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천우진은 소이연의 병실로 갔다.“문헌 씨는요?”심문헌은 어제 그녀의 병실을 나간 후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답지 않았다.육현경이 살아있다는 것을 안다면 이렇게 가만있을 그가 아니었다.“자고 있어요.”“어디 아픈 거예요?”“아니요, 취했어요.”“...”“충격을 받은 것 같아서 술 좀 먹고 잠들었어요. 그리고 아직 깨우지 않았어요. 만나고 싶으면 가서 깨울게요.”“괜찮아요.”소이연은 다급히 거절했다. 그냥 그의 안부를 물은 것이다.답을 하며 그녀는 천우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왜요?”그녀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천우진이 물었다.“문헌 씨한테 지극정성이네요.”천우진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다.“그냥 딱해 보여서요.”천우진의 대답에도 소이연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보았다.그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크서클도 심했다. 어젯밤 잘 휴식하지 못했을 것이다.심문헌이 병실에 있는데 잘 쉬지 못했다고?“할 말이 있어요.”천우진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말해요.”“할아버지를 대체할 사람을 찾았어요.”그의 말에 소이연은 깜짝 놀랐다.“많이 찾아봤지만 똑같은 사람은 찾지 못하고 비슷한 사람만 찾았어요. 가까이에서 보면 할아버지가 아닌 걸 보아낼 수 있어요.”“그래서요?”“오늘 할아버지를 비밀리에 안전한 곳으로 모실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을 부를 거예요. 구체적인 건 내가 준비할 거예요.”소이연은 별다른 말 없이 천우진의 말을 따랐다.“당신과 육현경은 어떤 생각이에요?”어제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어 물어보지 못했지만 지금 그녀의 생각을 물어야 했다.“노력할게요.”소이연은 천우진에게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숨겨지지도 않았을 것이다.“노력한다면 문제에 맞서도 되나요?”“괜찮아요.”소이연은 강경하게 답했다.“마음대로 해요.”“반대하는 건가요?”“반대하면 들으실 건가요?”천우진이 반문했다.“아니요.”“다른 건 다 괜찮은데 당신이 나를 밀어내는 건 견딜 수 없어요.”천우진의 말에 소이연은 감동을
천우진은 소이연이 천씨 가문에게 적대적이기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를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냉담했다.“나를 인정하는 건가요?”천우진은 한참이나 진정한 후 입을 열었다.“항상 인정했어요.”“이제야 표현하나요?”“자만할까 봐요.”그녀의 대답에 천우진은 낮게 웃었다.두 사람의 분위기가 너무 화기애애했다.“먼저 몸조리해요. 육현경이랑 다시 시작하든 아니면 천씨 집 일을 해결하든지 모두 건강이 우선이에요.”“당신도요.”소이연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뭐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맞다, 문헌 씨가 깨어나면 나한테 오라고 해요. 할 얘기가 있어요...”“여기 있어요.”문 앞에서 들리는 심문헌의 목소리에 소이연과 천우진이 돌아보았다.“이렇게 오랫동안 잠을 잘 줄은 몰랐네요. 그런데 대화를 엿듣지 못했어요.”“들어도 상관없어요. 속일 얘기도 없어요.”“먼저 나가 볼게요.”천우진은 그들을 두고 병실을 나왔다.“민아, 삼촌이랑 나갈래? 병원에서 며칠이나 지냈잖아.”“좋아요.”육민도 눈치가 빨랐다.병실에는 소이연과 심문헌 두 사람만 남았다.소이연이 한숨을 내쉬었다.“내 선택을 알거라고 생각해요.”“이제 나는 끝인가요?”심문헌은 그녀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가볍게 말했다. 그의 모든 아픔을 그녀에게 숨긴 것이다.“나에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낭비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그리고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지도 않아요.”심문헌의 말에 소이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육현경이 함께 하겠다고 해요?”“...”심문헌은 조금 고소했다.“임아영과 결혼할 건데 뺏을 자신이 있나요? 임아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에요.”심문헌의 말에 소이연은 반박할 수 없었다.“육현경이 임아영과 결혼하면 누구와도 만나지 않을 거예요?”“그럴 필요는 없죠. 죽은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결혼 한 건데, 다른 사람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심문헌의 말은 너무나 냉정했다.“육현경의 죽음은 나에게는 나쁜 일이 아니에요. 죽지도 않은 그가
이틀 후, 소이연은 천우진의 부름에 천씨 어르신 병실로 갔다. 정확히 말하면 천씨 가문 모두가 불려 갔다.그러나 어르신은 소이연과 천우진만 보려 했고 다른 이들은 밖에서 기다렸다.중환자실은 유리로 막혀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유리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그래서 어르신이 일어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등을 대고 있었기에 얼굴은 볼 수 없었다.어르신이었기에 누구도 돌아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이 또한 천우진이 똑똑한 점이었다.아무도 어르신이 다른 사람일거라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각도에서 보면 어르신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소이연은 천우진과 중환자실에서 가짜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었다.그렇게 반 시간이 지나 둘은 병실을 나왔다.어르신은 피곤한지 침대에 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그들이 병실을 나오자 집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할아버지가 뭐래?”천정엽이 다급히 물었다.“피곤하셔서 다른 사람들은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네요. 이제 깨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몸이 괜찮아지면 천씨 집으로 갈거라고 해요. 걱정 말고 하실 일 하시래요.”천우진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할아버지를 만날 거야.”“삼촌, 할아버지가 명확하게 말했어요. 피곤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대요. 휴식을 원하시는데 들어가면 좋지 않을 것 같아요.”“내 아빠가 어렵게 깨셨는데 아들로서 보러도 못가? 그저 얼굴만 보겠다는데.”“이건 할아버지의 뜻이에요. 왜 이렇게 준비하셨는지는 퇴원하고 물어보세요.”“왜 퇴원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지금 가도 되잖아.”“삼촌.”“우진이 네가 계속 막는 걸 보니 무슨 비밀이 있나 본데?”천정엽은 비아냥거렸다.“할아버지 곁에서 수년간 돌봤는데 삼촌이 나를 의심하다니. 이건 나를 의심하는 건지, 아니면 할아버지를 의심하는지 모르겠네요.”천우진의 강한 말투에 천정엽은 말을 멈추었다.그러나 천정엽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나는 아빠를 관심하는 거야. 나는 보러 가야겠어. 비켜.”말을 마치며 천정엽은 밀고 들어
“네가 뭔데...”“잊었나 본데 할아버지가 다친 것은 우연이 아니에요. 어쩌면 천씨의 누군가에 의해 다치신 거예요. 모든 조사를 마치기 전에 할아버지는 누구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어요.”“왜? 나를 의심하는 거야?”천정엽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그 정도는 아니지만 삼촌이 지금 할아버지의 화를 돋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진실이 들어난 후에 만나도 늦지 않아요.”천우진의 말에 천정엽은 얼굴이 굳어졌다.그러나 더 이상 강압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었다.어르신이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 하시는 건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계속 들어간다면 상황이 더욱 나빠질 것이다.천정엽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말이 없었다.“아까 할아버지가 말하셨어요. 자주 올 필요 없다고요. 할아버지의 몸이 나으시면 퇴원하고 돌아가실 거예요.”“다른 얘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천정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다른 일은 전달할 필요가 없으시대요.”“천우진!”천정엽은 화가 났다. 어르신은 천우진을 더욱 신뢰하여 다른 사람은 안중도 없이 모든 일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삼촌, 할아버지는 다 계획이 있으세요. 존중하셨으면 좋겠네요.”“천우진, 아버지가 모든 일을 너에게 맡긴 거지?”천정엽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아니요, 할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으면 직접 해결하실 거예요.”“거짓말하지 마!”천정엽은 믿을 수 없었다.“그래, 너는 장손이고 아버지가 키우셨으니 너를 더 좋아하시겠지. 앞으로 네가 천씨의 권력을 쥐면 삼촌을 잊지 마라.”“삼촌, 너무 갔어요.”천우진은 너무 비굴하지 않게 천천히 말했다.“할아버지가 아직 건강하시니 은퇴하시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니 삼촌은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지는 누구도 편애하지 않으니까.”“너는 정말 아버지를 닮았네. 됐어, 너랑 얘기 그만할거야. 아버지가 만나기 싫으면 가야지.”천정엽은 그의 무리를 이끌고 돌아갔다.“형님, 할
천우진은 소이연을 바라보았다.소이연은 침착했다.“포기하지 않을 거예요.”“같이 가 줘요?”“괜찮아요.”소이연은 웃으며 답했다.“있으면 더 불편할 것 같아요.”“뭐 할 거예요?”천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얼굴이 정말 빨리 바뀌네요.”“소이연, 적당히 해요.”“...그래요.”소이연은 천우진의 안색이 나빠지자 꼬리를 내렸다.딸을 시집보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진지하다니.“먼저 갈게요. 민이 부탁해요.”“아들도 버리네요.”“나는 엄마를 응원해요.”육민이 곁에서 거들자 소이연은 웃음이 터졌다.그녀는 스스로 휠체어를 끌고 떠났다. 어떻게 이미 다른 여자가 생긴 육현경을 대해야 할지도 몰랐다.지금 가서 육현경과 임아영이 알콩달콩한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소이연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그녀는 자신에게 육현경은 이미 기억을 잃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대담하게 행동해도 된다고 주문을 걸었다.임아영은 확실히 육현경의 생명의 은인이었다.그녀는 휠체어를 밀며 힘겹게 육현경의 병실에 도착했다.역시 그는 없었다.아마 옆 병실에 있을 것이다.그래도 그녀는 병실로 들어갔다. 임아영의 병실에서 육현경이 있는 모습과 갖은 노력으로 그를 남기게 하는 그녀의 행동이 더욱 싫었다.소이연은 저절로 한숨을 내쉬었다.한 번도 자신이 남자를 빼앗기게 될거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녀의 인생관에서 남자를 뺏는 것은 제쳐두고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것도 불가능했다.그녀가 고귀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남녀 간의 관계에서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이건 어린 시절 가정의 영향 탓이다.지금은 육현경이 다른 여자와 놀고 난 후 자신한테 돌아오길 바라는 지경에 도달했다.소이연은 육현경의 침대에 앉아 핸드폰으로 연예 뉴스를 들여다보았다.요새 자신의 교통사고, 천씨 가문의 사건, 육현경 때문에 다른 일들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지금 정신이 돌아와 예수진의 일에 대해 알고 싶었다.굳이 검색하지 않아도 예수진 관련 뉴스는 가
소이연은 보다가 지쳤는지 핸드폰을 내려다 놓았다. 그때 문밖의 육현경을 발견했다.육현경은 정신을 차리고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 모습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일부러 자신과 거리를 두는 걸 느꼈지만 무시했다.“돌아왔어요?”소이연은 억지로 웃어 보였다.“무슨 일이에요?”“꼭 무슨 일이 있어야 오나요?”육현경은 소이연에게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보지 말자’는 말은 뱉을 수 없었다.결국 그녀를 보내기 싫은 것이다.지금이라도 그녀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날 구해줬는데 감사의 인사도 못 하나요?”“필요 없어요.”“다른 사람이었다 해도 똑같이 행동 했을 거예요.”“임아영은 옆에서 가만히 지켜봤어요.”소이연의 가시 돋친 말에 육현경은 침묵하며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반박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소이연의 자신과 오래 함께 하길 바랐다.“어떻게 감사를 표할지 알고 싶지 않아요?”소이연은 분위기를 냉랭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어떻게요?”“이리 와 봐요, 알려 줄게요.”소이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육현경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소이연에게 걸어갔다.“조금 낮춰 봐요. 키가 너무 커서 내가 얼굴을 보려면 너무 힘들어요.”소이연의 말에 육현경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몸을 아래로 구부리며 그녀와 같은 높이를 유지했다.“이러면 돼...”육현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입술을 가로막았다.소이연이 입술이 그의 손등에 찍혔다.소이연은 자신이 이렇게 거절을 당하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미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너무 아팠다.두 사람은 그렇게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육현경은 몸을 일으켜 뒤로 한 걸음 후퇴해 그녀와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이렇게 할 필요 없어요.”소이연은 그 때문에 자신의 원칙을 깨지 않았어야 했다.그녀는 타인의 감정을 파괴하는 사람을 싫어했다.자신의 엄마가 다른 사람에 의해 결혼 생활이 파괴당했고 그녀 또한 연애가 다른 사람에 의해 파괴당했다.그 때문에 그녀 또한 그런 사람이 된
육현경은 자신이 평생을 걸쳐 꿈에도 가지고 싶었던 여자의 입에서 고백을 들을 줄 몰랐다.그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다.한순간 그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녀를 꽉 안고 싶었다.그러나 심아윤의 일을 겪은 후 그런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임아영은 심아윤보다 더 악질이었기에 소이연과 육민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을 칠 수 없었다.“임아영은 내 생명의 은인이에요. 버릴 수 없어요.”육현경은 결국 냉담하게 그녀를 대했다.소이연의 가슴 한쪽이 쓰려왔다.육현경이 기억을 잃어 이렇게 말하는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아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사랑이 아닌 감사함으로 함께 하는 건 결국 행복하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 갈등도 더욱 심해질 거예요. 당신은 지금 그녀를 해치는 거예요.”“그렇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그렇게 무서워요?”“말했잖아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생명의 은인... 그래서 그 사람에게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는 거죠?”“그래야만 해요.”“그럼 나는요? 당신한테 버림받는 건가요?”“미안해요.”육현경의 사과는 그녀를 자극했다.“루카스, 당신의 진짜 신분을 알아요? 누구인지...”“알고 싶지 않아요.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힘들어 질거예요. 이연 씨,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그의 냉담한 말에 소이연은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다가 눈물이 차올랐다.육현경의 모습은 소이연의 가슴을 후벼팠다.“인정해요. 내가 먼저 당신을 흔들었죠. 바람피운 거나 다름없어요. 한때는 아영 씨를 버리고 당신과 함께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아니에요. 영원히 아영 씨를 사랑할 거예요.”육현경의 말에 소이연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그를 가지는 건 쉽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그녀의 오만이었다.“이연 씨,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요.”육현경은 가슴 아픈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당신이 누군지 알면 분명히 후회...”“말했죠,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고요. 나한테 아무런 이득이 없어요. 당신이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나를 내버려둬요.
소이연은 일부러 그의 병실 앞에서 넘어졌다.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주게 될거라 생각했다.그렇다, 그녀는 결국 야비한 수단을 쓴 것이다.육현경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멈추었다.그렇게 소이연은 바닥에 넘어졌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냉담한 눈빛의 육현경을 바라보았다.“일어나기 힘들면 간호사를 불러올게요.”“도와주면 안 되나요?”육현경의 반응에 소이연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물었다.“남녀가 엄연히 다른데.”“이제라도 임아영에게 충성하겠다는 건가요?”“정신적으로 바람을 피웠던 게 미안해서요.”“하.”소이연은 콧방귀를 꼈다.그래도 여전히 가슴이 아팠다.자신의 애인이 다른 여자를 위해 그녀와 거리를 두려고 하다니.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몸을 일으켰다.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이번에는 진짜로 두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두 팔의 힘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었다.그녀가 바닥에서 허둥대는 모습을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었다.둘은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았다.“간호사를 불러올게요.”소이연의 그녀의 힘으로 일어설 수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필요 없어요!”그녀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껏 소리쳤다. “누구도 필요 없어요.”“그럼 맘대로 해요.”육현경은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차갑게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소이연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그는 어쩌다가 그녀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게 된 걸까.심지어 그녀는 그가 아까 병실은 들어오던 때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되었다.마치 그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깨닫고 최후의 선택을 한 것처럼 말이다.사람 감정이 이렇게 쉽게 변한단 말인가!“쾅!”병실 문이 열리며 심문헌이 육현경의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소이연은 그가 언제 왔는지 알 수 없었다.그의 주먹의 힘에 육현경은 뒤로 밀려났다. 옆에 벽이 없었다면 바닥에 넘어졌을 것이다.“나는 당신을 계속 존경했어. 그런데 오늘부터 당신을 경멸해! 어떤 상황에서도 남자로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