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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밤 열 두시.

먹구름이 중연시 하늘을 가득 메웠고 결국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 위 행인들은 비를 피했고 각양각색의 우산이 마치 아름다움을 다투는 꽃처럼 밤하늘 아래 피어났다.

으슥한 길목에서 서태훈은 얼굴에 퍼렇게 멍이 든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는 빗물에 푹 젖어있었다. 뺨을 따라 흘러내린 빗물이 턱에 잠깐 맺혔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졌다.

그건 빗물일까, 아니면 눈물일까?

그는 마치 좀비처럼 공허하면서 무감각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호되게 얻어맞은 뒤 밖으로 내쫓긴 그는 통증이 너무 심해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끝없는 심연으로 추락했다.

주지현이 그를 때려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자신의 두 눈으로 딸과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길 바랐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보내는 건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일이었고 주지현은 그에게 이러한 고통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악마의 목소리처럼 귀에 거슬리는 주지현의 광포한 웃음소리가 서태훈의 귓가에서 끊임없이 반복됐다.

서태훈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빗속에서 쿵 쓰러지더니 악마라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리다가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곧이어 검은색 우산을 쓴 사람이 성큼성큼 그에게로 걸어왔다.

검은 우산을 든 이천용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으로 옮겨서 서나영이 있는 병실에 보내. 왕 신의에게 잘 봐달라고 부탁해.”

“알겠습니다.”

...

엔뉴 호텔, 네온사인이 빗속에서 홀로 환히 빛나고 있었다.

호텔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로비는 깔끔하고 깨끗했다.

조금 전까지 이곳에 35구의 시체가 피바다 속에 누워있었다는 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502호의 문이 홍성에 의해 열렸다.

불빛이 들어오는 순간, 상처투성이인 서현우의 마음이 격렬히 요동쳤다.

방안 곳곳에 튄 핏방울은 이미 말라붙었고 벽에는 손톱으로 긁은 듯한 핏자국이 남아있었다. 서현우는 피범벅이 된 손가락으로 미친 듯이 벽을 할퀸 여동생의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

고문에 사용되는 형구들은 여전히 방 안에 놓여있었고 그 위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그 피는 서나영의 것이었다.

왼쪽 창문은 깨져있었고 창턱 위에는 피로 물든 발자국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

그것 또한 서나영의 흔적이었다. 그녀는 엄청난 고문을 당한 뒤 결국 압박에 못 이겨 이곳에서 뛰어내렸다.

서현우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소파 위에 앉은 뒤 고개를 들어 천장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잘 감춰진 초소형 카메라가 있었다.

“TV 켜.”

서현우가 덤덤히 말했다.

“CCTV를 확인해야겠어.”

“총사령관님...”

홍성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는 서현우가 견딜 수 없을까 봐 걱정됐다.

“내 동생이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 그래야 남강 총사령관인 내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깨달을 수 있겠지.”

너무도 평온한 목소리에 홍성은 심장이 떨렸다.

감히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호텔 CCTV 시스템을 해킹했다.

남강 무생군 십이장은 저마다 뛰어난 점이 있었다. 홍성은 실력도 대단하지만 정보 수집 능력이 엄청났다. 남강의 대외 정보 시스템은 모두 홍성이 장악하고 있었다.

이내 방 안 TV 화면이 켜졌다.

서나영은 누군가에 의해 눈이 가려진 채로 묶여 있었는데 두 팔은 십자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곧이어 몸에 명품을 두른 남녀가 킥킥거리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날씬한 몸매에 짙은 화장을 한 여자가 앞으로 다가가 서나영이 쓰고 있던 탈을 벗겼다. 꽤 예쁘장한 얼굴에는 거만함이 가득했다.

“유혜린!”

서나영은 대경실색했다.

“뭐 하려는 거야?”

“뭐 하려는 거냐고? 하하,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네가 아직도 서씨 집안 딸인 줄 알아? 학교에서 날 이겨 먹는 거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런데 네가 네 엄마가 죽은 이유를 조사할 줄은 몰랐네. 탓하려면 건들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린 네 탓을 해.”

“역시 우리 엄마의 죽음에 문제가 있었네. 너랑 관련 있는 거 아냐?”

서나영이 이를 악물면서 분한 얼굴로 물었다.

“어머, 감히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봐? 정말 역겨워 죽겠어. 성민아! 성민아!”

“아가씨!”

성민이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자, 네 수단으로 이 망할 것 좀 상대해. 죽이지는 말고 숨만 붙여둬. 쓸데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 반드시 만족시켜드릴게요! 흐흐흐...”

성민이 손을 내젓자 부하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유혜린과 두 부잣집 도련님은 소파에 앉더니 마치 영화를 관람하러 온 사람처럼 시시덕거리면서 재밌는 구경을 기대했다.

성민의 명령하에 두 부하는 밧줄을 들고 서나영에게 다가갔다.

그 순간부터 서나영의 고난이 시작됐다.

서현우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TV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성민을 깨워.”

홍성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도저히 TV 화면을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서현우의 말에 홍성은 성민의 종아리를 콱 밟았다.

빠각!

“악!”

정신을 잃었던 성민은 뼈가 으스러지는 극심한 통증에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서현우는 계속해 TV를 보았다. 두 부하가 서나영의 배에 밧줄을 묶은 뒤 마치 줄다리기를 하듯 양쪽으로 힘껏 밧줄을 당겼다.

“깼어? 유혜린에게 연락해.”

성민은 아파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으나 찍소리도 못했다.

“으악!”

큰 비명이 방 안에 메아리쳤다.

성민은 몸을 파르르 떨더니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는 자신이 엔뉴 호텔 502호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TV에서는 그가 사람을 시켜 서나영을 고문하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성민은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핏기 하나 없었다. 그는 얼른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으면서 애원했다.

“서현우 씨, 제발 용서해주세요! 저도 협박받은 겁니다! 유혜린이 저한테 강요한 겁니다! 저랑은 상관없는...”

서나영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두견새처럼 피를 토할 듯, 과격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소리에 홍성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고문!

이건 명백한 고문이다!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빈 남강의 병사도 견디기 힘들 텐데 서나영은 연약한 여자였다.

홍성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홍성은 TV 속 고문을 당하는 여자가 자신의 친여동생인 것처럼 미칠 것만 같았는데, 반대로 서현우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피 맛을 배불리 봤을 비수가 성민의 목에 닿았다. 날카로운 칼날이 살을 가르고 들어갔고 핏방울이 칼날을 따라 칼끝으로 흐른 뒤 바닥에 떨어졌다.

“전화해. 그렇지 않으면 네 몸의 모든 살점을 하나하나 베어낼 거야.”

지옥에서나 들을 법한 목소리가 성민의 귓가에 맴돌았다.

성민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고 파리하게 질렸던 얼굴은 핏빛처럼 붉게 변했다.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성민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할게요! 용서해주세요! 저 전화할게요! 지금 바로 할게요! 지금 바로!”

성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낸 뒤 유혜린의 번호를 찾아 그녀에게 연락했다.

어떻게 되든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전화를 안 해도 죽고 해도 죽는다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늦게 죽고 싶었다. 그는 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그것들을 제외하면 한강에도 휩쓸려가지 못할 후회만이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혜린의 명령에 따라 서나영을 괴롭히지 않았을 거다.

통화 연결음은 마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같았다.

잠시 뒤, 전화가 연결됐다.

전화 건너편에서 교태로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성민아, 죽고 싶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감히 나한테 전화를 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통화 버튼을 누른 네 손가락을 잘라버릴 줄 알아.”

성민이 다급히 말했다.

“아가씨, 서나영의 오빠가 돌아왔습니다. 지금 엔뉴 호텔 502호에 있는데 저한테 잡혀있어요. 직접 와서 보실래요?”

“뭐? 서나영의 오빠? 6년 전 진아람이랑 자고 도망친 서현우? 하하, 재밌네. 재밌어. 알겠어, 재미있으니까 내가 특별히 가서 봐줄게. 참, 서나영 그 빌어먹을 것한테 한 것처럼 똑같이 해도 되겠어. 내가 도착한 뒤에 손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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