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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화가 지고 나서야

해당화가 지고 나서야

作家:  소피온完了
言語: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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概要

가슴 아픈 사랑

편애/이기적인

이성적인

강제적인 사랑

후회

첨성대(瞻星臺)에서 칠 일 밤낮을 보냈으나, 한상운은 김소윤을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를 삼 년 동안 가둬 두고, 매달 초사흘과 초이렛날이면 어김없이 그녀의 피를 석 잔씩 받아 갔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아프다 말하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궁으로 들여보내 임나연 대신 죽게 하겠다고 했을 때도, 김소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상운은 그녀가 마침내 마음을 꺾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굴복했고, 끝내 길들여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한상운은 알지 못했다. 김소윤은 그저 더 이상 그 때문에 아프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입궁하던 밤, 김소윤은 한상운이 건네준 죽음을 위장하는 약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임나연은 오래전에 이미 그 약을 진짜 독약으로 바꿔 놓은 뒤였다. 김소윤이 약을 입에 털어 넣으려는 찰나, 어좌에 앉아 있던 이연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붉게 충혈된 눈에는 차마 감추지 못한 아픔이 어려 있었다. 뒤늦게 북쪽 변경에서 승전하고 돌아온 한상운은 미친 듯이 궁궐로 달려와 그녀를 찾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혼인 조서가 내려진 뒤였다. ... 김소윤은 직접 술을 따라 한상운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으나, 끝내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다음 생에는...” 한상운이 말했다. “소신이 반드시 누구보다 먼저 마마를 알아볼 것입니다.” 그 말과 함께 그의 몸이 천천히 기울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잠시 후, 김소윤은 손을 뻗었다. 더는 닿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을 허공에 그리듯, 한 번, 또 한 번 더듬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다음 생에는 부디, 너무 서둘러 오지 마세요, 한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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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話

제1화

혼인한 지 삼 년.

김소윤은 줄곧 알고 있었다. 지아비인 한상운의 마음속에 다른 여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임나연. 그녀는 그의 스승이 남긴 하나뿐인 핏줄이었다.

한상운이 임나연을 위해 정적들의 칼끝과 음모를 대신 막아낼 때도, 김소윤은 참고 넘겼다.

임나연을 위해 천하의 명의를 찾아 헤맬 때도, 그녀는 받아들였다.

심지어 임나연을 위해 매달 초사흘과 초이렛날이면 그녀의 피를 석 잔씩 받아 갈 때조차, 그녀는 묵묵히 견뎌 냈다.

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

김소윤은 언젠가는 한상운이 자신을 한 번쯤 돌아봐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한상운이 그녀를 첨성대에 묶어 두고 칠 일 밤낮 불길 속에 세워, 임나연 대신 흉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액운을 씻게 했을 때.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

김소윤은 청동 기둥에 묶인 채 칠 일을 버텼다. 발밑 제단의 불길은 밤낮없이 타올랐다.

뜨거운 열기가 등을 태웠고, 살갗은 갈라졌다 아물기를 거듭했다. 겨우 딱지가 앉으면 다시 불에 데어 터져 나가기를 반복했다.

칠 일째 되던 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이었다.

한 늙은 어멈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

어멈은 인상을 찌푸리며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됐습니다. 액운은 다 씼겼습니다. 국사 대인께서 특별히 자비를 베푸셨으니, 마님께서는 이제 국사부(國師府)로 돌아가십시오.”

국사부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회랑을 돌아서자, 맞은편에 한상운이 서 있었다.

처마 아래 선 그의 뒤로는 막 꽃망울을 터뜨린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붉은 꽃잎 몇 장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손수 지어 준 짙푸른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소맷부리에 수놓인 구름무늬는 그녀가 꼬박 이레 밤을 새우고, 열 손가락을 수없이 찔려 가며 한 땀 한 땀 완성한 그의 생일 선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임나연이었다.

은빛 여우털 망토를 걸친 임나연은 한층 더 여리고 병약해 보였다.

그녀는 얼굴을 들어 한상운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한상운은 그녀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몸을 살짝 숙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김소윤은 칠 일 밤낮 자신을 태웠던 불길이 다시 가슴속을 집어삼키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때 임나연이 먼저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살며시 한상운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조용히 말했다.

“상운 오라버니, 마님께서 돌아오셨네요.”

이윽고 한상운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이 김소윤의 몸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이내 미간이 아주 희미하게 좁혀졌다.

그는 그녀에게 아프지 않으냐고 묻지 않았다. 그 칠 일을 어찌 견뎌 냈느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걸친 낡은 덧옷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옷이 많이 해졌구나. 볼썽사나우니 갈아입거라.”

김소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상운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소매를 털고 그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

김소윤은 국사부를 나설 채비를 했다.

병환이 깊어진 양어머니를 위해 성 밖 도관에 들러 평안부 하나를 받아 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안채의 중문에 다다랐을 때, 집안일을 관장하는 장 어멈이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마님, 잠시만요.”

장 어멈은 입가에 억지웃음을 걸친 채 몸을 굽혔다.

“국사 대인께서 이르시기를, 마님께서는 며칠간 출입을 삼가시고 소윤원에서 편히 몸을 추스르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김소윤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몸을 추스리라...’

삼 년 동안 피를 내어 주었고, 첨성대 위에서 칠 일 밤낮을 불길에 시달렸다. 살갗이 터지고 짓무른 채 겨우 돌아온 몸이었다.

헌데 그가 말한 몸조리란, 고작 이 손바닥만 한 소윤원에 그녀를 가두는 것이었다.

김소윤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돌아서서, 올 때 밟았던 청석 길을 따라 되돌아갔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하인들이 한곳에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들었어? 어젯 밤 나연 아씨께서 또 가슴이 답답하시다 하셨다던데, 국사 대인께서 밤새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으셨대.”

“쉿, 목소리 낮춰. 마님께서 돌아오셨대...”

“돌아오시면 뭐? 아직도 눈치 못 챘어? 국사 대인께서는 나연 아씨만 아끼셔. 마님은...”

말끝이 흐려지더니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저 나연 아씨 대역일 뿐이야.”

김소윤은 창가에 몸을 기댄 채 마당 한가운데 선 해당화나무를 바라보았다.

그 나무는 삼 년째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채 말라 있었다.

‘그래, 나는 그저 대역일 뿐이지.’

김소윤은 속으로 말했다.

삼 년 전, 흠천감(欽天監)이 임나연의 운수를 점쳤다. 그녀의 팔자에 흉성이 들었으니, 명운이 상극인 사람이 대신 그 재앙을 짊어져야 한다고 했다.

한상운은 경성 곳곳을 뒤지고 뒤져, 마침내 김소윤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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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혼인한 지 삼 년.김소윤은 줄곧 알고 있었다. 지아비인 한상운의 마음속에 다른 여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임나연. 그녀는 그의 스승이 남긴 하나뿐인 핏줄이었다.한상운이 임나연을 위해 정적들의 칼끝과 음모를 대신 막아낼 때도, 김소윤은 참고 넘겼다.임나연을 위해 천하의 명의를 찾아 헤맬 때도, 그녀는 받아들였다.심지어 임나연을 위해 매달 초사흘과 초이렛날이면 그녀의 피를 석 잔씩 받아 갈 때조차, 그녀는 묵묵히 견뎌 냈다.그렇게 삼 년이 흘렀다.김소윤은 언젠가는 한상운이 자신을 한 번쯤 돌아봐 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한상운이 그녀를 첨성대에 묶어 두고 칠 일 밤낮 불길 속에 세워, 임나연 대신 흉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고 액운을 씻게 했을 때.그제야 깨달았다.자신이 처음부터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김소윤은 청동 기둥에 묶인 채 칠 일을 버텼다. 발밑 제단의 불길은 밤낮없이 타올랐다.뜨거운 열기가 등을 태웠고, 살갗은 갈라졌다 아물기를 거듭했다. 겨우 딱지가 앉으면 다시 불에 데어 터져 나가기를 반복했다.칠 일째 되던 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일 무렵이었다.한 늙은 어멈이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묶어 두었던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어멈은 인상을 찌푸리며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됐습니다. 액운은 다 씼겼습니다. 국사 대인께서 특별히 자비를 베푸셨으니, 마님께서는 이제 국사부(國師府)로 돌아가십시오.”국사부로 돌아오던 길이었다.구불구불 이어진 회랑을 돌아서자, 맞은편에 한상운이 서 있었다.처마 아래 선 그의 뒤로는 막 꽃망울을 터뜨린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붉은 꽃잎 몇 장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그는 그녀가 손수 지어 준 짙푸른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소맷부리에 수놓인 구름무늬는 그녀가 꼬박 이레 밤을 새우고, 열 손가락을 수없이 찔려 가며 한 땀 한 땀 완성한 그의 생일 선물이었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임나연이었다.은빛 여우털 망토를 걸친 임나연은 한층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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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한상운이 김소윤과 혼인한 까닭은 오직 하나, 임나연의 액운을 대신 막아 내게 하기 위해서였다.그가 그녀를 흉성이라 점친 것도 임나연에게 쏠린 혐의를 씻어 주기 위해서였다.그가 매달 그녀에게서 피 석 잔을 받아 간 것도 임나연의 심병을 다스릴 약재로 쓰기 위해서였다.그가 그녀를 첨성대에 묶어 칠 일 밤낮 화형을 견디게 한 것 역시 임나연의 액운을 대신 씻어 내게 하기 위해서였다.한상운이 작은 마당에 발을 들였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그는 문턱 안에 멈춰 서서 빛을 등진 채 김소윤을 바라보았다.사흘 동안 그는 흠천감에서 다음 달 제천대전(祭天大典)의 별자리를 살피느라 국사부에 돌아오지 못했다.오늘 밤 역시 관아에서 묵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국사부로 돌아오는 길에 올라 있었다.정작 자신도 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낮에 장 어멈이 와 전한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그녀가 안채로 드는 중문 앞에서 발길을 막히고도 한마디 항변조차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돌아섰다는 말.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째선지 그의 가슴 한구석이 묘하게 저려 왔다.예전의 김소윤은 이러지 않았다.실수로 꽃병을 깨뜨리고도 눈시울을 붉힌 채 그와 맞서곤 했고, 그가 차갑게 등을 돌리면 울음을 삼킨 채 애써 태연한 척했으며, 그가 돌아서 떠나면 서재 앞까지 뒤쫓아가 굳게 닫힌 문 너머로 나직이 물었다.“서방님, 저를 한 번만 돌아봐 주시면 안 됩니까?”한상운이 문득 입을 열었다.“한 달 뒤, 네가 나연이 대신 입궁하거라.”김소윤의 손끝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장을 넘겼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상운의 가슴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일었다.“알겠습니다.”짧은 대답이었다. 너무도 담담해서 오히려 낯설었다.한상운은 그녀가 한마디쯤 따질 줄 알았다.한 번 숨을 고르고, 두 번, 세 번.하지만 그녀는 그저 눈을 내리깔 뿐이었다.순간, 그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다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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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김소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선 채, 닫혀 버린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그녀는 천천히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책을 주워 들었다.그때 뜨거운 무언가가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툭.한 방울의 눈물이 누렇게 바랜 책장 위에 떨어졌다.첨성대에서 보낸 칠 일 밤낮.손톱을 뽑히는 형벌과 불길에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온몸의 뼈마디마다 비명을 지르듯 아파 왔지만 끝내 견뎌 냈다.김소윤은 천천히 침상 곁으로 걸어갔다.희미해지는 의식을 겨우 붙들고 있던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마님, 저희가 목욕을 시중들겠습니다.”“마님, 소인은 삼순이라 합니다. 국사 대인께서 몸을 씻기고 약을 발라 드리라 명하셨습니다. 상처가 깊으니, 부디 흉이 남지 않도록 세심히 살피라 하셨습니다.”김소윤은 욕조 가장자리에 이마를 기댔다.자욱하게 피어오른 수증기가 눈앞을 흐리게 물들였다.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의식도 조금씩 멀어져 갔다.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한때 그녀의 손바닥이 자수 바늘에 찔려 피가 맺혔을 때,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처에 입김을 불어 주던 사람이 있었다.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한상운이었다.혼인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그녀는 몰래 소수(蘇繡)를 배우느라 열 손가락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그날 밤, 그는 늦게 방으로 돌아왔다.등잔 아래 앉아 수틀을 붙들고 얼굴을 찡그리는 그녀를 본 그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그녀는 그가 그대로 지나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피가 맺힌 바늘자국에 입김을 불어 주었다.따뜻하고, 간지러웠다.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가, 마침 아래로 드리운 그의 눈매와 마주쳤다.늘 차갑기만 하던 그 눈동자에도 그 순간만큼은 뜻밖의 온기가 어려 있었다.“이런 것까지 할 필요 없다.”한상운이 말했다.그때의 그녀는 알지 못했다. 그 말을 그저 애틋한 걱정으로만 여겼다.그러나 뒤늦게야 깨달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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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하지만 실은, 어려서부터 이어진 임나연의 심병을 다스리는 약재로 쓰려는 것이었다.한상운은 눈을 내리깔았다.오는 길 내내 몇 번이고 고르고 고른 말이었는데, 막상 입 밖에 내려 하니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그래도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나연이가...”그는 잠시 말을 삼켰다.“오늘 밤 또 몸이 편치 않다. 태의가 말하길, 예전에 쓰던 그 약재가 있어야만 심신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하더구나.”김소윤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들라 하십시오.”이윽고 하인이 침상 곁에 무릎을 꿇었다.독한 술로 씻고 불에 달군 칼날이 그녀의 손목 위로 내려앉았다.칼끝이 살갗을 누르자, 붉은 피가 천천히 맺혔다.한 방울, 두 방울.핏방울은 창백한 손목을 타고 흘러, 하인이 받쳐 든 백자잔(白瓷盏) 안으로 떨어졌다.한상운은 세 걸음 떨어진 곳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문득 마지막으로 그녀가 아프다 말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검은 옻칠 쟁반 위에 놓인 피 한 잔은 유난히도 선명하게 붉었다.그제야 한상운은 생각했다.그녀도 원래는 아픔을 무서워하던 사람이었다.혼인한 첫해, 그가 가벼운 풍한을 앓았을 때였다.태의는 기운을 보하는 탕약을 처방하며 손끝의 피를 약재로 써야 한다고 했다.그녀는 별실에 몰래 들어가 바늘로 손가락을 세 번이나 찔러서야 겨우 피 두 방울을 짜냈다.문을 밀고 나왔을 때는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애써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나연 아씨에게 가져다주어라.”한상운이 하인에게 명했다.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낮게 잠겨 있었다.잠시 뒤, 그가 다시 덧붙였다.“장부에서 은표 삼천 냥을 꺼내 부인 처소로 보내라.”그리고 또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주방에도 일러라. 내일부터는 매일 대추와 오골계를 고아 탕 한 그릇씩 올리게 하고, 인삼도 함께 넣도록 하라.”한상운이 한 걸음 다가섰다.“오늘 밤은 여기 남아 있겠다.”김소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괜찮습니다. 나연 아씨 곁에는 누군가 지켜 줄 사람이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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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태의가 국사부를 드나든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셋째 날, 피를 받는 데 쓰였던 은칼이 임나연의 처소에 있는 약을 달이던 화로 곁에서 발견되었다.칼날에는 서역에서 들어온 기이한 독이 묻어 있었다.무색무취의 맹독으로, 한 번 피에 스며들면 오장육부를 좀먹어 신선이라도 살릴 수 없다고 했다.한상운이 김소윤의 처소에 들어섰을 때, 하인이 무릎을 꿇은 채 수사 결과를 아뢰고 있었다.그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동안 침묵했다.이윽고 몸을 돌려 임나연의 처소로 향했다.반 시진 뒤, 그가 다시 돌아왔다.뒤에는 소박한 차림에 눈가를 붉힌 임나연이 따라오고 있었다.“칼날의 독은 지난달 약을 달이던 중 실수로 묻은 것이네.”한상운이 침상 곁에 서서 담담히 말했다.“나연은 몸이 약해 오래 병을 앓았소. 오래 앓은 탓에 약재에도 제법 밝소. 늘 약 달이는 화로 곁에 한증을 다스릴 독한 약재 몇 가지를 두고 쓰곤 하오. 그 은칼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쩌다 피를 받던 하인의 손에 들어가 부인 처소까지 옮겨진 모양이오. 그저 뜻하지 않은 일이었을 뿐이오.”침상에 누워 있던 김소윤이 천천히 눈을 떴다.그녀는 한상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 선 임나연을 바라보았다.잠시 뒤, 그녀는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다.“뜻하지 않은 일이었군요.”담담한 목소리였다.한상운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 입술이 달싹였지만, 때맞춰 들려온 임나연의 기침 소리에 그는 끝내 입을 다물었다.“푹 쉬거라. 늦게 다시 오마.”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그날 밤.소윤원에서 밤시중을 들던 계집종 하나가 포박되어 끌려갔다.죄명은 주인을 해하려 한 죄, 금지된 독약을 숨긴 죄였다.증거는 계집종의 베개 밑에서 나온 약가루였다. 그리고 그 약가루는 은칼에 묻은 독과 같은 것이었다.그 계집종의 이름은 삼순이었다.두 어멈에게 끌려 나온 삼순이는 머리채가 흐트러져 있었고, 뺨은 이미 몇 차례 얻어맞은 듯 붉게 부어 있었다. 입가에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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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한상운은 황급히 뒤돌아보았다.김소윤은 이미 삼순의 앞으로 몸을 던져, 겁에 질려 떨고 있는 가녀린 몸을 자신의 등으로 감싸고 있었다.형장이 내리칠 때마다 삼순이 대신 그 매를 받아 냈고,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적막한 마당에 처연히 울려 퍼졌다.“그만!”한상운이 다급히 손을 치켜들었다.허공을 가르던 곤장이 멈춰 섰다.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삼순의 몸 위에 엎드린 김소윤을 거칠게 끌어 일으켰다.그녀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식은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뺨에 들러붙어 있었고, 깨문 아랫입술에서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져 옷깃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너....”목구멍에 돌덩이라도 걸린 듯,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김소윤이 천천히 그를 올려다보았다.“그 아이를 보내 주세요.”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잔잔했다.“오늘 밤, 당장 떠나보내 주세요. 그러지 않으시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죽겠습니다. 그리되면... 한 달 뒤 궁에 들어가 죽을 사람은 임나연뿐이겠지요.”한상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손목을 쥔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그는 입술을 달싹였다.그는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그때, 뒤에서 임나연이 가볍게 기침했다.한상운은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부인은 마음이 지나치게 어질구려.”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아득하게 들렸다. “허나 아랫사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것 또한 부인의 허물이니, 법당에 가서 세 시진 동안 꿇어앉아 스스로를 돌아보시오.”말을 마친 한상운은 그녀의 손목을 놓았다.김소윤은 아무 말 없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용히 머리를 조아렸다.“예.”법당은 국사부 가장 서쪽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삼면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좁은 문 하나뿐이었다. 안에는 사시사철 침향이 피어올랐다.관음상은 눈을 살며시 내리뜬 채, 방석 위에 홀로 무릎 꿇고 있는 가녀린 그림자를 자비롭게 굽어보고 있었다.상처가 또다시 터졌다.등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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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상운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임나연은 그의 품 안에서 살짝 몸을 비틀더니 고개를 숙였다. 이내 눈물이 소리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상운 오라버니, 그만하세요...”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괜히 왔나 봅니다. 언니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제 잘못이고, 삼순이의 일 역시 제가 미처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입니다.”“그녀를 감쌀 것 없네.”한상운은 임나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김소윤만 바라보았다.“너를 때린 건 분명 잘못이다.”김소윤은 문득 웃음을 지었다.그러나 그 웃음은 너무도 옅어 입가에만 머물렀을 뿐, 눈빛에는 한 점도 어려 있지 않았다. “예.”그녀가 나직이 말했다.“전부 제 잘못이지요.”김소윤은 고개를 숙여 바닥에 누운 삼순이의 차가운 얼굴을 바라보았다.삼순이는 아직도 눈을 뜬 채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김소윤은 천천히 몸을 굽혔다. 그리고 손을 뻗어 조심스레 삼순이의 눈을 감겨 주었다.“이 아이를 데려가고 싶습니다.”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임나연은 한상운의 곁에 기대선 채, 손수건으로 부어오른 뺨을 누르며 연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께서는 아랫것들에게도 참으로 자애로우십니다. 허나 이 계집은 살아생전 사람을 해치려 한 혐의가 있었으니, 국법에 따르면 시신조차 거둘 수 없지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꼬리를 옅게 휘었다.“물론 언니께서 꼭 데려가고 싶으시다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김소윤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무슨 방법이지요?”임나연은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아흔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세요.”그녀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한 번 절할 때마다 제가 한 걸음씩 양보해 드릴게요. 아흔아홉 번을 모두 채우시면... 이 아이의 시신은 언니 뜻대로 하세요.”아침 바람이 마당 안을 스쳐 지나갔다.회랑 아래 아직 거두지 못한 깃발이 바람에 흔들렸다.한상운의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임나연의 이름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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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김소윤이 눈을 떴을 때였다.반쯤 열린 창틈으로 바람이 스며들었다.바람에 실린 해당화 꽃잎 몇 장이 침상 곁, 비어 있는 약사발 옆에 떨어졌다.끼익—문이 열렸다.한상운이 들어와 침상 곁에 앉았다.며칠 사이 그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고,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기색이었다.그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손끝이 그녀의 손등에 닿으려는 순간, 김소윤이 이불 속으로 손을 거두었다.허공에 멈춘 그의 손이 잠시 머물렀다가, 천천히 내려갔다.“태의 말로는... 몸이 많이 상해, 잘 추스려야 한다고 하더구나.”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일 년... 아니 반년만 잘 추스리면 서서히 회복될 거라고 하네.”김소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한상운은 다시 덧붙였다.“아이는... 나중에 또 가질 수 있을 것이오.”그 말에 김소윤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한상운은 창백한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목울대가 천천히 움직였다.사흘 밤낮 침상 곁을 지키며 준비해 둔 말들이 있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잠시 침묵한 뒤, 그는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나연이와의 인연도 모두 정리된다. 그 뒤로는 그 아이는 그 아이대로, 너는 너대로 살아가게 할 것이다.”한상운은 끝내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김소윤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앞으로... 우리도 다시 잘 살아보자.”김소윤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창살 사이에 걸린 해당화 꽃잎 하나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흔들리고 있었다.‘잘 살아보자.’‘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는 걸까?’‘밤마다 함께 잠들고, 아침저녁으로 서로를 챙기며, 백년해로하며 자식과 손주를 보는 것일까?’‘아니면 예전처럼 그녀는 내원에 갇힌 채 매달 초사흘과 초이렛날이면 피를 내어주고, 그는 조정에서 권모를 펼치며 스승의 딸을 지켜 주는 삶이라는 것일까?’그녀는 알 수 없었다.다만 하나는 분명했다.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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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한상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김소윤 역시 묻지 않았다.그녀는 그저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어머니를 뵈러 가겠습니다.”이때 한상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지금은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았...”“어머니를 뵈러 가겠습니다.”그녀는 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했다. 이번에는 그를 바라보지도 않았다.김소윤이 어떻게 그곳에 닿았는지,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그저 길 위에서 이어지던 마차의 덜컹임만이 기억났다. 곁에서 한상운이 무언가 말을 했지만, 그녀는 한 글자도 듣지 못했다.그녀가 기억하는 것은 오직 문을 밀어 열던 그 순간뿐이었다.문 안에는 엷은 관 한 구가 놓여 있었고, 관 뚜껑은 반쯤 열려 있었다.어머니가 그 안에 누워 있었다.몸은 이미 형체를 잃을 만큼 야위어 있었고, 광대뼈는 솟아 있었으며 턱은 날카롭게 깎여 있었다.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고 옷을 꿰매 주며 이불 끝을 여며 주던 그 손은 가슴 위에 가지런히 포개져 있었지만, 이제는 푸른빛이 도는 얇은 가죽만 남아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김소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관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어머니의 얼굴을 더듬었다.차가웠다.어머니는 늘 추위를 몹시 타던 사람이었다. 겨울이면 반드시 그녀가 이불을 따뜻하게 덥혀 주어야만 누울 수 있었다.“어머니...”결국 김소윤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한상운은 문턱 밖에 선 채, 끝내 한 걸음도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다.“어머니는...”김소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 시녀와 함께 묻어 주십시오.”한상운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하겠네.”김소윤은 관 속 어머니의 수척한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 옆자리에 제 자리도 하나 남겨 두십시오.”한상운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헛소리가 아닙니다.”김소윤이 그를 돌아보았다. “언젠가는 저도 그곳에 갈 겁니다. 일찍 가든 늦게 가든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이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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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입궁하는 날은 맑고 화창했다.대문 앞에는 그녀를 궁으로 데려갈 청색 휘장의 작은 가마가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한상운은 그녀를 직접 배웅하겠다고 약조했었다.그는 담벽 옆에 서 있었고, 그 곁에는 임나연이 함께 있었다.임나연은 오늘 유난히 단정한 차림이었다. 달빛처럼 옅은 색의 저고리에 은비녀로 머리를 곱게 올렸고, 얼굴에는 지나치게도 절제된 근심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한상운의 소맷자락을 가볍게 쥔 채 나직이 말했다.“상운 오라버니, 가슴이 또 아픕니다...”한상운은 고개를 숙여 그녀를 바라보았다.김소윤은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가슴이 아플 줄 알았다.하지만 그녀는 뜻밖에도 담담했다.‘아, 이 장면은 이미 꿈속에서 수도 없이 보아 온 것이로구나.’’김소윤은 속으로 생각했다.이때 한상운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무언가 말하려 입을 열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소윤은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가마에 올라탔다.이윽고 가마가 천천히 들려 올려졌다.가마 안은 어둡고 침침했다. 얇은 청색 휘장 너머로 저택 안에서 임나연의 낮은 흐느낌과 한상운의 위로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들어왔다.그 소리조차 그녀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김소윤은 눈을 감았다.신혼 두 달째 되던 날, 그녀는 몰래 자수를 배우다 열 손가락이 성할 날이 없을 만큼 바늘에 찔렸다. 그날 밤 늦게 돌아온 한상운은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붙잡고, 아직 피가 맺힌 바늘 자국에 입김을 가볍게 불어주었다.그해 생일에는 그가 드물게도 그녀의 처소에 머물러 함께 식사를 했다. 기쁜 마음에 직접 상을 차렸지만 음식 맛은 서툴렀고, 그는 말없이 그 모든 것을 끝까지 다 먹어 주었다.그녀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너무 오래 침묵한 탓에 그녀는 대답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아주 희미하게, “응” 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그날 밤.그는 그녀의 처소에 머문 채 등을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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