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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너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너
Author: 천이설

제1화

Author: 천이설
“문채아 씨, 보호자분께는 연락해 보셨어요? 혹시 아직도 연락이 안 되세요...?”

간호사가 물었다. 간호사가 이 질문을 한 지도 벌써 세 번째다.

연락이 닿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아 문채아는 여전히 입을 꾹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흰색 불빛 아래 문채아는 두 손으로 휴대폰을 꽉 말아쥔 채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저 흰 티에 검은색 슬랙스 차림일 뿐인데도 그녀는 매우 예뻤다. 게다가 지금은 얼굴에 우울함까지 더해져 이제는 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약해진 간호사는 부드러운 말투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대로 혼자 집으로 가시게 되면 발목 인대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 보호자분과 함께 돌아가시는 게 좋아요. 의사 선생님도 꼭 보호자분 오시면 보내드리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죄송합니다. 많이 바쁜지 연락을 안 받네요.”

문채아는 고개를 더 떨구며 기어들어 갈 것 같은 목소리로 답했다.

몇 시간 전, 그녀는 같은 예술 대학교를 나온 후배들의 부름으로 미술관에서 도와주러 갔다가 한차례 소란을 겪었다.

사건의 발단은 두 명의 아이가 전시품인 조각상을 훼손해서였다. 아이들의 부모님은 애들이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았고 직원들은 무책임한 그들의 태도에 결국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감정은 점점 더 격해졌고 나중에는 욕설과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리게 되었다.

문채아는 상황이 더 커지기 전에 최대한 중재하려고 했다. 그런데 싸움을 말리려다가 그만 발목을 심하게 다쳐버렸고 피도 철철 흘리게 되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후, 그녀와 비슷하게 다친 사람들은 치료를 받은 다음 금방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녀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혼자 병원에 남아 있었다.

“그럼 혹시 남자 친구는 있으세요? 남자 친구분께서 오셔도 돼요.”

간호사의 대안에 문채아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지금껏 전화를 걸어 부르려 했던 사람이 바로 남자 친구였으니까.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그때, 누군가가 볼륨을 크게 틀어버린 바람에 티비에서 갑자기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정 그룹의 박도윤 대표가 여자 친구를 위해 글로리 호텔의 VIP홀을 대관했다고 합니다. 대관한 이유는 여자 친구에게 한정판 크리스탈 구두를 선물해 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두 사람은 열애 중이 맞다고 인정했으며 3개월 뒤에는 약혼식을 올릴 예정이라는 희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박도윤 대표의 여자 친구는 강씨 가문의...”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듯한 영상 하나가 띄워졌다. 영상 속에는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여자와 문채아가 연락이 닿길 바라고 또 바랐던 남자가 있었다.

박도윤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앞에 있는 여자의 발을 잡으며 친히 크리스탈 구두를 신겨주었다.

꼭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히기라도 한 것처럼 두 남녀는 서로만 바라보았다.

뉴스를 확인한 간호사는 잔뜩 부러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자들은 이벤트도 남다르게 하네요. 가끔 보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니까요? 에휴, 누구는 호텔 VIP홀을 대관해 꽁냥거리고 누구는 늦은 시간까지 병원에서 일이나 하고.”

가뜩이나 통증 때문에 혈색이 안 좋던 문채아의 얼굴이 지금은 완전히 창백해졌다.

잠시 후, 문채아는 결국 절친한 친구인 주연우에게 전화를 걸고서야 병원에서 나올 수 있었다.

주연우는 요즘 전시회 준비 때문에 많이 바쁜 상태였다. 문채아도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할 수 있으면 주연우에게는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주연우는 눈가가 빨개진 문채아를 보자마자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너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제일 먼저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왜 이제야 전화를 한 거야? 아주머니는 뭐래? 또 너 알아서 하래?”

13년 전, 문영란은 재혼한 후 어린 문채아를 데리고 함께 박씨 가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문채아는 친엄마가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엄마가 없는 애처럼 살게 되었다.

그 이유는 문영란이 박씨 가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모든 신경을 전부 남편과 그 남편의 아들에게만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박도윤에게 있어 문영란은 뭐 하나 흠잡을 것 없는 다정한 새엄마였지만 문채아에게는 계모보다 악독한 친엄마였다.

“나 뉴스 봤어.”

주연우가 이를 꽉 깨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박도윤이랑 너, 3년 전부터 사귀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

문채아가 멈칫했다. 친엄마에 관해 얘기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입꼬리가 박도윤이라는 이름 석 자가 나온 순간 힘없이 내려갔다.

“그러게. 박도윤 여자 친구는 난데...”

문채아가 박도윤과 처음 만난 건 8살 때였고 박도윤을 좋아하게 된 건 새로운 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던 그녀가 가문 내 괴롭힘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출했을 때였다.

그날 박도윤은 문채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어두운 길가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러다 드디어 그녀를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품에 끌어안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문채아를 등에 업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내가 다 해결해 줄게. 내가 네 곁에 있을게. 그러니까 울지 마.”

다 잠긴 목소리로 이런 말을 건네는데 어떻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문채아는 그때 차갑게 식었던 마음이 다시금 데워지는 것 같았다.

박도윤의 등에 업혔던 그 느낌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신분 차이가 컸고 대외적으로는 또 오빠와 동생 사이였기에 문채아는 박도윤을 향한 마음을 꼭꼭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채아가 성인이 되던 해, 둘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그날 문채아는 술에 잔뜩 취한 채 박도윤에게 그간 숨겨왔던 마음을 전부 고백하고야 말았다. 그야말로 취중 고백이었다.

당연히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박도윤은 흔쾌히 그 고백을 받아줬고 그녀의 남자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다만 두 사람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당분간은 가족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비밀로 하자고 했다.

문채아는 그 말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환한 얼굴로 알겠다고 했다.

박도윤과 함께 사랑을 키워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족에게도 인정받고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사귄다고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상일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는데 기다림의 끝에 얻게 된 건 박도윤의 곁에 있어도 된다는 인정이 아닌 박도윤과 다른 여자의 약혼 소식이었다.

...

주연우는 전시회 일로 아직 할 일이 많았기에 문채아를 집까지 데려다준 후 금방 다시 작업실로 돌아갔다.

문채아가 집으로 들어와 보니 도우미들이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박도윤의 약혼 얘기가 뉴스에까지 보도되었으니 시끌벅적할 만도 했다.

도우미들 중에는 약혼녀가 강씨 가문 사람이면 약혼식은 물론이고 결혼식까지 성대하게 할 게 분명하다며 자기 일처럼 흥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미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 건 아니냐며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다.

문채아는 주먹을 꽉 말아쥔 채 도우미들 옆을 지나 다리를 절뚝이며 계단을 올랐다.

지금은 그냥 한시라도 빨리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하지만 방 앞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웬 불청객 한 명이 그녀의 방 안에 우두커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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