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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Penulis: 천이설
그 불청객은 다름 아닌 박도윤이었다.

이제 막 글로리 호텔에서 돌아온 듯 그는 편한 잠옷이 아닌 카메라에 찍혔던 옷차림 그대로 입고 있었다.

13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여전히 잘생겼고 여전히 문채아의 마음을 마구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토록 친밀했던 남자가 오늘은 이상하리만큼 낯설게 느껴졌다.

박도윤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 발목에 상처를 달고 들어온 여자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다쳤어?”

문채아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가한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술관에 도와주러 갔다가 싸움에 휘말렸어.”

“병원은?”

“갔어.”

“오후 내내 나한테 연락했던 이유가 이거였어? 미안해. 다음번에 치료받으러 갈 때는 비서를 붙여줄게. 그리고 그 미술관은 앞으로 가지 마.”

박도윤이 말했다. 부드러운 음성에 걱정이 잔잔히 깔린 것이 예전과 다를 것 하나 없었다.

하지만 문채아는 알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다 변했다는 것을.

예전의 박도윤은 그녀의 몸에 생채기 하나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못했다. 상처가 크든 작든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사하게 하고 의사가 치료해 주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서야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심하게 다친 걸 뻔히 보고서도 움직이지 않는 건 물론이고 연락을 받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의무적으로 내뱉기만 했다.

제일 중요한 건 박도윤과 거리가 조금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자 향수 냄새가 지독하리만큼 풍긴다는 것이었다.

이건 단순히 손을 잡고 포옹해서 묻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었다.

문채아는 분노로 일렁거리는 마음을 꾹 억누른 채 주먹을 살짝 말아쥐었다.

“오빠한테 나는 뭐야? 우리가 함께한 3년은 대체 뭐였어?”

“채아야, 너는 영원한 내 가족이야.”

박도윤의 시선이 문채아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뉴스 본 거지? 너한테 거짓말하고 싶은 생각 없어. 나 강지유와 약혼할 거야. 너도 알잖아. 나는 가문을 이어 나갈 필요가 있어. 그러기 위해서는 비슷한 수준의 여자와 맺어져야만 해. 하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강지유와 약혼하게 돼도 우리 사이는 변하지 않을 거야.”

“...”

방 안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문채아는 누군가가 심장을 마구 할퀴며 크고 작은 상처를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파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빠... 아니, 네 말은 나더러 네가 약혼한 뒤에도 계속 네 애인 노릇을 하라는 말이야? 네 정부가 되라고?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아...?”

박도윤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 너는 지난 3년간 나를 네 여자 친구로 생각한 적도 없었던 거지? 궁극적으로는 나를 네 정부에 자리에 두고 싶었던 거지?”

박도윤은 아무런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문채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며 아파 와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아름답고 깨끗하기만 해야 할 첫사랑이 박도윤 때문에 한순간에 더럽혀진 기분이었다.

“내가 그딴 결말을 받아들일 것 같아?”

박도윤은 눈물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빛에 순간 움찔했다. 그녀의 기세에 놀란 것도 있었지만 한순간 지나치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선택해. 나인지 그 여자인지. 네가 고를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어.”

박도윤은 그 말에 바로 미간부터 찌푸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문채아 쪽으로 다가갔다.

“그 여자를 선택하면 내 곁을 떠나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네가 날 선택하면 나는 지난 3년처럼 앞으로도 계속 네 곁에만 있을 거야. 그게 가시밭길이라도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만약 네가 그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하면 그때는 우리 사이도 끝이야. 나는 미련 없이 네 곁을 떠날 거야.”

문채아는 박도윤을 다른 여자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 따위 조금도 없었다.

이게 그녀가 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박도윤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 5초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잘 생각하고 내린 결정 맞아? 네가 날 떠나겠다고 하면 나는 얼마든지 그 뜻을 존중해 줄 수 있어.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상처받는 건 너 아니야? 네가 우리 가문 사람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인정받고 있지 않잖아. 사람들도 겉으로만 너를 내 동생이라고 하지 실상은 남남으로밖에 생각 안 해. 그런 상황에서 네가 나까지 잃게 되면 너한테 남는 게 뭐가 있을 것 같아? 더군다나 너는 나를 사랑하잖아. 너희 친엄마도 너를 나 몰라라 했을 때 유일하게 네 숨구멍이 되어준 나를, 네가 정말 떠날 수 있을 것 같아?”

박도윤의 말은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이런 말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채아는 절대 자기 곁을 떠날 리 없다는 자신이.

문채아는 그 오만함을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몸을 덜덜 떨더니 다음 순간 있는 힘껏 박도윤의 뺨을 내리쳤다.

박도윤은 애초에 막을 생각 따위 없었다는 듯 순순히 맞아주었다. 고개가 완전히 옆으로 돌아갔는데도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웬 여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채아 너 미쳤니? 도윤이 뺨을 때려버리면 어떡해!”

호들갑을 떨며 방 안으로 들어온 여자는 다름 아닌 문채아의 엄마인 문영란이었다.

문영란은 과일 접시를 내려놓은 후 얼른 박도윤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무서운 눈빛으로 딸을 쏘아보았다.

“도윤이 회사 대표인 거 몰라? 아랫사람들이 이걸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윤이 얼굴에 손을 올린 거야?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니?”

문영란은 실컷 쏘아붙인 후 급기야 문채아의 뺨을 치려는 듯 손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손은 금방 박도윤에 의해 제지당하고 말았다.

박도윤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로 문영란에게 말했다.

“채아와 장난 좀 친 것뿐이에요. 아버지께는 제가 알아서 말씀드릴 테니까 너무 열 내지 마세요.”

“너는 무슨 아버지 얘기를 하고 그래... 나는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건데.”

문영란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내심 안도했다. 이 집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바로 박도윤의 아버지, 즉 그녀의 남편이었으니까.

“너희들끼리 뭐 하고 놀던 그건 너희 자유고 다 큰 어른인 내가 간섭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뺨을 때리는 건 아니지. 에휴, 곧 약혼하게 될 애 얼굴이 이게 뭐니. 너희 아버지가 네 혼사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데.”

박도윤은 별다른 대꾸 없이 문채아를 한번 보고는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문영란도 과일 접시를 든 채 얼른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문영란은 방에 들어오고부터 나갈 때까지 딸의 발목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의 뒷모습이 가만히 바라보던 문채아는 갑자기 쓴웃음을 터트리더니 대뜸 러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더 아프고 깊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그날 밤, 문채아는 처방받은 약을 먹은 후 침대에 누워 거의 반쯤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잤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갈 때쯤 갑자기 통증이 찾아와 몇 시간 내리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드디어 통증이 조금 완화되는 느낌에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노크 소리가 그녀의 잠을 방해했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어요. 도련님과 사모님께서 아가씨더러 아래로 내려와 함께 일손을 도우래요.”

도우미의 목소리였다.

“...”

문채아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어떤 대단한 손님이길래 다친 사람까지 부려 먹으려 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못 들은 척 그냥 자고 싶었지만 도우미가 다시금 그녀를 부르며 재촉했다.

결국 문채아는 이를 꽉 깨문 채 다리를 절뚝이며 방을 나섰다.

힘겹게 아래로 내려온 그녀는 문영란을 향해 뭐라 말을 하려다가 시야 속에 들어온 누군가를 보고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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