑해. 어쩌면 평생 사랑할지도 몰라.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내게 사랑은 필수품이 아니야. 너무 비싸고 너무 멀리 있어서 감당할 수도 없고 닿을 수도 없어. 결국 그건 내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됐고 내 의지를 꺾었고 나를 끝없이 아프게 했어. 그래서 그냥 없애버리고 싶어졌어. 그래도 괜찮잖아? 없어도 살 수 있잖아.”그녀의 몸은 떨리고 눈은 빨갛게 충혈되었다.윤정희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울고 싶으면 울어. 여기서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그 말에 임정아는 마침내 참았던 감정을 쏟아내듯 차 시트에 얼굴을 묻고 떨기 시작했다.한참이 흐른 뒤 어둠이 내려앉자 윤정희는 조용히 차를 몰아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임정아는 간단히 짐을 챙기고 중요한 서류와 부모님이 남긴 귀중품만 들고 집을 나섰다.떠나기 전 허 선생님과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일로 잠시 해외에 나가게 되었고 연락이 어려울 것이라며 안심시켰다.경원시로 돌아온 임정아는 복층 아파트를 정리하며 송지원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웠다. 그가 선물한 물건들 함께 샀던 커플 용품들도 빠짐없이 정리해 더 넓은 아파트로 옮겼다.하루를 푹 쉰 뒤 그녀는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했다. 위치가 좋고 그녀가 유명인이라는 점에 더해 시세보다 비싸지 않다는 이유로 구매자는 만족했고 바로 계약이 성사됐다.통장에 찍힌 늘어난 잔액을 보며 임정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동안 바라보았다.송지원과의 이별
그녀의 거만한 태도에 송지원 어머니는 분노에 몸서리쳤다. “임정아, 너 정말 너무 거만하구나. 네가 송씨 가문에 진 빚이 한 대의 매로 다 갚을 줄 알면 큰 착각이야. 송씨 가문이 없었다면 너는 이미 거리에서 죽었을 거야.”임정아는 비웃었다.“만약 당신들이 저를 그렇게 싫어했다면 처음에 왜 저를 받아들였고 또 당신의 귀한 아들이 저와 결혼하는 걸 허락한 거죠? 저를 바보로 보는 건가요? 당신들이 바란 건 제 부모님이 가져다준 영광 즉 그들이 당신 아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점뿐이에요. 그러니 저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빚도 없으니 스스로를 그렇게 고귀하게 여기지 마세요.”송장택은 화가 치밀어 올라 소리쳤다.“닥쳐.”“임정아, 네가 송씨 가문에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혼하고 싶다니? 좋아 지금 당장 이혼해라. 송씨 가문과 내 아들을 떠나면 네가 얼마나 오래 잘나갈 수 있는지 두고 보자.”임정아는 비웃으며 병원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이혼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 이미 서명이 완료된 서류를 송장택에게 건네며 말했다.“저는 이미 서명했습니다. 저와 송지원 씨 사이에는 나눌 재산도 없습니다. 할아버지께도 직접 설명드리겠습니다. 송씨 가문의 재산은 하나도 필요 없으니 이제 당신 아들을 설득해 서명받으세요.”송장택은 그녀의 반항적인 태도에 몸을 떨며 손가락으로 임정아를 가리켰다.“좋다. 후회하지 마라.”임정아는 차갑게 답했다.“빨리 처리하세요. 시간이 없습니다.”분노가 폭발할 듯했던 송장택은 이혼 서류를 받아 병실로 들어갔다.송지원은 아직 의식이 혼란스러웠고 송장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유를 대며 서명을 받았다.몇 분 뒤 그는 서명된 서류를 들고나와 임정아 앞에 내던지며 소리쳤다.“이제부터 너는 송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지원이에게는 다가오지 마.”임정아는 서류를 확인한 뒤 차갑게 말했다.“송씨 가문은 막강한 힘을 가졌으니 아버님께서 VIP 신분을 통해 이혼 증명서도 발급받아 주세요.
“솔직히 말해볼까? 너는 부모도 없이 자란 고아였어. 그런 너를 송씨 가문이 받아주고 지원이는 너를 아끼고 사랑했지. 그런데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렇게까지 지원이를 괴롭힌 거야? 송씨 가문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여자는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너 하나 없어도 되는 집안이야. 냉정하게 말해서 네 부모가 생전에 쌓아둔 공덕 아니었으면 네가 아무리 스타라 해도 송씨 가문은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 점은 알고 있어야지.”그 순간 임정아는 마치 정신이 번쩍 든 듯 고개를 들고 그녀를 또렷하게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 말했나요?”송지원 어머니는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격분했다.“무슨 태도야?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말이 되니?”임정아는 그녀가 싫었다. 송씨 가문에 머무는 동안 송지원의 부모는 그녀에게 늘 차가운 태도를 보였고 할아버지의 엄한 경고가 아니었다면 벌써 온갖 모욕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그녀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지만 송지원 어머니의 험악한 태도는 늘 참기 어려웠다. 1년에 몇 번 마주치는 자리니 감내했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임정아는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당신들은 제가 송씨 가문에 의지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당신 아들이 저와 이혼하면 됩니다. 솔직히 송씨 가문이 그리 대단하게 보이진 않아요. 제가 송지원 씨와 결혼한 건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지 송지원 씨가 송씨 가문 사람이어서가 아니에요. 이제 그 감정이 식었으니 이혼하면 되겠죠.”“뭐라고?”송지원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며 분노했고 임정아를 마치 괴물 보듯 바라보았다.“이혼하겠다고?”임정아는 단호하고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왜 안 되나요? 법에 이혼 못 하게 돼 있나요?”송지원 어머니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외쳤다.“말도 안 돼. 송씨 가문에 이혼한 며느리는 없어.”임정아는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당신들이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도 않으면서 이혼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당신들은 자신들이 누구라고 생
그 순간 임정아는 ‘고립무원’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어릴 적부터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온 그녀였지만 이번 일은 전혀 달랐다.송지원은 사회적 영향력과 존재감이 막강한 인물이었기에 그의 갑작스러운 부상과 입원 혼수상태 소식은 운해시와 경원시 상류층 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넣었다.특히 운해시는 작은 도시였기에 송지원처럼 영향력 있는 인물의 사고는 현지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이었고 며칠 밤낮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그의 의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송씨 가문에서도 소식을 듣고 송지원의 부모는 즉시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아들이 눈을 뜰 때까지 곁을 지키며 단 한 순간도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하지만 그 후 며칠 동안 임정아와 송씨 가문 사이의 관계는 더욱 악화했다.이미 그녀를 곱게 보지 않던 가족들은 과거 송형준의 일까지 모두 그녀 탓으로 돌렸고 이번 송지원의 사고까지 겹치자 분노는 극에 달했다.할아버지가 중재를 시도하며 전화를 걸기도 했지만 가족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전혀 누그러지지 않았다.송지원이 다행히 의식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이를 지켜본 송지원의 어머니는 불안에 떨며 안절부절못했다.그녀는 결국 임정아를 복도로 불러내 차디찬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울어? 지금 울면 뭐가 달라져? 송씨 가문의 며느리라며?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안 줘서 굳이 배우가 되고 영화를 찍어야 했어? 지금 지원이가 이렇게 된 게 결국 네가 원한 결과 아니야?”곁에 있던 송장택은 아무 말 없이 침묵으로 그녀의 말을 묵인했고 송지원의 어머니는 말을 이어갔다.“형준이랑 지원이는 동갑이야. 형준이는 벌써 일곱 살짜리 아이도 있어. 너희 아이는 어디 있어? 아니 애는 있긴 한 거니?”임정아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복도 너머를 응시했다. 며칠 전 피투성이로 쓰러졌던 송지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그녀는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날 결심을 했었다.그러나 그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고
“방금 저 여자를 휴대전화로 봤는데 배우랑 똑같이 생겼어. 임정아라는 여자래. 가슴도 크고 다리도 길고 진짜 끝내줘.”...송지원의 눈이 충혈되었다. 뒤따르던 두 명의 보좌관에게 냉정하게 명령했다.“너희 둘 무기를 찾아서 나중에 죽도록 때려.”그는 땅바닥에 떨어진 벽돌을 집어 들고 곧장 달려갔다.어두운 방 안에는 여러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송지원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불렀다.“임수아.”떨리는 임정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송지원 씨?”그는 벽돌을 꽉 쥐며 말했다.“내가 사람 데리고 왔으니 무서워하지 마. 실수로 다치지 말고 휴대전화 불빛 켜.”맞은편에서 휴대전화 불빛이 켜졌다. 임정아와 미소는 구석에 웅크린 채 겁에 질린 모습이었다.그들 주변에는 네다섯 명의 젊은 남자들이 서 있었고 술기운이나 약 기운이 느껴졌다.송지원이 들어서자 그들은 비웃으며 말했다.“어이, 구하러 온 사람 있네. 그런데 한 명뿐이야? 횡재네.”그들의 웃음은 금세 사라졌다.송지원 뒤에서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나타났다. 한 명은 1미터 길이의 철근을 다른 한 명은 소화전을 들고 있었다.송지원은 큰소리로 명령했다.“죽도록 패. 예의는 필요 없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남자들은 상대가 되지 못하고 금세 제압당했지만 끝까지 저항했다.그때 한 남자가 혼란을 틈타 벽돌을 집어 들어 임정아를 향해 던지자 송지원은 재빨리 달려가 그녀를 뒤로 감쌌다.벽돌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어지러움이 밀려오고 쓰러질 듯한 순간 그는 흔들리는 그림자와 놀란 임정아의 얼굴을 보았다.그는 떨리는 손을 내밀며 중얼거렸다.“안 돼 이혼... 나 동의하지 않아...”송지원은 의식을 잃은 채 긴 꿈을 꾸었다.그 꿈속에는 불길도 다툼도 그 끔찍한 모녀도 없었다.그와 임정아는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수많은 평범한 부부처럼 아침이면 함께 일어나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저녁이면 하교한 아이를 맞이해 식사를 하고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