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회사의 업무 시간 내내 유진의 시계 바늘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직 퇴근 시간, 그리고 서연을 다시 만날 그 버스 정류장만이 유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침내 퇴근을 알리는 시계가 울렸고, 유진은 망설임 없이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멀리서 익숙한 번호의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정류장 가로등 아래, 어제와 같은 네이비색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서연의 모습이 유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서연 역시 다가오는 유진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썸의 온도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서연이 흔드는 작은 손짓 하나에 하루 종일 쌓였던 직장에서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유진은 다리가 제멋대로 풀릴 것만 같은 긴장감을 억누르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지만, 유진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기분 좋은 열기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연 씨, 많이 기다렸어요?"
유진이 서연의 앞에 멈춰 서며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연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미소는 어제보다 훨씬 더 눈이 부셨다.
"아니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유진 씨가 안 오면 어쩌나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요."
"제가 서연 씨를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약속 지키려고 퇴근 시계만 보고 있었습니다."
유진의 솔직한 대답에 서연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코트 깃을 만지작거리며 유진의 눈을 슬쩍 피했다. 그 모습마저도 유진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마침 두 사람이 타야 할 버스가 전조등을 밝히며 정류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어제와 다름없이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버스 왔네요. 탈까요?"
서연이 먼저 앞장서며 버스 계단을 올랐다. 유진은 그녀의 뒤를 바짝 따랐다. 서연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대며 버스 기사에게 당차게 말했다.
"두 명 이요."
삐익,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서연이 고개를 돌려 유진을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약속 지켰죠? 오늘은 제가 사는 거예요."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겨우 버스 요금일 뿐인데도, 그녀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지불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한 유대감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유진은 서연이 인파에 밀리지 않도록 그녀의 등 뒤를 자연스럽게 감싸 안듯 서서 버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도 버스는 지독하게 붐볐다. 사람들이 밀려들 때마다 서연의 가냘픈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유진은 어제처럼 팔을 뻗어 서연의 머리 위쪽 손잡이 기둥과 벽면을 단단히 붙잡았다. 서연을 자신의 품 안에 가두는 형국이 되었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의 압박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고마워요, 유진 씨. 매번 이렇게 신세를 지네요."
서연이 고개를 올려 유진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좁은 공간 탓에 서연의 숨결이 유진의 턱 끝에 닿을 듯 가까웠다. 유진은 심장이 또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서연에게 들릴까 봐 온몸에 힘을 주어 진정시키려 애썼다.
"신세라뇨. 서연 씨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인데요? 그나저나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힘들진 않았나요?"
유진이 다정한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서연은 잠시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더니, 이내 작은 한숨을 쉬며 가볍게 투정을 부렸다.
"휴, 말도 마세요. 오늘 부장님이 갑자기 기획안을 전면 수정하라고 하셔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일만 했어요. 진짜 도망치고 싶었다니까요?"
평소라면 남의 회사 이야기에 크게 공감하지 못했을 유진이었지만, 서연의 입에서 나오는 조잘거리는 말투와 억울한 듯 시무룩해진 표정이 마냥 사랑스럽게만 보였다.
'이렇게 귀여운 사람을 고생시키다니, 그 부장이라는 사람 정말 너무하네.'
유진은 속으로 서연의 부장을 원망하며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부드럽게 대꾸했다.
"정말 고생 많았겠네요. 점심도 못 먹고 일하면 어떡합니까? 속 다 상하게. 내일은 제가 맛있는 점심이라도 사드려야겠어요."
유진의 은근한 제안에 서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정말요? 유진 씨 회사랑 우리 회사랑 가까운가 봐요?"
"버스 타는 정류장이 같으니까, 아마 한두 정거장 차이일 겁니다. 서연 씨만 괜찮다면 내일 점심 같이 먹고 싶은데, 시간 어때요?"
유진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직진했다. 다정하면서도 은근히 리드할 줄 아는 남자의 정석을 보여주듯 유진의 태도는 거침이 없었다. 서연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이내 생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내일은 유진 씨가 맛있는 거 사주는 거예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두 사람 사이에 약속이 하나 더 늘어났다. 오늘 헤어져도 내일 다시 만날 구실이 생겼다는 사실에 유진의 마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 버스가 커브 길을 돌며 크게 휘청였다. 사람들의 몸이 도미노처럼 한쪽으로 쏠렸고, 유진이 붙잡고 있던 기둥 쪽으로도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유진은 서연이 다치지 않게 하려고 버티었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서연의 방향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의 단단한 가슴과 서연의 부드러운 몸이 완벽하게 밀착되었다. 서연의 두 손이 중심을 잡기 위해 유진의 가슴팍을 짚었다. 손바닥을 통해 서로의 체온과 거친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교환되었다.
"앗..."
서연이 작은 신음을 흘리며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입술과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서연의 맑은 눈동자가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의 하얀 뺨은 이미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유진 역시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서연의 은은한 향기가 온 신경을 자극했고, 손바닥에 닿는 그녀의 가녀린 허리 감각이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렸다.
'안 돼, 너무 서두르면 서연 씨가 부담스러워할지도 몰라.'
버스가 출발하며 거칠게 덜컹거렸다. 뒤쪽에서 승객들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유진의 등으로 강한 압박이 가해졌다. 유진은 온몸에 힘을 주어 흔들림 없이 버티었지만, 밀려오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상체가 서연의 방향으로 깊숙이 기울어졌다.툭, 하는 소리와 함께 유진의 단단한 가슴과 서연의 부드러운 몸이 빈틈없이 밀착되었다. 서연의 두 손이 중심을 잡기 위해 유진의 가슴팍을 꼭 짚었다. 손바닥을 통해 서로의 체온과 거친 심장 박동이 고스란히 교환되며, 만원 버스 안의 소음은 어느새 안개처럼 사라져 버렸다."읏..."서연이 작은 신음을 흘리며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입술과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완벽하게 얽혔다. 서연의 맑은 눈동자가 춤추듯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의 하얀 뺨은 이미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유진 역시 이성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주말의 첫 키스, 어제 버스 안과 가로등 아래서 나누었던 뜨거웠던 숨결이 뇌리를 스치며 서연에 대한 통제 불능의 갈증이 일었다.유진은 짚고 있던 팔을 내려 서연의 가녀린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더 깊숙이 끌어당겼다."서연 씨."유진이 낮게 가라앉은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네, 유진 씨.""처음 이 버스에서 서연 씨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매일 끔찍했던 이 퇴근길 버스가 서연 씨 덕분에 내 인생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공간이 되었어요."
유진은 걸음을 멈추고 서연을 품에 꽉 안아주었다.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체온은 그 무엇보다 포근하고 뜨거웠다."내일은 벌써 목요일이네요. 이번 주가 지나가는 게 이렇게 아쉬운 적은 내 평생 처음입니다."유진이 서연의 귀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서연은 유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저도요, 유진 씨.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일 퇴근길 버스가 또 있잖아요. 그리고 다가올 주말도 있고요. 그러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아요."서연은 유진의 품에서 천천히 물러나 그의 입술에 아주 가볍고 달콤하게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었다. 예고 없는 그녀의 귀여운 기습에 이번에는 유진이 단단히 얼어붙었다. 서연은 부끄러운 듯 환하게 웃으며 아파트 로비 안으로 도망치듯 걸어 들어갔다.유진은 입술에 남은 그녀의 촉촉한 온기를 음미하며, 멀어지는 서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속이 온통 윤서연이라는 존재로 가득 차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유진은 스마트폰을 켰다. 서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유진 씨, 오늘 맥주도 너무 맛있었고, 버스에서의 입맞춤은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내일 저녁 퇴근 버스에서는 내가 먼저 유진 씨 꽉 안아줄 테니까 기다려요! 조심히 들어가고 내 꿈 꿔요, 내 사랑. ❤”목요일 저녁의 도시는 주말을 하루 앞둔 사람들의 들뜬 온기와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가 묘하게 뒤섞여 교차하고 있었다.유진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서류 정리를 마치고 코트를
유진은 서연의 뺨을 감싸 쥔 손가락에 아주 미세하게 힘을 주며, 그대로 그녀의 입술을 깊숙이 머금었다.어제 가로등 아래에서 나누었던 입맞춤이 애틋한 구원의 확인이었다면, 지금 이 빽빽한 만원 버스 한구석에서 나누는 입맞춤은 서로를 향한 거침없는 중독의 선언이었다.유진은 뒤에서 밀려드는 사람들의 압박을 굳건한 등으로 전부 받아내며, 오직 서연만을 위한 완벽하게 차단된 은밀한 영토를 유지했다. 그의 넓은 가슴팍 안에서 서연은 유진이 전해오는 뜨거운 열기에 온몸의 힘이 풀려나가는 것을 느꼈다.서연은 유진의 목덜미를 두 팔로 감싸 안으며 그에게 더욱 깊이 매달렸다. 단단하고 억센 그의 어깨가 손끝에 닿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벅찬 독점욕이 차올랐다.이 삭막하고 지루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토록 완벽하고 다정한 남자가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고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두 사람의 혀끝이 부드럽게 얽히고설키며 타액이 달콤하게 섞여 들었다.만원 버스라는 일상적인 공간이 주는 아찔한 스릴과, 서로를 향한 거침없는 직진이 더해져 로맨틱한 텐션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얼마나 깊게 서로를 탐닉했을까. 버스가 다음 정류장에 멈춰 서며 크게 덜컹거리는 바람에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서연은 숨이 가쁜지 유진의 가슴에 이마를 댄 채 잔뜩 흐트러진 숨을 몰아쉬었다. 유진 역시 목줄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붉게 달아오른 서연의 뺨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서연 씨, 내 마음이 멈추질 않아서 큰일이네요. 버스 안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만큼 서연 씨한테 미쳐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 6시 45분. 예의 그 주황빛 가로등이 밤의 도시를 은은하게 비추는 정류장에 유진이 도착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게 옷깃을 파고들었다. 유진은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인파 속에서 걸어올 서연의 실루엣을 찾기 위해 시선을 고정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단정한 하프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종종걸음으로 걸어오는 서연이 보였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과 뺨이 살짝 붉어져 있었지만, 유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 그 어떤 조명보다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유진 씨!"서연이 다가와 유진의 앞에 멈춰 섰다. 유진은 아무런 말도 없이 주머니에서 따뜻한 손을 꺼내 서연의 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있던 그녀의 얼굴에 유진의 큼직하고 뜨거운 손바닥이 닿자, 서연은 기분 좋은 온기에 눈을 살짝 감으며 그의 손길에 얼굴을 기대었다."많이 추웠죠? 오늘 바람이 제법 차네요."유진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서연의 귓가에 부드럽게 감겨들었다. 서연은 눈을 뜨고 유진의 깊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유진 씨 손이 이렇게 바로 녹여주는데 추울 리가 없잖아요. 오늘 하루 종일 유진 씨 보고 싶어서 혼났어요.""내가 더 그랬습니다. 1분이 한 시간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매일 서연 씨를 통해 배우고 있어요."유진은 서연의 손을 찾아 제 코트 주머니 속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비좁은 주머니 안에서 두 사람의 손가락이 단단하게 얽히며 깍지가 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이 중독되어 가고 있는지, 맞잡은 손끝의 미
유진이 서연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살짝 튕기며 미소 지었다.서연은 아쉬운 마음에 유진의 품에서 천천히 물러나 아파트 자동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유리문이 닫히고 로비 불빛 아래 서서 서연이 뒤를 돌아보자, 유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서연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유진 역시 다정한 미소와 함께 화답했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에 도착해 도어락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까지도 서연의 심장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가방을 거실 소파에 던져두고 침대에 대자로 엎어진 서연은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유진 씨, 지금 집으로 가고 있겠지? 날씨가 많이 추울 텐데 걱정되네.'그때 스마트폰이 기분 좋게 진동했다. 유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서연 씨, 나 지금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중입니다. 오늘 서연 씨 없는 만원 버스를 혼자 타려니 벌써부터 버스가 너무 넓고 춥게 느껴지네요. 오늘 밤은 서연 씨 꿈을 꿀 것 같습니다. 잘 자요, 내 수호천사."유진의 다정하고도 애틋한 멘트를 읽는 순간, 서연은 베개에 얼굴을 묻고 발을 동동 굴렀다. 가슴속에서 차오르는 이 폭발적인 설렘과 행복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퇴근길의 끔찍했던 만원 버스가 이어준 이 특별한 인연은, 이제 서연의 온 삶을 지탱하는 가장 거대하고 찬란한 사랑의 기적으로 완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연은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 끝에 자신의 온 진심을 가득 담아 답장을 보냈다."유진 씨, 조심히 들어가요. 오늘 밤에는
번화가의 소란스러운 소음이 완전히 소거된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는 오직 두 사람의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만이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서연은 유진의 커다란 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그의 보폭에 맞춰 천천히 걸었다. 유진의 체취가 듬뿍 배어 있는 코트는 서연에게 단순한 방한용 의류가 아니었다.조금 전까지 그녀를 가로막고 있던 거칠고 불쾌한 상황으로부터 완벽하게 격리해 주는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방벽이었다.술기운 탓인지, 아니면 안도감에서 오는 긴장 풀림 때문인지 서연의 걸음걸이가 연신 조금씩 휘청였다. 그때마다 유진은 맞잡은 손에 묵직하게 힘을 주며 그녀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었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온기가 서연의 손끝을 타고 심장 깊은 곳까지 빠르게 스며들었다."유진 씨, 옷 안 추워요? 날씨가 많이 쌀쌀한데."서연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유진은 얇은 셔츠와 슬랙스 차림이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가로등 조명을 받아 그의 단단한 턱선과 넓은 어깨가 밤공기 속에서 한층 더 다부지게 도드라져 보였다."서연 씨가 내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더워져서 하나도 안 춥습니다. 오히려 아까는 너무 화가 나서 온몸에 열이 날 지경이었어요."유진의 솔직한 고백에 서연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아까 고깃집 앞에서 한 대리의 손목을 부수어 버릴 듯 꽉 움켜쥐던 유진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다.평소 버스 안에서 보여주던 다정하고 매너 있는 강 대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야수처럼 사나운 독점욕을 뿜어내던 그 순간의 아우라가 가슴을 사정
월요일 아침의 눈을 뜨는 기분은 평소와 완전히 달랐다. 원래대로라면 지독한 피로감과 함께 일주일의 시작이라는 중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유진은 대리석처럼 무겁던 몸이 거짓말처럼 가볍게 느껴졌다.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유진의 입가에는 이미 깊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화면에는 밤사이 서연이 남겨둔 다정한 인사말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유진은 욕실로 향하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유진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몸을 조금 뒤로 물리려 했다. 하지만 뒤에 선 승객들이 꽉 막고 있어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결국 유진은 서연을 품에 안은 듯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녀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미안해요. 뒤에서 너무 밀어서...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요. 불편해도 참아줄 수 있어요?"유진의 낮고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가 서연의 귀가에 닿자, 서연은 어깨를 가볍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유진의 가슴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괜찮아요. 유진 씨 품이 넓어서..
그녀는 버스 정류장 근처의 가로등 아래에 멈춰 서서 가방을 뒤적였다. 유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주먹을 꽉 쥔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구두 굽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그녀의 귀에 닿았을 때, 그녀가 고개를 돌려 유진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스쳤다.유진은 그녀의 앞에 서서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겠다는 듯이 단호하고 진중한 눈빛이었다."저기, 잠시만요."유진의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는 가방을 쥐고 있던 손을 멈추고 유진
퇴근길의 만원 버스는 언제나 불쾌한 소음과 눅눅한 공기로 가득했다.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좁은 공간 속에서, 유진은 그저 창밖으로 흘러가는 회색빛 도시의 풍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었고,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마무리가 될 터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고, 앞문이 열리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축 처진 어깨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유진의 시선이 한순간에 멎었다. 버스 계단을 밟고 올라온 그녀를 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의 모든 소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