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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작가: 천이설
어제 티비에서 봤던 여자가 상큼한 미소를 지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이제야 내려와?”

문채아를 발견한 문영란이 소파에서 일어나 문채아의 팔을 끌고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 끌어당기는 손길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고 말투에도 질책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너 부르라고 아줌마 올려보낸 지가 언젠데. 너 또 늦잠 잤지? 하여튼 애가 게을러서는. 네 새언니 될 사람이 네가 내려오길 얼마나 기다렸는데.”

문영란이 새언니가 될 사람이라며 눈빛으로 소파에 앉은 여자를 가리켰다. 여자는 박도윤의 예비 약혼녀이자 강씨 가문 사람인 강지유였다.

강지유는 박도윤이 어제 선물해 준 크리스탈 구두를 오늘 바로 신고 집으로 찾아왔다.

신발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강지유라는 사람 자체가 동글동글하니 예쁜 탓인지 꼭 순백의 천사라도 강림한 것처럼 그 여자 뒤에만 후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박도윤은 그런 그녀의 옆에 마치 진짜 남편이라도 된 것처럼 딱 붙어 있었다. 문영란이 새언니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그는 조금의 부인도 하지 않았다.

“아주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강지유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재하듯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빠 여자 친구가 왔는데 늦잠은 좀 너무했다, 그쵸?”

애교가 살짝 섞여 있었다고는 하나 어딘가 날이 서 있는 말투였다. 꿀릴 것 없는 가문의 사람이라 그런지 만만치 않은 여자였다.

문채아는 차가워진 손을 꽉 말아쥐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죄송해요.”

“말로만요?”

강지유는 그렇게 말하며 박도윤을 바라보았다.

“나 자기네 집 구경하고 싶은데 채아 씨랑 같이 구경해도 되지? 아까 보니까 정원이 되게 예쁘던데.”

말을 마친 그녀는 박도윤의 대답 따위 들을 생각도 없었다는 듯 소파에 일어나 문채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강지유는 박도윤의 여자 친구이고 미래 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사람이기에 집을 구경시켜달라는 그녀의 요구는 매우 정당했다.

하지만 문채아는 지금 발목을 다친 상태라 누구와 함께 어디를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아까 계단을 내려왔을 때도 중심을 잡지 못해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으니까.

문채아는 강지유가 다 알면서도 이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이러는 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뭐가 됐든 구경시켜 주는 건 무리라 거절을 하려는데 박도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채아가 구경시켜 주면 되겠네. 채아야, 우리 지유 잘 부탁할게.”

‘우리 지유...’

문채아의 가슴이 또다시 욱신거렸다. 하지만 아파할 새도 없이 강지유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곧장 정원으로 향했다.

이 정원은 유명한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일반 정원보다 훨씬 더 볼거리가 많아 한 바퀴를 다 도는 데만 삼십 분이 넘게 걸린다.

즉, 문채아의 발목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걸은 지 5분도 안 돼 문채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발목을 감싸고 있는 붕대가 축축한 것이 상처가 벌어진 듯했다.

하지만 강지유는 아무것도 모른 채 혼자 떠들기만 바빴다.

“채아 씨랑 도윤이가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이라는 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말인데 얘기 좀 해줄 수 있어요? 채아 씨 부모님은 어쩌다 헤어지게 되신 거예요?”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문채아가 통증을 참은 채 대답해 주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뒤로 계속 엄마랑 둘이서 살다가 엄마가 아저씨를 만나게 됐어요. 그러다 얼마 안 가 두 분이 결혼하게 됐고요.”

“그러면 채아 씨는 아빠한테 감사해야겠네요. 아빠 덕에 이렇게 도윤이네 집으로 들어와 부잣집 딸 기분 내면서 살 수 있게 됐잖아요.”

강지유는 의미 모를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참, 조소학과 전공이었다면서요? 졸업하고 나서는 그렇다 할 작품도 못 내고 가끔 후배들 일 도와주러 미술관에 가는 게 다라고 하던데, 채아 씨는 좋겠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뭐든 잘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셔서 졸업하자마자 재호 그룹으로 들어가 팀장직을 맡았거든요. 도윤이와도 일하다 1년 전에 프로젝트로 엮여서 만나게 됐어요. 힘들긴 해도 지금에 와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채아 씨처럼 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라면 도윤이를 만나지 못했을 거잖아요. 안 그래요?”

문채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강지유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빤히 바라보며 지치지도 않는지 또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 화난 건 아니죠? 채아 씨가 능력은 좀 안 되긴 해도 얼굴은 예쁘잖아요. 남자한테 꾸준하게 잘 먹힐 스타일.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그 인간도 채아 씨한테 빚진 거 있다면서 계속 갚으려고 하던데.”

강지유는 일부러 이름이 아닌 그 인간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문채아는 그녀가 가리키는 사람이 강재혁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강재혁은 가문이라는 뒷배가 없어도 여전히 사람들 꼭대기에 자리할 수밖에 없는 그런 남자였다.

그 역시도 박도윤처럼 문채아와는 아주 어릴 때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강재혁은 문채아가 그에게 도움을 줬던 일로 지금도 여전히 그녀에게 빚을 졌다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채아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먼저 그 일을 꺼내지도 않았을뿐더러 앞으로도 강재혁에게 빚을 갚으라는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문채아는 내뱉는 말 족족 날이 서 있는 강지유 때문에 심기가 불편해져 발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왜 그렇게 정색해요? 그냥 좀 궁금했던 것뿐이에요. 문채아 씨가 뭔데 사람들이 그렇게 예뻐하나 해서.”

강지유는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구두를 벗었다.

“이제 궁금증 풀렸으니까 가 봐요. 나는 이곳 연못에서 조금 더 놀다 갈게요.”

강지유는 꼭 강아지를 대하듯 손을 휘휘 저으며 문채아를 보냈다. 거짓말은 아니었던 건지 종아리 정도 깊이의 연못에 들어가서는 잉어를 보며 혼자 물놀이를 했다.

문채아는 몇 분 정도 자리에 선 채 가만히 있다가 강지유가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크리스탈 구두를 보고는 기분이 확 가라앉아 발걸음을 돌렸다.

힘겹게 방으로 돌아와 붕대를 풀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상처가 벌어져 있었다. 피가 줄줄 새어 나오는 것이 호러 그 자체였다.

문채아는 이를 깨물어 통증을 꾹 참고는 낑낑거리며 붕대를 다시 감았다.

다 감은 후 숨을 좀 돌리려는데 누군가가 문이 부서져라 노크하며 외쳤다.

“채아 너 안에 있지?”

문영란이었다.

“빨리 이 문 좀 열어 봐. 지유 씨 구두가 사라졌어!”

‘구두가 사라졌다고?’

문채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힘겹게 문을 열었다.

“그 여자 구두가 사라졌는데 왜 나한테 와서 소리를 질러요?”

“그거야 네가 더 잘 알겠지!”

문영란이 도끼눈을 뜨며 말했다.

“그 구두 도윤이가 지유 씨한테 주려고 특별히 디자이너한테 연락해서 부탁한 거라며? 지금 다들 구두 찾는다고 난리야. 그런데 지유 씨 집구경 시켜준 거 너잖아. 지유 씨가 연못에서 나오고 보니 구두도 사라지고 너도 사라졌다는데 그럼 당연히 너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지금이라도 빨리 구두 돌려주고 제대로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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