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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아아아!”

엔뉴 호텔 502호에서 유혜린의 귀청을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서나영이 당했던 고문을 유혜린이 똑같이 당하고 있었다.

허리를 조르고, 손끝을 바늘로 찌르고, 채찍질한 뒤 소금물을 바르고, 오물을 먹이고, 다리를 찢고...

주민식은 구석에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로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는 단단히 겁을 먹었다. 심지어 유혜린의 비참한 모습에 속이 메슥거려 토했다.

유혜린의 비명에 주민식은 자신이 했던 무력한 위협이 떠올랐다. 얼마나 우습고 가련한가?

유혜린은 그제야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이해했다.

“살... 려줘... 살...”

조금 전까지 그들을 위협하던 유혜린은 애원하고 있었다.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던 그녀는 이제 울고 있었다.

“살려 달라고...”

서현우는 눈에 핏발이 서서 눈이 벌겠다. 주먹을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어 갔다.

윤혜린을 괴롭혀도 마음이 전혀 편해지지 않았다.

대신 당시 동생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내 동생도 빌었겠지.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거야.”

서현우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네가 걔를 놔줬어? 아니. 내 동생은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너한테 괴롭힘을 당했어. 그런데 넌 걔를 놔줄 생각이 전혀 없었지.”

홍성은 전혀 봐주지 않고 주먹으로 유혜린의 얼굴을 힘껏 가격했다. 유혜린은 얼굴 곳곳이 터져서 피범벅이 되었고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엉망이 되었다.

유혜린은 결국 바닥에 쓰러졌고 내쉬는 숨이 많은 데 비해 들이마시는 숨이 적었다.

이는 유혜린이 서나영만큼 강인하지 못하다는 걸 의미했다.

고문이 끝났을 때는 새벽 한 시였다.

서현우는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던져.”

두 손은 피범벅이 되었지만 홍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유혜린을 끌고 창가로 향했다.

“싫어! 싫어... 살려줘... 난...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

죽도록 맞은 유혜린도 이 순간만큼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러나 홍성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유혜린을 창밖으로 던졌고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까지 눈에 담았다.

쿵!

유혜린은 추락한 뒤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피가 흘러나오면서 빗물에 의해 주위가 온통 빨갛게 물들었다.

성민은 죽은 듯 바닥에 엎드린 채로 꼼짝하지 못했다.

주민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려움이 마치 캄캄한 밤처럼 그를 집어삼켰고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서현우가 명령을 내렸다.

“가서 주워.”

홍성은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5층 높이는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볍게 착지한 뒤 한 바퀴 앞으로 굴러서 충격을 완화한 홍성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유혜린을 주워 들고 아주 빠른 속도로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 502호로 다시 돌아왔다.

서현우는 이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는 저마다 길이가 다른 은침 아홉 개를 꺼낸 뒤 기다란 손가락으로 유혜린의 몸 곳곳에 귀의침을 놓았다.

유혜린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귀의침은 염라대왕과 사람의 목숨을 다툴 수 있었다. 숨만 붙어있다면 절대 죽지 않는다.

그리고...

고문은 계속됐다.

서현우의 분노는 세계를 불태울 만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적이 남자든 여자든, 어떤 신분이든 상관없었다.

그의 여동생은 죽여달라고 사정할 만큼 고통스러웠으니 그녀를 괴롭힌 사람도 똑같이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여동생이 당한 것의 열 배, 백 배로 돌려줄 셈이었다.

그렇게 고문은 큰비가 멈출 때까지, 날이 밝을 때까지 반복됐다.

유혜린은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었지만 귀의침 덕분에 아직도 숨이 붙어있었다. 그녀는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 고문조차도 그녀를 정신 차리게 만들 수 없었다.

고문이 멈췄다.

서현우는 목석처럼 굳어버린 주민식을 들었다.

“뭐 하려는 거야?”

주민식은 미친 듯이 발버둥 쳤다.

“이거 놔! 서현우... 이거 놓으라고... 부탁해... 제발 날 놔줘!”

역겨운 냄새가 퍼졌다.

주민식이 똥오줌을 지린 탓이었다.

“꺼져.”

서현우는 방문을 연 뒤 주민식을 밖으로 내던졌다.

“가서 유상혁에게 알려. 내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주민식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서현우가 뭐라고 했지?

예전의 쓸모없던 놈이 유혜린을 저렇게 괴롭히다니, 게다가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유상혁을 찾았다.

서현우는 미친 걸까?

유상혁은 중연시의 하늘이었다.

설마 유상혁에게도 손을 쓰려는 걸까?

미친 거다.

미친 게 분명했다.

서현우의 냉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당장 꺼지지 않는다면 꺼질 필요 없게 만들어주겠어.”

주민식은 몸을 바르르 떨다가 다급히 일어나 도망치려 했지만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바닥에 엎어졌다. 순간 통증 때문에 눈앞이 아찔했다.

그는 이빨 두 개가 깨졌고 콧대가 부러졌으며 코피도 계속 흘렀다.

하지만 1초라도 이곳에 남고 싶지 않았던 주민식은 허둥지둥 달려 차에 올랐다. 그는 덜덜 떨면서 시동을 걸더니 미친 사람처럼 차를 운전해 자리를 떴다. 그제야 그의 눈동자에 원망의 빛이 서서히 나타났다.

그는 차 안에서 미친 듯이 고함을 질렀다.

“서현우! 넌 죽었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인 다음 잘게 다져서 들개에게 먹일 거야! 네 뼈까지 전부 갈아버리겠어!”

...

용국 중주.

날이 밝기 시작했고 공기가 산뜻했다.

빨간색 번호판을 단 차들이 빠른 속도로 회의 센터로 향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새벽부터 한곳에 모였다.

“이번 긴급회의는 남강의 총사령관님 때문에 열린 겁니다.”

정장을 입은 남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오후 다섯 시, 남강 총사령관인 서현우는 허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남강 전투기를 타고 서남 내륙 도시 중연시로 향했습니다.”

“건방지군요!”

한 노인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서현우는 뭘 어쩔 생각이죠? 그는 총사령관으로서 엄청난 권력을 손에 쥐고 있어 허락 없이는 내륙 도시로 갈 수 없어요. 설마 반란을 일으킬 생각인가요?”

“선 넘는 일이긴 합니다! 법을 어겼으니 엄하게 벌해야 해요!”

“금용 감찰사는 뭘 했답니까? 왜 그를 막지 않은 거죠?”

“국주께서 내린 명령도 그를 막지 못하다니...”

그 말에 사람들은 더욱더 화가 났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틀림없어요. 너무 거만하군요. 지금 당장 중연시에 금용위를 파견해 그를 붙잡은 뒤 심판해야 합니다!”

“지금 남강의 국면은 아주 중요한...”

“그게 뭐 어때서요? 그게 그가 건방을 떨 이유가 되면 안 되죠!”

“맞아요! 전에는 승진시킬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네요. 남강 총사령관의 자리를 박탈하고 평생 감옥에 가둬야 해요!”

쿵!

거물들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을 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군복을 입은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경례했다.

“안녕하십니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천용이었다. 그는 밤새 중연시에서 중주로 비행기를 타고 왔다.

“여러분들, 남강 총사령관님이 중연시에 난입한 일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이천용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

“남강 총사령관님인 서현우는 중연시 사람으로 6년 전 남강에 왔습니다. 그는 적군의 침입으로부터 남강을 지켰고 수억 명의 안전을 지켰습니다. 그는 남강 제9단이 곤경에 빠졌을 때 300명의 아군을 이끌고 적군을 물리친 뒤 제9단을 데려왔습니다! 당시 그는 몸 132곳에 상처를 입었고 자칫하면 죽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귀의침을 이용해 금용위 842명의 목숨을 살렸고, 금화마을이 적군에게 도륙당하고 2만 명의 용국 국민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홀로 나서 적국의 9대 전신을 소멸해 적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10년간의 전투에서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천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단단하면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파놓은 함정에 당해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셨고 남에게 가업을 빼앗겼으며 아버지는 된통 맞은 뒤 집안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마저 무시무시한 고문을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회의실 스크린에 사진 하나가 나타났다.

서나영의 처참한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천용은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남강을 지켰고 용국 남방 변방을 지켰으며 남방 세 개 주의 백성 수억 명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정작 여동생은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가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을 때 그의 가장 가까운 가족이 이런 일을 당했습니다. 저 금용 감찰사 이천용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한 마디는 분노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통을 터뜨리던 거물들은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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