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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하늘
7년.

꼬박 7년이었다.

7년 전, 이준은 아직 태자였고, 신나정은 동궁전 서재 청소를 맡은 보잘것없는 궁녀에 불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상의 적녀 김하연과 가례를 올리기 바로 전날.

이준은 선제(先帝)의 노여움을 사 태자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냉궁 별채에 유폐되고 말았다.

그는 차마 마음에 둔 김하연을 자신과 함께 고생길에 오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곁에 있던 궁녀 신나정과 급히 혼례를 치렀고, 신나정은 허울뿐인 태자비가 되었다.

냉궁 생활은 고단했지만, 신나정은 그마저도 좋았다. 오래전부터 이준을 연모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냉궁에서 보낸 3년은 그녀의 삶에서 가장 고된 시간이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달콤한 시간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그녀는 이준과 함께 후원 한쪽에 말라 죽은 나무 아래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생전에 묻어 두었다던 술 항아리를 파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이준과 함께 뼛속까지 시린 겨울도 견뎌 냈다. 남은 이불이라곤 하나뿐이었으나, 그녀는 그마저 이준의 몸에 둘러 주고 자신은 손발이 짓무를 만큼 추위에 떨어야 했다.

심지어 그를 지키려다 옛 원수가 보낸 태감에게 떠밀려 돌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고, 다리가 부러져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디 돌덩이가 아니다. 그토록 냉정하던 이준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조금씩 달라졌다. 처음의 냉담함과 경계심은 서서히 옅어지고, 늘 얼음장처럼 차갑던 눈동자에도 희미한 온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가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을 때면, 말없이 손난로를 품에 안겨 주곤 했다. 그녀가 서툰 솜씨로 그의 옷을 꿰매다 손가락을 찔리면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그만두어라” 하고 말했고, 악몽에 시달리다 잠에서 깬 밤이면 뜻밖에도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재워 주기도 했다...

그 후 이준은 이를 악문 채 오랜 세월을 견뎌 냈다. 한 걸음씩 세력을 넓히고 치밀하게 판을 짠 끝에, 마침내 정적들을 무너뜨린 그는 황위에 올랐고 끝내 천하를 손에 넣었다.

냉궁을 벗어나 다시 황궁으로 거처를 옮기던 날, 모두가 신나정이 황후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준은 황후의 자리를 김하연에게 내주었다. 신나정에게는 그저 어정쩡한 지위의 혜비(惠妃)라는 봉호만 내려 주었을 뿐이었다.

황후 책봉 조서가 내려진 그날 밤, 이준은 이례적으로 그녀의 처소를 찾아왔다.

“나정아, 짐이 마음에 둔 여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연이뿐이었다. 너를 맞아들인 것도 하연이가 짐과 함께 냉궁에 들어와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니라. 너도 알지 않느냐. 황후의 자리는 짐이 가장 아끼고 연모하는 여인에게만 줄 수 있다는 것을. 해서... 짐을 이해해 줄 것이지?”

신나정은 바닥에 꿇어앉은 채 고개를 들어 이준을 바라보았다. 김하연을 입에 올릴 때마다 그의 눈가에 어리는 다정함과 미안함이, 무딘 칼날처럼 그녀의 가슴을 도려내는 듯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지는 않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먹먹했다.

이를 들은 신나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 알고 있사옵니다. 신첩 같은 미천한 몸이 폐하 곁에 머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과분한 은혜이온데, 어찌 감히 그 이상의 것을 바라겠사옵니까.”

그녀는 정말로, 그 곁에만 머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다. 멀리서라도 그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하지만 김하연이 입궁한 뒤에야 그녀는 똑똑히 알게 되었다. 한 사내가 한 여인을 진정으로 연모한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그는 추위를 많이 타는 김하연을 위해 손수 여우털 갖옷을 걸쳐 주었고, 그녀가 답답하다 한마디만 해도 조회를 미룬 채 어화원으로 나가 뱃놀이를 즐겼다.

또한 김하연의 사소한 취향까지 빠짐없이 기억해 두었다가, 그녀의 궁을 언제나 가장 신선한 제철 과일과 꽃, 강남에서 들여온 최고급 비단, 보기 드문 이국의 진귀한 진상품들로 채워 놓았다.

반면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이라곤 늘 이준이 정사를 마치고 김하연을 달랜 뒤에야, 무심히 던져 주듯 내리는 차디찬 하사품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신나정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끔이라도 그를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그러나 반년 전, 부친과 오라비가 그녀를 만나러 입궁한 날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오라비가 그만 실수로 김하연의 가마 행렬과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김하연은 곧장 이준에게 달려가 눈물로 호소하며, 신나준이 자신에게 흑심을 품었다고 고해바쳤다.

이준은 격노한 나머지 그 어떤 해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신씨 일가를 모조리 옥사에 가두고 참수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그녀는 어서방(御書房) 밖에서 꼬박 밤을 새우며 무릎을 꿇었다. 이마가 터져 피가 흘러내릴 때까지 머리를 조아리며, 단 한 번만이라도 진상을 밝혀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끝내 이준은 마음이 약해져 사건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하연은 돌아서자마자 목숨이라도 끊을 듯 소동을 벌였다. 신씨 가문 사람들을 풀어 주면 자신의 체면은 어찌 되느냐며 눈물로 호소했다.

결국 그는 내렸던 명을 거두었다.

그날, 신씨 가문 다섯 식구의 피가 형장을 붉게 물들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라비와 새언니. 그리고 아직 세상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내아이인지 계집아이인지조차 알 수 없었던 새언니 뱃속의 아이까지.

그들의 목숨은 이준의 가벼운 한마디에 그렇게 허망히 끊어졌다.

남은 것은 오문(午門) 밖 바닥을 붉게 물들인 다섯 웅덩이의 피와, 저잣거리에서 잠시 입에 오르내리다 이내 잊힐 이야기뿐이었다.

그날 이후, 신나정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남은 것은 그저 숨만 붙어 있는 빈 껍데기뿐이었다.

월이는 화로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안타까움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마마... 이건... 마마께서 가장 소중히 아끼시던 물건이지 않습니까...”

신나정은 그녀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이불을 덮고 누운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가장 소중한 것?

이제 그녀에게 그런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부귀영화도, 이준도, 심지어 목숨을 걸고 낳은 아이도... 다 버리기로 했다.

이제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나뿐이었다.

이곳을, 영영 떠나는 것.

사람을 집어삼키는 이 궁을 떠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 간 그 사내에게서 멀어지는 것.

한 달 뒤면 그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날을 기념하는 잔치가 열린다.

관례대로라면 그날 궁에서는 대신들을 불러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온 나라가 함께 경사를 축하할 것이다. 그만큼 궁의 경비도 평소보다 느슨해질 터였다.

그때라면 그녀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단 하다, 다시 신나정이 되는 것.

이준을 만나기 전, 평범하더라도 적어도 온전히 제 자신으로 살아가던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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