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입찰이 끝난 후 이어진 침묵은 방 안의 모든 이를 짓눌러버릴 만큼 무거웠다. 나는 무대 위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눈이 타들어 갈 듯 밝은 조명 속에서도, 이 공간의 공기가 산산조각 나며 뒤바뀌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탐욕과 정욕은 순식간에 숨 막히는 공포로 뒤바뀌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뒷자리를 향해 목을 빼고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나는 눈부신 조명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목숨값으로 그토록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애썼다.
"4, 40억 달러." 경매사가 말을 더듬었다. 아까 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냈다. "40억 달러, 한 번... 40억 달러, 두 번..."
그가 어찌나 세게 망치를 내리쳤는지, 난 단상이 산산조각 나는 줄 알았다. "낙찰되었습니다! 맨 뒷자리, 검은 정장의 신사분께!"
새장에 갇힌 새처럼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때려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쏟아지는 조명 너머를 응시했다. 프라이빗 부스의 짙은 그림자에 가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큰 키의 실루엣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장내의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족히 벽처럼 보이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군림하던 다른 부자 입찰자들조차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슬금슬금 좌석 뒤로 몸을 움츠렸다.
그가 누구든 간에, 엄청난 거물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몹시 위험한 남자라는 것도.
경매사는 거의 뛰다시피 단상을 내려와 무대 진행요원들에게 손짓했다. "당장 저 여자 준비시켜! 당장! 실바노 회장님을 기다리시게 해선 안 돼!"
새로운 경호원 두 명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아까 나를 끌고 왔던 짐승 같은 놈들과는 달랐다. 이 남자들은 몸에 딱 떨어지는 맞춤 정장을 입고 인이어를 낀 채였다. 그들은 나를 거칠게 잡아끌지 않았다. 대신 그중 한 명이 무대 옆을 향해 정중하게 손짓했다.
"이쪽입니다, 로즈 양. 지금 바로 가셔야 합니다." 감정이 쏙 빠진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걸음을 옮겼다. 나무 바닥에 닿는 맨발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무대 뒤편으로 가자마자 어수선한 분위기가 확 피부에 와닿았다. 아까 내게 전기 충격을 가했던 우락부락한 경비병이 내 목줄의 리모컨을 쥔 채 그곳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오만했던 표정은 끔찍한 공포로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당장 풀어." 정장 차림의 경호원이 명령했다.
덩치 큰 경비병은 자그마한 마그네틱 키조차 제대로 쥐지 못할 정도로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가 내게 다가오자, 나는 또다시 고통이 밀려올까 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그러자 그는 마치 내가 방사능 덩어리라도 되는 양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푸... 풀고 있습니다." 그가 더듬거렸다. "실바노 회장님께 너무 오래 걸렸다고 고자질하진 말아 주쇼. 제발."
그가 마침내 내 목에 채워진 무거운 금속 장치에 키를 꽂아 넣었다. 찰칵하는 기계음과 함께 목줄이 탁 풀렸다. 짓누르던 무게는 사라졌지만, 금속이 살을 파고들던 환상통은 여전히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나는 벌겋게 까진 피부를 문지르며, 몇 시간 만에 처음으로 깊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한 여자가 다급하게 다가오더니 내 품에 천 뭉치를 휙 안겨주었다. 길고 두툼한 트렌치코트와 투박한 슬립온 신발이었다.
"빨리 입어." 그녀가 다급하게 속삭였다. "몸부터 가려."
나는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드레스 위로 코트를 꿰어 입고 턱 끝까지 단추를 단단히 채웠다. 그리고 신발에 발을 우겨넣었다. 아주 조금은 사람 형태를 되찾은 기분이었지만, 손목에 찍힌 '22'라는 숫자는 여전히 낙인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이동합니다." 정장 차림의 경호원이 말했다.
그들은 내 양옆에 서서 출구를 향해 걸었다. 다른 여자애들이 승합차로 짐짝처럼 실려 가고 있는 메인 하역장을 지나쳐, 우리는 외진 곳에 있는 프라이빗 전용 문으로 빠져나갔다. 서늘하고 맑은 밤공기가 얼굴에 와닿았다. 퀴퀴한 담배 냄새와 공포의 악취 대신, 비 냄새가 났다.
길가에는 매끈한 검은색 세단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평생 구경조차 못 해볼 최고급 브랜드의 거대한 리무진이었다. 모자를 쓴 운전기사가 뒷문을 열고 각 잡힌 자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타십시오." 경호원이 지시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이제 끝이었다. 하나의 악몽에서 다른 악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었다. 하지만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가죽 시트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타자,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며 나를 차 안에 완벽히 가두었다.
차 안에서는 값비싼 가죽 냄새와 은은한 페퍼민트 향이 났다. 고개를 돌린 순간, 나는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좌석 반대편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산된 움직임으로 무언가를 스크롤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고개를 들지 않았고, 그 덕에 나는 잠시 그를 응시할 수 있었다.
그는 파괴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다가가고 싶어지기보다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게 만드는, 그런 서늘한 아름다움이었다. 날카로운 턱선, 창백한 피부, 완벽하게 세팅된 짙은 머리카락. 그가 입고 있는 검은 정장은 우리 부모님이 평생 번 돈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비싸 보였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두렵게 만든 것은 그를 둘러싼 공기였다. 그는 차가웠다. 그리고, 치명적이었다.
마침내 스크롤을 멈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떤 온기도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할 정도로 짙은 잿빛이었다.
"이름이 뭐지?" 그가 물었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뱃속을 뒤틀리게 만들 만큼 압도적인 위압감을 품고 있었다.
"아멜리아." 내가 대답했다. 비명을 질러댄 탓에 목이 쉬어 있었지만, 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했다. "아멜리아 로즈입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듯 고개를 한 번 까닥였다. "난 케이드 실바노다."
나는 무릎 위에 놓인 코트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유령 괴담처럼 떠도는 이름, 이 도시의 절반을 소유한 남자. 나는 알아야만 했다. 그저 이대로 앉아 노리개가 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어째서..." 내가 입을 뗐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어째서 저를 사신 거죠?"
케이드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직원이 하나 필요해서."
나는 눈을 깜빡였다. 공포와 혼란이 뒤엉켰다. "직원이요? 겨우 직원 한 명을 고용하려고 40억 달러를 쓰셨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보모지." 고속도로를 매끄럽게 달리기 시작하는 차 안에서 그가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리며 덧붙였다.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거칠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참을 수가 없었다. 억눌러왔던 히스테리가 다시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보모요?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고요? 고작 애 보는 사람 구하는 데 그런 거액을 쏟아붓는 미친 사람은 없어요. 그 돈의 아주 일부만 줘도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할 수 있었을 텐데요.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케이드는 하던 일을 멈추더니 태블릿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몸을 완전히 돌려 나를 마주 보았다. 느릿하고도 의도적인 움직임이었다."네가 뭘 믿는지는 내 알 바 아니야, 아멜리아. 내 관심사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느냐지."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딸에겐 보모가 필요해. 전에 있던 자들은 하나같이... 부적격이었거든. 그래서 도망칠 선택지도 없고, 돌아갈 가족도 없고, 다른 어떤 것보다 이 일을 최우선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구입'하기로 결정한 거다. 네가 그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했고."나는 어안이 벙벙해져 입을 살짝 벌렸다. "그러니까... 애를 보게 하려고 노예를 샀다는 건가요?""나는 네게서 '충성심'을 산 거다." 그가 내 말을 정정했다. "넌 내 집에서 지내게 될 거다. 내 딸을 돌보고, 아이가 안전하게 먹고 배우며 지낼 수 있도록 책임져야 해. 그 대가로 네게 머물 곳과 음식, 그리고 옷을 제공하지. 내 허락 없이는 절대 이 저택을 벗어날 수 없다. 외부인과 말을 섞어서도 안 되고. 네가 맡은 바를 다한다면 합당한 대우를 받을 거다. 하지만 도망치려 하거나 내 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끔찍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알고 싶진 않을 텐데."나는 그의 눈에서 거짓말의 흔적을 찾아내려 빤히 쳐다보았지만, 그곳엔 차갑고 견고한 진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성욕을 채우려고 나를 산 게 아니었다. 고문하기 위해 산 것도 아니
입찰이 끝난 후 이어진 침묵은 방 안의 모든 이를 짓눌러버릴 만큼 무거웠다. 나는 무대 위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눈이 타들어 갈 듯 밝은 조명 속에서도, 이 공간의 공기가 산산조각 나며 뒤바뀌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탐욕과 정욕은 순식간에 숨 막히는 공포로 뒤바뀌었다.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뒷자리를 향해 목을 빼고 낮고 다급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나는 눈부신 조명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내 목숨값으로 그토록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른 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려 애썼다."4, 40억 달러." 경매사가 말을 더듬었다. 아까 전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였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쳐냈다. "40억 달러, 한 번... 40억 달러, 두 번..."그가 어찌나 세게 망치를 내리쳤는지, 난 단상이 산산조각 나는 줄 알았다. "낙찰되었습니다! 맨 뒷자리, 검은 정장의 신사분께!"새장에 갇힌 새처럼 심장이 갈비뼈를 미친 듯이 때려댔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쏟아지는 조명 너머를 응시했다. 프라이빗 부스의 짙은 그림자에 가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서는 큰 키의 실루엣만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장내의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족히 벽처럼 보이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평소 세상 무서울 것 없이 군림하던 다른 부자 입찰자들조차 그가 몸을 돌려 나가려 하자 슬금슬금 좌석 뒤로 몸을 움츠렸다.그가 누구든 간에, 엄청난 거물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몹시 위험한 남자라는 것도.경매사는 거의 뛰다시피 단상을 내려와 무대 진행요원들에게 손짓했다. "당장 저 여자 준비시켜! 당장! 실바노 회장님을 기다리시게 해선 안 돼!"새로운 경호원 두 명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아까 나를 끌고 왔던 짐승 같은 놈들과는 달랐다. 이 남자들은 몸에 딱 떨어지는 맞춤 정장을 입고 인이어를 낀 채였다. 그들은 나를 거칠게 잡아끌지 않았다. 대신
나는 분노에 차 고함을 질렀다. 당연히 내 말은 놈의 정곡을 찔렀을 것이다. 내가 심리학을 괜히 공부한 게 아니니까. 놈의 손가락에 남은 반지 자국과 여자가 남긴 듯한 할퀸 상처들을 보며, 나는 대략적인 상황을 짜맞췄다.우락부락한 경비병은 내 말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가, 이내 분노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가 손등으로 내 뺨을 후려쳤고, 그 충격에 내 고개가 옆으로 홱 꺾였다."그 주둥이 닥쳐라. 안 그러면 전기 충격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비명을 지르게 해줄 테니까."두 남자가 시선을 교환하더니, 이내 음흉한 눈빛으로 내 몸을 느릿느릿 훑어 내렸다. 발버둥 치다 찢어진 셔츠 틈새로 그들의 시선이 끈적하게 머물렀다."처녀 하나에 수백만 달러라고?" 덩치 큰 놈이 입술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침을 뱉듯 말했다. "존나 아깝네. 우리가 먼저 한 번씩 맛보고 진짜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건 어때? 포장지를 좀 일찍 뜯는다고 누가 알겠어?"그가 굳은살 박인 손을 내 쇄골 쪽으로 뻗었을 때,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그 여자에게 한 번만 더 손댔다간, 네놈들 손목을 내 방 벽에 박제해 버릴 테다."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불빛 아래로 걸어 나오며 경고했다. "보스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을 텐데. 상품에 흠집 내지 말라고. 당장 욕실로 끌고 가."놈들은 나를 살풍경하고 차가운 욕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씻어." 경비병이 명령했다.나는 팔을 짱짱하게 낀 채, 그들을 돌로 만들어버릴 듯한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반항했다. 경비병은 입씨름을 하는 대신, 그저 리모컨 버튼을 꾹 눌렀다.전류의 충격이 뼛속 깊은 곳까지 뒤흔들었다. 신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 같았다.다리에 힘이 풀리며 무릎이 타일 바닥에 쿵 부딪혔다. 알량한 반항심은 산산조각 났고, 그 자리에 공허하고도 처참한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나는 물줄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 위로 짭짤한 눈물이 뒤섞여 흘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두 번째 주먹이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꽂혔다. 방이 훅 기울더니 지저분한 천장이 빙글빙글 돌며 잿빛 안개 속으로 흐릿하게 번졌다. 시야가 서서히 어두워지는 와중에도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돈을 받으면 다음엔 어떤 약을 살지 신나게 떠들어대는 내 부모의 모습이.그들은 이미 내 축 늘어진 몸뚱이를 타넘고 마약상에게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마침내 길가에 내다 버리는 데 성공한 쓰레기봉투라도 되는 것처럼.내 인생이 이렇게 끝날 줄 알았더라면, 투잡까지 뛰며 아등바등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내 청춘을 희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차라리 내 삶을 온전히 즐기며 살았을 것이다. 한때는 학위를 따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두 사람을 재활원에 보내겠다는 꿈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그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헛된 희망일 뿐이라는 걸.어둠은 무거웠다.피로에 지쳐 빠져드는 포근한 잠이 아니었다. 숨이 턱턱 막히고 짙게 가라앉는, 끔찍한 외상으로 인한 강제적인 무의식이었다. 간신히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고통이 아니었다. 팔을 에는 듯한 지독한 한기였다.등 밑에 깔린 돌바닥에서부터 뼛속까지 진동하며 스며드는, 지독하게 오래된 냉기. 지끈거리는 머리의 상처를 확인하려 손을 들어 올리려 했지만, 날카로운 금속 소리가 내 움직임을 막아섰다. 고개를 돌려 다른 쪽 손을 확인한 순간 나는 헉하고 숨을 삼켰다.두 손 모두 묵직한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내 방이 아니었다. 우리 집 아파트도 아니었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기억들이 결코 악몽이 아니라, 내가 정말로 팔려 왔다는 끔찍한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공기에서는 짠내와 축축한 흙냄새, 그리고 오래된 핏자국에서 나는 비릿한 쇳내가 났다.눈을 깜빡이자 복도 저편 어딘가에서 일렁이는 희미한 횃불 빛에 시야가 서서히 적응해 갔다. 나는 철창에 갇혀 있었다.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뾰족한 돌을 집어 들어 육중한 자물쇠
"늦었구나." 아버지가 거칠게 말했다. 한때 내게 머리맡에서 동화를 읽어주던 다정한 남자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 지금 그의 목소리는 그저 날카롭게 깨진 유리 조각 같았다."일하고 왔어요." 후들거리는 다리와 달리 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밥 차려 놨어요. 드세요, 아빠. 제발요."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어머니가 날카롭고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밥? 당장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데 빵 쪼가리나 들고 왔다고? 돈은 어쩌고, 아멜리아? 월세는? 그리고... 다른 건? 약 살 돈은 어떻게 할 건데!"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가게에서 쫓겨났다는 비밀이 식도를 태우는 위산처럼 목구멍을 옥죄었다. "가게에서... 잘렸어요. 로이드 점장이... 저를 만지려고 했어요. 거부했더니 절 해고했어요."이어지는 침묵에는 일말의 동정심도 없었다. 오히려 굶주린 짐승의 것에 가까웠다."그래서 그냥 나왔다고?" 아버지가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며 내 쪽으로 비틀비틀 다가왔다."그 황금 같은 기회를 고작 손버릇 좀 나쁜 것 때문에 내다 버려? 우리가 빚을 얼마나 졌는지 알기나 해? 돈을 안 갚으면 그놈들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할지 아냐고!""저한텐 알바가 두 개나 더 남았다고요!" 마침내 억눌러왔던 원망이 터져 나왔다. "전 이제 고작 스물두 살이에요! 저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요! 제 꼴을 좀 보세요! 이 집구석이 길바닥에 나앉지 않게 버티는 사람은 저 하나뿐인데, 짐승 같은 놈한테 당하지 않았다고 지금 저한테 화를 내시는 거예요?""우린 이미 시궁창에 처박혔어!" 어머니가 소파에서 튀어 오르며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내 팔을 움켜쥐었다. 한때 정성스레 관리받았던, 하지만 지금은 누렇게 변색되고 날카로워진 손톱이 호랑이 발톱처럼 내 피부를 파고들었다. "네가 우리보다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그깟 책 쪼가리랑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 자존심이 이자를 내주진 않아, 아멜리아! 그냥 그놈한테 몸뚱이 좀 내줬으면 지금 당장 돈을 쥐고 있었을 거 아
"죄송해요, 고의가 아니었어요!" 나는 잠기운과 두려움이 뒤섞인 가늘고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내 뺨을 쳐놓고 고의가 아니었다고?" 그가 내 쪽으로 바짝 다가서며 비웃었다."자다가 누가 만지는 느낌에 놀라서 깬 바람에..." 나는 독안에 든 쥐가 된 기분으로 문 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변명했다."안타깝게도... 이 일로 넌 잘리게 될 거야." 그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그건...""죄송합니다, 점장님...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나는 다급하게 그의 말을 끊고 애원했다. 밀린 월세와 부모님의 마약 중독이라는 끔찍한 무게가 짓눌러왔다."맹세코... 뭐든 다 할게요. 매일 청소도 도맡아 하겠습니다, 제발요!""네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군." 그가 무너져 내리는 내 모습을 즐기며 차갑게 대꾸했다."점장님... 제발 부탁드려요." 나는 가슴 앞으로 두 손을 꽉 모아 쥐고 울먹였다."글쎄, 내가 원하는 게 딱 하나 있긴 한데." 그가 음흉한 시선으로 내 몸을 훑어 내리며 중얼거렸다."네... 넵." 뼛속까지 스며드는 공포에 질려 내가 속삭였다."난 그저 널 한 번 맛보고 싶을 뿐이야." 그의 목소리가 역겨울 정도로 낮게 긁히듯 울렸다."제발요... 그것만은 안 돼요." 위액이 역류하는 듯한 구역질을 느끼며 나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지금 네게 남은 선택지는 그것뿐이야." 그의 말투가 딱딱하게 굳었다. "네 몸이냐, 아니면 네 직장이냐. 너와 네 마약 중독자 부모를 먹여 살리는 그 직장 말이야.""죄송하지만, 그럴 순 없습니다." 내 눈동자에 마지막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 불꽃처럼 일었다.순식간에 인내심이 바닥난 로이드 점장이 내게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는 나를 사물함에 짓누르고는 연약한 목덜미를 물어뜯으며 구역질 나는 정욕에 찬 신음을 흘렸다."제발... 이거 놔요!" 등 뒤에서 덜그럭거리는 철제 사물함 소리 너머로, 누군가 들어주길 바라며 나는 비명을 질렀다."아... 냄새 한번 쥑이네. 진작에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