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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Penulis: 온유
“걔가 작정하고 접근하지만 않았어도 오빠는 걔랑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

배지유가 화를 내며 말했다.

“엄마가 아무리 좋은 한약을 먹여봤자 무슨 소용이에요? 오빠는 그 여자랑 애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는데.”

손을 닦으면서 나오던 도아린은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다시 뒷걸음질 쳤다.

“오빠, 난 친구들 만나도 오빠가 결혼했다는 얘기를 못 하겠어요. 저런 여자라는 게 알려지면 오히려 망신이에요. 보미 언니 이젠 톱스타가 됐으니까 엄마도 더는 반대하지 않을 거예요. 오빠가 말만 하면 내가 엄마한테 말해줄게요.”

“보미 지금 한창 일할 때야...”

배건후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이혼을 동의하지 않은 건 손보미가 내연녀라는 욕을 먹을까 봐서였다. 배건후는 언제든지 항상 손보미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도아린은 코끝이 찡하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녀의 존엄 따위는 이미 배건후에게 짓밟혀서 가루가 되고 말았다. 지금 이대로 나간다면 체면마저 모두 잃을 것 같았다.

“으악!”

차를 내오던 도우미가 도아린과 부딪히고 말았다. 도우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사모님, 손이...”

“괜찮아요.”

도아린의 손이 뜨거운 물에 데어 시뻘겋게 됐다.

그때 배건후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주방으로 끌고 가서 찬물로 헹궜다.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던 배건후는 도아린이 데고도 찍소리도 하지 않자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내가 널 터치하지 않는다는 걸 여기저기 말하고 다녔어?”

“...”

도아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말한 적이 없었다. 배지유가 에이트 맨션에 갔을 때마다 배건후가 없는 걸 보고 배건후가 도아린과 함께 살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것이었다.

거의 사실이나 다름없었기에 도아린은 아니라고 설명하지도 않았다.

“내 말이 틀렸나요?”

“난 너한테 관심이 없어.”

“관심이 없으면서 왜 이혼 안 하는데요?”

아무렇지 않은 도아린의 태도에 배건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담배를 꽉 쥐어 손등에 핏줄이 다 튀어나왔고 도아린을 1분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가버렸다.

“밥 먹은 다음에는 차를 마셔야지.”

거실로 나온 주현정은 도우미더러 다시 차를 내려 배건후에게 주라고 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짜증을 내며 손을 저었다.

“아린아, 네가 줘.”

주현정이 도아린을 부르자 도아린은 웃으면서 찻잔을 들었다.

“어머님의 마음을 무시해선 안 되죠.”

두 사람은 어른들 앞에서 사이가 좋은 척하기로 약속했었기에 배건후가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환하게 웃는 도아린을 보고 있는 배건후의 두 눈이 어두워졌다.

도아린은 청순하고 도도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웃을 때면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찻잔을 배건후에 입가에 가져다 댔다.

“내가 먹여줄까요?”

도아린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하면서 그의 팔짱을 꼈다. 배건후는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고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도아린이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돌아앉자마자 그녀의 턱을 덥석 잡았다.

“우... 웁...”

도아린은 강제적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았다.

주현정은 사랑이 넘치는 부부를 보며 쑥스러운 척 눈을 가렸다.

“됐어. 오늘도 피곤했을 텐데 얼른 올라가서 쉬어.”

방으로 들어와서야 도아린이 본색을 드러냈다.

“배건후 씨, 너무한 거 아니에요?”

“내가 널 터치하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았잖아.”

“그럼 어디 끝까지 가보던가요.”

도아린은 배건후의 넥타이를 잡고 침대로 확 밀어버리더니 그의 몸 위에 올라앉았다.

“이혼하기 싫으면 아이라도 가지게 해줘요.”

배건후는 몸을 돌려 도아린을 침대 위에 눕혔다. 그러고는 옆머리를 넘기면서 그녀의 이목구비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손가락이 입술에 닿았을 때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자. 꿈에서는 뭐든지 다 돼.”

그러고는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

도아린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았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굴욕을 자초하지 않았을 텐데.

방 안의 방향제를 끄고 나니 베개 밑에도 향낭이 있었다. 주현정은 분위기를 띄우는 물건을 준비한 건 물론이고 잠옷도 아주 얇은 나시 원피스 잠옷으로 준비했다.

시어머니가 손주를 원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아들은 전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아린이 잠옷을 보며 망설이던 그때 배건후가 뒤에서 나타났다.

“입든 안 입든 난 관심 없어. 아무거나 골라.”

정말 마음에 비수를 꽂는 말이었다.

전에 도아린이 토끼 잠옷을 갈아입고 침대에서 포즈를 취한 채 그를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배건후는 그녀를 보자마자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더니 담요를 던지면서 자기 눈을 더럽히지 말라고 했었다.

몇 년 동안 도아린이 무슨 방법을 쓰든 배건후는 그녀의 뜻대로 되게 하지 않았다.

배건후가 관심 없다고 하니 도아린도 딱히 부담이 없었다.

샤워를 마친 후 도아린은 샤워 가운만 입고 머리를 말렸다. 그런데 그때 배건후가 갑자기 다가와 허리를 감싸 안았다.

“...”

화들짝 놀란 도아린은 헤어드라이기를 끄고 거울 속에 비친 그를 쳐다보았다. 배건후의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호흡이 가빠지더니 예민한 그곳이 반응을 일으켜 그녀에게 닿고 말았다.

“아까 그 차...”

주현정이 줬던 차가 문제가 있었다.

어쩐지 자꾸 자고 가라고 하더라니, 두 사람을 감시하려던 것이었다.

배건후는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어루만졌다.

“네가 나더러 마시라고 했어.”

그의 손이 어찌나 뜨거운지 도아린의 몸도 뜨거워졌다. 그런데 배건후에게 키스하려던 그때 배건후는 휙 피해버렸다.

“이래도 내가 안 될 것 같아?”

그는 그녀에게 몸을 밀어붙였다.

“...”

도아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 되는 거 아니니까 이혼 사유가 성립되지 않아.”

배건후는 일부러 그녀에게 굴욕을 주었다. 도아린은 화가 끓어올랐지만 겉으로는 그를 비웃었다.

“그런데요? 쓰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쓰지 못한다고?”

배건후가 싸늘하게 웃었다.

“3년 전에 누가 고열에 시달려서 병원에 일주일이나 누워있었지?”

“그건 건후 씨 기술이 안 돼서 그런 거잖아요. 너무 거칠어서.”

“그건 너한테 주는 벌... 쓰읍!”

부드러운 작은 손이 그곳에 닿은 순간 배건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몸의 본능과 이성 가운데서 갈팡질팡했다. 거절하고 싶으면서도 또 하고 싶었다.

그의 호흡이 거칠어진 걸 본 도아린이 이참에 불을 확 지피려는데 안방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배건후의 휴대전화였다. 흐릿해졌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또렷해지더니 도아린을 밀어내고 밖으로 나갔다.

도아린은 뒤따라 나가 침대 머리맡의 휴대전화를 힐끗거렸다. 발신자가 손보미였다.

“여보세요?”

“건후 씨, 나 어떡해? 인제 일이 좀 풀릴까 하는데...”

손보미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살짝 울먹거리는 것 같았다.

도아린은 배건후의 허리를 감싸 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참 남자답단 말이죠. 근데 힘이 좀 줄어들진 않았나 몰라.”

과거 내연녀들은 기도 펴지 못했지만 지금은 대놓고 남편을 빼앗았다. 법적 부부인 도아린이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손보미는 도아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말이 없어졌다.

배건후는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 도아린이 씩 웃으면서 그곳을 더 힘껏 어루만졌다.

그 바람에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도아린은 발뒤꿈치를 들고 그의 목에 입맞춤했다. 그런데 배건후가 팔꿈치로 그녀의 가슴팍을 밀었다.

“지금 당장 갈게.”

배건후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도아린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몸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뜨겁게 끓어올랐던 피도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그는 더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게 옷을 입었다.

‘체념할 때도 됐어. 이젠 완전히 내려놓자.’

언제 어디서든 배건후의 마음속에는 손보미밖에 없었고 법적 아내인 도아린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가질 자격이 없었다.

3년 동안 그녀는 모든 정력을 배건후에게 쏟았다. 그가 뭘 좋아하면 그녀도 뭘 좋아했다. 혹시라도 그녀에게 마음을 주지 않을까 해서.

그러나 현실은 잔인하기만 했고 도아린에게 치명적인 한방을 안겨주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그녀의 심장에 박혀 너무도 아팠다.

따르릉!

휴대전화 벨 소리에 도아린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지금 당장 병원으로 와주셔야겠어요. 동생분 지금 상태가 위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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