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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날이 밝았지만 서현우의 눈동자에 비친 건 어둠뿐이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 어쩔 수 없는 일, 비통함과 괴로움이 넘쳐났다.

어떤 이들은 견딜 수밖에 없고 어떤 이들은 반항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

서현우는 창가에 선 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그의 등 뒤에서는 홍성이 유상혁을 조사한 자료를 읊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홍성은 분노에 찬 음성으로 죽어야 마땅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죽어야 마땅하다!

유상혁은 삼중문을 이용해 중연시에서 수십 년 동안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그가 한 모든 일에서 짙은 피비린내가 났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의 손아귀에서 발버둥 치며 애원했을까?

유상혁은 똑똑하게도 전혀 의심받지 않았다. 중연시 총독 천우성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그의 약점을 잡지 못했고 매번 잔챙이들만 잡아들였다. 겉으로는 중연시 시민들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 같지만 사실상 유상혁은 여전히 법의 제재를 받지 않았다.

그는 높은 자리에 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자신을 신이라고 여겼다.

서현우는 손을 들어 눈 부신 빛을 막았다. 햇빛이 손가락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그의 차가운 눈동자를 비췄다.

서현우는 직접 그 하늘을 찢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더는 잃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서현우는 고개를 돌렸다.

“홍성.”

홍성은 진지한 표정이었다.

“네.”

“낭연을 피우도록 해.”

홍성의 동공이 확 수축했다가 커졌다.

그녀는 대경실색했다.

“총사령관님!”

서현우는 평온한 얼굴로 다시 한번 말했다.

“낭연을 피워.”

홍성은 온몸이 떨렸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괴로움과 분노가 가득했다. 홍성은 서서히 손을 들어 신성한 군례를 했다.

“네!”

휴대폰을 꺼낸 뒤 홍성은 재빨리 화면을 클릭했고 이내 휴대폰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그 어둠 속에서 카드 한 장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 카드 위에는 한 번도 불을 붙여본 적 없는 금빛의 횃불이 있었고 횃불에는 용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홍성은 왼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살짝 누르기만 하면 되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손가락에 엄청난 무게가 가해진 것만 같았다.

남강 무생군 십이장 중 한 명인 홍성은 낭연을 피운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총사령관 최후의 명령이었다.

그리고 사용한 결과는...

서현우는 남강 총사령관에서 사임할 것이고 존재한 적 없다는 듯이 모든 자료를 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모든 공로와 6년간의 헌신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게 된다.

전신이라는 봉호를 얻거나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 당연하고 자유마저 제한될 것이다. 어디에서 왔으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고 평생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상혁 한 명을 상대하기 위해 이럴 필요가 있을까?

그 순간 유상혁에 대한 홍성의 증오가 뼈에 사무쳤다.

저런 쓰레기 같은 사람 때문에 나라의 중요한 인물을 잃어야 한다니!

용국의 뼈저린 손실이었다.

홍성은 두 눈동자에 핏발이 선 채로 결국 누르지 못했다. 그녀는 눈물을 왈칵 쏟으면서 무릎 한쪽을 꿇었다.

“총사령관님! 부디 재고해주세요!”

서현우는 꼼짝하지 않고 창가를 바라보았다. 그의 몸은 우뚝 솟은 산 같았다.

서현우의 차가운 얼굴에 엷은 낙담이 스쳐 지나갔다.

솔직히 고작 유상혁 때문에 이런 대가를 치를 필요는 없었지만 그 배후가 관건이었다.

유상혁과 이 일에 연루된 다른 사람들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고 그 배후야말로 진짜 거물이었다.

누군가는 그의 봉호를 보고 싶지 않아 하고 누군가는 적국에 투항하기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는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다.

서나영이 일을 당하고 서현우가 강제로 중연시로 돌아오게 된 건 모두 상대방의 함정이었다.

그리고 서현우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제1병원 병실 안, 서현우는 용무늬가 그려진 견장을 뜯어냈다. 이건 상대방의 뜻대로 되었음을 의미했지만 반드시 상대방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생각이었다.

이것은 게임이자 타협이다.

서현우의 타협은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상대방의 팔 하나를 베어 그에게 진짜 고통이 무엇인지 알려줄 셈이었다.

“피워.”

그 간단한 말에 홍성은 마치 한겨울에 얼음장 같은 호수에 빠진 것처럼 심장마저 멈출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소리 없이 눈물을 줄줄 흘렸다.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덜덜 떨렸다.

두 눈을 감는 순간, 검지가 휴대폰 화면의 횃불을 터치했다.

다음 순간,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

“빨리! 더 빨리!”

이천용의 울부짖음이 차 안에서 울려 퍼졌다.

운전하고 있는 기사는 속도를 최대로 냈다. 꽉 막힌 도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차가 긁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고, 신호위반까지 해서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마침내 차가 엔뉴 호텔 밖에 멈춰 섰다.

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이천용이 황급히 차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계단을 뛰어올라 5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502호에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려 했다.

댕댕댕댕댕댕댕...

중연시 도심, 오래된 종탑이 일곱 번 울려 중연시를 뒤흔들었다.

수많은 사람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다들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천용과 아직 중연시 제1병원에 있는 중연시 총독 천우성의 귓가에는 그것이 마치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총독님!”

천우성의 호위는 깜짝 놀라 황급히 천우성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얼른...”

“괜찮...”

천우성은 덜덜 떨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전에 없던 공포가 가득했다.

한참 뒤, 천우성이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위에 불타는 횃불을 보는 순간 천우성은 숨을 길게 들이마신 뒤 평온한 얼굴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난 천우성이다. 지금부터 중연시는 1급 전투준비태세에 들어간다. 중연시를 떠나는 모든 통로를 봉쇄해! 봉호를 얻은 사람이 아니면 모든 출입을 금지한다. 강제로 들이닥치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사살한 후 보고해! 모든 수비대는 항시 대기하도록!”

쨍강...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고 화면이 캄캄해졌다.

502호 문밖에 서 있던 이천용은 눈앞이 아찔했다.

그는 갓 물에서 건져낸 사람처럼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그는 힘없이 벽에 기댄 채로 숨을 헐떡였다.

“개자식!”

이천용은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결국 늦었어... 늦었어...”

끼익...

방문이 열렸다.

홍성이었다.

이천용은 고개를 들어 홍성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에서 괴로움과 비통함, 그리고 뼈에 사무치는 증오를 보아냈다.

낭연이 피어오르는 순간, 짧디짧은 6년 동안 엄청난 공로를 세운 남강의 총사령관 서현우는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이제 용국은 나라의 기둥이 되었던 그를 잃게 된다.

홍성은 눈가에 남은 눈물 자국을 닦아내며 덤덤히 말했다.

“총사령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요.”

이천용은 몸을 일으킨 뒤 군복을 정리하고는 머리 위 군모를 벗어 몸 앞에 내려놓았다.

그는 장엄한 표정으로 502호에 들어갔다.

모든 건 이미 늦었다.

낭연은 마치 하늘마저 불태울 듯한 서현우의 분노처럼 꺼지지 않았다.

이천용의 눈에는 방 안의 핏자국과 고문 기구, 고깃덩이가 된 유혜린, 겁을 먹고 정신 착란이 생겨 결국 혼수상태에 빠진 성민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를 등지고 있는 꼿꼿한 모습만이 보였다.

이천용은 서서히 손을 들어 경례했다. 그의 목소리는 그 어떤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금용 감찰사 이천용, 금용 감찰의 전체 인원이 총사령관님의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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