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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作者: 천이설
“객관적으로 볼 때 상황이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거지 강재혁이 여자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었어.”

문채아는 아까 눈물을 흘리며 아무 말이나 다 하다 보니 매니저가 했던 말도 얘기해 주게 되었다.

강재혁은 여자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는 그저 당장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이제껏 없었을 뿐이었다.

만약 아무 여자나 상관이 없었다면 아마 진작에 결혼했을 것이다. 호텔 매니저의 말처럼 결혼하게 되면 새엄마가 그에게 이상한 여자들을 보내는 것을 막을 수 있을 테니까.

주연우는 눈썹을 끌어올리며 그게 그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여자가 필요한 건 맞잖아. 그리고 강재혁이 자기 입으로 그랬다며.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게 하고 싶으면 큰 부탁을 하라고.”

“그랬지...?”

문채아가 불안한 얼굴로 답했다.

“연우 너 설마... 아니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주연우는 두 손으로 문채아의 얼굴을 감싸며 눈을 반짝였다.

“지금 당장 강재혁한테 전화해서 너랑 결혼해서 빚을 완전히 갚으라고 해!”

주연우는 문채아와 이렇게까지 딱 맞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또 없다고 생각했다.

둘이 결혼하게 되면 문채아는 강재혁이라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있어 강지유와 박도윤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고 강재혁은 새엄마의 수작을 막아낼 수 있게 된다.

“강재혁이 넝쿨 째 굴러와 ‘나 좀 잘 이용해주세요’ 하는데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해보고 썩혀둘 거야?”

“...”

문채아는 친구의 발상에 머리가 다 아찔했다.

박도윤보다 더 위에 있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채아는 진정하라는 듯 주연우의 어깨를 잡았다.

“너 지금 너무 흥분했어. 방금 한 얘기는 못 들은 거로 할게.”

“뭘 못 들은 거로 해. 나는 진심인데!”

주연우는 은근슬쩍 화제를 넘기려는 문채아의 의도를 파악하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박도윤의 가스라이팅에서 좀 벗어나 봐. 언제까지 너 스스로 네 자존감을 깎아 먹을 생각이야. 너는 엄청 좋은 사람이고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강재혁도 네가 이런 사람이니까 너를 흔쾌히 도와준 거겠지.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너 정말 강지유 콧대가 계속 높아지는 거 두고 볼 거야?”

문채아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녀가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건 비단 박도윤 때문만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강재혁과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강지유는 강씨 가문 사람이기에 문채아가 원하든 원치 않든 강지유의 인생은 쭉 순조로울 수밖에 없다.

...

다음 날 아침.

“강재혁, 나와! 나오라고! 야!!”

아침 댓바람부터 표독스러운 여성의 목소리가 재호 그룹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도 강재혁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회의를 이어 나갔다.

강재혁의 귓가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그저 모기가 윙윙거리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에 참여한 임원들에게는 아니었다. 1시간 내내 여자의 소리를 듣고 있자니 머리가 다 아파 났다.

여성의 외침이 서서히 멎어 들기 시작한 건 회의가 끝나갈 때쯤이었다.

임원들을 내보낸 후 강재혁은 그제야 비서에게 손짓했고 곧바로 이마가 땀으로 범벅된 강지유가 박도윤의 부축을 받은 채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강지유는 강재혁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네가 뭔데 나를 무시해? 내가 불렀잖아. 그런데 왜 못 들은 척하냐고!”

강지유는 어제, 화를 쏟아내기 위해 박도윤의 허락을 받은 후 문채아의 방으로 가 골프채로 이리저리 휘두르며 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문채아가 서랍 안에 고이 모셔뒀던 못생긴 피규어도 왠지 기분이 나빠 부숴버린 후 그걸 밟은 채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버렸다.

문채아가 보면 분명히 속상해할 테니까.

다 때려 부수고 나니 그제야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꿀잠도 잤고 오늘 아침도 상쾌하게 맞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잔뜩 들뜬 기분으로 박도윤이라는 일일 비서와 함께 회사로 출근해 보니 난데없이 팀장직에서 해고되었다는 통보가 눈에 들어왔다. 또한 진행하던 프로젝트로 다른 부서에 넘어간 상태였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강지유는 곧바로 강재혁이 있는 제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강재혁은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고 회의실 밖에 1시간이나 방치해 버렸다.

“네가 뭔데 날 팀장직에서 해고해! 네가 뭔데 내가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다른 부서에 넘겨! 날 회사로 부른 건 아빠야. 그러니까 당장 네가 했던 말 철회하고 나한테 사과해!”

강지유의 말에 강재혁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뭔데?”

짧은 한마디였지만 중압감이 엄청났다. 세 사람을 감싸고 있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강지유는 기가 막힌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는 강재혁을 향해 삿대질했다.

“네가 대표면 다야? 대표면 막 해고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 되지. 그런데 네가 되게 만들었더라고.”

강재혁은 그렇게 말하며 강지유 쪽으로 서류 하나를 던졌다.

“해정 그룹과의 프로젝트를 맡긴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아직 절반도 진행하지 못했고 무단결근도 밥 먹듯이 했다지? 그리고 법카로 쓴 6억 4천 원 중에 회사를 위해 쓴 돈은 백만 원도 안 되던데 내가 왜 그런 인간한테 팀장직을 계속 맡겨야 하는지 네 입으로 한번 얘기해 봐. 네 엄마를 통해 회사로 꾸역꾸역 들어왔으면 적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은 보여야지. 이 일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면 과연 누구한테 책임을 물을 것 같아?”

강재혁이 검지로 책상을 두드리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거 공금 횡령이야.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는 소리라고.”

강지유는 그 말에 다리가 다 후들거렸다. 박도윤이 부축해 주지 않았으면 아마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을 것이다.

강지유는 그간 아버지라는 뒷배를 믿고 시도 때도 없이 무단결근하며 회삿돈도 펑펑 썼다.

그런데 징역형이라니.

그리고 바닥에 던져진 자료의 두께만 봐도 적어도 1년 치는 되어 보이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그때 강지유의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쳐 갔다.

“너 설마... 문채아 때문에 그래? 맞네. 문채아 대신 복수해 주려고 나한테 이러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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