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양현주의 얼굴에 어려있던 미소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문채아가 한 마지막 말은 누가 들어도 그녀를 향한 경고였으니까.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 테니 당신은 못 도망가’라는 뜻을 품은 경고 말이다.사실 이 세상에서 제일 친밀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말도 양현주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양현주는 절친한 친구가 우울증을 앓고 있을 때 몰래 친구의 남편을 꼬시고 기어이 아이까지 밴 여자였으니까.그 일은 당시에도 꽤 충격적인 일이라 상류층 사람들은 여전히 그때 얘기를 안줏거리로 사용하곤 한다.그 사실을 문채아도 잘 알고 있었기에 콩가루 가족이라는 공격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양현주가 저지른 일로 되받아쳤다.양현주는 마음 같아서는 욕설을 잔뜩 퍼부으며 문채아를 이 집에서 쫓아내고 싶었다지만 그런 지시를 내릴 만한 위치가 아닐뿐더러 문채아는 강재혁의 여자라 함부로 할 수 없었다.더군다나 지금은 바로 옆에 강의준이 앉아 있기도 했으니까.양현주는 이수연의 일에 관해서 만큼은 죽을 때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도발에 넘어가 화를 내거나 까딱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그대로 강의준에게 들켜버리고 말 테니까.양현주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애써 다시 미소를 지었다.“채아야, 나는 그냥 너 괜찮은지 걱정돼서 물었던 것뿐이야.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봐. 네가 사돈어른 일 때문에 마음 아파할까 봐 걱정했는데 괜찮은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 어머, 내 정신 좀 봐. 지유 약 갈아줘야 하는데 깜빡 잊고 있었네.”양현주는 적당한 핑계를 댄 후 소파에서 일어나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문채아는 악당을 물리쳐서 기쁜 듯 입꼬리를 올리다 강의준과 눈이 딱 마주쳐버렸다.강의준은 문채아와 양현주가 얘기를 주고받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양현주가 자리를 뜨고 난 뒤에야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채아 너, 혹시 재혁이한테서 수연이 일이나 재혁이 납치 사건으로 뭐 들은 얘기라도 있어? 그래
그리고 알고 있기 때문에 더 화를 낼 수 없었다.양현주는 두 손을 말아쥔 채 이를 꽉 깨물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채아야, 내가 일부러 너를 괴롭히려고 그랬을 리가 없잖아. 그때 일은 다 오해야.”“그러시겠죠. 아주머니는 어른인데 한참 어린 저를 상대로 그런 추잡스러운 짓을 할 리가 없죠. 안 그래요?”문채아도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강지유 씨 아니더라고요. 강지유 씨는 어제 전시회장에서 제가 정체를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제 작품을 망가트리려고 했어요. 그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손이 덜덜 떨려요.”“그래서 말인데 강지유 씨는요? 왜 없어요? 설마 내가 없을 때를 이용해 또 작품을 훼손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문채아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물으며 지금 당장 전시회장으로 달려갈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게 진짜! 어제 그렇게도 큰 소란이 있었는데 지유가 또 작품을 훼손하려고 들 리가 없잖아!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해. 내 화를 돋우려고 일부러 이러는 게 분명하다고!’양현주는 문채아의 속내를 다 꿰뚫고 있었다.그때, 강의준이 기침을 하며 이목을 끌어당기고는 문채아를 향해 말했다.“지유는 지금 자기 방에 누워있어. 어제 전시회장에서 있었던 얘기를 전해 듣고 난 뒤에 내가 바로 벌을 줬거든. 당분간은 그 어디도 나가지 못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네, 알겠어요.”문채아는 그 말에 그제야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사실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그야 강의준은 무조건 자식 편만 드는 사람들과 달리 잘못한 건 확실히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이었으니까.문채아는 자리에 앉은 후 마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사람처럼 양현주를 향해 예쁜 미소를 지었다.“지유 씨 괜찮아요? 많이 아프대요? 괜찮은지 한번 제가 보고 올까요?”“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지유는 지금 기분이 상당히 저조한 상태거든. 너 봤다가 흥분이라도 해서 상처가 벌어지면 안 되잖아.”양현주는 손톱이 부러질 것처럼
몰골을 보아하니 어젯밤에 실신할 정도로 많이 운 것 같았다.강의준은 강재혁처럼 아내를 위해 약을 사 오거나 하는 남자가 아니었기에 문채아는 간밤에 많이 초췌해진 양현주가 아주 조금 안쓰러워 보였다.물론 아주 조금 말이다.강의준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근엄한 얼굴이었다.문채아가 들어온 것을 본 그는 자기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을 건넸다.“왔니? 얼른 여기 와서 앉아.”“네, 아버님.”문채아는 우물쭈물하는 법 없이 아주 편한 얼굴로 소파로 가 앉았다. 그리고 손에 든 선물은 집사에게 건넸다.‘응? 뭐지?’문채아가 조금 의아해하며 집사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에는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응대했던 집사가 지금은 눈을 반짝이며 아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그리고 양현주의 얼굴은 그 장면을 본 순간 한층 더 어둡게 변해버렸다. 늘 짓고 있던 가짜 미소도 지금은 좀처럼 지어지지 않는 듯했다.“얘기 들었다. 네가 바로 그 유명한 조각가였다며? 다들 존경스럽다면서 너한테 좋은 평가만 주더구나. 네 덕에 재혁이 이미지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사람들은 원래 죄책감이 생기면 그걸 어떻게든 덜려는 경향이 있다.전에 아무것도 모르고 문채아가 단지 M의 인기에 올라타려는 사람인 줄 알았을 때, 그들은 문채아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도우려고 했던 강재혁도 똑같은 인간이라며 장장 한 달이나 인터넷에서 그들 부부를 욕하고 또 비난했다.그런데 바로 어제, 모든 진실이 드러나면서 문채아의 정체가 밝혀지고 강재혁을 둘러싼 오해도 풀렸다.그래서 사람들은 문채아를 높이 치켜세우는 동시에 그녀의 뮤즈이자 남편인 강재혁도 똑같이 치켜세워주며 그들 부부에게 좋은 말만 보냈다. 또한 간만에 보는 아름다운 부부라면서 부러움도 많이 내비쳤다.그리고 강의준은 그런 댓글을 보며 괜히 자기가 칭찬받은 것처럼 기뻐했다. 그래서 전과 달리 따뜻한 눈빛으로 문채아를 바라보았다.지금에 와서 보면 문채아와 강재혁의 결혼을 막지 않은 것이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문채아는 강의
문채아가 투정 부리듯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그러고는 강재혁의 품에서 벗어나 이불속으로 쏙하고 들어갔다.병원도 주치의도 다 강재혁의 여동생, 즉 오혜정과 관련 있는 장소고 또 사람이라 문채아는 강재혁이 모든 걸 다 솔직하게 털어놓기 전까지 그것들과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강재혁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린 채 몸을 웅크리고 있는 문채아를 보며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몰아붙였나 싶어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미안해, 채아야. 네가 나한테 해줬던 말이 너무 기뻐서 주체가 안 됐어. 미안해. 다음에는 조심할게.”문채아는 그 말에 눈을 깜빡이다 이불에서 머리만 살짝 드러내고는 강재혁을 바라보았다. 진지한 것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 같았다.그래서 그녀는 지금이 기회다 싶어 그에게 요구했다.“그럼 딱 3일만 나 좀 내버려둬요.”3일이면 체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테니까.“그건 안 돼.”하지만 강재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거절했다. 그러고는 문채아를 끌어안은 채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죄책감이 뭔지 아는 남자이기는 하지만 그 죄책감이 크지는 않았다....다음날, 문채아는 어김없이 해가 중천에 걸리고서야 어기적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어디 한 곳 안 아픈데 없이 쑤시고 또 결렸지만 다행히도 목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효과가 정말 좋은 연고라 그런지 피부가 심하게 멍들지도 않았고 기관지가 조금 아팠던 것도 많이 가라앉았다.문채아는 컨디션을 어떻게든 회복하기 위해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스트레칭했다. 그러다 박도윤으로부터 3통의 부재중이 찍힌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그녀는 이내 못 본 척 알림을 지워버리고는 다시 스트레칭했다.대충 문영란에 관한 얘기를 듣고 전화한 건 아닐까 하는 예상이 들었으니까.만약 예전의 문채아였다면 어제처럼 무력감이 사무치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플 때 제일 먼저 박도윤의 얼굴을 떠올렸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박도윤의 위로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와는 이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남이니까.
강재혁은 아주 익숙하게 손을 뻗어 문채아의 허리를 감싸안았다.그리고 문채아는 나른한 등이 뜨거운 남자의 가슴팍에 밀착된 순간, 바로 흉흉하기 그지없었던 조금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불과 반 시간 전에도 강재혁은 지금처럼 뒤에서 그녀를 세게 끌어안은 후 몸을 바짝 끌어당기며 마치 그녀의 숨을 다 빼앗아 가듯 입을 맞춘 채 몸을 움직여댔으니까.당시 문채아는 억지로 고개가 돌려진 탓에 숨이 모자라 하마터면 그대로 기절할 뻔했다. 의식을 잃기 전에 강재혁의 허벅지를 세게 꼬집으며 입술이라도 떼서 망정이지 아니면 정말 눈앞이 까매진 채 쓰러졌을 것이다.그래서 문채아는 지금 강재혁이 또다시 몸을 밀착해 오는 것이 무서울 수밖에 없었다.“안 돼요! 더는 못해요! 이 이상 하면 나 진짜 화낼 거예요!”문채아는 강재혁의 품에 완전히 안기기 전, 마치 사냥꾼에게 잡힌 토끼처럼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며 외쳤다.물론 문채아도 한때는 미친 듯이 강재혁을 원했던 적이 있었다.하지만 잠자리도 정도껏 해야지 매일 같이 기절할 때까지 해버리면 그건 더 이상 애정 행위가 아닌 고문이었다.실제로 얼굴이 하루가 다르게 반질반질해지고 있는 강재혁과 달리 문채아는 시달림으로 그새 몸무게가 2kg이나 빠져버렸다.강재혁은 잔뜩 겁에 질린 채 기겁하는 문채아를 보며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뒤늦게야 며칠을 참은 것 때문에 자신이 무섭게 해 버렸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약 발라주려고 그런 거야. 너 안는 데만 집중하느라 상처 치료해 주는 걸 깜빡했잖아.”사실 문채아를 안으면서 몇 번이고 빨개진 그녀의 목 상처를 봤지만 그만하려고 할 때마다 간드러진 소리를 내며 안겨 오는 문채아 때문에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물론 전부 핑계에 불과하지만 말이다.강재혁은 문채아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린 후 연고를 짜 아주 조심스럽게 상처 부위에 발라주었다.“제일 효과 좋은 거로 달라고 했으니까 바르고 나면 좀 편해질 거야. 다른 곳은 병원으로
“영란아, 네 전화를 받는 건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앞으로 나한테 전화하지 마. 뭐, 내가 이런 말을 안 해도 어차피 너는 문채아 때문에 조만간 나한테 전화할 겨를도 없이 감옥으로 옮겨질 테지만. 경찰한테 협조 잘하고 쥐 죽은 듯이 있어.”박진성은 말을 마친 후 천천히 휴대폰을 아래로 내렸다.애초에 문영란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도 그로서는 큰 선심을 쓴 것이었다.그런데 이만 끊으려던 찰나, 전화기 너머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애칭을 부르며 애교를 떨던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였다.“그래서, 정말 나를 구하지 않을 생각이라고?”박진성은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영란아, 우리 아름답게 헤어지자. 너 지금 이러는 거 되게 추해.”“당신 말이야. 내가 어떻게 당신이랑 결혼할 수 있었는지 혹시 잊었어?”문영란은 그렇게 말하며 무섭게 웃었다.“내가 강재혁한테 당신이랑 이수연 사이의 일을 다 얘기해버리면 어쩌려고 이래?”“아, 그거?”휴대폰을 쥔 박진성의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한발 늦었어. 며칠 전에 내가 직접 얘기해줬거든. 나랑 수연이 사이를.”즉, 문영란의 협박은 아무런 힘도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문영란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진성의 말을 듣고는 더 세게 웃어젖혔다.“강재혁한테 얘기해줬다고? 정말?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해준 거 맞아? 아니, 당신은 절대 그러지 못했을 거야. 얘기해줘봤자 당신이 이수연 그 여자의 약혼자였다는 사실밖에 얘기 안 했겠지. 진짜 충격인 건 그 뒷얘기인데 말이야.”“그러니까 다시 한번 대답해 봐. 당신, 정말 강재혁한테 싹 다 얘기한 거 맞아? 당신이 그 여자한테 얼마나 파렴치하고 잔인한 짓을 저질렀는지?”강재혁은 늘 의문스러웠다. 왜 박진성처럼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는 남자가 뭐 하나 내세울 곳 없는 문영란과 연애한 것도 모자라 결혼까지 했는지 말이다.‘내가 박진성과 결혼할 수 있었던 된 이유가 자기 어머니 덕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