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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서씨 저택에 불이 밝았다.

고대 건축 스타일의 별장은 중연시 교외의 춘산 별장 구역의 뒤쪽에 위치했다.

서씨 저택이라는 글자가 적혔던 저택 대문의 팻말은 주씨 저택이라고 바뀌었다.

팻말의 금빛 테두리가 서태훈의 눈을 찔렀다.

“서태훈 씨, 여긴 왜 오셨습니까?”

경비가 서태훈의 앞길을 막았다.

“나... 주지현 찾으러 왔어요.”

서태훈이 이를 악물고 물었다.

“말 좀 해줄래요?”

본인 집도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니 비통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기다려요.”

경비가 안으로 들어가고 주먹을 쥔 서태훈의 손바닥은 땀범벅이 되었다.

그는 분통하고 걱정이 되었다.

주지현이 그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만약 가능하다면 서태훈은 평생 그 여자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다.

서씨 가문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겼다.

모든 서씨 가문의 산업이 그녀의 명의가 되었고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집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날 서태훈이 받은 충격은 조강지처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와 견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보는 눈이 없음을 원망하고 자신이 멍청하게 유혹에 넘어간 것을 원망했으며 서씨 가업을 망친 것을 원망하며 다리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만약 그에게 딸이 없었다면 진작 자결했을 것이다.

지금 서태훈의 눈앞에는 주마등처럼 옛일이 떠올랐고 그는 비통함에 잠겼다.

“저기요.”

서태훈은 누군가에게 밀쳐 뒤로 휘청거리다 겨우 서서 눈앞의 방금 자신을 가로막았던 경비를 바라보았다. 경비는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뭘 넋 놓고 있어요? 주 대표님 안 보고 싶어요? 얼른 따라와요.”

“네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태훈은 터덜터덜 경비의 뒤를 따르며 마당을 건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온화한 조명이 비쳤고 부드러운 소파에는 실크 잠옷을 입은 서른이 넘은 여자가 나른하게 누워있었다.

예쁜 얼굴에 관리가 잘 된 몸매, 거기에 서른이 넘은 나이의 성숙함이 더해지니 그녀의 농염한 자태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이 여자가 바로 주지현, 서태훈의 재혼녀였던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평생 나한테 연락하지 않을 줄 알았어.”

주지현은 서태훈의 남루한 모습에 입꼬리를 올리고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나는...”

주지현은 빨간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을 들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왜 날 찾아왔는지 알아. 딸을 구해달라고 그러지?”

서태훈이 심호흡을 하며 그녀를 불렀다.

“지현아.”

“닥쳐!”

주지현이 순간 버럭 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 이름을 불러? 주 대표님이라고 해!”

서태훈은 몸을 살짝 떨었다.

눈앞의 여자는 한때 자신을 향해 얼마나 다정하고 애교가 넘치게 오빠라고 불렀는가. 평생을 그와 함께 하며 딸을 잘 돌보겠다고 맹세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주 대표님.”

서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저의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주지현이 눈썹을 튕기며 물었다.

“그래? 서현우가 돌아왔어? 그게 뭐? 날 내쫓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제가... 유상혁의 심기를 건드렸어요. 제 아들과 딸 좀 구해줘요. 혹시...”

“서태훈, 당신 바보야?”

주지현은 서태훈의 말을 끊으며 깔깔 웃었다.

“이렇게 순진할 줄 몰랐네. 내가 왜 당신을 도와? 왜 당신의 아들과 딸을 구하냐고.”

“우리...”

서태훈이 고통스럽게 말했다.

“우린 그래도 부부였잖아요. 당신이 주씨 집안의 신분으로 나선다면 유상혁은 분명 당신의 요구를 들어줄 겁니다.”

“하하하...”

주지현은 눈물을 찔끔 짜낼 수 있을 만큼 크게 웃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비아냥거렸다.

“당신 말이 맞아. 내가 입만 열면 유상혁은 내 부탁 들어줄 거야. 하지만 내가 왜 당신을 위해 나서야 하지? 당신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한때의 부부? 정말 웃겨.”

서태훈은 몸에 힘이 풀렸다.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 여자가 어떻게 날 도울 수 있겠어. 내가 미쳤지. 여길 오다니!’

“하지만...”

주지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꿇고 나한테 빈다면 생각은 해볼게.”

털썩!

서태훈은 고민도 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아들과 딸만 남았다. 딸은 사경을 헤매고 있고 아들은 유상혁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존엄과 수치심은 버릴 수 있었다.

주지현은 서태훈이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자 더욱 경멸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기어서 와.”

서태훈은 그녀의 말대로 천천히 기어갔다.

주지현이 발을 내밀어 서태훈의 얼굴을 톡톡 치며 말했다.

“서태훈, 당신 정말 개 같아.”

“저... 저는 당신의 개입니다. 주 대표님, 제발 저의 아들과 딸을 살려 주세요...”

주지현은 서태훈의 얼굴에 올렸던 발을 거두며 일어나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헛된 꿈 꾸지 마. 원래 장난 좀 치려고 했던 건데 당신 모습을 보니 재미 없어졌어. 아, 맞다. 비밀 하나 알려줄게.”

서태훈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떨며 철저한 절망을 느꼈다.

주지현이 입을 열었다.

“수연의 죽음은 사실 당신이랑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어.”

그녀가 말한 수연은 서태훈의 조강지처로서 서현우와 서나영의 생모였다.

“모든 사람들과 당신마저 음주 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서 수연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니야. 나 때문이야.”

주지현은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차량은 내가 준비한 거였어.”

“뭐?”

서태훈이 고개를 홱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주지현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수연이가 안 죽으면 내가 어떻게 당신이랑 결혼해서 당신 재산을 빼앗겠어? 안 그래?”

“너!”

서태훈은 충격에 사레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그의 눈에 주지현의 예쁜 웃는 얼굴은 마치 악마의 얼굴처럼 소름이 끼쳤다.

“이 비밀은 너무 오래 참고 있었지 뭐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제격이었어.”

주지현이 말을 이었다.

“6년 전 서현우의 일 역시 내가 계획한 거였어. 서현우와 진씨 가문 아가씨에게 약을 타고 신고를 했지. 원래 뭔갈 더 하려고 했는데 서현우가 도망갈 줄이야. 하지만 도망자 신세로 평생을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아. 그렇게 되니 서씨 집안의 유일한 후계자가 사라져서 내 아들이 서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었지 뭐야. 당신도 내 아들 좋아하잖아. 그렇지?”

“악마! 주지현 이 악마! X발년! 죽여버릴 거야!”

서태훈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주지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경비가 그보다 빠른 속도로 서태훈의 가슴에 발길질을 해대며 그를 바닥에 때려눕혔다.

극심한 고통에 서태훈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서나영이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그것 역시 내 짓이야.”

주지현이 담백하게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걔가 자꾸 몰래 수연이 사인을 밝히려고 들잖아. 애가 뭔갈 캐고 다녀서 내가 얼마나 짜증이 났는 줄 알아? 그래서 유혜린을 시켜 손 좀 보라고 한 거야. 이제 말해봐. 내가 서나영을 도울 것 같아? 유혜린이 우리 아들이랑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우리 아들과 결혼할 거야. 유상혁은 미래 사돈인데 당신의 병신 같은 아들이 돌아와서 유상혁과 척을 져? 죽음을 자초하긴. 돕긴 뭘 도와?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 이러고 보니 서태훈, 당신 정말 너무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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