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31화

Author: 온유
“네 오빠가 하늘의 별을 따다 준다고 해도 아까울 것 없지. 아린이는 네 새언니니까.”

주현정은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첫 출근인데 어땠어?”

배지유는 육하경이 도아린을 감싸는 모습을 떠올리자 화가 치밀었다.

“엄마, 주소 좀 보내줘요. 기회가 되면 나도 그 경주마 보러 갈래요.”

“보는 건 괜찮지만, 뺏지는 마.”

주현정은 위치를 보내줬다.

모두 바쁜 탓에 도아린은 혼자 밖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경마는 이미 끝났다. 그녀는 승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충 배건후가 이겼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탁월한 승마 실력뿐만 아니라 상황 분석 능력도 뛰어나 지금까지 패배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주현정은 그 경주마가 배건후가 그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했지만 그건 말이 안 되었다.

아마 윤명희에게 둘이 사이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 것이다.

최고급 경주마는 단순히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배씨 가문이 진 씨 가문과 협력하려는 프로젝트가 작은 규모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아린은 울타리를 따라 무작정 걷다가 우연히 육하경이 울타리에 기대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육하경이 고개를 돌렸다.

“왜 혼자에요?”

“하경 씨도 마찬가지잖아요.”

육하경은 항상 부드럽고 젠틀한 옆집 오빠 같은 이미지였는데 갑자기 멍하니 있는 걸 보니 분명 무언가 고민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천사 보육원에 관해서...”

도아린은 배건후가 그에게 압력을 가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경 씨는 신경 쓰지 말아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육하경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건후에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도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배건후는 당연히 조사할 수 있었다. 단지 손보미를 위해 보육원을 없애버릴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가 문제였다.

“아린 씨 친구가 영상을 찍었죠?”

육하경은 몸을 일으켰다.

“나에게 보내주라고 하세요. 증거를 모아서 경찰에 함께 넘겨줄게요.”

도아린은 휴대폰을 꺼내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또 한 번의 거절   제232화

    육하경은 손을 울타리에 걸치고 꽉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그는 조금 전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다행히 피우지 않았다.비록 남자가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건 일상이고 도아린도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육하경은 뒤를 돌아보며 부드럽고 맑은 미소를 지었다.“오늘 유정과 친구를 도와줘서 고마워요. 작은 선물인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요.”봉투가 아까보다 좀 더 무거워진 것 같았다.육하경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놀라움과 기쁨, 그리고 아주 옅은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그냥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육하경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앞으로도 계속 조사를 이어갈 거죠...”도아린은 쇼핑백을 조금 더 내밀며 말했다“나쁜 놈을 없앤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요. 안 받으면, 다음에 일이 생겨도 말 안 해줄 거예요.”육하경은 그제야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받기에 좀 미안하네요.”“대신, 한 가지 사실을 알려드리죠.”육하경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배건후를 보고 목소리를 약간 낮췄다.“하지만 내가 확신을 가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도아린은 보육원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때 강한 팔뚝이 허리를 감쌌다.“엄마가 찾으셔.”배건후는 갑자기 힘을 주며 도아린을 끌어안았다.“네 형수 데리고 갈게.”그렇게 말하고 육하경을 혼자 남겨둔 채 도아린을 데리고 갔다.그녀는 거의 강제로 끌려가는 듯했다.“건후 씨, 내 말 아직 안 끝났어요.”“엄마가 보고 있어...”배건후는 말하며, 바람에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귀 뒤로 넘겨주었다.도아린은 어쩔 수 없이 연기하며 고개를 돌리며 작게 말했다.“건후 씨, 번개 말인데 진짜 샀어요?”“좋아?”“나한테 사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나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진씨 가문과 협력하고 싶은 거지.”배건후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알

  • 또 한 번의 거절   제233화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니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도아린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소유정에게 선택을 맡겼다.“차는 어디 있지?”배건후가 갑자기 물었다.도아린은 열심히 글을 쓰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바닥에 있잖아요.”배건후는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고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어디에 있냐고?”도아린은 고개를 숙여 살폈다.배건후는 거의 좌석의 절반을 차지하고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었고 발밑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도아린 역시 다리를 모아 차 문에 기대고 있었고 발 아래는 텅 비어 있었다.“...엥?”도아린은 목을 긁적이며 일어나 뒤를 돌아봤다.“수현 씨, 혹시 물건을 트렁크에 넣어두셨어요?”“사모님 짐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아까 분명히 발판에 놓아두었는데.”도아린은 좌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목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기억을 더듬었다.잠시후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건후를 쳐다보았다.“아마도... 차와 지갑을 함께 넣어 하경 씨에게 준 것 같아요.”배건후의 눈빛이 위험하게 변했고 입가의 미소는 활시위처럼 날카로웠다.“내 물건을 남에게 주다니.”그의 주변의 차가운 기운이 갑자기 더 강해져서 도아린은 등 뒤가 오싹해졌다.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자리에 제대로 앉았다.“차 한통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차가 문제가 아니잖아.”“이미 다 선물했는데요 뭐.”“내 물건을 네가 왜 마음대로 처분해?”도아린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옛날에 자신이 좋아하는 산삼을 손보미에게 줄때 그가 뭐라고 했더라?아, 그녀에게 철이 좀 들라고 했었지.그냥 산삼 한뿌리일 뿐이니 다른 걸로 보상해 주면 된다고.“건후 씨, 그깟 싸구려 차 한 통때문에 이렇게까지 따질거예요?”그녀의 말투는 가볍고 무심했다.배건후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고 그녀의 억지에 더 화가 났다.“이건 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네 문제잖아.”그가 더 화를 낼수록 도아린의 마음은 더욱 후련했다.“내가 뭘요? 난 일부러 점원에게 차를 달라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234화

    멀어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배건후는 가슴이 답답했다.그는 손에 든 담배를 부숴버리고 빨갛게 달아오른 담뱃불이 고급스러운 구두 위에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마이바흐가 떠난 직후, 도아린은 다시 아파트 단지를 나섰다. 집에 과일과 간식이 없다는 것을 떠올리고 근처 마트에 가려던 참이었다.“잘 생각했어?”그녀는 소유정과 통화하며 걸었다.“결정했어. 난 진혁을 데리고 은신처로 갈거야. 그는 내 파트너니까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이때 봉고차 한대가 도아린의 옆에 멈춰 섰다.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그녀는 피하려 했지만 두 명의 건장한 남자가 길을 막아섰다.“너희는... 으읍!”누군가가 도아린의 뒤에서 입을 막았다. 수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냄새에 도아린은 금세 정신을 잃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도아린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았다.그녀는 팔과 다리가 묶인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쁘장하게 생긴 아가씨야. 몸매도 장난 아니잖아.”“십만 원은 너무 싸. 좀 가지고 놀다가 넘기자.”“보스가 먼저 해요. 우리는 밖에서 지키고 있을게요.”발소리가 멀어졌다.촤악!차가운 물이 얼굴에 쏟아지면서 도아린은 어쩔수 없이 눈을 떴다.낡고 허름한 창고 안이었다. 창문은 빛이 새지 않는 비닐로 덧대있었고 유일한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누구세요?”그녀는 멍하니 물었다.“넌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어.”남자는 그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말했다.“어차피 시골 외딴집 노인네한테 팔려가서 고생할 건데 오늘 이 오빠가 맛좀 보자.”남자는 허리띠를 풀며 더러운 웃음을 지었다.도아린은 머리카락이 곤두섰고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그녀는 최대한 침착하려고 노력했다.침착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주방장이 당신들 두목인가요? 부탁드리지만 그에게 전해주세요. 오늘 제가 흥분해서 실수했어요. 시키는대로 다 하고요. 원하는건 다 들어줄게요.”도아린은 아첨하는 웃음을 지

  • 또 한 번의 거절   제235화

    그래서 그녀는 나무 몽둥이를 집어 들고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수밖에 없었다.퍽!나무 몽둥이는 남자의 등을 가격하며 반으로 부러졌다.“형님!”그제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소리치며 안으로 달려왔다.그녀는 손에 남은 반쪽 몽둥이로 다시 한번 내리쳤고 남자는 신음하며 쓰러져 꼼짝하지 않았다.그녀는 재빨리 빈 나무 상자 안으로 숨어들었다.이때 달려들어 온 두 명의 부하들은 이 장면을 보고 멍해졌다.두목은 피투성이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겨우 십만 원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에 두 남자는 공포에 질렸다.그들은 허둥지둥 두목을 밖으로 옮기고 문을 잠근 뒤 병원으로 갔다.도아린은 휴대폰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기절해 있는 동안 그들이 가져간 모양이었다.창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창문을 뜯기 시작했다.온몸에 땀을 흘리며 두 개의 나무판자를 간신히 뜯어내서야 겨우 한 사람이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만들었다.이때 문밖에서 소리가 들렸고 문이 다시 열렸다.피부가 검고 누렇게 뜬 여자였다. 그녀는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누렇고 숱이 적은 머리카락을 뒤통수에 동그랗게 말아 붙였다.“바로 네 이년이 내 사위를 꼬셨지!”하춘녀는 문을 막는 데 쓰는 막대를 들고 한 걸음씩 다가왔다.“네년의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 산골짜기에 팔아넘겨 버릴 거야! 그럼 남자를 어떻게 꾀나 보자!”“아줌마, 분명히 오해가 있으세요.”도아린은 어색하게 손사래를 쳤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하춘녀는 남들이 자기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게 제일 싫었다.도시 사람들은 다들 '사모님', '부인'이라고 부르지 않는가?“너야말로 아줌마야. 너희 집안 전체가 다 아줌마들이야!” 하춘녀는 두말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무거운 몽둥이가 옆에 있던 상자를 때리자 먼지가 풀썩 일어났다.도아린은 화급하게 피하며 말했다.“이모, 아가씨, 언니... 흥분하지 마시고 얘기 좀 해

  • 또 한 번의 거절   제236화

    도아린의 전화가 갑자기 끊기자 소유정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중 배건후에게 연락했다.“건후 씨, 도아린이 보육원 사람들에게 납치당한 것 같아요. 얼른 손보미한테 연락해 보세요.”배건후는 여전히 그 찻잎 때문에 도아린에게 화가 나 있었다. 게다가 그는 도아린이 맨션으로 들어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까지 했다.고양이나 강아지도 맨션에서 길을 잃을 리 없는데 하물며 다 큰 어른이야.“유정 씨, 도아린의 체면을 봐서 이번만은 넘어가겠지만 다음에 또 그러시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겁니다.”“상황이 너무 급해서 건후 씨한테 전화한 거예요. 지금 보니 우리 아린이가 아깝네요.”소유정은 전화를 끊고 다시 육하경에게 연락했다.배건후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는 어느새 분노가 번졌다. 아무리 천사 보육원에 문제가 있다 해도 도아린이 친구들과 작당하여 손보미를 비방하는 것 또한 고상한 일이 아니었다.전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였다. 배건후는 핸드폰을 빤히 내려다보더니 뭔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몇 분 후,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어 도아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그는 마음 한구석에 불안이 피어올랐다.“맨션으로 돌아가죠.” 배건후는 차갑게 말했다.마이바흐는 서서히 단지에 들어섰고 에이트 맨션은 불이 꺼져 있었다. 배건후는 단지의 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도아린이 두 명의 덩치 큰 남자에게 끌려가 밴에 실린 장면을 보더니 온몸에서 살기를 내뿜었다.도아린이 사용하는 핸드폰은 배건후의 친구가 맞춤 제작한 것으로 전원이 꺼져 있어도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백그라운드 데이터를 활성화하고 폐창고로 향했다.창고로 들어가는 길이 심하게 좁다 보니 마이바흐와 밴이 거의 스치듯 지나쳤다.“당신은 저 밴을 쫓아가세요. 전 들어가서 사람부터 찾을게요.” 배건

  • 또 한 번의 거절   제237화

    ‘도아린, 네 머리엔 도대체 뭐가 들어찼어?’‘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지?’‘이미 마음이 떠난 남자랑 사랑을 논하다니, 그냥 돈만 따지면 되는 거지.’도아린은 물을 두어 모금 마시고 나서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경찰은 밴이 리조트에서부터 미행했다고 했지만 오늘 그곳에 갈 거라는 걸 그녀도 몰랐는데 그들이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아마 손보미가 배건후의 일정을 알고 미리 사람을 보냈을 가능성이 제일 컸다. 도아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되레 소유정을 위로했다.“오늘 당한 건 꼭 배로 갚아줄 거야.”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병실 문이 열렸다. 배건후는 차가운 분위기를 풍기며 들어오더니 침대에 기대있는 도아린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깼네.” 그는 눈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운 채 가까이 다가섰다. “얘기 좀 해.”“아린이가 당신이랑 무슨 얘기를 나눌 게 있죠?”소유정은 겨우 멈췄던 눈물이 다시금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이 납치당했을 땐 돕지도 않더니 이제 와서 존재감을 과시하러 오는 것도 아니고.’그녀는 배건후를 조금 두려워했다. 그는 겉보기에 다가가기조차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아린이 심하게 당하면서 그녀는 거의 각오를 다졌다. 연예계를 떠나는 한이 있더라도 친구가 괴롭힘 당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도아린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유정아, 나 밀크티 마시고 싶어. 토핑 가득 넣어서.”소유정은 자신을 내보내려는 핑계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녀는 도아린과 눈빛을 교환하며 바로 밖에 있을 테니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라고 했다. 그러고는 배건후를 흘겨보며 병실을 나갔다.배건후는 의자를 끌어와 병상 옆에 앉았다.“어제 사모님께서 해남으로 돌아왔어. 너도 함께 배웅하길 바랐는데...” 그는 잠시 멈췄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사모님께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하셔서 네가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어.”도아린은 비웃음을 흘렸다. “엄마도 모르겠죠?”“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엄마가 알면 병세

  • 또 한 번의 거절   제238화

    그는 손보미의 출생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배건후는 본능적으로 타고난 고고한 자태를 풍기며 도아린을 내려다보았다.“경찰은 결코 범인을 놓치지도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지도 않을 거야.”도아린은 눈을 감은 채 창백한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손보미가 그동안 고생한 게 지금 무슨 상관이지?’그녀는 감독과 밤늦게까지 대본을 논의하다가 평판이 망가지고 여러 곳에서 압박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연수를 나갔다. 가엾은 사람에게는 미워할 점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힘들겠지만 그게 폭력의 이유는 될 수 없다.“그만 가세요. 혼자 쉬고 싶어요.”배건후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열다 말고는 그대로 꾹 참아 누른 채 돌아섰다.소유정은 병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당신이 아직도 아린이를 와이프로 여긴다면 아린이가 푹 쉴 수 있도록 귀찮게 하지 말아주세요.”“소유정 씨, 당신 말에 책임질 준비 하세요.” 배건후는 차갑게 경고했다.소유정은 고집스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배건후 씨, 고소하고 싶으면 하세요. 당신이 저지른 일에 후회하지나 말고.”“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들려오는 육하경의 온화한 목소리에 두 사람은 실랑이를 멈추었다.배건후가 고개를 돌리자 손에 밀크티 두 잔을 들고 있는 육하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가슴속에 쌓여 있던 답답한 감정이 점점 뚜렷해지는 것 같았다. 배건후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날카로웠다.육하경이 건넨 밀크티에 소유정은 즉시 환하게 웃어 보였다. 배건후를 대하던 태도와는 하늘 땅 차이였다.“아린이가 제일 좋아하는 토핑이 들어간 밀크티네요. 역시 세심한 분이라 그러신지 따뜻한 걸로 사 오셨네요.” 소유정은 일부러 배건후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들어가야겠어요. 아린이가 한참을 기다렸거든요. 하경 씨도 어서 들어와요.”배건후가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지만 소유정은 이미 병실로 들어가 버렸다.육하경은 배건후에

  • 또 한 번의 거절   제239화

    그는 전화를 끊고 육하경에게 함께 가자는 눈빛을 보냈다.“유정 씨가 날 찾아.” 배건후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육하경을 들추어내고 싶지도 않았다. 비록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떠나야 했다.소유정은 육하경이 들어오자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만요! 오늘의 주인공께서 등장합니다!”육하경은 그녀의 농담에 약간 민망해하며 말했다. “그만 놀리세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도아린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 일은 정말 고마워요. 하경 씨가 아니었다면 전...”“오늘이라니!” 소유정이 그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벌써 이틀 전이야. 너 꼬박 이틀이나 의식을 잃었엇어.”“...” 도아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소유정은 핸드폰을 꺼내 날짜를 보여줬다. 도아린은 이내 받아들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제야어제 진 대표님과 사모님께서 해남으로 돌아갈 때 그녀에게 배웅하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틀이나 혼수상태에 빠졌던 것이다.“오는 길에 경찰서에 들렀어요. 이제 간단한 진술을 받으러 올 거예요.” 육하경은 온화한 시선에 약간의 엄숙함을 더한 채 말했다. “비록 그때의 일을 떠올리기 싫겠지만 아린 씨의 진술이 범인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도아린은 입에 빨대를 문 채 비웃음을 흘렸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손보미만 주시하면 진범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나 경찰이 믿어줄까? 설령 믿는다 해도 출동할까? 배건후가 여전히 손보미의 편에 서 있는 한 손보미는 두려울 게 없었다.도아린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쯤 시도는 해보고 싶었다.“최대한 기억해 낼게요.” 도아린은 토핑을 한 입 크게 씹으며 물었다. “하경 씨는 어떻게 제가 폐창고에 있는 걸 알았어요?”“사실...”“내가 하경 씨한테 전화했어.” 소유정은 육하경의 말을 끊어버렸다. “그 인간이 너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쓰길래 초조한 마음에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하경 씨한테 연락

Latest chapter

  • 또 한 번의 거절   제933화

    누군가는 사진 한 장을 들고 나타나 말했다.“도아린 곁에 있는 꽃미남이 사실 강재민이래.”과거, 두 사람이 함께 음악 페스티벌에 참석했던 적도 있다는 이야기였다.그 말에 또 다른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소문은 꼬리를 물고 번져갔다.그러던 어느 날.도아린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한 신인 배우가 몰래 찍은 사진 한 장이 인터넷에 올라왔다.사진 속엔, 두 사람의 머리가 맞닿은 채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그 한 장의 사진은 결국 배건후의 정체를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었고 그는 다시 한번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이번에도 역시 온갖 의심과 루머 그리고 비난이 따라붙었다.하지만 며칠 후, 연성 경찰청에서 공식 공지문이 게시되었다.바로 얼마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기 밀매 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 공지였다.공지문에는 고성만, 손보미, 자상훈 등이 인신매매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다 결국 장기 밀매까지 손을 뻗친 사실이 요약되어 있었고 그 수사에 협조한 익명의 자원자들에게 감사의 뜻도 함께 담겨 있었다.그 단 하나의 공지로, 여론은 완전히 반전됐다.정월 대보름, 해남엔 보기 드문 큰 눈이 내리고 있었다.도로는 차들로 가득 막혀 10분이 지나도 백 미터를 채 움직이지 못할 정도였다.“천천히 가. 우린 여기서 내려서 좀 걸을게.”도아린은 조수석 창문을 내리며 일북에게 말했다.그리고 배건후와 함께 차에서 내려 레스토랑까지 걷기로 했다.배건후는 우산을 펼쳐 도아린의 머리 위에 씌웠다.도아린은 그의 팔에 팔짱을 끼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꼭 쥐어져 있었다.“춥지 않아?”그가 우산을 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안 추워요.”도아린은 입김을 내뿜으며 활짝 웃었다.발밑에서는 바삭거리는 눈이 소리를 냈고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래전 기억이 스쳐 갔다.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시절.어느 회사 대표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눈밭에서 몇 시간을 버텼던 그날, 발이 얼어 서 있지도 못하고 결국 쪼그려 앉았던 그 순간

  • 또 한 번의 거절   제932화

    그 여자는 바로 그날 수상 레스토랑에서 진경수에게 벨트를 빌렸던 그 여자였다.하지만 오늘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짧은 티셔츠와 청 반바지 대신 격식을 갖춘 정장 느낌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얘, 내 여동생. 그리고 이 사람은... 우리 제부.”진경수는 ‘제부’라는 단어에서 말끝을 흐렸다.여동생이 혼인신고까지 해놓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못마땅한 듯 표정이 굳어 있었다.그건 진수혁도 마찬가지였다.“큰형님, 작은 형님.”배건후가 정중히 일어나 인사를 건넸고 도아린은 해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오빠들, 호칭 바꿨으니까 용돈 좀 주셔야죠?”“혼인신고도 우리 몰래 해놓고, 무슨 용돈이야?”진경수는 여전히 불만 가득한 얼굴로 배건후를 노려보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도아린에게 내밀었다.“다시 내 동생 울리기만 해봐. 그땐 진짜 널 갈기갈기 찢어서 물고기 밥으로 줄 거야. 명심해.”“고마워요, 둘째 오빠!”도아린은 싱긋 웃으며 봉투를 받아들었고 이번엔 진수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진수혁 역시 말없이 봉투를 하나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도아린은 봉투를 슬쩍 비춰보며 속으로 웃었다.‘안 봐도 이건 수표네.’그녀는 배건후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더니 말했다.“이건 제가 따로 보관할게요.”“감사합니다, 우리 아내님.”“...”진씨 형제들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쯧쯧, 벌써 아내한테 잡혀 사네...’하지만 상대가 도아린이라면, 뭐… 그럴 만했다.“근데, 여기 두 분은?”도아린은 일부러 모르는 척 눈을 반짝이며 물었고 진수혁은 변슬기를 소파에 앉히며 담담히 말했다.“예전 동료야.”변슬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진경수가 옆에 있던 여자를 품 안으로 확 끌어당기며 밝은 미소를 지었다.“부모님 말씀대로 아린이 일도 정리됐겠다... 이젠 내 차례지. 그래서 나도 결혼했어.”도아린과 배건후는 동시에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둘째 오빠를 좀 본받으세요. 뭐 하세요, 진짜.’“작은 올

  • 또 한 번의 거절   제931화

    “...”집사는 조용히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배건후는 당연하다는 듯 도아린의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고 도아린은 그런 그를 집사에게 소개했다.“이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서재랑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둘째 오빠 방만 빼고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게 해주세요.”두 사람은 짐을 정리하자마자 곧장 외출에 나섰다.“앞에 있는 만둣가게, 진짜 맛있어요!”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도아린의 시선은 창가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던 진수혁에게 향했다.그 맞은편에는 변슬기가 앉아 있었고 다소 곤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득 중이었다.“여긴 패스트푸드점이에요, 카페가 아니라고요. 여기서 일하시는 건 좀...”“카페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난 괜찮은데?”“그렇긴 해도 이렇게 계속 앉아 계시면 저희 가게 영업에 방해된다니까요!”그때 도아린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변슬기는 반가움에 벌떡 일어났다.“도 선생님! 대표님 좀 말려주세요!”그 말에 진수혁은 고개를 돌리며 태연하게 말했다.“밥은 먹었어? 여기 만두 꽤 괜찮더라.”도아린은 황당함에 헛웃음이 났다.‘사람을 회사에서 내쫓아 놓고선 정작 본인은 여기에 눌러앉다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진짜.’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내가 말할게.”도아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변슬기와 함께 옆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그사이 배건후는 주머니에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진수혁 앞에 내려놓았다.“제가 이겼어요.”“...”진수혁은 조용히 종이를 펼쳐보고는 이를 악물었다.“너 이거 반칙 아냐?”“우린 내기했잖아요. 졌으면 인정해야죠.”“유럽 연수 그 자리, 잊지 말고 제 이름으로 신청해 주세요.”진수혁은 고개를 돌려 도아린을 바라보았고 마침 도아린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둘의 눈이 마주쳤고 자연스레 미소가 번졌다.‘이 분위기 뭐야... 완전 닭살 돋게 하네.’그 순간, 배건후는 시선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형님도 제가 예전에

  • 또 한 번의 거절   제930화

    ‘정말로 배고픈 거야? 아니면 날 원하는 거지?’도아린은 배건후를 흘끗 쳐다보며 가위를 테이블 위에 놓고는 끌려가 밥을 먹었다.배건후의 요리 실력은 한층 더 늘어 있었고 맛뿐만 아니라 음식의 모양새도 훨씬 좋아졌다.“이제 영양식은 안 드세요?” 도아린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전에 어떤 사람이 고기도 안 먹고 기름진 것도 안 먹고 오래된 것도 안 먹고 부드러운 것도 안 드셨잖아요!”배건후는 매운 닭 요리를 그녀 앞으로 밀어놓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그때는 네 관심을 끌려고 그런 거야. 그리고 몸매가 망가져서 네가 싫어할까 봐 걱정도 됐고.”“그럼 이제는 몸매 망가지는 거 걱정 안 해요?”도아린은 고기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배건후는 가볍게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원래 한 사람이 요리하면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건후는 도아린에게 설거지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그녀를 안아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아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배건후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그녀를 삼켜버릴 듯한 눈빛을 보였지만 쉽게 다음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도아린은 그가 마음속 어둠의 그림자와 싸우고 있음을 알았다.그녀는 그의 목을 감싸안고 몸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며 달랬다.“천천히 해도 돼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도아린의 위로는 곧 배건후에게 그대로 되돌아왔다.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녀의 흰 목 위로 떨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귀를 깨물었다. “도아린, 힘 빼... 너무 긴장했어...”도아린은 그의 입을 막고 싶었지만 손가락은 그의 입에 물려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머릿속이 멍해졌고 마치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리는 작은 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재미를 본 배건후는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혔다. 도아린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마치 어젯밤 온몸이 부서졌다가 다시 조립된 것처럼 사지가 말을 듣지 않았고 특히 허리

  • 또 한 번의 거절   제929화

    “배 대표님! 모든 자산을 도 대표님께 넘기신 것은 이전에 하신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셔서인가요? 손보미 씨가 형을 선고받았다고 들었는데 손보미 씨를 꺼내줄 계획이 있으신가요?”배건후는 차가운 눈빛으로 기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인터뷰의 주제는 챔피언십 선수들의 숙식 안전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겠습니다.”기자들이 더 질문하려 하자 도아린이 배건후의 손을 제치고 앞으로 나섰다.“숙식 문제에 대한 더 나은 제안이 있다면 제안서를 작성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수한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보상을 제공할 예정입니다.”도아린은 카메라를 향해 당당하고 품위 있게 말했고 입가의 미소를 살짝 거두며 한층 위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제 개인적인 문제로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배건후 씨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배건후는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왔다.도아린이 배건후에 대해 말하려 하자 기자들은 앞다투어 마이크를 내밀었다.도아린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배건후 씨는 여태까지 운영부의 팀장이었지만 오늘부터는 한경 그룹의 특별 자문입니다. 이후의 직책은 배건후씨의 능력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도아린의 시선은 배건후가 도아린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를 거냐고 묻던 기자를 향했다.“과학 연구자, 의학 전문가, 스포츠 선수,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여성의 몸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그러자 그 기자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갔다.다른 기자들도 더 이상 질문을 할 기세를 잃었고 도아린은 고개를 돌려 고유리를 보며 말했다.“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으니 저녁 식사 후 차량을 준비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고유리는 기자들을 데리고 나가며 각자에게 돈 봉투를 나눠 주었다.그들은 어떤 내용을 발표할 수 있고

  • 또 한 번의 거절   제928화

    “뭐라도 먹고 가자.”배건후는 구운 닭 날개는 도아린에게 건네주고 주현정에게는 구운 식빵을 건네주었다.주현정은 빵을 받아 들고는 돌아서며 말했다. “천천히 이야기 나누렴. 나는 물 좀 마시러 들어갈게.”도아린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배건후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서 멈췄다.두 사람은 강가의 평평한 돌 위에 앉았다.“엄마는 진짜 다 내려놓으신 걸까요?”“적어도 시작은 하신 거지. 앞으로 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와 함께 여행 다니면 점차 나아질 거야.”배건후는 핸드폰을 꺼내고는 방금 구 경관이 보내온 사진을 열었다.“남궁유민, 즉 고성만이야. 경찰이 고성만의 집을 수색할 때 이걸 발견했어.”도아린은 마지막 닭 날개를 입에 넣고 꼬챙이를 배건후에게 건네며 핸드폰을 받아서들었다.화면 속 사진에는 루비 목걸이가 찍혀 있었다.배건후가 큰돈을 들여 샀던 화려한 디자인의 목걸이지만 전에 잃어버렸던 목걸이였다.도아린은 배건후를 바라보며 말하려 했지만 입안은 닭 날개로 가득 차있어 눈만 깜빡였다.“내가 전에 너한테 줬던 그 목걸이야. 배지유가 몰래 차다가 잃어버렸던 거.”도아린의 입은 마치 발골 기계 같았다. 닭 날개가 입에 들어갔다 나올 때면 뼈만 남았다.도아린은 손바닥에 뼈를 뱉고는 차분하게 말했다.“배지유가 어떤 남자와 잤고 그 사람이 계속해서 그녀를 영상으로 협박했어요. 그 장본인이 바로 고성만이라구요!”“...”이번에는 배건후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성만이 배지유를 협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걸이를 철저히 숨겨놓고 분해해서 이미 팔아버렸을 거로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걸 집에 보관해 놓았을 줄은 몰랐어.”그것은 고성만이 자신을 위해 남겨둔 마지막 보험이었다.궁지에 몰리게 되면 목걸이를 분해해 팔고 다른 도시로 가서 새 삶을 살 계획이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체포당하고 말았다.다음 날, 도아린은 연성으로 돌아갔다. 배건후가 신청한 챔피언십 대회 접대 임무가 승인되었기 때문이다.진수혁 역시 변

  • 또 한 번의 거절   제927화

    그는 입가에 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자고충이 하나가 될 때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거야. 앞으로 잘못된 일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을 거야.”만약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한다면 그 고통으로 인해 결국 죽게 될 것이다.도아린은 배건후의 머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들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으려고 애썼다.배건후는 그녀의 품속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어서 너에게 혼수로 바칠게. 네가 나를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어. 그래도 나는 너를 평생 지켜줄 거야.”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그녀의 볼을 타고 떨어져 남자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그렇게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빛이 어두워질 때까지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안고 있었다. “돌아가자.”배건후는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안고 다리를 움직이며 불편했던 자세를 바꿨다.“이 근처에 야생 동물은 없지만 해가 지면 안전하지 않아.”도아린은 처음에는 감정에 휩싸여 배건후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가 몸을 움직이자 그녀는 즉시 이상함을 느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며 말했다.“돌아갈 때 건후 씨 몸이 불편하니까 제가 태워드릴게요. 그리고 내리막길이라 힘도 덜 들 거예요.”“알았어. 네 말 들을게.”자전거 핸들이 비뚤어져 있었지만 배건후는 두 다리로 바퀴를 단단히 고정한 후 힘껏 돌려 단숨에 바로 고쳤다.도아린이 자전거 앞좌석에 타고 배건후는 그녀 뒤에 앉았다.그는 얼굴을 그녀의 등에 기댄 채 내리막에서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긴 다리를 쭉 뻗어 마찰력을 늘리며 조절했다.그들이 별장에 도착했을 때 진수혁과 변슬기도 막 돌아오고 있었다.변슬기는 도아린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도아린은 그들이 뭔가 진전이 있을 줄 알고 가서 물어보려 했지만 배건후가 붙잡았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 머리 위에서 붉은 잎 하나를 떼어냈다.“...”변슬기와 진수혁이 설마 자신과 배건후가 야외에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배건후는 오직 도아린에게만 부

  • 또 한 번의 거절   제926화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도아린은 그의 눈동자 속에 가득한 붉게 물든 단풍잎과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마음속 깊이 즐거워하며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그의 깊고 그윽한 눈이 가늘게 감기며 그 속에는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듯했다.‘그래, 이거지!’그녀는 올해 겨우 25살이었다.어린 시절 양부모 곁에서 사랑받지 못했고 장애를 겪은 후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돌보며 결혼 생활에서는 남편의 감정적 학대 속에서 버텨야 했다.그녀는 너무도 많은 행복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이게 맞는 일이다.그녀는 웃어야 한다. 크게 소리 내어 마음껏 웃어야 한다.고작 25살에 불과한 그녀가 이토록 많고 무거운 책임과 압박을 짊어질 필요는 없었다.눈앞 여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지고 배건후의 심장도 저릿해 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스쳤고 천천히 그녀의 눈꼬리를 눌렀다.“웃어. 앞으로 나쁜 감정들은 전부 나한테 넘겨. 내 앞에서는 일부러 강한 척 버틸 필요도 없어. 속상하면 때리고 욕해도 돼. 대신에 절대 자신을 괴롭히지 마.”도아린은 코끝이 찡해지고 눈가가 뜨거워지더니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그녀는 급히 일어나 뒤돌아 눈물을 닦으려 했다.그 순간 힘센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고 특유의 나무 향기가 그녀를 감쌌고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여태까지 내가 나쁜 놈이었어. 미안해. 앞으로는 모든 일을 너와 상의할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을 거고 네가 속상해할 일도 만들지 않을 거야.”도아린은 팔꿈치로 그를 툭 쳤다.“입만 살아서!”배건후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운 뒤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도아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아직 육원의 중첩된 지분을 손에 넣지도 못했잖아요. 그리고 저도 아직...”이후의 말은 더 이상할 수 없었다.배건후가 상자를 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청혼의 반지가 아니었다.작고 빨간 벌레가 들어 있었는데 다리가 없고 온몸이 부드러웠으며

  • 또 한 번의 거절   제925화

    변슬기는 바쁜 듯 뒤돌아보며 기대와 불안이 섞인 표정을 지었다."좋아요." 진수혁은 흔쾌히 대답했다. 이미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배건후는 세 사람을 보고 눈빛이 흔들렸다. 빌라에는 자전거가 두 대 있었는데, 도아린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가기 위해 일부러 다른 자전거의 페달을 떼어 놓았던 것이다. 도아린은 자전거를 보고 그에게 너 정말 얄밉다'는 눈빛을 보내며 빨리 고치라고 신호를 보냈다. 자전거를 고치고 네 사람은 문밖으로 나갔다. "꽉 잡아."배건후는 도아린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자 힘껏 페달을 밟았고, 자전거는 비탈길을 미끄러져 작은 길로 향했다.변슬기는 진수혁에게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자전거 뒤쪽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진수혁은 자전거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저, 제가 밀어드릴까요...거의 정상에 도착하면, 그때 저를 밀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진 대표님의 속도로는 누가 먼저 정상에 도착할지 내기는커녕,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진수혁은 아무 말 없이 계속 비틀거렸다. 변슬기는 거의 넘어질 뻔했고, 황급히 남자의 허리를 붙잡았다. 자전거는 갑자기 비틀거리지 않았고, 속도도 빨라졌다. 변슬기: "..."배건후는 도아린을 태우고 산길을 누볐고, 도아린은 뒤쪽 페달을 밟으며 일어섰다.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짧은 머리카락은 바람에 휘날렸다. "산속 공기가 도시보다 훨씬 좋네요. 매연 냄새도 없고, 에어컨 냄새도 안 나고." 배건후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살짝 몸을 일으켰다. "어제 비가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 "당신도 비 온 뒤 흙냄새 좋아해요?" 도아린은 배건후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귓가에 웃으며 말했다. "나도 좋아해요! 비 온 뒤 흙과 풀이 섞인 냄새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배건후는 입꼬리를 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깨달았다. 배건후가 말한 것은 바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더욱 환한 미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