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유진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몸을 조금 뒤로 물리려 했다. 하지만 뒤에 선 승객들이 꽉 막고 있어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결국 유진은 서연을 품에 안은 듯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녀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미안해요. 뒤에서 너무 밀어서...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요. 불편해도 참아줄 수 있어요?"
유진의 낮고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가 서연의 귀가에 닿자, 서연은 어깨를 가볍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유진의 가슴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유진 씨 품이 넓어서... 하나도 안 불편해요."
서연의 고백 같은 말에 유진의 심장은 그야말로 폭발할 것 같았다. 품에 안긴 서연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이대로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평생 달렸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두 사람은 만원 버스라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그들만의 달콤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내 방송에서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제 두 사람이 함께 내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서고 문이 열리자, 유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서연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서연 역시 아쉬운 듯 유진의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
"내릴까요, 서연 씨?"
"네, 벌써 도착했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
서연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유진과 함께 버스 계단을 내려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어제와 같은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손이 걸을 때마다 스칠 듯 말 듯 아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진은 용기를 내어 서연의 손을 향해 슬쩍 손가락을 뻗었다. 서연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커다란 손안으로 자신의 작은 손을 쏙 집어넣었다. 살며시 맞잡은 두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손이 많이 차네요, 서연 씨."
유진이 서연의 손을 조금 더 꽉 쥐며 말했다.
"유진 씨 손이 따뜻해서 금방 녹을 것 같아요."
서연이 유진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정류장 근처의 한적한 길을 걸었다. 굳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감정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새 갈림길이 나타났다. 각자의 집으로 향해야 하는 아쉬운 이별의 순간이었다. 유진은 걸음을 멈추고 서연을 마주 보았다. 맞잡은 손을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가야겠네요. 너무 늦으면 위험하니까요."
유진이 다정하게 말하며 서연의 손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서연은 손끝에 남은 유진의 온기를 아쉬워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유진 씨. 버스비 낸 보람이 있네요."
"저도 정말 행복했습니다. 참, 내일 점심 약속 잊지 않았죠? 서연 씨 회사 근처로 제가 갈 테니까, 점심시간 맞춰서 연락해요."
"당연히 안 잊었죠! 내일 점심 메뉴는 제가 좋아하는 걸로 고를 거니까 각오하세요?"
서연이 장난스레 으름장을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귀여운 협박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얼마든지요. 서연 씨가 먹고 싶은 거라면 뭐든지 사드릴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요."
"네, 유진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일 봐요!"
서연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골목길로 걸어갔다. 유진은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사라진 골목길을 바라보며 유진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이 온통 윤서연이라는 존재로 가득 차올라 터질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유진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켜자 서연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유진 씨, 저 집에 잘 도착했어요! 오늘 손 잡아줘서 고마워요. 내일 점심 너무 기대돼요. 얼른 자고 내일 만나요! 🌙]
문장 끝에 붙은 달 모양 이모티콘과 손을 잡아줘서 고맙다는 고백에 유진은 길 한복판에서 바보처럼 크게 웃어버렸다. 어제는 버스에서의 우연이었지만, 오늘은 확실한 시작이었다.
서연과 맞잡았던 손바닥의 감촉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유진은 서연의 메시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답장을 보냈다.
[서연 씨가 잘 도착했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저도 지금 막 집에 들어왔습니다. 내일 점심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 좋은 꿈 꾸고 내일 봐요, 서연 씨.]
전송을 누른 유진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천장을 바라보는 그의 눈앞에 서연의 미소가 아른거렸다. 우연히 만난 이상형과의 만남, 그리고 숨 막히는 만원 버스 속에서의 밀착.
모든 것이 꿈만 같았지만 손끝에 남은 온기는 이것이 엄연한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썸의 온도는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고, 유진은 이 달콤한 열기 속에서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내일은 또 그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유진은 다가올 내일을 기대하며 행복한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유진은 가만히 하얀 냅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상체를 서연 쪽으로 조금 숙여, 그녀의 얼굴 앞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앗..."서연이 놀란 듯 하던 포크질을 멈추었다.유진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서연의 숨결이 다시금 멎는 듯했다. 유진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로 그녀의 부드러운 입가에 묻은 소스를 조심스레 닦아내 주었다.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지자, 어제 버스에서 느꼈던 그 아찔하고 묘한 기류가 다시 한번 식당 안을 가득 채웠다. 유진의 깊은 눈동자가 서연의 붉은 입술과 떨리는 눈동자를 차례로 눈에 담았다."입가에 소스가 조금 묻었습니다. 칠칠치 못하게 먹는 모습도 귀엽네요."유진의 낮게 가라앉은 매력적인 목소리가 서연의 귓가를 간지럽혔다.서연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고개를 푹 숙였다. 냅킨을 거둔 유진은 자리로 돌아와 앉았지만, 그의 심장 역시 서연 못지않게 터질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토록 누군가에게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이 유진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점심 식사가 이어지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연은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3년 차 디자이너였고, 유진은 근처 IT 기업의 기획팀에서 근무하는 대리였다.직종은 서로 달랐지만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고충과 소소한 취미 생활, 심지어 좋아하는 음악 취향까지 비슷해 대화는 끊이지 않고 물 흐르듯 이어졌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두 사람은 서로가 단순한 외모적 호감을 넘어, 내면과 가치관까지
오전 내내 업무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컴퓨터 모니터 위에 띄워진 수많은 숫자와 도표들은 그저 하얀 배경 위의 의미 없는 얼룩처럼 보일 뿐이었다.유진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정도로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하며 벽에 걸린 시계를 살폈다. 시침과 분침이 이토록 느리게 움직이는 기계였던가?평소라면 산더미처럼 쌓인 기획 서류를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겠지만, 오늘의 유진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몇 시간 뒤에 만날 서연의 얼굴과 그녀의 청초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이 피어올라 자꾸만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점심시간을 알리는 사내 방송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마자 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팀원들과 함께 당연하다는 듯 구내식당으로 향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미리 양해를 구한 상태였다.중요한 개인 사정이 있어서 나가봐야 한다는 유진의 말에 팀원들은 무언가 눈치챈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유진은 그 시선조차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옷걸이에 걸어둔 단정한 코트를 챙겨 입고 회사를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마치 봄바람을 탄 것처럼 한없이 가벼웠다.서연이 메시지로 알려준 회사는 유진의 직장에서 도보로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번화가의 대기업 빌딩이었다.하늘 높이 솟은 거대한 유리 건물 앞에 도착하자 유진의 심장이 다시금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직장인 인파 속에서, 유진은 서연을 찾기 위해 시선을 바삐 움직였다.어제는 어두운 밤하늘과 흐릿한 가로등 불빛 아래서 만났지만, 이렇게 밝은 낮에 햇살을 받으며 마주할 그녀는
유진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몸을 조금 뒤로 물리려 했다. 하지만 뒤에 선 승객들이 꽉 막고 있어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결국 유진은 서연을 품에 안은 듯한 자세를 유지한 채, 그녀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미안해요. 뒤에서 너무 밀어서... 조금만 이러고 있을게요. 불편해도 참아줄 수 있어요?"유진의 낮고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가 서연의 귀가에 닿자, 서연은 어깨를 가볍게 떨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유진의 가슴에 이마를 살짝 기댄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네... 괜찮아요. 유진 씨 품이 넓어서... 하나도 안 불편해요."서연의 고백 같은 말에 유진의 심장은 그야말로 폭발할 것 같았다. 품에 안긴 서연이 너무나도 소중해서, 이대로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고 평생 달렸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두 사람은 만원 버스라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간 속에서, 오직 서로에게만 집중하며 그들만의 달콤한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안내 방송에서 익숙한 정류장 이름이 흘러나왔다. 어제 두 사람이 함께 내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버스가 서서히 멈춰 서고 문이 열리자, 유진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서연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서연 역시 아쉬운 듯 유진의 옷자락을 쥐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았다."내릴까요, 서연 씨?""네, 벌써 도착했네요.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어요."서연이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며 유진과 함께 버스 계단을 내려왔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어제와 같은 가로등 불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하지만 어제와 다른 점이 있다면, 두 사람의 손이 걸을 때마다 스칠 듯 말 듯 아주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유진은 용기를 내어 서연의 손을 향해 슬쩍 손가락을 뻗었다. 서연은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유진의 손길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커다란 손안으로 자신의 작은 손을 쏙 집어넣었다. 살며시 맞잡은 두 손을 통해 따뜻한 온기가 온몸으로 퍼져나갔다."손
회사의 업무 시간 내내 유진의 시계 바늘은 평소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직 퇴근 시간, 그리고 서연을 다시 만날 그 버스 정류장만이 유진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마침내 퇴근을 알리는 시계가 울렸고, 유진은 망설임 없이 가방을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정류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멀리서 익숙한 번호의 버스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정류장 가로등 아래, 어제와 같은 네이비색 코트를 입고 서 있는 서연의 모습이 유진의 시야에 들어왔다.서연 역시 다가오는 유진을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유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세차게 고동치기 시작했다. 썸의 온도가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달아오르고 있었다.서연이 흔드는 작은 손짓 하나에 하루 종일 쌓였던 직장에서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유진은 다리가 제멋대로 풀릴 것만 같은 긴장감을 억누르며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쳐 지나갔지만, 유진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기분 좋은 열기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서연 씨, 많이 기다렸어요?"유진이 서연의 앞에 멈춰 서며 물었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서연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배시시 웃었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미소는 어제보다 훨씬 더 눈이 부셨다."아니요, 저도 방금 도착했어요. 유진 씨가 안 오면 어쩌나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요.""제가 서연 씨를 두고 어디를 가겠어요? 약속 지키려고 퇴근 시계만 보고 있었습니다."유진의 솔직한 대답에 서연의 뺨이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그녀는 수줍은 듯 코트 깃을 만지작거리며 유진의 눈을 슬쩍 피했다. 그 모습마저도 유진의 가슴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마침 두 사람이 타야 할 버스가 전조등을 밝히며 정류장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어제와 다름없이 안에는 사람들로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버스 왔네요. 탈까요?"서연이 먼저 앞장서며 버스 계단을 올랐다. 유진은 그녀의 뒤를 바짝
그녀는 버스 정류장 근처의 가로등 아래에 멈춰 서서 가방을 뒤적였다. 유진은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주먹을 꽉 쥔 채 그녀에게 다가갔다. 구두 굽 소리가 밤공기를 가르고 그녀의 귀에 닿았을 때, 그녀가 고개를 돌려 유진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스쳤다.유진은 그녀의 앞에 서서 똑바로 눈을 맞추었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겠다는 듯이 단호하고 진중한 눈빛이었다."저기, 잠시만요."유진의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는 가방을 쥐고 있던 손을 멈추고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가로등 조명이 그녀의 실루엣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역광으로 빛나고 있었다."네? 무슨 일이세요?""버스에서부터 계속 눈이 갔습니다. 이런 말 갑작스럽고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거 아는데, 지금 안 물어보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요."유진은 침을 한 번 삼키고,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속삭였다."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유진은 자신의 심장 소리가 가로등 불빛보다 더 크게 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진의 질문에 잠시 당황한 듯 눈을 깜빡였다.유진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거절당하면 어쩌지? 오해하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이내 그녀의 입가에 느리게, 아주 매혹적인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가방에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유진에게 내밀었다."제 번호, 찍어드릴까요? 아니면 그쪽 번호를 주실래요?"그녀의 예상치 못한 적극적인 반응에 이번에는 유진이 얼어붙었다.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진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그녀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마치 봄날의 종소리처럼 유진의 귓가를 맴돌았다. 유진은 서둘러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화면 위로 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움직이며 숫자를 누르
퇴근길의 만원 버스는 언제나 불쾌한 소음과 눅눅한 공기로 가득했다.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드는 좁은 공간 속에서, 유진은 그저 창밖으로 흘러가는 회색빛 도시의 풍경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이었고, 오늘도 특별할 것 없는 하루의 마무리가 될 터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고, 앞문이 열리며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전까지는 말이다.축 처진 어깨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던 유진의 시선이 한순간에 멎었다. 버스 계단을 밟고 올라온 그녀를 본 순간, 거짓말처럼 주변의 모든 소음이 아득해졌다.단정하게 묶은 머리칼 아래로 드러난 하얀 목덜미, 살짝 찌푸려진 미간마저도 투명하게 빛나는 청초한 얼굴이었다.짙은 네이비색 코트 자락을 가볍게 휘날리며 카드를 찍는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유진의 눈동자에 느린 화면처럼 박혀 들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이상형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건만, 유진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저 여자다.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이 바로 저곳에 서 있었다.'어떻게 사람이 저런 분위기를 풍길 수 있지?'유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만원 버스의 복도를 헤치고 들어와 유진이 서 있는 손잡이 기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유진의 심장 박동은 통제 불능 상태로 빨라졌다.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비누 향기가 그녀의 존재를 더욱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손끝이 저릿할 정도로 긴장감이 밀려왔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창문에 비친 그녀의 실루엣을 훔쳐보는 것이 유진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버스가 거칠게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의 몸이 이리저리 쏠렸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녀의 머리 위쪽 기둥을 단단히 붙잡았다. 밀려드는 인파로부터 그녀를 보호하려는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그녀의 작은 어깨가 유진의 단단한 가슴팍과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 이르렀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