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하윤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말 함부로 하지 마.”주희는 시선을 주은석 쪽으로 향하며 물었다.“너 주은석 씨를 신경 쓰는 거야?”남하윤은 얼굴을 굳히며 반박했다.“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주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어제 일... 네가 그냥 없던 걸로 하고 싶은 거지?”남하윤은 대답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주은석이 달려와 숨을 몰아쉬며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누나, 왜 이렇게 빨리 달려요? 기다리라니까.”그의 손에는 연못에서 막 꺾은 듯한 연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주은석은 그것을 남하윤 앞으로 내밀며 환하게 웃었다.“누나, 이거 받아요. 향기가 정말 좋아요.”남하윤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남의 연꽃을 멋대로 꺾으면 어떡해요?”주은석은 여전히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누나 주려고 그랬죠. 이 연꽃은 꼭 누나 같아요. 청초하고 아름답고 아침 햇살 속에서 더 빛나고요. 정말 잘 어울려요. 싫으세요? 그러면 제가 가져가서 우리 집에 꽂을게요.”남하윤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정말 한심하네요.”주은석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맞받았다.“저 한심한 거 아니에요. 누나랑 같이 뛰고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전혀 지루하지 않거든요.”그때 주희가 더는 참지 못하고 주은석이 들고 있던 꽃을 빼앗아 땅에 내던지며 외쳤다.“남하윤한테서 떨어져요.”주은석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도발하듯 남하윤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말했다.“왜 그래야 하죠? 누나는 나랑 커플이에요. 이미 온 인터넷이 다 아는데 주희 씨가 뭐가 불만이죠?”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희의 주먹이 그대로 주은석의 얼굴을 강타했다.잠시 멈칫하던 주은석은 곧 격분하며 반격을 날렸다.주희는 최근 몇 년간 무술을 배우며 여러 트레이너에게 훈련을 받았다. 단단한 체구의 주은석을 상대로 몇 라운드가 지나자 주은석은 점차 밀리기 시작했고 얼굴에는 상처가 남았다.그러나 주은석은 쉽게 물러날 리 없었다. 억눌린 분노가 폭발하며
남하윤이 그가 움직이지 않자 옷을 잡아당겼다.“빨리 옷 갈아입어. 우리 병원 가야 해.”그런데 그의 옷이 제대로 묶여 있지 않아 남하윤이 잡는 순간 욕실 가운이 한순간 흘러내렸다.남하윤은 순간 얼어버렸고 얼굴은 금세 붉어졌다.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주희는 전형적인 ‘옷을 입으면 날씬하고 벗으면 근육질’ 타입으로 최근 몇 년간 헬스장을 자주 다니며 몸을 단단히 단련해 두었다.비록 매우 근육질은 아니었지만 탄탄하게 드러난 근육 라인과 얇은 근육층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몸이었다.거기에 잘생긴 얼굴까지 더해져 그의 매력은 한층 돋보였다.남하윤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막 나가려던 찰나 갑자기 팔이 잡히자 돌아보니 주희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주희야, 너...”말을 잇기도 전에 주희가 갑자기 그녀를 끌어안아 입술을 가로막았고 남하윤은 몇 번 몸을 뒤틀었지만 곧 양손이 그의 팔에 억제되었다.주희는 마치 중독된 듯 그녀의 체취를 깊이 들이마시며 낮게 중얼거렸다.“내가 기회를 줬잖아... 네가 떠나지 않은 거지...”그는 허리를 굽혀 남하윤을 안아 침대 위로 눕혔다.남하윤은 급히 몸을 일으켜 앉으며 말했다.“주희야, 나 누구인지 분명히 봐. 나는 남하윤이야. 네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주희는 그녀의 양손을 잡아 다시 억제하며 몸을 눌렀다.“너는 남하윤인 거 난 알아.”그리고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남하윤은 눈을 감았고 곧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이성은 지금 바로 그를 밀쳐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반 이상 녹아버린 상태였다.이성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마지막 인사라고 생각하자. 기념으로 남겨두는 거야.’바깥에서는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실내에서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밤새 이어진 격렬함 속 남하윤이 일어났을 때 몸은 마치 해체된 듯 통증이 몰려왔다.두 사람 모두 처음이었고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남하윤에게 특히 고통
남하윤이 말했다.“나도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고 어서 가.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 내일 아침 일찍 오라고만 하면 돼. 지금 이미 밤이잖아. 별일 없을 거야.”송혁은 손에 들고 있던 옷을 내려놓으며 말했다.“하윤 누나, 그럼 이 옷도 부탁드릴게요.”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달려 나갔다.남하윤은 옷을 들고 욕실로 향했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주희는 여전히 샤워 중이었다. 아까 송혁이 말했듯 이미 30분은 넘게 씻고 있었다.남하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문을 두드렸다.“주희야, 옷 가져왔어. 세면대 위에 두고 갈게.”그 순간 주희의 몸속 열기는 더욱 거세졌고 억누르던 욕망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남하윤은 그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와 옷을 내려놓고 말했다.“빨리 나와. 오늘 날씨도 덥지 않은데 계속 찬물에 씻다가는 내일 못 일어나.”주희는 벽에 기댄 채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뜨거움에 휩싸였다. 겨우 자제하고 있었지만 바로 곁에 남하윤이 있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환상이 온통 그녀였다.숨결이 점점 거칠어지자 이상한 기운을 느낀 남하윤이 의아하게 물었다.“주희야, 너 몸 상태 안 좋아?”하지만 대답은 없고 거친 호흡만 들려왔다.남하윤이 다시 불렀다.“주희야, 대답 좀 해.”주희의 목소리가 낮고 탁하게 흘러나왔다.“나가...”그녀가 다시 말을 잇자 주희가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나가라고 했잖아.”남하윤은 깜짝 놀라 옷만 두고 문밖으로 물러났다.잠시 후, 주희가 나왔다.그의 머리에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목욕 가운 사이로 드러난 피부에도 물방울이 흘러내렸다.얼굴은 비정상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은은한 불빛 속에서 그의 얼굴은 여전히 청아하고 고운 선을 드러냈다. 오히려 붉은 기가 더해져 더욱 매혹적으로 보였다.남하윤은 곧 그의 이상함을 눈치채고 다가가 이마에 손을 댔다.‘뜨거워.’놀란 남하윤이 외쳤다.“너 열이 펄펄 나잖아
허연지는 머리카락을 한 번 쓸어 올리며 욕실 유리문을 잡아당기려 했다.그러나 손끝이 문틀에 닿는 순간 주희가 힘껏 문을 닫아버렸다.“으악. 아파... 아파요.”허연지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주희 씨, 뭐 하는 거예요?”주희는 한 손으로 문을 강하게 누른 채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한 발짝이라도 더 들어오면 네 손은 이제 없어지는 거야.”“으악. 손가락이... 부러질 것 같아요. 주희 씨, 당신 미쳤어요? 이 손은 피아노 쳐야 하는 손이에요. 엄청 귀한 손이라고요. 놓아줘요... 으악 끊어질 것 같아.”그제야 허연지는 주희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정말로 자기 손을 부러뜨릴 기세였고 겁에 질린 그녀는 필사적으로 소리쳤다.“놓으라고요. 진짜 부러지겠어요. 주희 씨, 완전히 미쳤군요.”주희가 손을 놓자 허연지는 바닥에 주저앉았다.손가락 마디마다 선명하게 남은 자국을 보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주희 씨... 세상에 당신 같은 미친놈이 어딨어요.”“나가.”주희의 낮은 포효가 공간을 울렸다.허연지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갔다. 그리고 문턱을 넘으며 돌아서서 소리쳤다.“주희 씨, 당신은 남자도 아니에요.”“꺼져.”허연지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주희는 겨우 숨을 고르며 벽에 몸을 기댔다. 차갑고 단단한 벽에 몸을 붙여 열기를 식히려 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그는 다시 찬물을 틀어 끊임없이 몸에 끼얹었다.그 순간 욕실 문이 또다시 열리자 주희는 허연지가 돌아온 줄 알고 즉시 소리쳤다.“나가라고 했지.”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남하윤이었다.“주희야, 다 씻었어?”그 이름이 들리자 주희의 내면에서 타오르던 불길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그는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아직... 안 끝났어.”잠시 망설이는 듯한 남하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내 방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어서 잠깐만 욕실 좀 빌리려 하는데...”주희는 눈을 꼭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금방 나갈게. 대신 내 방에서 갈아입을 옷
남하윤은 순간 얼어붙은 듯 멈췄다가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주희가 서 있었다.“다 들었어?”주희의 표정은 담담했다.“네가 필요하다면 내가 전력을 다해 도와줄 거야.”남하윤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우리 집 일은 너무 복잡해. 넌 도와줄 수 없어.”그러자 주희가 단호하게 말했다.“도울 수 있어. 정말 그 단계까지 간다면 내가 우리 누나에게 부탁할 거야. 누나는 날 모른 척하지 않을 거야.”남하윤은 잠시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아직 그 정도는 아니야. 그냥 아버지가 내가 집안 망신을 준다고 생각하는 거지. 방송에 나가는 걸 수치스럽게 여기셔. 사실 내가 몇 년 동안 투자해서 벌어들인 수익도 적지 않은데... 아마 날 제쳐두고 그 자리를 그 아들에게 주려는 거겠지.”주희의 미간이 좁혀졌다.“남서진?”남하윤은 짧게 “응.”하고는 말을 멈췄다.잠시 침묵이 흘렀다가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한 아버지도 쉽게 날 밀어내진 못할 거야. 게다가 그 사생아는 능력도 없어. 그저 한량일 뿐이지. 남씨 가문의 무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거야. 우리 집이 비록 유씨 가문만큼 크진 않지만 그래도 자산이 만만치 않아. 가문을 남서진한테 맡기면 결국 망치고 말 거야. 난 절대 쉽게 넘기지 않을 거야.”그녀의 눈빛은 잠시 허무하게 가라앉았다.“남씨 가문을 짊어질 만한 인물이 있다면 기꺼이 물러났을 거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없어.”주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한참이 지난 듯한 순간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말해줘. 반드시 도와줄게.”남하윤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아버지 원래 저래. 오늘이 처음도 아니니까.”주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온라인에 떠도는 말들 신경 쓰지 마. 이 바닥은 원래 그래. 적응이 안 된다면 지금이라도 계약 해지해. 내가 처리할 수 있어.”남하윤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괜찮아.”두 사람은 원래 말수가 많지 않았기에
주희는 말없이 일어나 카메라 밖으로 나갔다.방금 주은석과 남하윤의 상호작용이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촬영이라는 사실과 남하윤과 주은석이 일부러 커플 분위기를 연출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마치 키스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은 마음 한구석을 아리게 했다.낯선 감정에 당황스러웠지만 동시에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남하윤을 결코 잃고 싶지 않다는 사실이었다.자신 같은 사람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남하윤만은 결코 망칠 수 없었다.그는 그림자 속에 서서 주은석과 남하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주은석은 남하윤에게 닭가슴살을 구워 건네고 주희는 윤기가 번쩍이는 닭 다리를 남하윤에게 내밀었다.남하윤은 점점 밝게 웃으며 꼭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주희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사실 따지지 않고 보면 주은석은 꽤 괜찮은 남자였다. 사람을 잘 챙기고 훨씬 다정해 보였으며 강민규보다 훨씬 나았다.하지만 그들의 강한 커플 기운과 밀착된 분위기는 그의 마음을 찌르는 듯 아팠다.그는 어쩔 수 없이 옆에 놓인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았다.실시간 댓글은 빠르게 흘러갔지만 내용은 선명하게 읽혔다.[와, 주은석이랑 남하윤 찰떡이네. 닭 다리도 나눠주고 닭 날개도 주는데...완전 러브러브.][구청 사무실 옮겨와서 여기서 바로 결혼해.][사실 허연지의 정교한 메이크업보다 남하윤의 자연스러운 민낯이 더 좋아. 얼굴은 카메라 고화질에도 흠집 하나 없이 선명하게 담기고 눈이 특히 예쁘네.][설마 성형한 거 안 보여? 역시 우리 허연지가 최고야.][안 되겠어. 나는 주은석과 남하윤 빠돌이 시작할 거야. 주혜성, 미안. 하하… 난 배신했어.][저기... 좀 부끄러운 줄 알아.]...주희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온 세상이 남하윤의 장점을 알아보는 듯했지만 정작 자신만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그때 남하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는 발신 번호를 보고 잠시 찡그리더니 휴대폰을 들고 조용한 곳으로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