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혁의 여자들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끊이지 않았다. 하루에 서너 명씩 바뀌는 건 놀랄 일도 아니었다. 단 한 사람, 강요나만은 예외였다. 그의 곁에 머문 지 7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이혁의 유일한 여자라 여겼다. 하지만 강요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몸을 탐했을 뿐이고 그녀는 그의 돈을 탐했을 뿐이라는 걸. 약혼녀가 직접 찾아왔을 때 이제야 끝이 나는구나 싶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집요하게 그녀를 놓지 않았다. 강요나는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존재라 믿었다. 그날,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납치범의 칼날이 목을 누르고 있는 순간 그녀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혁, 이번 한 번만… 날 살려줘. 앞으로 다시는 매달리지 않을게.” 전화 너머로 돌아온 대답은 냉혹했다. “네가 죽으면 우리 사이도 깔끔하게 끝나는 거잖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음 날, 충격적인 영상이 온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그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은 화면 한 구석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은 바로 늘 고고하던 이 가의 태자였다.
View More처음으로 강요나는 충동적으로 이 아이를 낳은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사랑도 주지 못했고 자기 발목도 이렇게 잡혀 있는 처지가 되었으니.“우리 엄마 말이냐? 우리 엄마는 날 어쩌지 못해.” 지우가 비아냥거리듯 웃었다. 완전히 약점을 잡힌 강요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억지로 침착함을 되찾았다.“빙빙 말 돌리지 말고 말해. 대체 뭘 원하는 거야?”“역시 성경에서 굴러먹더니 눈치 하나는 꽤 빠르네.” 지우는 비꼬듯이 말했다.“나도 너처럼 쉽게 수 억원 버는 일을 소개해 달라는 거야.”쉽게 수십 억 버는 일? 강요나는 아직도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는 자기 목을 쓰다듬었다.그 돈은 목숨 걸고 번 돈이라는 걸 정말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 일은 없어. 그러니 너도 나 찾지마.” 강요나는 단호히 잘라 말했다.그녀는 지우가 자기한테 찾아오게 둘 수 없었다.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거니와 지금 자기 처지도 이미 벼랑 끝이었다.이혁이 언제 자기를 걷어찰지도 모른다. 그때면 자기도 갈 곳이 없는데 어떻게 지우까지 챙길 수 있겠는가.하지만 지우는 강요나의 사정 따위 알 리 없었다. 막무가내로 말했다. “강요나, 선택해.” 지우가 냉정하게 말했다.“나 혼자 갈까? 아니면 네 딸을 데리고 같이 갈까? 둘 중 하나야.”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요나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강요나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차올랐다.역시 맞았다. 죽 써서 개 준 셈이다. 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문자 알림이었다.확인해 보니 대출 상환 알림 메시지였다.순간 눈사태가 덮쳐 오는 듯이 숨이 막혀왔다. 강요나는 견디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바닥에 내던졌다.쾅—휴대폰 액정이 산산이 깨졌다.소리가 꽤 커서 수현 이모가 놀라 황급히 윗층으로 올라왔다.“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강요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현 이모는 바닥에 부서진 휴대전화를
강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강요나, 네 딸이 너 보고 싶다는데 왜 말이 없어?”낯선 목소리였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듯했다. 긴장감이 돌자 강요나를 짓누르던 슬픈 감정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지우?”“하하.”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맑고 경쾌한 목소리였다.“언니, 나야.”언니?!강요나는 그녀를 여동생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게다가 지우는 미얀마 북부에 있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나왔을 리가 있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강요나가 계모에게 돈을 준 뒤 그 이후의 일은 묻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안 물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왜 갑자기 전화를 한 걸까? 게다가 유나까지 끼고? 강요나는 차갑게 물었다. “네 엄마는?”“언니, 우리 엄마가 십 몇 년 동안 언니 밥 해 주고 빨래해 주고 뒷바라지 했는데 엄마라고 한 번 부르지 그래?”지우는 마치 라연을 대신해 억울함을 호소하듯 말했다. 강요나는 쓸데없는 말 하는 게 싫었다.“전화 바꿔.”“나갔어.”지우의 말투엔 묘하게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 강요나는 지금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훤히 그려졌다. 대학에 가기 전에 강요나는 지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후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1억을 넘긴 건 정말 괜한 짓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은혜를 원수로 갚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말해. 전화한 이유가 뭐야?” 강요나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언니,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지우가 웃으며 말했다.“당연히 감사 인사하려고 전화했지. 날 살려 준 1억 원. 정말 고마워.”감사하다는 말인데도 강요나의 귀에는 불쾌하게 들렸다.원래 기분이 안 좋았던 강요나는 곧바로 쏘아붙였다.“언니라고 부르지 마. 난 너랑 한 푼어치 관계도 없어.”“알겠어, 그럼 강요나라고 부르지.” 지
“이젠 괜찮아요.” 수현 이모는 그녀를 달래며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휴지를 건네며 눈물을 닦아 주었다.강요나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현 이모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감정을 추스를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비켜 주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강요나의 눈동자에 문득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그녀는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카펫 위에 떨어진 핏자국을 내려다보며 이청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청은 꽤 빠르게 받았다.“강요나 씨…”“이청,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강요나는 인사도 없이 말을 끊으며 따져 물었다.전화기 너머에서 이청이 잠시 멈칫했다.“왜 그러세요?”“아직도 모른 척이야?” 강요나가 코웃음을 쳤다.“주얼리 숍에서 있었던 일은 일단 접어두자. 근데 일부러 스카프를 두고 가서 주진석이 찾으러 오게 만든 건 무슨 속셈이야?”이청이 웃었다.“역시 똑똑해. 눈치챘어?”“너 진짜 미친 거 아니야?”강요나는 그대로 욕을 내뱉었다. “그 사람이 못 믿겠으면 헤어지든가. 그 사람 테스트하겠다고 날 이용해?”“정말 당당하면 찔릴 게 없잖아.” 이청은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찔릴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일로 그녀는 하마터면 다 잃을 뻔했다. 강요나는 목을 살짝 흔들었다. 이혁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다.“이청, 너 똑똑한 건 알겠는데 오늘은 도가 지나쳤어. 그럼 오늘 결과에는 만족하나 보지?”이청의 머릿속에는 피를 흘리며 강요나의 집을 나서는 주진석의 모습이 스쳤다. 기분 좋을 리 없었다.강요나의 말이 맞았다. 이건 그녀가 짜 놓은 판이었다. 다만 임솔이 찾아와 칼까지 들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주진석이 강요나를 위해 칼을 막을 줄은 더더욱 예상 못 했다.“이혁이 널 그냥 두진 않았겠지?”이청은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혁 성격상 강요나를 편히 두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그게 바로 그녀의 진짜 목적이었다. 강요나 혼자가 이혁을 독차지하는 게 싫었다.하지만 이청은 이혁과 애
그는… 정말로 그녀 목을 졸라 죽이려는 걸까? 처음이다. 7년 동안 함께 하면서 그가 그녀에게 이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강요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만큼 크게 놀랐다.그녀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이혁 역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서로만 비쳐 있었다. 한쪽은 공포에 흔들렸고 다른 한쪽은 흉포함으로 가득했다.“강요나.” 이혁이 그녀를 불렀다.“나한테 거짓말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강요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여는 순간 목숨이 날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지만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이번엔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눈시울이 시큰해졌다.그 감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억울함이었고 슬픔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씁쓸함이었다. 이혁의 냉혹함은 그녀로 하여금 다시금 깨닫게 했다. 자신은 그저 그의 장난감일 뿐이라는 걸. 기분 좋을 때는 돈도 주고 보석도 주지만 기분이 상하면 언제든 자기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사람이다.“주진석에 대한 미련은 버려라. 그게…” 이혁은 그녀의 목을 쥔 채 엄지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 긴장으로 불거진 그녀의 동맥을 정확히 긁고 지나갔다.“…언젠가 내 곁을 떠날 지라도 그와는 절대 안 돼. 알겠어?”왜? 이 관계가 끝나고 나서 그녀가 누구와 함께할지는 그가 정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하지만 그런 말은 죽어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강요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 순간 눈가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한 방울또 한 방울…의지와 상관없이.그와 함께한 이 수년 동안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녀는 그의 앞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비위를 맞추는 금빛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 감정을 표현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투명한 눈물 방울이 정확히 그녀의 목을 쥐고 있던 이혁의 손목 위로 떨어졌고 그대로 흘러내려 바닥에 부딪혀 부서졌다.눈물에 그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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